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95화 (195/774)

195화. 불쾌한 씨앗 (1)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연무장에 나와 운기를 마친 서량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디 시작해 볼까.’

가볍게 일어나 몸을 푼 서량이 자세를 낮추었다.

양발을 어깨보다 넓게 벌리고 발끝이 전방으로 향하도록 한다. 무릎을 직각이 되도록 굽힌 뒤, 양팔을 앞으로 뻗고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자연스레 편다.

허리와 목을 곧게 펴고 눈은 손끝을 향하는 마보 자세, 무공에 입문한 초보들이 흔히 수련하는 참춘공(站椿功)이었다.

참춘공은 무(武)의 근본인 하체와 허리, 복부를 단련할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내공심법을 익히는 초보자들에겐 다른 의미로 좋은 수련이다.

바로 기(氣)를 느끼기 쉽다는 것.

단전을 중심으로 잡는 자세기에 진아(眞我)로 침잠하기 쉽고, 풍부한 외기(外氣)를 진정한 나에게 귀속시키는 데에 편리하다. 소위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기 가장 좋은 수련이었다.

그러나 한옆에서 서량을 지켜보던 마동필은 내심 의문이 들었다.

‘왜 참춘공 따위를?’

마동필, 아니 위홍련 정도만 되어도 참춘공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참춘공을 수련하는 마인 자체가 적었다. 참춘공의 원류는 소림인바, 널리 알려진 수련법이지만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면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마동필은 서량의 경지를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저런 수련을 한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는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역시 버려야 하는군.’

내상을 치료하면서 느꼈던 마학의 원리.

오랜만에 참춘의 수련까지 하며 스스로를 돌아본 그는, 자신의 창의성과 집중력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간 여러 무학을 습득하며 새로운 무공과 경지를 창조했지만, 이제부터는 진득하게 한 길을 파고들어야 해.’

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이란 바다에 몸을 싣는 것.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론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우우우웅.

어느새 전신에서 붉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자세를 푼 서량이 크게 한 발을 내디뎠다.

쿵!

연무장이 울림과 동시에 서량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두 발은 마황군림보의 보행을 따라가며, 두 팔을 부드럽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원을 그리는 모습은 일견 무당의 태극권 같았지만, 그보다 훨씬 빨라서 왠지 격렬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파아앙!

연신 부드러이 허공을 쓸어 간다 싶은 순간 강하게 내지르는 일권(一拳).

우르르릉.

그의 주먹 끝에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마벽력권이 시작된 것이다.

서량의 눈빛이 바뀌었다.

파아악!

부드러움과 격렬함을 동시에 품고 있던 그의 동작이 한없이 빠르고 강해졌다.

퍼퍼퍼펑!

소맷자락이 펄렁이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뜨겁게 달아오른 바람이 서늘한 새벽 공기와 만나 은은한 아지랑이를 만들어 냈다.

풍운(風雲)을 일으키는 권법의 향연. 두 팔에서 뿜어지는 붉은 마기가 전광(電光)처럼 보였다. 발경을 터트리지만 않을 뿐, 제대로 마기를 담은 서량의 벽력권은 이미 오 성(五成)을 넘어 육 성(六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빠른 진전이었다. 야수궁주와의 싸움, 그리고 내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벽력권의 성취마저 끌어올렸다.

고수의 성장은 이렇다. 별것 아닌 깨달음으로 전혀 상관없는 무공의 성취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후우. 상쾌하군.”

발경 직전에 기를 흩어 버렸기에 더 어려운 수련이었다. 만약 권력(拳力)을 그대로 발산했다면 일대가 모조리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제대로 마기를 실어 수련한 적이 언제던가. 속이 다 후련했다.

서량이 연무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동필이 멍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필아.”

“…….”

“동필아!”

“헉! 예, 예?!”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서량이 피식 웃었다.

“아주 그냥 놀라움의 연속이냐?”

“예.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경지입니다.”

서량의 수련은 마동필에게 있어 놀라움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식(式)이 아니라 내공을 운용하는 원리가 충격적이었다. 초식의 투로도 굉장했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복잡한 내력 운용이 초식의 위력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었다.

벽을 깨고 인간을 초월한 경지에 올라선 마동필. 신세계로 들어온 그의 눈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서, 서량의 무공을 이전보다 훨씬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놀라움은 그대로 두고, 대문이나 열어라.”

“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오려는 모양이야.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묘하게 익숙해.”

서량의 말은 사실이었다.

미리 열어 놓은 대문으로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들어왔다.

“어머, 알고 계셨군요?”

서량이 불퉁하게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별로 반갑지 않으신가 봐요.”

“그럴 리가요.”

“반갑지 않으신 게 확실하군요?”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운남에서 돌아오셨다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인사라도 드릴 겸 찾아왔지요.”

“새벽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 이른 시간에 말입니까?”

“아시잖아요, 저 바쁜 거. 이럴 때 아니면 시간 안 나요.”

“전에는 땡땡이도 잘 치시더구만.”

“자꾸 할 말 없게 만들기예요?”

“쩝.”

소연심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귀환을 축하드려요, 삼공자님.”

서량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쨌건 귀교하면 귀교했다고 인사해 주시는 분은 소 원주밖에 없네요.”

“호호, 우리가 보통 인연인가요.”

서량이 피식 웃어 버렸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 하셨으면 같이 먹을까요?”

“아, 괜찮아요. 근래 아침을 잘 안 챙겨 먹어서요.”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제가 쓰러지면 좋아할 사람, 본교에 은근히 많아요. 그 사람들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순 없죠. 그건 그렇고…….”

