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98화 (198/774)

198화. 불쾌한 씨앗 (4)

마군(魔君).

언제부터였을까? 마의 군주, 마도(魔道)의 왕(王)이라는 별호는 서량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어가 되었다.

무공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실제로 서량의 존재감은 그리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내 마인들은 서량을 그리 불렀다. 왜일까?

그것은 이천상의 수동적인 정책에 기인했다.

이천상이 교주직에 올랐을 때, 중원은 또 다른 천마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야 했다.

실제로 집권 초기, 이천상은 중원을 향한 공격적인 정치로 악명이 높았다. 지금은 구대마존이 된 마장들을 주축으로 수많은 문파를 멸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칠 년 차에 이천상은 돌연 천마신교의 강호 활동을 금지했다.

일각에서는 내실을 다지려는 것이다, 뭔가 음험한 수작을 부리려 하는 것이다 등등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 그러나 수(守)에 치중된 이천상의 정치가 십 년을 넘어가자 그러한 소문도 쏙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어느새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특유의 호승심과 흉포함이란 이빨도 세월 앞에서는 차츰 무뎌지게 마련이다. 새로이 교체된 지금 세대의 마인들은 하나같이 싸움보다는 평화를 원했다.

그렇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피에는 마도(魔道)의 환경에 노출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흉포함이 녹아 있었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몰랐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흉포함을 서량이란 존재가 깨워 주었다.

때로는 건방졌고, 때로는 호탕했으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소심했던 삼공자.

하지만 삼공자는 주변의 시선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저 거슬리면 치워 버렸고 원하는 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쟁취했다.

과격함으로 포장된 무한한 자유가 거기에 있었다. 서량의 모습이야말로 교내 마인들이 바라는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서량의 무식하리만치 화끈한 말에 마인들은 전율을 느껴야 했다.

“음, 생각해 보니 좀 미안하군.”

“예?”

“제대로 전달을 못 한 사람은 난데 당신이 또 들어가서 아뢸 필요가 있겠나. 그건 너무 미안한 일이지.”

무슨 말이지?

수문위사가 내심 의아해할 때, 서량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곤 빽 소리를 질렀다.

“여어!”

쩌렁쩌렁한 외침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 듣고 있는 거 알아! 후딱 나와! 같이 가게!”

듣는 사람의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큰 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 와중에도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채여민과 소당은 멀쩡했다. 서량이 진기로 두 사람을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후욱.

열린 대문 안쪽에서 섬뜩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그 무시무시한 기파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절대의 마기가 뿜어지는 순간, 화려했던 대문이 지옥의 입구처럼 보였던 것이다.

저벅저벅.

일정한 보폭이 자아내는 소리. 귓가를 울리는 그 소리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판 벌리기 좋아한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만.”

스르륵.

마침내 등장한 진관용의 자태는 가히 일국의 왕이라 불릴 만큼 눈부셨다.

“굳이 이렇게 난장을 부려야만 하겠느냐?”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훈계하듯 말한다.

그 묵직한 목소리는 굉장한 마력이 있었다. 서량의 과격한 언행을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이게 만들 만큼.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누구처럼 뒤에서 수작질 부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말조심해라. 그간 너의 건방을 참아 준 것은 너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이 컸기 때문이야. 감히 내 거처를 소란스럽게 만들다니, 더 이상의 인내를 바라진 마라.”

“말 한번 잘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한낱 소문으로 이 몸을 파렴치한 개자식으로 만들려 한 네놈에게 더 이상의 인내는 필요치 않겠어.”

진관용은 말없이 서량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네 녀석이 막내를 후계 싸움의 제물로 삼겠다는 부덕한 소문 말이더냐?”

“얼씨구.”

“난 그렇게까지 치졸한 인간도, 바보도 아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꼼수를 부리겠느냐?”

“어.”

“……말장난은 여기까지만 듣겠다.”

쿠웅!

진관용의 발밑에서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다.

