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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17화 (217/774)

217화. 비수에는 독을 묻혀야 제맛이다 (1)

까마득한 어린 시절 입교한 주화는 당시부터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무재(武才)가 동년배 중 첫손에 꼽힐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내성의 많은 조직의 수장들이 그녀를 탐냈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능히 조직의 기둥 노릇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연심은 주화의 장점이 무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간파했다.

그녀가 본 주화는 재상(宰相)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인재였다. 무공만이 아니라 경영, 전략에도 능통하다. 한 마디로 똑똑하단 말이다.

문제는, 겉보기와 달리 주화의 마음이 약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것은 무공 연마로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강하고 독한 마공을 익히면 자연 강단 넘치게 변할 줄 알았지만, 주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천성이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착했고, 마음도 여렸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노력 앞에 재능 없는 법이다. 지금의 주화는 주관이 뚜렷했고, 특유의 여린 마음을 잘 다스릴 줄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네 사람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왜 그러시오?”

서량의 말에 깜짝 놀란 주화가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환희원 총관 주화가 마존 분들을 뵙습니다.”

위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고루마존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문 자자한 환희원 총관을 이렇게 보는군. 희대의 천재라며? 원주가 아주 아낀다던데.”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이리 보니 알겠군. 나이에 비해 무공도 뛰어나고 눈을 보니 재지(才智)가 넘쳐. 과연 차기 환희원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인재일세.”

스스로 뒷방 늙은이라 말했지만 고루마존은 교내 소문에 무척이나 밝았다. 주화가 차기 환희원주로 내정된 것은 소수의 몇몇을 빼곤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화가 은근슬쩍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소. 내 상황이 딱했는지 도와주겠다고 이리 나서 주시더이다.”

딱하다…….

맞는 말도,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단순한 실력만으로도 서량은 신교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에 속한다. 게다가 교주의 제자라는 신분에, 후계 싸움에서도 압도적인 역량을 과시한 희대의 괴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딱하다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지만, 눈먼 칼은 누구에게나 위험한 법이니 마존들이 보기엔 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 마존께서도 함께 움직이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시게.”

서량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이곳은 또 처음 와 보는군.”

강 노인이 운영하는 주점이 내성의 동쪽 끝에 있다면, 지금 와 있는 이 작은 폐가는 남서쪽 끝에 있었다.

주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과거, 내성 마인 중 신분이 낮은 하인들이나 평무사들이 주로 오던 사당 중 하나입니다.”

“사당?”

“네. 파순께 기도드리는 사당이요. 예전에는 내외성 곳곳에 이런 사당들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요.”

신기하군.

중원 곳곳에 신(神)을 모시는 사당들이 즐비하다지만, 신교 안에도 이러한 사당이 있는 줄은 몰랐다. 신을 모시는 거야 개개인의 자유지만, 굳이 사당을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신교의 땅 전체가 거대한 사당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장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하인들은 내성 바깥쪽 땅에만 거주할 수 있었어요.”

“왜?”

“내성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이들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별 같잖은 차별도 다 있었군.”

고루마존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야 그리 생각할 수 있어도 과거엔 아니었소. 신분 역시 파순께서 정해 준 법도라 생각했거든.”

“해석하기 나름이란 거군요.”

“그렇소. 그런 면에서 아랫사람들 또한 차기 교주가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많소. 교주가 뱉는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거취가 정해지니까.”

“음, 그럴 만도 하군.”

고루마존이 은근히 물었다.

“만약 삼공자가 차기 교주가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위험한 질문을 은근슬쩍 잘도 던진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되어 보기 전에는 모르겠습니다. 포부 같은 것도 딱히 없어요.”

“그렇소?”

“예.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할 겁니다.”

“무엇을?”

“의천맹을 작살낼 겁니다.”

위험한 질문에, 그보다 훨씬 더 험악한 답변이 날아왔다. 고루마존은 물론 위찬, 주화도 깜짝 놀랐다.

“의천맹을?”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의천맹은 천마신교의 주적이다. 그런 의천맹을 박살 낼 수 있다면 천마신교에 크게 좋을 일이다.

하지만 내부를 안정시키겠다거나, 신교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겠다거나 하는 말부터 하는 게 아니라 의천맹부터 족치겠단다. 대담하다면 대담한 발언이었다.

‘이건 또 신기하군.’

고루마존의 눈이 반짝였다.

‘무공, 언행, 분위기 등은 칠대 선조님과 유사한데 저런 과격한 호승심은 또 사대 선조님과 비슷해.’

최초의 여성 교주였던 사대천마는 교주직에 오르자마자 전력을 정비, 즉시 전쟁을 일으켰다.

신교 역사상 두 번째 전성기를 연 천마이기도 했다. 내정(內政)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외치(外治)에 있어서만큼은 역대 교주 중 제일이란 소리를 듣기도 한다.

만약 사대천마 휘하에 뛰어난 재상(宰相)과 군사가 많았다면…… 어쩌면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요.”

서량이 주화를 바라보았다.

“진관용의 처소로 들어간 물품 중 수상한 게 발견되었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수상한 물품이 지난 삼 년간 관평의 처소로도 들어갔고?”

“네.”

서량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수상한 물건의 중간 조달처가 이곳이었던 모양이군.”

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 무너져 가는 사당이니 타인에게 들킬 위험이 없었겠지요.”

