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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03화 (203/774)

203화. 미친놈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3)

번쩍! 콰르릉!

창가에 비치는 강렬한 번갯불이 당장이라도 대전을 부술 것 같았다.

권태가 깃든 얼굴로 술잔을 든 이천상이 단조로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술맛 나는군.”

그때, 대전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교주님! 급보입니다!”

“들어오라.”

쾅!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 무담이 외쳤다.

“비상사태입니다! 현재 반역자가……!”

“진정하게.”

“교, 교주님……!”

“진짜 반역은 아니니 그리 급할 것 없네.”

“예?!”

평소의 무담 같지 않은 멍한 표정이었다.

잔을 비운 이천상이 다시 잔을 채웠다. 그의 말대로 전혀 급할 것 없다는 기색이었다.

“한 잔 받을 텐가?”

“……아, 예.”

마음이 조급했지만 교주가 주는 잔을 안 받을 수는 없다. 무담이 이천상이 건넨 잔을 조심스레 받았다.

“현재 상황은?”

“내성 전체가 초비상입니다. 모든 천마군이 출동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각 전투 부대가 천마군의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수뇌부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형법당원들이 용의자들의 자택을 점거하고 휘하 마인들을 체포 중입니다.”

엄청나게 빠른 일 처리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신속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교주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이니까.

“총군사는?”

“다른 수뇌부와 마찬가지로 현재 군사부에 거하고 있습니다. 비각에 비상령을 발동했는데, 아직 운용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군.”

역시 호요성은 알고 있다. 이 반역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반역의 기미가 보이기도 전에 비각을 운용했을 것이다.

“오늘 내로 가라앉을 걸세. 보는 눈이 많은 만큼 군율을 엄정히 하되, 그리 마음 졸일 필요는 없어.”

무담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일이 터질 것을 예상하셨습니까?”

“예상은 못 했네. 하지만 왜 터졌는지는 알고 있지.”

무담의 눈빛이 흔들렸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대공자 진관용과 이공자 관평이었다. 그렇다면?

“……후계 싸움.”

“그렇다네.”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이 터질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위험천만한 사고를 칠 줄은 몰랐군.’

수뇌부들끼리도 정쟁(政爭)을 벌인다. 하지만 아무리 급진적인 성향의 수뇌부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반역이란 상황을 조성하진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만일 상대가 반역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역풍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위력적인 병기일수록 쓰는 사람도 위험해지는 법.

그 보이지 않는 공포의 틀을 서량은 완전히 깨부숴 버린 것이다.

‘뒷감당을 어찌하려 그랬느냐.’

서량이라면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진짜 반역자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요. 결과가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천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무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후계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면, 이는 비할 데 없는 중죄입니다.”

“그런가?”

“예?”

“아직 모르지 않나. 그 두 아이가 반역을 저질렀는지, 아닌지.”

“……!”

무담의 눈이 흔들렸다. 방금까지도 진짜 반역이 아니라고 하셨으면서, 지금은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진짜 반역이 터진 건 아니지만, 상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거짓이 진실로 탈바꿈할 수도 있지.”

누명을 진짜로 만들어 버리면 그 진짜를 믿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무담은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후계 싸움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교주의 권한인바, 어떤 식으로든 교주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상관없는 문제다.

결국 후계 싸움이라는 것도 신(神)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신좌(神座)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평가받는 것이다.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후계자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만 증명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시고 마음을 추스르게. 그리고 돌아가 애들을 정비시키도록.”

“예.”

잔을 비운 무담이 조심스러운 자세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이천상의 눈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한계를 두지 않고 움직이는 거야 칭찬받아 마땅하다만, 결과를 감내하는 것 역시 너의 책임이다.”

퍼석!

그의 손에 들린 잔이 깨졌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아무리 널 총애한다 한들 봐주지 않겠다.”

* * *

쾅!

서량의 몸이 다섯 그루의 나무를 박살 내고 땅에 박혔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몰골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마기가 빗물을 증발시키고 흙먼지도 털어 냈다.

파앙!

순식간에 접근한 진관용이 영마검을 휘둘렀다.

우우웅!

뇌성벽력이 몰아치는 하늘 위, 거대한 검의 환상이 생겨났다. 거인의 검이 서량의 몸을 단숨에 양단해 버릴 것 같았다.

그때, 서량의 우수도(右手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퍼어어엉!

검의 환상이 부서지고, 그 자리를 거대한 불기둥이 잠식했다.

“크아압!”

진관용이 기합을 넣자 시퍼런 마기가 치솟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릴 만큼 무지막지한 마력이었다.

거대한 불기둥이 꿈틀대며 단숨에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콰르릉!

반경 삼 장이나 되는 땅을 뒤덮은 불길이 사방으로 넘실거리며 부서진 나무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도기의 파편과 극양의 마기가 만들어 낸 파괴의 현장이었다.

번쩍!

하늘 높이 날아오른 서량이 무서운 속도로 진관용에게 쏘아져 내려왔다.

비틀거리며 들끓는 마기를 다스리던 진관용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얗게 웃으며 접근하는 서량, 수도를 푼 그의 양손에 붉은 전광이 이글거렸다.

진관용이 영마검을 휘둘렀다.

콰쾅!

폭음과 함께 진관용의 두 다리가 정강이까지 땅으로 파고들었다.

천하제일마공인 군림마황기를 둘러친 그였다. 비에 젖은 땅이라도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박히긴 힘들었다.