“나는 대(大) 천마신교의 대공자이자 차기 대권에서 가장 가까운 이다. 경쟁자의 성장에 호승심을 불태울지언정 한낱 소문을 이용해 꺾으려 드는 소심한 남자가 아니야.”

놀랍다.

웅장하게 뿜어지는 기파 속, 위엄 서린 목소리로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하는데 굉장한 설득력이 있다.

그곳에 모인 마인들의 눈이 몽롱해졌다. 진관용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설득되어 버린 것이다.

가히 섭혼(攝魂)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 주는 목소리.

물끄러미 진관용을 보던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음…… 마공으로 이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뭐?”

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몽롱한 눈으로 진관용을 보던 채여민이 고개를 세차게 돌리곤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아침에 한 다짐, 한 번만 꺾어 보지 뭐.”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쾅!

진관용 때와 같이 서량의 발밑에서도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서량의 안광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본 진관용의 눈빛이 흔들렸다.

“갈(喝)!!”

쩌저저저저정!

“크아악!”

“아악!”

그의 사자후를 들은 모든 마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부들부들 떠는 그들의 얼굴은 극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내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진관용의 얼굴에도 한 줄기 당혹감이 깃들었다.

‘이건?’

소림사자후(少林獅子吼).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치는 것을 왕왕 사자후라 부르지만, 실제 사자후라는 무공은 소림의 것이었다.

불문의 사자후를 마공으로 구사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의 사자후를 들은 모두는 충격과 함께 진관용에 대한 맹신을 자연스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만약 서량이 불가의 신공을 익혔다면 수십 명의 마인이 그 자리에서 죽거나 기절해 버렸을 것이다.

“나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한 모양인데, 혹시 이런 말도 들었나?”

서량이 섬뜩하게 웃었다.

“상대가 강수로 나오면 난 초강수로 반격해. 워낙 고개가 빳빳해서 그런가 좀처럼 숙어지지 않더라고.”

“…….”

“무슨 재주로 마인들을 홀렸는지 모르겠다만, 또 한 번 그 수법을 써먹진 못할 거다. 이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거든.”

“너.”

진관용의 눈빛이 섬뜩해졌다.

“어떻게 불문의 사자후를 알고 있는 것이냐?”

서량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자후가 별거냐? 냅다 악 지르면 사자후지. 난 그보다 네가 이 사람들을 홀린 수법이 더 궁금해.”

실제로 소림의 사자후는 소림 무공답지 않게 굉장히 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쉽게 배울 수 있다. 그저 사자후가 발산하는 위력의 척도가 내공과 심공(心功)의 성취에서 결정될 뿐이다.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진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미루로 가지.”

“좋아.”

뒷짐을 진 그가 먼저 앞장서 걸었다. 채여민과 소당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서량이 채여민을 다시 안아 들곤 말했다.

“우리도 갈까?”

“……네.”

채여민의 얼굴은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두 오라비가 뿜어내는 막강한 마기와 설전에 잔뜩 긴장한 것이다.

서량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걱정하지 마. 별일 안 생길 테니까. 적어도 여민이가 다칠 일은 없을 거야.”

“오라버니는요?”

“응?”

채여민의 눈에 걱정의 기색이 묻어 나왔다.

“큰오라버니, 엄청 화나신 것 같은데…….”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민아.”

“네?”

“여민이는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고 했지?”

“네.”

“하지만 여민이가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지라도 신교의 마인인 이상 누구 못지않게 강해져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채여민이 당차게 대답했다.

“네!”

“여민이가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언제, 어느 때라도 도우러 갈 거야. 하지만 이전처럼 내가 밖으로 나가게 되면 여민이를 도울 수 없을 때도 있어.”

“…….”

“그럴 때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혼자 해결해야 해.”

“제가 홍위문 그 개자식에게 당했을 때처럼요?”

“어? 어…… 그렇지.”

서량이 소당을 힐끔거렸다. 소당은 고개를 푹 숙였다.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지혜다.”

“지혜요?”

“그래. 그리고 그 지혜는 책으로 얻을 수 없는 거야.”

