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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21화 (221/774)

221화. 버릴 수 없는 과거, 쥘 수 없는 미래 (1)

“마존 할아버지.”

“허허, 부르셨소?”

채여민이 눈을 끔뻑였다.

“안으로 안 들어오세요? 바람이 차요.”

고루마존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한서불침의 경지에 오른 지가 벌써 수십 년 전이다. 채여민이라고 그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괜찮소. 생각할 것도 있고, 이곳이 편하오.”

“그래요?”

잠시 고민하던 채여민이 창문을 통해 불쑥 뛰쳐나왔다.

고루마존은 속으로 감탄했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신법이구나.’

저 나이에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본기가 소홀하지도 않으니, 실로 굉장한 재능이었다.

“한데 칠공녀는 왜 나왔소?”

“저도 바람 쐬려고요.”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저 튼튼해요.”

하얗고 여린 팔뚝을 탁! 때리며 웃는 채여민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고루마존은 저도 모르게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 실수했소. 칠공녀도 놀라운 고수거늘.”

“헤헤.”

마치 사이좋은 조손지간 같다. 계단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몹시 화기애애했다.

채여민이 눈알을 굴렸다.

“마존 할아버지.”

“말씀하시오.”

“량 오라버니랑 비무했던 얘기 또 해 주세요.”

“또? 벌써 열 번은 한 것 같소만.”

“그래도요.”

고루마존이 빙긋 웃었다. 강퍅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칠공녀는 삼공자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소.”

“네!”

“허허. 좋소. 얘기해 주겠소. 어디 보자, 하면 시점을 달리해서 시작해 보자면…….”

시골 촌로가 개구쟁이 손녀에게 강호의 신비로운 전설을 얘기해 주는 것처럼.

채여민과 나란히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루마존의 음성은, 그 인상과 달리 몹시 나긋하고 잔잔했다.

채여민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량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하네요!”

“이를 말이겠소? 내 그간 수많은 후기지수를 봐 왔지만 삼공자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소. 하기야, 그 무력을 생각하면 후기지수라는 말 자체가 그분에 대한 모욕이겠지.”

“헤헤.”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이다.

고루마존은 저도 모르게 채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여상린도 여상린이지만, 채여민을 보고 있자니 정말 자식을 두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아, 근데 마존 할아버지.”

“말씀하시오.”

“언제까지 여기 계세요?”

“왜? 많이 부담스럽소?”

“아뇨. 오랫동안 계셨으면 싶어서요.”

고루마존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금방 가는 것이 칠공녀에게도 좋을 일이외다.”

“왜요?”

“이번 일이 다 끝나면 말해 주겠소.”

여전히 웃는 상이지만 아랫입술이 살짝 튀어나왔다. 고루마존이 빨리 가는 것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것도 불만인 것이다.

웃으며 채여민을 내려다보던 고루마존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저쪽은 잘 되고 있으려나.’

철검마존 위찬은 육공자의 처소에서 대기 중이고, 위홍련과 광마대 몇몇은 오공녀의 처소 곳곳에서 은신 중이다.

혹시나 불쾌한 사태가 일어나도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최고수들의 호위다. 적어도 그들이 있는 한, 삼공자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도 쉬이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걸 원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후보들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접근할 놈들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차라리 빨리 접선해 줬으면 싶기도 하다.

고루마존의 눈이 깊어졌다.

‘삼공자. 빨리 잡으시오.’

그는 서량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앞으로 보여 줄 행보와, 그가 지배하는 천마신교가 어떤 모습일 지가 기대됐다.

그는 서량이 천마신교의 후계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자격의 소유자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헉!”

어두운 밤에도 확연히 보일 만큼 도위경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잘 있었어?”

“…….”

“이봐.”

“느헉! 예? 아!”

도위경이 냅다 엎드렸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자미루주가 삼공자님을 뵙습니다!”

“음.”

서량이 고구를 힐끔거렸다.

고구가 고개를 저었다. 못 말린다는 기색이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뚝. 뚝.

도위경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땅에 떨어진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몸을 보고 있노라면 없던 죄책감도 무럭무럭 자라날 판이다.

“일어나.”

“예!”

벌떡 일어난 도위경이 뻣뻣하게 섰다. 처음 부대에 입대한 신병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뭐랄까.”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걱정하지 마. 그러려고 온 건 아니니까. 물론 그전에도 의도했던 건 아니었어.”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그렇다는데?”

“헉! 그, 그런 말이 아니오라…….”

서량이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뭐, 그 얘기는 됐고.”

“예!”

“…….”

“……죄송합니다.”

“됐고, 혹시 세곡단에서 사람이 오지 않았나?”

도위경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왔습니다! 식자재를 가져다주러 왔습니다!”

“……어, 그래. 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나?”

“본루 이 층에 있습니다!”

서량과 고구의 눈이 번뜩였다.

그 눈빛을 본 도위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이 층에 있다고?”

“예!”

“이 층에서 뭐 하는데?”

“그…… 늦은 시간에 고생하는 듯하여 제가 대접을 좀…….”

이것 봐라?

‘기다리고 있었군.’

서량이 한 번 더 도위경의 어깨를 두들겼다.

“따로 시킬 건 없으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돼.”

