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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16화 (216/774)

216화. 바람 앞에 되살아난 불씨 (6)

“뭐냐?”

“뭐긴 뭐야. 손님이지.”

자다 일어난 강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님은 뭔 놈의 손님이야! 썩 나가! 자다 깬 거 안 보여?”

“아직 자정도 안 됐구만.”

“자정 전에 자든, 새벽에 자든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나가, 이 자식아!”

“손님 뫼시고 왔어. 기깔나게 한 상 차려 줘.”

“싫어! 안 해! 나가!”

그때, 문이 열리고 세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어딜 들어오냐며 소리치려던 강 노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오? 신기하군. 여기에 이런 주점이 있었나?”

“그러게 말이오.”

“한데 왜 이따위로 지어 놨나? 툭 건드리면 무너지겠는데.”

“주인 취향인가 보오.”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진짜 취향인 거면 제정신이 아닌데요? 별 괴상망측한 취향도 다 있네. 유난도 정도껏 떨어야지.”

강 노인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위홍련의 싸가지 없는 언사에 울컥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헛기침을 한 그가 서량을 주방으로 데려갔다.

“뭐야? 저 사람들 뭐냐고!”

“누구일 것 같아?”

“마, 마존이야? 정말이냐?”

“역시 보는 눈은 확실하단 말이지.”

“커헉!”

강 노인이 가슴을 움켜쥐곤 비틀거렸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많이 할 필요 없으니까 대충 주워 먹을 안주로 서너 가지만 만들어 줘.”

“이 새끼야! 마존이 오면 온다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 아니, 애초에 여긴 왜 왔어? 다 허물어져 가는 주점이 뭐가 그리 정겹다고 찾아와!”

“사람 없잖아.”

“뭐?!”

“조촐하게 마실 곳이 필요했어. 공터도 적적하니 괜찮더만.”

하긴, 찾아오고 싶어서 왔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부들부들 떨던 강 노인이 몸을 홱 돌렸다.

“후딱 해 줄 테니까 다른 데서 먹어. 알겠냐?”

“싫어.”

“야!”

“마존이면 나도 함부로 대하기 힘든 사람들이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또 어딜 데려가? 그런 짓 못 해, 난.”

“그러니까 왜 꾸역꾸역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냐고!”

“날 새고 싶어? 이제 시작하지?”

“젠장!”

장작에 불을 땐 강 노인이 연신 투덜거렸다.

“고구 그 자식, 나중에 볼기짝을 걷어차 줘야겠어. 세상에 데려올 놈이 없어서 이런 재앙 덩어리를 데리고 와? 죽었다, 넌.”

주방에서 나온 서량이 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이 조그마한 주점에서 그나마 가장 큰 자리였다.

“앉으시지요.”

“커험.”

그렇게 네 사람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서량이 철검마존을 보며 말했다.

“그럼 철검…….”

“위찬.”

“예?”

“내 이름이오.”

“아…….”

서량이 위홍련을 힐끔거렸다.

“위 대주와 같은 위 씨로군요?”

“그렇소.”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연이네요.”

“그렇다. 너와는 여러모로 신기한 인연이지.”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존이시니 호칭은…….”

“위 검노(劍老)라 불러 주시오.”

“…….”

“그거면 충분하오.”

별난 사람이네.

흥이 오른답시고 느닷없이 찾아온 고루마존도 상식을 파괴한 인간이었지만, 대협도 마존도 아닌 검노라니? 철검마존에 비하면 고루마존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럼 위 검노라 부르겠습니다.”

“좋소.”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저를 찾아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철검마존, 위찬이 엄지로 위홍련을 가리켰다.

“이 녀석을 내 제자로 삼고 싶소.”

서량의 눈이 커졌다.

“저 녀석을요?”

“그렇소.”

“놀랍군요. 어떻…… 아!”

위찬을 바라보는 서량의 눈이 기묘한 안광을 뿜었다.

위찬의 자세, 잘 정련된 기도를 보며 무엇을 떠올렸음인가.

“어떤 무공을 펼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위 대주의 자세가 위 검노의 자세와 조금 유사하군요.”

위찬의 눈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알아보시겠소?”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지만요.”

“대단하시오.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알아채기 힘든데.”