서량이 진관용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겪어 봐야 해. 이 세상이 어떤 원칙으로 돌아가는가, 나는 그 원칙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면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하지.”

“움…… 어려워요.”

“어렵지 않아. 직접 겪어 보면 여민이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진관용의 등을 보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은 기묘한 싸늘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로 지금, 그 배움의 포문을 열어 보자.”

* * *

과거, 광마대와 진마대가 크게 부딪치고 난 이후 재공사를 한 자미루는 이전보다 훨씬 화려해져 있었다.

외관도 화려하고 그간 홍보도 워낙 잘해 놔서 그런지 과거보다 평균 매출이 삼 할이나 뛰었다. 근래 벌어들이는 수입이 워낙 짭짤한 만큼, 루주인 도위경의 얼굴엔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자미루주 도위경이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도위경의 몸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 층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모든 마인들 역시 비슷한 상태였다.

진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있나?”

“예, 예! 최상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

진관용이 계단을 오르자, 뒤이어 채여민을 안은 서량도 등장했다.

“호오? 여기 아주 깔끔해졌는데? 돈 좀 발랐나 보군.”

“커헉!”

도위경이 납죽 엎드렸다.

“신교불패! 만마……!”

“됐고, 안내나 해 주셔.”

“아, 예!”

마인들이 서량을 힐끔거렸다.

그들 역시 교내에 도는 소문을 알고 있었다. 한데 서량이 버젓이 채여민을 안고 나타나자 당혹스러웠다.

‘뭐지? 왜 삼공자님이 칠공녀를?’

‘역시 헛소문이었나?’

‘아냐, 어쩌면 소문을 의식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어.’

‘이 새끼들아! 조용히 해!’

속닥거리는 소리가 서량의 예민한 귀에 안 들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네 사람이 자미루의 최상층으로 올랐다.

교내 최고 귀빈들만이 오를 수 있는 이곳은 화려하기보다는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그럼, 차를 내오겠습니다.”

“그러게.”

도위경이 나가자 네 사람만이 남았다.

진관용의 맞은편에 서량이 앉았고, 서량의 옆에는 채여민이 앉았다. 소당은 감히 끼어들 수 없어 계단 입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진관용의 눈이 깊어졌다.

“여민이와 친분이 깊은 모양이구나.”

“뭐, 제법 돈독한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채여민이 고개를 숙였다.

“셋째 오라버니께서 저를 구해 주셨어요.”

“구해 주었다?”

“네. 홍위문 그 개자식이 저를 독살하려 했거든요.”

진관용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서량에 대해서는 나름 조사를 했지만 홍위문이나 채여민에 관해서는 굳이 알아보지 않았다. 홍위문은 이미 폐인이 되어 혈혼각에 누워 있었고, 채여민은 애초에 경쟁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책이군.’

둘째의 거처에서 두 녀석이 친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친할 줄은 몰랐다.

“막내는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고?”

“네? 아, 네.”

“돌아가거라.”

“……네?”

진관용이 담담하게, 하지만 무섭도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무대는 허락받은 이들만이 올라올 수 있는 무대다. 싸움을 포기한 이상, 너는 스스로 무대에 설 권리를 박찬 것과 다름없다. 나가라.”

채여민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큰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일말의 정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그럼 저는…….”

“괜찮아.”

서량이 채여민의 머리를 토닥였다.

“괜찮아. 나갈 필요는 없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차나 한잔 마셔 봐. 루주가 직접 타 온다는데 얼마나 정성을 들이겠어?”

채여민이 맑게 웃었다.

“네!”

진관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첫째인 자신의 말보다 셋째의 말에 더 크게 반응한다. 채여민이 얼마나 서량을 믿고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새삼 네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구나. 내 폐관 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졌…….”

“차가 나오기 전에 한마디만 하지.”

진관용의 말을 끊어 버린 서량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확정 짓자.”

“……뭐?”

“정하자고, 후계자.”

서량이 싸늘하게 웃었다.

“정면 승부로 이길 자신이 없으면 너도 여민이처럼 무대에서 빠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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