“예, 예!”

서량이 도위경을 지나쳐 자미루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르던 고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도위경을 바라보았다.

“자미루주.”

“예!”

“혹시라도 이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그 비용은 형법당에서 처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도위경은 그리 외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순 없었다. 삼공자도 삼공자지만 형법당주의 이름 역시 공포 그 자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고구가 서량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주루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도위경이 그 자리에서 철퍼덕 주저앉았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이 층으로 올라온 서량은 창가에 자리 잡은 한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남자, 목비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앉지.”

거침없는 언사였다.

서량이 그의 맞은편으로 걸어가 앉았다.

마지막 고기 조각을 먹은 목비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여전히 서량에게 시선을 주진 않는다.

“광음사기(洸陰邪氣)가 출렁이더군. 제대로 여물지 못한 마기의 발작이라면 송경밖에 없지. 녀석의 폭음독비(爆陰毒匕)는 수준이 낮아. 제대로 터지진 않았을 거야. 만약 그게 제대로 터졌다면 너라도 무사치는 못했을 것이다.”

“…….”

“송경이 죽은 걸 알고, 네가 개입했음을 알았다. 너밖에 없지. 지금의 송경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목비가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엔 후련함이 감돌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어. 뒤에서 뭔가를 꾸미는 짓, 믿을진 모르겠지만 그리 재미있지 않아. 머리만 아프고 효율도 좋지 않지. 하지만 전면으로 나서긴 힘이 부족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접근할 수밖에.”

알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곡단주 목비?”

“모르는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입마 전의 기억을 죄다 잃어버려서 말이야.”

목비의 몸이 몇 차례 들썩였다. 숨죽인 웃음이었다.

“기억을 잃었다…… 그것 참 속 편한 변명이로군.”

“미안하다만 그런 걸로 변명할 성격은 아니야.”

“아니, 넌 그런 놈이야. 세상의 모든 악덕을 똘똘 뭉친 악인이라도, 너만큼 사악하고 치졸한 쓰레기에 비할 순 없지.”

목비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비로소 서량을 바라보는 목비의 눈은, 의외로 맑기만 했다.

“그래서 난 널 믿지 않는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아.”

“그거야 네놈 자유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확실히, 꾸며 낸 모습은 아닌 것 같군. 예전과는 달라.”

목비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구는 계단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미리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나?”

“그렇지.”

“형법당주가 교주님의 첫 제자였다는 소문도 네가 낸 것이로군.”

“맞아.”

“그것도 거짓말이었나?”

“그게 중요한가?”

“하긴, 네 말도 맞다.”

목비가 술병을 들었다.

확실히 목비는 서량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서량의 앞에 빈 잔이 놓여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한 잔 받을 텐가?”

“싫다.”

목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맑은 눈도 그렇고 지금의 미소도 그렇고, 무척이나 선한 인상이었다.

“겁나나? 술에 독이라도 탔을까 봐?”

“어.”

“새가슴이군. 극마에 이르렀음에도.”

“극마의 고수는 뭐 사람 아니냐?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굳이 들이킬 이유는 또 뭐야?”

“뭐, 그도 그렇군.”

자신의 잔을 채운 목비가 술병을 놓고 그대로 잔을 비웠다.

그런 목비를 주시하며, 서량이 물었다.

“그만하지.”

“무엇을?”

“지금 하는 짓거리.”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아니 그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긴 하나?”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숨 걸고 내 목을 날리려 한다는 건 알겠어.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과거에서 눈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너희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돼.”

목비가 피식 웃었다.

“안 본 사이에 성인군자가 다 되셨군.”

“지금 멈춘다면 널 최대한 변호해 주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는 아니지만, 그 이상 해 주기도 좀 그래.”

“오만함은 여전하고.”

“대답은?”

가만히 서량을 주시하던 목비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말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제안은 한 번뿐이야.”

“제안?”

츠츠츠.

목비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일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굉장하군.’

가히 초절정고수의 그것에 필적하는 마기다. 마기의 질만 보면 고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송경과의 비교는 애매하다. 마기의 질은 목비가 더 뛰어나지만, 송경의 은신술은 천하 어떤 살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같은 종류의 마공이지만, 목비의 은신술은 송경에 비해 한 수 아래란 생각이 들었다.

“제안이라……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 하는 거겠지. 하기야, 네놈이 그런 놈이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죄를 시인하지 않겠다?”

“죄? 내게 무슨 죄가 있지?”

서량의 얼굴에 귀찮음이 묻어 나왔다.

백 마디의 폭언, 욕설보다 훨씬 더 상대를 자극하는 표정이다.

“진심이니까 이 말은 믿어도 좋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너의 분노를 이해해. 그리고 미안함도 깊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옹알이를 다 받아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우우웅.

서량의 손에 강렬한 마기가 일었다.

목비가 제아무리 고수라도 작정하고 내친 서량의 일격을 막을 수는 없다.

애초에 목비는 무공에 그리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전투 경험도 많지 않았다. 단시간에 놀라운 경지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전투 능력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내 잘못, 그리고 너의 분노를 생각해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지. 자수해.”

목비의 웃음이 짙어졌다.

“싫다면?”

“유감이다.”

서량의 손이 목비의 경혈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파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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