소연심이 힐끔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멀뚱멀뚱 서 있던 마동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모시는 분이 계시니 과한 인사는 금물이었다.

소연심의 얼굴에 솔직한 놀라움이 어렸다.

“마 호위의 경지가 놀랍군요. 전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괴물들이 따로 없구나.’

서량이야 두말할 것 없는 괴수니 그러려니 했지만, 설마 마동필도 이런 성장세를 보여 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언젠가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설 거라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올라올 줄이야.

‘이것이 전에 마 호위가 말했던 삶과 무도(武道)를 일치시킨 결과인가?’

소연심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고작 호법원의 삼 조장이었던 자가 이삼 년 만에 초절정고수가 되었어. 앞으로 십 년 뒤면 마 호위도 극마의 경지에 오르는 것 아닐까?’

같은 경지라도 얼마나 연마했느냐에 따라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 고로 마동필은 같은 초절정고수인 소연심보다 확실하게 아래였다.

하지만 일 년 뒤에는? 이 년 뒤에는?

소연심은 마동필이 자신을 뛰어넘지 못할 거라 감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밥은 좀 그렇고, 차는 괜찮을까요?”

“좋지요. 동필아, 차 좀 끓여 주라.”

마동필이 냉큼 고개를 숙이곤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소연심이 의아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녀를 시키지 않으시고요? 그나저나 시녀는 왜 안 보이죠?”

“애가 좀 아파서요.”

“아프다니요? 공자님께서 직접 내공심법도 가르쳐 주셨다면서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반나절이면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앵화의 몸살은 오래갔다. 아마 그간 쌓인 피로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터진 것 같았다.

“심한 건 아니고 며칠 푹 쉬면 나을 겁니다.”

“애들 몇 보내 드릴까요?”

“됐습니다. 알아서 잘살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돌담 아래 탁자를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소연심이 먼저 운을 뗐다.

“이번 운남행에서 얻으신 성과, 교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요.”

“벌써요?”

“네.”

“설마 위 대주가 주절거리고 다녔답니까?”

“그럴 리가요.”

하기야 무슨 짓을 저질러도 놀랍지 않은 인간이지만, 의외로 공사는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위홍련이었다.

“공자님과 함께 위기를 헤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어디서든 소문은 날 수 있죠.”

“그렇긴 하죠.”

“다만 거기에 찝찝한 소문도 하나 끼어 있더군요.”

“찝찝한 소문?”

잠시 목을 가다듬은 소연심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자님.”

“갑자기 진지하게 왜 그러십니까?”

“혹시…… 아니죠?”

“뭐가요?”

“…….”

“상세한 내용 설명 없이 툭 던지고 반응을 살피는 거, 상대방 기분 나쁘게 하는 짓인 줄은 아시죠?”

“죄송해요. 하지만 워낙 황당한 소문이라…….”

대체 어떤 소문이기에 소연심 입에서 황당하단 소리가 나올까.

“그러니까 말씀해 보세요. 뭔데요?”

소연심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님께서 후계 싸움을 파순제 전까지 끝내라고 후보분들께 말씀하셨다면서요?”

순간 서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마 이천상이 모두에게 전달하라 명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데 소연심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소문으로 들었어요.”

“소문으로?”

이게 소문으로 흘러 들어갈 일이야?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소연심의 얼굴에 한 줄기 당혹감이 어렸다.

“삼공자님께서 본격적인 후계 싸움의 시작을 알릴 제물로 칠공녀를 죽이겠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

서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칠공녀라면 여민이를 말하는 겁니까?”

“맞아요.”

“내가 여민이를 죽인다고?”

“그런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은밀하지만 들을 만한 사람들은 다 들었지요.”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걜 죽이긴 왜 죽입니까? 관평이나 진관용을 족친다면 몰라도.”

소연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삼공자님이 굳이 칠공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럴 성격도 아니시니까요.”

“그런데 그런 소문이 났다?”

“네. 말씀드렸듯 제법 은밀한 소문이었어요. 하지만…….”

“소문이 도는 속도가 빠릅니까?”

“네. 제가 가장 빨리 접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쯤이면 다른 조직의 수장들도 다 들었겠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교내 모든 마인의 귀에도 들어갈 겁니다.”

“그렇구만.”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그럴 생각도 없고, 당연히 그런 소문도 내지 않았어. 그렇다고 그런 소문이 이유 없이 나도는 건 아닐 텐데.”

“…….”

“누군가가 뒤에서 흘렸군.”

소연심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공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진관용이든 관평이든,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왜죠?”

“어차피 둘 다 족치려 했으니까요. 다만 그 시기가 언제냐일 뿐입니다.”

너무나도 간단한 답변에 소연심은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서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라도 여민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건데.”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 소문을 조장한 누군가가 채여민을 다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문의 배후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도 없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 서량이 입맛을 쩍 다셨다.

“차차 생각해 봐야겠군. 어쨌든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군요.”

“그 정도야 정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뭐, 대놓고 말하자면 칠공녀가 삼공자님 손에 죽는다 한들, 아무도 그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잔혹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다음 세대의 신교를 이끌어 갈 차기 신(神)들의 싸움이다. 신들의 싸움에 인간의 도(道)를 들이미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다만 여론이 몹시 안 좋아질 가능성은 있지요.”

“그렇겠지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나른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댄 서량이 눈을 빛냈다.

“차 한잔 마시러 가야겠습니다.”

“네? 누구랑요?”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말없이 눈빛만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의 소유자지요. 대가리도 똑똑하고.”

“……설마 총군사?”

자리에서 일어난 서량이 엄지로 연무장을 가리켰다.

“그 전에 어떻습니까? 감사도 표할 겸 벽력권 한판?”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