“저보다는 위 대주가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 제자로 받겠다고 말씀하신 거라면 그간 제대로 된 가르침이 없었다는 뜻인데, 용케 위 검노의 깨달음을 제 것으로 만들었군요.”

“그렇소. 십수 년 전, 이 아이가 수련조에 속해 있을 때 작은 연이 있었소. 그저 지나치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검리(劍理)를 가져다 그럴듯한 무공을 만들었더군.”

위찬의 눈이 반짝였다.

“한데 들어 보니, 이 녀석이 삼공자를 주군으로 삼았다고 하오.”

서량이 멋쩍게 웃었다.

“주군이라 하긴 뭣하지만, 언제나 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위홍련은 조금 감동했다. 겉으로는 욕만 주구장창 해 대지만 그래도 서량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위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공자가 이 녀석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건 알겠소. 하지만 그저 마음으로 주고받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아이가 광마대를 이끌고 있지 않았다면 삼공자가 이 아이를 제 사람으로 삼았겠느냔 말이오.”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자칫 당신은 그저 속물이 아니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서량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물론 그러진 않았겠지요.”

“……그렇군.”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무슨 뜻이오?”

“저는 이미 후계 싸움의 고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광마대의 도움을 받은 적은 거의 없지요. 지금은 더합니다.”

위찬의 눈이 반짝였다.

“즉, 이 녀석을 내 제자로 들여도 괜찮다는 말이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령 광마대의 힘이 필요하다 한들, 그 질문은 제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아니라 위 대주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

“왜 제게 허가를 받으러 찾아오셨는지, 그게 더 의문입니다.”

위찬이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양반이에요.”

위찬이 고개를 저었다.

“삼공자의 그 발언이 내게 얼마나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는지 모를 것이오. 이 녀석에게 제법 큰 선물도 주었다고 들었소.”

“거래였지요. 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그걸로 된 것입니다.”

“…….”

“오히려 위 검노 문하로 들어가 더 강해진다면, 제게 더 좋을 일 아닙니까?”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말이 좋아 군신지간이지, 서량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쓰기 좋은 칼을 구매한 거나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사들인 칼을 실력 좋은 대장장이에게 보증도 없이 맡기겠다는 뜻인데, 누구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칼이, 단순한 칼이 아니었단 말이로군.’

위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군신 관계라 하니, 한 번은 찾아왔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오.”

“그리 생각해 주셨다면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아마 가르치는 데에 속 좀 썩으실 겁니다.”

“무(武)에 한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지한 아이라 믿고 있소. 그러지 않았다면 이 야밤에 따로 수련하러 가지도 않았겠지.”

서량이 뜻밖이란 눈으로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동필이한테 한 칼 날려 주려고요.”

“너답다.”

서량이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 잘 부탁드립니다. 워낙 사고뭉치긴 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이 위찬의 제자로 들인 이상, 어설픈 검으로 키우진 않을 거요.”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사람 가운데 두고 너무들 하시네.”

상처 난 손을 만지작거리던 고루마존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여자도 가까이하지 않고, 평생 검 하나만 바라보던 친구가 말년에 제자를 얻었군. 이거 축하주라도 한잔 나눠야 하지 않겠나?”

위찬이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술을 즐기느냐?”

“물론이죠. 술 없이 어떻게 산대요.”

“앞으로는 금주(禁酒)다.”

“왜요?!”

“술은 무인의 감각을 혼탁하게 만든다. 너의 경지가 나에 못지않게 되었을 때, 그때는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극마에 오르기 전에는 술을 입에도 대지 말란 말이었다. 어쩌면 평생 금주하란 말과 다를 것 없는바, 위홍련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전 그렇게는 못 사는데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깟 유혹도 물리치지 못하고서야 어찌 극마를 바라겠느냐.”

“마(魔)는 곧 욕망인데…….”

“남들과 똑같이 노력해서야 특별해질 수 없다. 네가 정녕 무의 궁극을 바란다면 그만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그녀 역시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어 하는 마인이었으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강해져라. 많이 강해져서 한 팔 거들어 줘.”

“쳇,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좋아.”

문젯거리라고 할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위홍련 건은 해결이 되었다.

고루마존이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그나저나 삼공자의 무공이 실로 대단하오.”

동의한다는 듯 위찬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비무를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파만 봐도 두 사람이 얼마나 치열한 격전을 벌였는지 알 수 있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고루마존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작정하고 붙었으면 제가 졌을 겁니다.”