“그렇겠군.”

서량의 시선이 다시 주화에게로 향했다.

무뚝뚝한 주화의 얼굴 위로 한 줄기 긴장이 드리워졌다.

“그래서 그 수상한 물품이 뭐요?”

“비수입니다.”

“비수?”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수가 왜 수상하오?”

“전(前) 대공자 진관용과 죄인 관평은 비수를 쓰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놈들 수하들이 쓸 수도 있잖소?”

“수하들의 무공, 성격, 사정을 고려해 봤을 때 그들 역시 비수를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사실 비수를 주력 무공으로 사용하는 무인은 많지 않소. 대부분 보조 무공으로 사용하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연마하기 위해 들인 거라면 딱히 수상하지는…….”

“설령 비수를 주력 무공으로 사용한다 한들, 달마다 백여 개의 비수가 든 상자를 들이는 건 지나치게 과합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비수 백 개가 든 상자를 매달 받았다? 확실히 이건 과해도 너무 과하다.

“특히나 죄인 관평의 경우, 정확히는 사 년 전부터 비수를 들이고 있었습니다. 단순 개수로만 사천팔백 자루의 비수가 들어간 셈입니다.”

“그렇군. 한데 그 비수가 다 어디로 갔지?”

“그게 문제입니다. 비수의 사용처를 알아보려 했지만, 거기까지는 환희원의 힘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물품 목록이야 버젓이 흔적이 남지만, 그 이상을 알아보려면 군사부의 비각까지 운용해야 한다. 거처를 조사해야 함은 물론, 지난 정보들까지 몽땅 분석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 입품된 비수 상자라…….”

고루마존이 끼어들었다.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소?”

“…….”

“현재 관평이 뇌옥에 수감되어 있으니 직접 물어보시오. 그럼 뭐라도 나오지 않겠소?”

주화도 그 의견에 동감했다.

“마존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서량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건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당사자가 있는데 무엇 하러 빙 돌아가겠나. 두 사람 말마따나 관평에게 가서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를 것이다.

하지만.

‘쎄하단 말이지.’

초감각은 울리지 않는다. 극마의 경지에 오르면서 초감각도 상단전에 녹아들어 이전처럼 눈에 띄게 발동하진 않았다.

대신에 한층 더 날카로운 직감 같은 게 올라온다. 초감각이 자신의 행동을 제어했다면, 극마에 오른 후 얻은 직감은 훨씬 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생에는 얻지 못했던 능력이다. 암영기보다 고차원적인 구유마공이 모든 깨달음을 빨아들인 결과였다.

그 하나 된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관평에게 가선 안 돼.’

굳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관평은 그와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가 아닌, 철저한 거래 관계였다. 달갑지 않은 거래 상대에게 부탁이 많아선 안 된다.

‘그런 걸 떠나, 진관용과 관평이 박살 난 지금 그놈들은 철저하게 몸을 숨기고 있을 거야.’

몸을 숨겼다기보단,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서량의 눈이 빛났다.

‘오히려 내가 관평에게 가길 바라고 있겠지.’

한 번은 괜찮다. 하지만 두 번은 안 된다.

놈들은 분명 의심할 것이고, 더 깊숙이 숨어들 것이다. 살수 시절, 표적의 움직임을 숱하게 분석해 본 그는 놈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분명 놈들은 가까이 있어.’

잠시 고민을 거듭한 그가 주화에게 말했다.

“형법당주에게 연락해 주시오. 군사부로 오라고.”

“네?”

“그렇게만 전하면 알 것이오. 그리고 하나 더.”

서량의 눈이 빛났다.

“오공녀 주서윤, 육공자 종리영, 칠공녀 채여민.”

“……?”

“이 시간부로 세 후보의 거처로 들어가는 물품 목록 중 특이 사항이 있다면 보고해 주시오.”

“……!”

주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알고 있소. 힘들다는 거.”

“…….”

“그러나 소 원주가 왜 당신한테 이 일을 맡겼는지, 왜 직접 처리하지 않았는지를 상기하길 바라오.”

주화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소연심이 그녀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은, 차후 서량이 정권을 잡게 되었을 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것이다. 후계자들에겐 중립을 지키지만, 환희원 역시 교주의 예쁨을 받기 위해 애쓰는 조직 중 하나일 뿐이다.

만일 후계 싸움이 이토록 압도적이지 않았다면 소연심도 서량의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맙소.”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지요.”

“알겠소.”

그렇게 주화가 사당을 나갔다.

서량이 세 사람에게 말했다.

“세 분께서도 거처로 돌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으잉?”

고루마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지금 수상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세 분, 아니 위 대주를 제외한 두 분께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 생각대로 된다면 이틀 후에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위홍련이 손을 들었다.

“저는요?”

“넌 수련이나 해.”

* * *

“어엇?!”

호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고 찾아오실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리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그가 서량의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무뚝뚝하기가 이천상 뺨치는 고구가 있었다.

“형법당주까지 대동하고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예.”

“무슨 부탁이시길래?”

“우선 첫 번째.”

“심지어 두 개 이상이군요.”

“입마에 걸리기 전, 제 과거에 대한 정보와 기록 좀 보고 싶습니다.”

“……?”

“그리고 두 번째.”

서량이 씨익 웃었다.

“우리 반역자 선생, 내일 당장 처형시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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