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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94화 (194/774)

194화. 비인외도(非人外道) (8)

거처로 돌아가는 길, 서량은 생각에 잠겼다.

‘최소한의 도덕조차 결여된 진짜 악마라?’

서량은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천하에 그보다 강한 사람은 많지만, 그만큼 숱한 인간 군상을 봐 온 이도 없을 것이다.

의천맹주의 아래에서 온갖 무림인들을 암살하고 다닐 때, 그중 대부분이 악랄하다는 평가조차 분에 넘치는 쓰레기들이었다. 의천맹주나 죽은 그놈들이나 거기서 거기란 말이다.

다만 의천맹주가 더 똑똑했을 뿐.

‘얼마나 막 나가는지는 모르겠다만 영감 정도가 아니면 넌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못 낸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는 진리.

그 진리가 지배하는 치열하고도 치사하며, 흉포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수십 년을 살다 왔다. 진관용이 어떻게 나오든 적어도 모르고 당하진 않을 것이다.

“음. 다 왔군.”

멀리 보이는 거처가 참으로 반갑다.

“진짜 어렵게도 오는구만.”

교주에 진관용에,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내상을 고치지 못했다면 지금쯤 피로로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걸음을 빨리한 서량은 거처에 들어서자마자 기가 막힌 광경을 봐야만 했다.

“차앗!”

퍼억!

“끄어어억!”

괴상한 신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여인.

“이걸로 마흔두 번째요. 그만합시다.”

“그, 그만은 이 새끼야! 기어코 한 방 먹인다!”

“백 번을 더 해도 안 되오.”

“한 번만 더 하면 돼!”

“그 소리도 마흔두 번째 듣고 있소.”

“이 개자식!”

파아아앙!

빠른 속도로 달려든 위홍련이 호포검을 휘둘렀다.

호포검이 그리는 궤적은 놀랍도록 실전적이었다. 단순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검선(劍線), 위홍련의 무공이 일격필살에 근본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되겠군.’

서량의 담백한 예상은 즉각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까아앙!

부드럽게 쳐올리는 검격에 호포검이 튕겨 나가고.

퍽!

“꽥!”

가볍게 밀어 올리는 장력에 위홍련이 훨훨 날아 땅에 처박혔다. 부드럽게 밀어 내는 장법이었지만 마동필의 무공도 누구 못지않은 강성(强性)이라 충격이 없을 수 없었다.

“마흔세 번째요. 이제 정말 끝냅시다.”

“치, 치사한 새끼! 검사의 승부에서 장법을 구사해?”

“당신, 아까 손가락으로 내 눈 찌르려고 했던 걸 벌써 잊은 거요?”

“시끄러, 인마!”

위홍련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네 몸뚱이에 칼자국 하나 내기 전엔 절대로 못 돌아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집착이었다. 마동필은 위홍련의 광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때, 서량이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재미있어 보이는구만.”

“공자님!”

“억?!”

마동필이 반색하며 서량에게 다가왔다.

“늦으셨습니다.”

“어, 그렇게 됐다. 근데 너희는 뭐 하냐?”

“아…… 위 대주와 비무를…….”

서량이 코웃음을 쳤다.

“비무? 마흔세 번이나 일방적으로 패대기쳐진 싸움도 비무라고 부르나 보지?”

마동필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오셨슴까.”

“얼씨구, 말투 봐라.”

“새삼스럽게 왜요.”

서량은 피식 웃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툴툴거릴 수 있는 주둥이를 갖고 사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쉬면서 머리 정리나 해라. 그런 식으로는 동필이 머리카락 하나 못 건드려.”

“싫어요!”

“해.”

“…….”

“해.”

“……알았다고요.”

위홍련이 풀썩 주저앉으며 구시렁거렸다. ‘한 판만 더 붙으면 아작을 낼 수 있었는데.’ ‘하여튼 서러워서 못 살겠다.’ 따위의 말이 들려왔다.