“이 새끼야.”

섬뜩한 읊조림에 진관용이 고개를 돌렸다.

튕겨 나갔던 서량이 또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가해한 체력이었다.

“진즉 이리 붙었으면 쓸데없이 반역이네, 뭐네 난리 치지도 않았잖냐.”

“이놈이!”

콰앙!

진관용의 눈이 흔들렸다.

상하로 갈라 버리려 한 검격이 허공을 베었다.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던 서량이 어느새 뒷짐을 진 채 그의 좌측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뭐?!’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보여 줄 수 있지?

아니 그 전에, 이 움직임 어디서 많이 봤던 움직임인데?

‘마황군림보!!’

왜 지금껏 알아보지 못했을까.

신들린 운신으로 자신의 무공을 피해 내고, 무지막지한 압력을 이용해 회피 반경을 축소한 저놈의 보법은 마황군림보가 확실했다.

신교제일의 보법으로서 소림의 연대구품(蓮臺九品)조차 넘어선다는 최상승의 절기.

그리고 자신 또한 익히고 있는, 그러나 너무나도 난해하여 육 성을 채 넘기지 못한 보법이었다.

“익숙하냐?”

파아아앙!

진관용의 몸이 흔들렸다.

위력적인 장타(掌打)였다. 소암장으로 상쇄시키지 않았다면 무지막지한 경력에 상반신이 날아갔을 것이다.

“넌 쓸 수 없을 거다.”

두 다리가 땅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서량이 위력적인 공격을 질러 왔다. 지금은 방어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웅.

허공을 날아오른 서량이 발을 휘둘렀다.

빠각!

‘큭!’

엄청나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각법이었다. 막았던 팔이 화끈거리고, 쇄골부터 반대쪽 갈비뼈까지 모조리 부서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도대체가…….’

진관용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량의 성장세는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위라고 생각했다. 세월의 힘도 있었거니와, 그는 무려 이천상에게 직접 군림마황기의 전반부를 전수하지 않았던가.

정면 승부를 해도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최대한 조심하자 싶어서 대놓고 붙질 않았을 뿐이다.

한데 이게 뭔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파파파파팡!

쏟아지는 맹공.

그중 대부분을 막거나 상쇄시켰지만, 한두 방의 공격은 꼭 적중했다. 당장 뼈가 부러지는 중상은 입지 않았으나 내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깨달음으로도, 살법으로도 누구 못지않은 천재라 불리던 진관용.

하지만 상대는 수십 년간 죽음과 싸워 온 사신(死神) 그 자체였다. 진관용이 살법으로 서량을 상대하겠다는 건, 고양이가 발톱을 세워 호랑이를 찢어 죽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진관용이 고개를 들었다.

서량이 냉정한 얼굴로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권법도 장법도 아닌 조법(爪法)이었다. 맨손으로 목젖을 파내겠다는 듯 호랑이의 발톱처럼 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

‘이!’

피이이잉!

아직도 그런 힘이 남아 있는가.

폭혈귀검과 광양혈조로 이번 일격을 무산시킨 진관용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서량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폭혈귀검에 당한 상처가 터지고 찢어져 손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역시 쉽게는 안 되는군.’

의외로 진관용 같은 놈의 정신을 흔들기가 더 쉽다. 게다가 한 번 흔들리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질 가능성도 크다. 그만큼 자기애가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으로 밀어붙여도 아직까지는 버틸 만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우위에 있다. 슬슬 승부를…….’

그때였다.

재차 진관용에게 달려들려던 서량의 몸이 움찔했다.

진관용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떻게든 찾아왔군.”

파아아앙!

폭우를 헤치며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관평이었다.

“이제 승부가 나겠구나. 너를 잡고 반드시…….”

순간 진관용은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량도 마찬가지였다.

‘피?’

관평의 몸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아직 빠지지 않은 피가 전신에 그득했다.

진관용의 눈이 커졌다.

“너, 그 꼴이 무엇이냐?”

“쿨럭! 방해하는 놈들을…….”

“방해? 누가 방해를 해?!”

관평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주루에 있던 마인 놈들, 그리고 천마군이었소.”

진관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량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관평을 바라보았다.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 주는구먼.”

진관용이 버럭 외쳤다.

“이 멍청한 놈! 그 상황에서 마인들을 죽이면 어찌한단 말이더냐!!”

관평이 마주 소리쳤다.

“하면 어쩌란 말이오! 얌전히 놈들에게 잡혀갔어야 했단 말이오?!”

“이…… 이!”

“이게 다 저놈 때문이오! 저놈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저놈이 씌운 누명을 진짜로 만들어 버리면 어쩌겠단 말이야! 반역 용의자가 교내 마인을 쳐 죽였는데 놈들이 널 믿어 주겠느냐!!”

관평의 눈썹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너라니? 왜 우리라고 하지 않소?”

“뭐, 뭐?”

“설마 형님 혼자 내뺄 작정은 아니겠지?!”

아차 싶었지만 진관용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놈 왜 저래?’

자미루에서야 그러려니 했다.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관평이 진관용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의 도발에 쉽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과거 그가 본 관평이라면 저런 악수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지는 몰라도 바보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뭔가가 있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그때, 두 사람이 동시에 서량을 노려보았다.

“일단 저놈부터 잡고 얘기합시다. 천마군이 쫓아오고 있소.”

“……좋다.”

서량이 얼굴을 구겼다.

“젠장, 지금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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