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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20화 (220/774)

220화. 비수에는 독을 묻혀야 제맛이다 (4)

다리를 꼬고 앉아 한가롭게 문서들을 뒤적이던 서량이 문득 손을 멈추었다.

“이건가?”

서량이 고구를 바라보았다.

“이거 본 적 있어?”

“없소.”

“다 본 줄 알았더만.”

“군사부의 정보 자료는 특급 기밀 문서요. 사태가 사태인 만큼 총군사도 허락을 했지만, 그것을 볼 자격은 내게 없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지로 문서를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던 서량이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일다경이 지나서였다.

“내게 원한을 가질 만도 하군.”

서량의 얼굴에 씁쓸함이 맺혔다.

“이런 쓰레기 같은 짓을 했으니, 원한을 갖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서량의 행보에 대해 기재된 군사부의 문서.

그 문서에 적힌 수많은 내용 중 비로소 문제가 될 내용을 찾았다.

“무공 하나 얻자고 삼십여 가정을 몰살시켰다…….”

서량, 정확히는 천하진이 이 몸으로 들어오기 전의 서량은 가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사람 죽이기를 벌레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여기는 백정이기도 했다. 그런 악랄한 인간이었으니, 목적을 위해 수십 가정을 몰살시켰다 해도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너무 잔혹하다.

‘목씨(木氏) 가문을 모조리 도륙했군.’

암천신마(暗天神魔) 목우(木羽).

두 세대 전 천마신교의 마존이었던 자로, 달리 암천마존이라고도 불리던 개세의 고수였다.

그러나 목우는 마존의 직위에서 해임당한 후 신교에서 추방당했다.

이유는 명백했다. 목우는 원로원주가 되기 위해 더 강한 무공을 연성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흡성진혈공(吸成盡血功)이란 금학(禁學)에 손을 대고 말았던 것이다.

흡성진혈공은 익히는 자 중 열에 아홉은 상단전과 중단전에 폐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마공임과 동시에, 개세의 위력을 발휘하는 마공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미친 마인이 되어 신교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뜻.

결국 신교는 목우를 뇌옥에 가둬 무공을 폐했고, 이후 교외로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그간의 공(功)이 있어 참형은 면한 것이다.

그 뒤가 문제였다.

목우는 가정을 이루었고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그의 후손들이 다시 입교하였다.

과거의 서량은 교내 목씨 중 몇 명이 목우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목우의 무공을 탐낸 서량은, 결국 그들 모두를 트집 잡아 괴롭힌 것도 모자라 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만 했으면, 그래도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으리라.

서량은 그들의 가족들을 잡아다 무공을 내놓으라 협박했고, 결국 모조리 죽이기에 이르렀다.

‘나 같아도 눈이 뒤집힐 만해.’

서량의 말을 들은 고구의 눈이 깊어졌다.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그러게 말이야.”

기억도 안 나는, 아니 애초에 그가 저지른 짓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몸에 들어온 이상, 이 몸이 지은 죄는 모두 이고 가야 했다.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책임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삼공자가 과거의 기억 중 많은 부분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소.”

응, 그거 아냐.

“하지만 제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해도, 지금의 삼공자는 과거와 너무 다르오. 아예 다른 사람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응, 그거 맞아.

“과거에 매몰되는 것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목을 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사람은 언제나 현재가 중요한 법. 그러나 과거의 잘못에서 눈을 돌려서도 안 되오.”

형법당주다운 말이다. 도리에 맞는 말이기도 하다.

마인다운 말은 아니지만.

“하나, 이들의 방식 역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소.”

고구가 송경을 바라보았다.

세 겹의 금해철로 양손을 묶고, 다섯 겹의 급해철로 다리를 묶었다. 내공까지 점혈당했으니 극마의 고수라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고구가 물었다.

“다른 걸 떠나, 넌 왜 그들에게 가담했지? 넌 삼공자에게 그리 큰 원한이 없지 않나?”

고요하기만 하던 송경의 눈에 핏발이 섰다.

“원한이 없다고? 난 저놈의 거짓말 때문에 뇌옥에 갇혔다! 내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어! 어찌 원한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격양된 태도였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서량의 마기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내공도 운용할 수 없으니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온 건 당연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제 잘못을 인정하는 놈이 아니야. 원한에 대해 논해 봤자 의미 없지.”

송경이 버럭 외쳤다.

“닥쳐라! 나는 내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큰……!”

퍼억!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구가 턱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말은 않겠다.”

“퉤!”

“네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불어라.”

“말할 것 같으냐?”

“말하지 않을 이유는 무언가? 어차피 네가 잡혀 버렸는데.”

송경이 음험하게 웃었다. 갈라지고 터진 얼굴 위, 지독한 광기가 느껴졌다.

“나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 저놈이 파멸하는 꼴을 보기 위해! 그따위 협박 같지도 않은 협박은 내게 통하지 않아!”

그때, 서량이 일어났다.

“통할걸.”

“닥쳐라!”

“통할 거야. 너는 그다지 강단 넘치는 놈은 아니니까.”

“이 새끼가……!”

우우우우웅.

송경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한 번 더 맞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량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송경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의 머리에, 충격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 내가 누구냐?

- 누구냐고 물었다!

지상 위를 배회하는 거대한 악귀의 그림자.

둥글게 휘어져 올라간 두 뿔이 거목만큼 커다랬고, 뿜어내는 숨결에 붉은 화염이 섞여 나오는 것 같았다. 흑백이 뒤바뀐 눈에서 핏빛 광채가 쏟아지고, 태산 같은 중압감이 사위를 짓눌렀다.

