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00화 (200/774)

200화. 불쾌한 씨앗 (6)

고구의 말이 떠올랐다.

- 그는 용(龍)이오. 하지만 마귀가 들린 마룡(魔龍)이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소.

- 그는 최소한의 도덕조차 결여된 진짜 악마이기 때문이오.

최소한의 도덕이란 곧 양심을 뜻한다. 즉 진관용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서슴없이 내려놓는 사람이란 말이다.

나아가 부끄러움도, 뭣도 모른다.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악랄한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애들 납치했나?”

관평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납치라는 표현은 좀 그렇군. 그저 네가…….”

“납치다.”

진관용은 서슴없이 말했다.

“납치했다. 너의 호위와 손님, 그리고 몸살 나 앓아누운 시녀까지 몽땅 납치했지.”

“…….”

“광마대주는 납치하지 않았어. 정확히는 못 했지. 전투 부대 대장을 이런 무도한 일에 엮어서는 아니 될 일이니까.”

아니다. 못 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안’ 한 것이다. 그저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판을 너무 더럽게 만드는군.”

“더럽다? 순진하군.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전장의 법도다. 비겁했다, 치졸했다 등의 넋두리로 신세 한탄을 늘어놔 봐야 패배자는 패배자일 뿐이야.”

진관용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간의 위엄 넘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간 것인지, 사악함으로 점철된 그 얼굴에 더 이상 대공자다운 품격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는 것. 결국 승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놈이 강한 거야.”

저 말에는 동감이다. 저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나 싶었지만.

“너도 비슷하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외부 세력과 결탁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너는 싸움에 한계를 두지 않았고, 나는 선악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결국 너와 난 똑같아. 그저 공격의 수단을 달리 택했을 뿐. 그리고…….”

츠츠츠츠.

코앞으로 들어 올린 손에서 시커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자욱한 마기로 인해 최상층 전체의 기온이 한순간에 뚝 떨어지는 듯했다.

“이런저런 잡소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본교는 원래 악(惡)으로서 중원의 공포로 군림하지 않았나?”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네 주둥이에서 나올 말은 아니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다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도 우린 그러면 안 되지. 선조들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진관용이 피식 웃었다.

“네게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구나.”

“뭐, 그렇긴 해.”

“어쨌든 지금 네가 무슨 상황에 처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 생각한다.”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게 이해했다.”

“좋아.”

깍지를 낀 진관용이 팔꿈치를 탁자에 올렸다.

“네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대권을 포기하는 것. 그럴 경우, 넌 네 사람들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뭐……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질들의 목숨도 사라진다.

게다가 이건 서량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관평이 진관용의 편에 붙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선택해라. 싸울지, 포기할지.”

상황 역전이다.

채여민이 불안한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이 긴장감 넘치는 설전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셋째 오라비가 나쁜 상황에 처했다는 건 눈치챘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진관용을 바라보던 서량이 힐끔 채여민을 내려다보았다.

“오라버니…….”

채여민이 서량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싸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서량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뻥긋거렸다.

채여민의 눈이 커졌다.

‘말했지? 난국을 타파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네.’

‘그리고 지혜라는 건 결코 어렵게 발휘되는 게 아니야.’

‘네?’

미소로 채여민을 다독여 준 서량이 다시 진관용을 바라보았다.

“바로 선택하지.”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자, 너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이냐?”

“그 전에 하나 확인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인질들의 안전을 말하는 것이라면 걱정 마라. 상대를 억압할 패를 부술 만큼 난…….”

“알아. 넌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지.”

“……그럼 무엇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냐?”

“너, 형법당주하고 무슨 관계냐?”

“…….”

“내가 그 양반을 좀 아는데, 싸가지가 바가지긴 해도 교주님 제자들한테 그렇게까지 날 세워 가며 으르렁댈 양반은 아니거든. 근데 너와 대면했을 때는 세상 날카로워지더구만.”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모르는 불편한 과거라도 있나?”

진관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걸 지금 알고 싶어 하는 것이지?”

“당연히 궁금해서다. 어지간하면 무시하겠는데 자꾸 머리 한구석에 남아서 호기심을 자극하더라고.”

관평이 조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라도 끌어 보자는 수작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관객은 입 닥치고 있지?”

“뭣이?!”

“네 형님이 그러더구만. 대권을 포기한 놈들은 무대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꼬랑지 말고 경쟁자 가랑이로 기어들어 간 놈은 그만 짖고 관전이나 해.”

관평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츠츠츠츠.

비에 젖은 몸이 단숨에 말라 버렸다. 극한의 분노가 마기를 부추긴 것이다.

그때, 진관용이 손을 들었다.

“그만해라.”

“…….”

“둘째. 그만하라고 했다.”

이를 악문 관평이 서서히 마기를 가라앉혔다. 마음 같아선 단숨에 서량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옳지.”

울컥!

관평의 마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진관용이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이 둘째를 자극하지 마라.”

“둘째 걱정하지 말고 질문에 답이나 해라. 왜 그리 불편한 사이가 된 거냐?”

“내가 그 질문에 답해 줘야 할 이유가 있느냐?”

“답해 주지 않을 이유도 없잖아? 정나미 없게 그러지 말자고.”

진관용의 눈이 깊어졌다.

‘뭐지?’

이놈이 왜 이 시점에서 고구와의 관계를 묻는 것일까?

‘다른 의도라도? 그럴 리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관용이 고개를 저었다.