“부인하진 않겠소. 삼공자와 나의 차이는 분명했소.”

고루마존의 눈이 빛났다.

“달리 말하면, 삼공자는 차이가 명백한 상대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이오. 까딱 방심했으면 진짜로 죽을 뻔했소.”

“그냥 싸움에 능한 것뿐입니다.”

“싸움이 아니라 살법(殺法)에 능해 보이던데.”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알아보셨습니까?”

“그렇소. 자랑은 아니지만, 재능으론 누구 못지않은 적들과 헤아릴 수 없는 전투를 벌여 보았소. 장담컨대, 그들 중 누구도 삼공자만큼 싸움의 흐름을 가지고 노는 자는 없었소.”

서량이 투덜거렸다.

“그럼 뭐 합니까. 알아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머저린데요.”

“그게 무슨 말이오?”

생전의 경지를 아직도 뚫지 못했다는 말은 절대로 못 한다.

‘답답하군.’

될 듯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지옥문의 삼 단계는 코앞까지 와 있다. 고루마존과 붙으면서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한데 이놈의 지옥문을 열어 볼까 하면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 서량의 인생을 통틀어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시점을 달리해야 하는 것인가? 마학의 원리를 따르고 있음에도 개방하지 못한다는 건, 또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만약 삼 단계를 개방했다면 진심으로 힘을 발산한 고루마존과 부딪쳐도 능히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제길, 한 치 앞도 모르는 놈이 눈먼 칼을 잘도 막겠다.”

고루마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예? 아, 아닙니다.”

“눈먼 칼이라니? 누가 삼공자를 노리고 있기라도 한단 말이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그냥 그렇다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상관없지 않나?’

구대마존은 군사부나 환희원처럼 중립을 지킨다. 물론 그 중립의 선이 희미하긴 하지만, 앞의 두 사람이 어디 가서 제 얘기를 주절댈 사람은 아니었다.

서량은 지난 얘기를 살살 풀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말투가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고루마존이 입을 쩍 벌렸다.

“하면…… 그 누군지 모를 마인들이 전(前) 대공자, 이공자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단 말이오? 삼공자를 노리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분명 그렇습니다.”

“허!”

까무잡잡한 고루마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자들이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후계 싸움이 아니더라도 교주의 제자를 노리고 있단다. 그것도 같은 마인이.

기가 막힌 일이었다. 삼공자가 과거 어떤 생활을 했든, 마인된 몸으로 어찌 감히 신의 제자를 노린단 말인가.

“당장 잡아들여야 하오.”

위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꼭꼭 숨어서 신교 생활을 영위하던 녀석들입니다. 괜한 난리를 쳤다간 오히려 더 깊숙이 숨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얌전히 앉아서 기다릴 순 없잖소?”

“아,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믿음직한 일꾼 하나를 구했거든요.”

“일꾼?”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은밀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후, 한 명의 마인이 주점으로 들어와 오체투지를 하였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삼공자님을 뵙습니다.”

“환희원에서 왔는가?”

“그렇습니다.”

마인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들고는 조심스레 서량에게 건넸다.

서신을 읽은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역시…… 불씨가 남아 있었군.”

드르륵.

일어난 서량이 마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이 생겨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모시고 왔는데 죄송할…….”

“같이 갑시다.”

“예?”

고루마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릴없이 장기나 두는 뒷방 늙은이들이 술이나 깨작거리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외다. 필시 그 고약한 놈들을 잡으러 가는 것 같은데, 같이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소?”

“……그러셔도 됩니까?”

“안 될 건 또 뭐요? 이건 삼공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교의 품위와 위계를 위한 일이오.”

고루마존이 위찬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러한가?”

위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아군을 얻게 되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던 서량이 이내 활짝 웃었다.

“두 분께서 도와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지요.”

“어딘지 모르겠지만 가십시다.”

“예.”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마지막 술자리가 이렇게…….”

“일어나거라.”

“네.”

그렇게 네 사람이 마인의 인도에 따라 주점을 나섰다.

잠시 후.

“후, 야밤에 설치는 것도 오랜만…… 엥?”

강 노인이 눈을 끔뻑였다.

“어디 갔어?”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갔냐고, 이 어린 노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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