사람의 모습을 한 마신이 거기에 있었다. 지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갈라진 땅을 찢고 올라온 마신의 위용에 숨도 쉴 수 없었다.

송경이 본 서량은 그러했다. 그 절대적인 마력에 그는 땅에 이마를 처박기만 바빴다.

그리고 지금.

그때보다 고요한, 하지만 열 배는 거대해진 마신이 조롱 섞인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긴말 않겠다.”

“…….”

“다 토해 내.”

“시, 싫다!”

서량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순간 지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인지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공포에 방광이 열려 버린 것이다.

“싫나?”

“이익!”

“말 안 하면 죽일 수밖에.”

스르륵.

어깨를 쓰다듬던 서량의 손이 송경의 얼굴로 향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한 손. 얼마 안 되는 빛을 가려 버리는 시커먼 손을 보며, 송경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자, 잠깐!!”

손이 멈추었다. 조금만 더 움직였다면 그대로 송경의 얼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을 것이다.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생각이 바뀌었나?”

“…….”

“아닌 것 같군.”

“……약속해 다오.”

“약속? 그런 걸 제안할 처지였던가?”

송경의 턱이 덜덜 떨렸다.

“야, 약속해라! 이전에는 지키지 않았던 약속을, 이번만큼은 지키란 말이다!”

“약속을 안 지킨 기억은 없지만…… 뭐, 좋다.”

“…….”

“약속을 지켜 주지. 하지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보다 더 공손해지는 게 어떤가?”

서량의 눈이 점차 길게 찢어졌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자꾸 그러면 확 죽여 버리고 싶어지잖아.”

“으으으.”

송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약속……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좋다.”

서량이 손을 거두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던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 나왔다.

“내게 모든 걸 말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겠다. 물론 과한 요구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겠지?”

“…….”

“자, 이제 말해 봐.”

송경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의 일을 설명하는 송경. 그 광경을 보며 고구는 혀를 내둘렀다.

‘분위기 조성, 말 몇 마디로 저 독한 놈의 입을 열게 만들다니.’

어디서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것이 가능했다면, 형법당원들이 왜 조사학(調査學)을 배우겠는가.

‘마기의 침습을 받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견고한 마음에 한 줄기 금이 갔음을 알지 못했다면 저렇게도 못한다. 빈틈을 찌르고 휘젓는 기술이 일품이야.’

서량의 말처럼 송경은 강단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단 없는 사람이 진마대주까지 오를 순 없다.

고구가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감당키 힘든 사람이구나.’

하지만 고구도 더 이상 서량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송경이 토해 낸 말을 머리에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랬군.”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의 사정은 알겠다. 하지만 너도 결국 다 아는 건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그 무리의 대장이 현재 내성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지?”

“…….”

“바로 잡아야겠군.”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또 거기에 있냐.’

이 정도면 서량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별수 없었다.

송경이 외쳤다.

“제, 제 약속은?!”

“지킨다. 그렇게 만들어 보겠다.”

“……감사합니다.”

고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삼공자. 아무리 삼공자의 입김이 세졌다곤 해도 이 자의 신분을 다시 복권해 주는 것은…….”

그때였다.

“컥!”

두 사람이 송경을 내려다보았다.

송경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섰고 하얀 피부가 시퍼렇게 변했다.

피부 위로 불거져 나온 핏줄이 거미줄처럼 사방을 덮는다. 두 사람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 새끼 갑자기 왜……?!”

푸욱!

순간 송경의 가슴에서 날카로운 쇳조각이 튀어나왔다.

쇳조각은 부러진 비수 조각과 비슷했다. 게다가 진녹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보기에도 끔찍했다.

푹! 푹푹!

쇳조각은 하나가 아니었다. 가슴뿐만이 아니라 배와 팔, 등과 다리까지 신체 모든 부위에서 수십 개의 쇳조각들이 튀어나왔다.

“꺼어어…….”

입을 떡 벌린 송경의 몰골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얼굴 곳곳에서도 날카로운 쇳조각이 튀어나왔다. 마치 체내에서 폭발형 암기가 터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치이이이익!

송경의 몸이 그대로 녹아 버렸다. 융해(融解)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어느새 고구를 잡고 뒤로 물러난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극독이다. 무형지독에 필적할 정도야.’

저런 쇳조각을, 저런 독기를 몸에 집어넣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고구가 이를 악물었다.

“어서 잡으러 가야겠소.”

“……그래.”

서량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밖 너머,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보이는 작은 불빛이 뇌리에 꽉 박혔다.

“빨리 해결해야겠어.”

* * *

도위경이 미소를 지었다.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력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이번 식자재는 품질이 아주 좋군.”

“신경 좀 썼습니다.”

“허헛! 고맙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나?”

“목비(木飛). 목비라 합니다.”

“아, 그랬지. 항상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근래 불편한 일을 제법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주루보다 신선한 것들로 골랐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다시 꾸미니 한결 고급스럽습니다. 앞으로 자미루에 큰 번영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네. 내 나중에 공짜로 회식시켜 줌세.”

“감사합니다.”

한참 웃던 도위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굳이 이 밤에 가져올 필요가 있었나? 물론 먼저 재료를 재워 놓을 수 있으니 우리야 좋지만.”

“물론입니다.”

세곡단의 단주, 목비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일을 뒤로 미루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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