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22화 (222/774)

222화. 버릴 수 없는 과거, 쥘 수 없는 미래 (2)

‘……?’

휘이이잉!

강렬한 바람에 목비의 머리카락이 뒤로 날렸다. 서량의 손은 그의 흉부 반 치 앞에 멈추어 있었다.

목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서량의 손은 빨랐다. 본능적인 위압감에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웃을 수 있었다.

“왜 손을 안 뻗지?”

서량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목비가 고개를 저었다.

“고수는 고수군. 감각이 남달라.”

“…….”

“차라리 네게 잡혔다면 좋았을 것을. 관계가 끈끈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죽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스륵.

서량이 손을 회수했다.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굉장한 은신술이로군. 송경, 그놈보다 더할 줄이야.”

“오히려 내가 놀라워. 교주님을 제외, 당대 신교에서 이들의 은신술을 꿰뚫어 볼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은신술에 워낙 정통해서 말이지.”

대화를 듣던 고구의 얼굴에 의아함이 맺혔다.

“삼공자. 대체 무슨 일이오?”

“다섯.”

“……?”

“총 다섯 명의 고수가 자미루 반경 십여 장 내에 대기하고 있다.”

“……!”

“송경과 비슷하지만 훨씬 격렬한 진기를 품고 있다. 무슨 수를 쓰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놈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아.”

목비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천재는 역시 천재라는 것인가. 동물적인 감각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네놈의 역량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구나.”

서량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목비를 노려보는 서량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말이로군. 내가, 우리가 그리 말했을 때 넌 코웃음을 쳤다. 멈추지 않았어. 그 흉악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우리 모두의 가족을 죽였지.”

목비의 얼굴에 깊은 원한이 드리워졌다.

너무나도 깊은 한을 품은 자, 오히려 그 한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목비가 지금껏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가슴에 맺힌 분노와 한이 사무치도록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철천지원수의 입에서 저따위 말이 나오니, 단단하게 응어리졌던 원한이 술술 풀려나오고 있었다.

스르륵.

고구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때, 목비가 말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서량이 고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멈추라는 뜻이었다.

고구의 눈이 깊어졌다.

“삼공자. 저자가 무슨 수를 쓰려는 건진 모르지만 이대로 얌전히 있는 것보다는…….”

“폭발일 확률이 높아.”

“……?”

“송경이 죽을 때를 기억해. 그놈은 아니었지만, 이놈들은 진짜로 목숨을 걸었어. 수틀리면 바로 자폭할 거다.”

“…….”

“그리고 우린 그 자폭이 얼마나 지독할지 모르지.”

“반경 십 장이라 했잖소. 삼공자나 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서량의 얼굴에 씁쓸함이 맺혔다. 목비의 그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씁쓸함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 말을 들은 고구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이곳에는 자미루주 도위경과 몇몇 숙수, 점소이들이 대기 중이었다. 자칫 그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도박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목비가 피식 웃었다. 조소 어린 미소를 짓는 그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정말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군. 감동에 눈물이 날 정도야. 설마 네놈이 그들을 걱정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 상관없어.”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그 사람들은 내보내라. 우리 일에 굳이 남을 끌어들이려 하지 마.”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만, 너의 반응을 보고 생각을 바꿨어. 내 상상 이상의 실력을 가진 네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그들의 목숨줄을 붙들고 있는 게 여러모로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과거의 나와 똑같은 짓거리를 할 셈이냐?”

“왜? 그러면 안…….”

“죽은 네 가족들이 지금의 널 보면 잘하고 있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리겠군.”

울컥.

목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 개……!”

강력한 경동을 불러일으키는 도발이었다. 그에게 있어 죽은 가족은 건드려선 안 될 역린이었다. 한데 그 부분을, 가족을 죽인 살인마의 입에서 들은 것이다.

“……후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퍼부어 주고 싶은 심정.

하지만 그는 참았다. 심호흡을 하고, 주먹을 쥐었다 펴며 감정을 다스렸다.