듣기 싫어도 너무 커서 안 들을 수가 없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회초리로 찰싹찰싹 때린다고 바위가 깨져?”

“그럼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죽었다 깨나도 못 이기는 거지.”

“…….”

“그게 싫으면 후딱후딱 강해지든가.”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자신이 마동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서량 앞에서는 제법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는 위홍련이었다.

“네 장기를 비무 따위로 발휘해 보려 하니까 한 대도 못 치는 거다.”

“그럼요?”

“어울리는 싸움을 해야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려 볼 수 있는 거지.”

“그게 뭔데요?”

“네 장기가 뭔데?”

“두들겨 패는 거?”

“어떻게 두들겨 패는데?”

“죽일 기세로?”

“그럼 죽일 기세로 해 봐.”

위홍련의 눈이 반짝였다.

죽일 기세로 두들겨 패라?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그녀는 검을 잡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연습 비무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한 싸움의 연속.

생사의 영역에서 서로의 심장을 내놓고 누가 먼저 상대의 것을 쟁취하느냐의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 무(武)를 견주는(比) 말랑말랑한 무대에서 제 역량이 나올 리가 없다.

치링!

호포검을 든 그녀가 자세를 낮추었다.

“너! 나랑 다시……!”

“그만.”

“왜요!”

“쉬라고 했잖아. 나중에 해, 나중에. 내상 축적된 것도 모르는 놈이.”

위홍련이 이를 갈다가 철퍽 소리가 나도록 주저앉았다.

“운기 끝나고 한 판 더 해.”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싫소.”

“왜!”

“당신과는 더 싸우지 않을 것이오. 그런 줄 아시오.”

“치사한 놈. 이기고 배 째기 있어?”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마동필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위홍련은 연신 씨근덕거리다가 눈을 감았다. 어쨌든 내상은 다스려야 하니까.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저거 왜 부대 정비는 안 하고 여기 와서 지랄이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정신 나간 광인 하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

아닙니다, 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시간이 애매하네. 이따가 저녁이나 먹지.”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서량이 고개를 돌려 돌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꼿꼿한 자세로 앉은 여상린이 멀뚱멀뚱 서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거기서 뭐 하냐?”

“날씨가 좋아서요.”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은 빈말로도 좋다 하기 어려웠다.

“북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하늘 아닌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지역일 텐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는 안 와요.”

“그래? 뭐, 알았다.”

서량이 방으로 걸어갔다.

그때, 여상린이 일어났다.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서량이 여상린을 힐끔거렸다. 평온해 보이는 표정 위, 은근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씻고 올 테니까 차나 한잔하지. 동필아! 앵화한테 차 좀 부탁…… 엥? 근데 앵화는 어디 있냐? 평소 같으면 후다닥 달려와서 반갑다고 폴짝폴짝 뛰고 있을 애가.”

“수면 중입니다.”

“잔다고? 많이 피곤한가 본데?”

“예. 몸살기가 좀…….”

마동필이 헛기침을 했다. 여상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무슨 일 있었나?”

그날 저녁.

서량이 걷어 올린 소매를 내리며 말했다.

“식당에서 가져오긴 좀 그렇고, 있는 재료로 내가 대충 만든 거다. 잡숴 봐.”

여상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편함에 허둥대던 마동필은 말조차 잇지 못했다.

“오? 굉장한데요!”

천연덕스럽게 앉은 위홍련이 고기 한 점을 씹었다.

“캬, 좋다! 힘이 아주 절로 납니다, 절로 나.”

“다행이군.”

“아니 근데 요리는 언제 배우셨대요? 이렇게 맛을 내기도 쉽지 않지 싶은데.”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어쩌다 한 번씩 해 본 거야. 많이 해 놨으니까 양껏들 먹어.”

“넵!”

위홍련은 대접보다 큰 접시 하나를 끌어안고 본격적으로 씹어 댔다.

그녀를 따라 조심스레 음식을 집어 먹은 마동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굉장합니다, 공자님.”