“저번처럼 천리전음으로 형법당주를 부를 거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거야. 형법당주는 어젯밤 외성으로 파견 나갔다.”

“오, 그래?”

“네 녀석이 형법당주와 나름의 친분이 있는 것 같더군. 납치라는 죄목을 씌워 어떻게 해 보려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것이다.”

진관용이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그런 것도 확인 않고 네 사람들을 납치했을 것 같더냐?”

“네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악마인진 잘 알겠어. 그러니까 대답이나 해 봐. 무슨 관계냐?”

“흐음.”

진관용이 고개를 저었다.

“딱히 불편한 관계는 아니다. 별다른 분쟁도, 접촉도 없었어. 그러나 형법당주는 날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

“왜 그렇지?”

“그는 바로…….”

그때였다.

‘……?’

진관용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뭐지?’

뭘까? 분위기가 바뀌었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 와 다리를 홱 하고 낚아채는 기분이었다.

“이봐.”

움찔한 진관용이 서량에게 시선을 던졌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결정적일 때 말을 끊어 버리면 어떻게 해? 궁금하잖아. 끝까지 말해 봐. 형법당주가 어떤 사람인데?”

“그는…… 그는…….”

뭐지? 뭘까?

불길함, 불안함, 불쾌함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이놈에게 그 별것 아닌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당장 여기서 말을 끊어야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유가 뭐지?

“어쨌든 이거 하나는 확실한 거지?”

“……?”

“기회만 생기면 교주님의 제자고 뭐고 어떻게든 물어뜯으려는 그 형법당주에게, 너는 요주의 대상이라는 것 말이야.”

“……!”

“좋아, 자잘한 내용은 됐어. 나한테는 그걸로 충분하니까.”

진관용의 눈이 흔들렸다.

“네놈, 설마 형법당주를 미리 소환해 놓은 것이냐? 이럴 것을 예상하고?”

“예상? 네가 내 사람들을 납치할 줄도 상상 못 한 내가 어떻게 이 상황을 예상해.”

“하면?”

부르르르.

별안간 다탁 위에 놓인 찻잔이 은은하게 떨려 왔다.

내공? 기파?

아니다. 누군가의 기(氣)로 인해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원초적인 이유였다.

찻잔을 넘어 다탁과 의자, 자미루 전체에 번지는 심상치 않은 진동.

흔들리는 눈으로 서량을 보던 진관용은, 일순 서량의 몸 주변에서 일렁이는 무형의 마기를 깨달았다.

‘마기?’

강력한 마기다. 하지만 왜? 싸우기라도 할 텐가?

‘갑자기 웬 마기…… 헉!’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었다.

저 은밀하기 짝이 없는 마기는 둘이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둘러쳐졌던 기의 장막이었다.

극마에 오른 고수가 뿜어내는 기의 장막. 상대의 기감을 흐트러트리는 고차원적인 수법.

‘기망혼선(氣網混線)!!’

쿠르르릉!

진관용의 몸 전체에서 막강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콰지지직!

서량이 둘러친 무형의 마기가 단번에 부서져 버렸다. 애초에 오래 유지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관평! 밖을 확인해라!”

재빨리 창가로 시선을 돌린 관평이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저들은……?!”

헤아릴 수 없는 마인들이 자미루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진군이었다. 정복을 차려입고 병장기를 든 고수들이 오와 열을 맞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백, 이백 정도가 아니었다. 물경 삼천에 달하는 마인들이 매서운 마기를 뿜어내며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 천마군(天魔軍)이다!”

신교 최강의 전투 부대이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중원 무림이 치를 떠는 대마군(大魔軍).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는 천마신교의 전설적인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콰르르릉!!

하늘이 노한 듯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휘몰아쳤다.

“좋은 가르침이었다.”

두 사람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서량이 하얗게 웃었다.

“넌 선악에 한계를 두지 않았고, 난 싸움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맞아. 네가 말해 주기 전까지는 그간 내가 무슨 짓을 해 왔는지 몰랐어.”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다.”

“뭐?”

“이곳 자미루 최상층부에 반역자 두 명이 있다는 정보. 그 반역자들의 이름이 진관용과 관평이라는 정보를 전음으로 쏴 댔지. 사방으로.”

“……!”

“군사부가 초비상 상태를 걸어 둔 것 같군. 천마군 내의 모든 부대가 출동한 것 같아. 장관일세그려.”

강수에는 초강수로.

진관용이 입을 쩍 벌렸다.

“네놈…… 진정 미친 것이냐?”

“새삼스럽게 뭘.”

우르릉!

두 주먹을 감싼 붉은 마기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본교의 화끈한 점이 바로 이거야. 심각하다 싶은 사건이 터지면 앞뒤 안 가리고 일단 잡아들이고 보는 거. 별로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게 도움이 되는군.”

“……!”

“조만간 형법당에서 네 수하들도 잡아들일 거다. 우리 애들 잘 있다고 했지? 믿는다.”

승병선승이후구전?

느닷없이 터진 자연재해 앞에서는 병법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적군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휩쓸려 죽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은 즉석 무대, 마음에 들었나?”

“이 미친놈!”

파아앙!

채여민이 소당에게 날아갔다. 서량의 허공섭물이었다.

“준비도 끝났고.”

화르르르륵!

서량의 안광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공연 시작이다.”

콰앙!

진관용의 멱살을 잡은 서량이 자미루의 벽을 뚫고 날아갔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