“고맙구먼.”

고죽림에서 온갖 귀물들을 잡아먹은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동필도 서량이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미료(調味料)라고는 소금 정도가 전부인 환경이었다. 할 수 있는 요리라곤 쪄 먹거나 탕국을 만드는 게 전부였으니, 제대로 된 실력을 뽐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서량이 여상린을 힐끔거렸다.

“삼십 인분 정도 만들었으니까 걱정 말고 먹어라.”

아무리 그래도 고작 넷이 먹는데 삼십 인분은 너무한 거 아닌가.

여상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려.”

그렇게 네 사람의 고요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한참 음식을 먹던 마동필이 물었다.

“한데 공자님, 금호는 어디에……?”

“새삼스럽게 뭘 물어. 근처 산 어딘가에서 불쌍한 사슴 몇 마리 족치고 있겠지.”

“아, 예.”

호왕에 관해서도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참았다. 비슷한 말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온한 얼굴로 접시를 다섯 번이나 비워 낸 여상린이 헛기침을 했다.

서량이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벌써 배불러?”

“네? 아, 아뇨.”

막상 말해 놓고 나서야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머쓱한 표정을 짓던 여상린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소 뜬금없기도 했고 사람도 많았지만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아, 그래. 우리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네. 그리고…….”

“왜?”

“따로 말씀드릴 게 있어요.”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여상린이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마동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이서 말씀 나누시지요. 위 대주, 일어납시다.”

“쩝쩝. 엉? 나 아직 다 안 먹었…….”

“어서 일어나시오.”

그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뭐 하러 일어나? 앉아.”

“예? 하지만…….”

서량이 웃으며 여상린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내 사람들이야. 난 이 사람들한테 딱히 숨기는 게 없어.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

“…….”

“할 말 있으면 부담 없이 해. 어차피 다들 알아도 상관없으니까.”

괜히 자신 때문에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여상린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불편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알아.”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상린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삼공자께서 차후 신교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쿨럭!”

느닷없는 폭탄 발언에 위홍련이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다시 젓가락을 들던 마동필의 몸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서량의 얼굴에 흥미로움이 일었다.

“날 돕겠다고?”

“그렇습니다.”

“단순한 계약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진 않겠다는 뜻인가?”

여상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궁은, 정확히는 차기 궁주가 될 오라버니는 삼공자님과 동맹을 맺었지요. 그렇다면 저 역시 빙궁의 사람으로서 삼공자님을 도와야 함이 당연합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도움이 필요할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지. 게다가 난 너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몰라.”

“그렇군요.”

“그리고 나를 도울 사람은 신교 안팎으로 많다. 차라리 내가 차기 후계자가 된 이후를 논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

후계자가 된 이후를 논하겠다.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가만히 서량을 보던 여상린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라도 저의 도움이 필요하실 때 말씀해 주시면…….”

“아, 궁금한 건 하나 있군.”

“네?”

서량이 턱을 괴며 물었다.

“그 유리잠력대법인지 뭔지 하는 거.”

“……!”

“그거 도대체 뭐냐? 설명 좀 해 줘 봐.”

“……제 오라비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응. 뭔가 할 말은 있는 것 같던데 자꾸 주저하더라고. 눈치를 보아하니 대충 그거 같더라.”

여상린의 얼굴이 다소 굳어졌다.

“오라비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삼공자께서 여쭈어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읊어 봐.”

“유리잠력대법이란 피비린내 나는 본궁의 역사가 만든 비인외도(非人外道)의 대법입니다.”

“비인외도의 대법이라?”

“그리고, 넓게 보면 야수궁은 물론이거니와 귀교와도 관련이 있는 대법이지요.”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야수궁과 천마신교와도 관련이 있단다. 두 집단의 공통점이라고는 장강 이남에서 커다란 세를 구축한 문파라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여상린이 물었다.

“혹, 신교에 흡정마공과 비슷한 무공이 존재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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