쉬이 반응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된다.

오직 오늘을 위해서 인내하며 살아왔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 화려한 마지막을 감정에 휘둘려 망칠 순 없다.

그래서 그는 더욱 악독해지려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행동도 했다.

“네가 이리 바뀐 줄 알았다면 병석에 누워 있는 네놈의 호위무사라도 잡아 올 것을 그랬구나. 아까운 일이야.”

“…….”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머지 후계들에게도 사람을 보내 놨다. 내 의념(意念)이 그들에게 닿는 순간, 너의 사형제들도 끝장이 나게 될 거다.”

번쩍!

서량의 안광에 살기가 묻어 나왔다.

붉어진 목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고요하게 타오르는 서량의 살기는 그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죄가 없어.”

“안다.”

“그중 한 녀석은 나와 대화도 안 해 본 녀석이다.”

“안다고 했다.”

“그중 둘은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어린애들이야.”

“그런 네놈은!!”

목비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네놈은 나의 가족을 어떻게 했지?! 내 아내와, 내 부모와, 내 자식을 죽였다! 나뿐만이 아니야! 나와 같은 목씨 성을 가진 무수히 많은 이들의 가정을 몰살시켜 버렸어! 이 같잖은 무공 하나 때문에!”

치이이익!

목비의 양손에서 샛노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독한 사기(邪氣)가 뿜어지는 무공이었다. 마공과 사공을 결합한 신(新) 무공, 바로 암천신마 목우가 만든 무공이었다.

“세 살배기 어린애도, 뒷골목 거지새끼도, 희대의 살인마도 날 욕하고 경멸할 수 있다! 나 역시 쓰레기가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네놈만큼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되지! 왜냐고?!”

파지직!

광음사기의 힘을 버티지 못한 탁자가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목비의 눈에서 줄기줄기 뿜어지는 사기에 말 못 할 감정이 섞여 나왔다.

“바로 네놈이 우리의 가족을 죽인 원흉이니까!”

터져 나오는 감정은 모두를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

굳은 얼굴로 목비를 보던 서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려라.”

“뭣이?”

“그들을 물려. 더 이상 죄 없는 이들을 이 더러운 판에 끼어들게 하지 마라.”

“하! 그럴 수는 없지!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귀밑까지 찢어질 듯, 하얗게 미소 짓는 목비의 모습은 이미 악귀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파순을 믿었다! 교주님을 믿었어! 신(神)을 향해 기도했고, 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또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내 기도에 응해 주지 않았어. 내 가족을, 내 한과 분노를 단 한 번도 어루만져 준 적이 없었다!”

“…….”

“어차피 다 허구이고 허상인 거다! 응해 주지 않는 신을 믿는 꼭두각시들을 내가 왜 사람 취급해 줘야 하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변명 몇 마디에 네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하나?”

“닥쳐!”

“내게 폭언을 퍼부을 때만 솔직해지지 마라. 난 지금 내가 저질렀던 과거와 죄 없는 그들을 위해 참고 있다. 그러니 너도 죄 없는 그들을 해치려 할 생각은 마라. 네가 원하는 건 나 하나야.”

“틀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 하나가 아니야! 네놈이 좋아하는 모두를, 너의 흔적 자체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야!”

쾅!

서량이 후려친 벽이 움푹 꺼졌다.

줄기줄기 새어 나오는 마기가 이전보다 훨씬 거칠었다.

“궤변 따위 그만 주절대라, 이 쓰레기야.”

“……뭐?”

“난 지금 매우 화가 난다. 왜냐? 내 기억에 없는 과거지사로 욕을 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내 육신이 저지른 짓이라면, 그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과거사에 눈 돌리진 않겠다는 거다.”

치이이이익!

광음사기보다 열 배는 더 지독한 마기가 그들이 있는 이 층을 넘어 자미루 전체를 장악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마기인지 공기가 다 텁텁해질 정도였다. 그 방대한 마력에 고구조차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하지만 넌 정도를 넘었어. 가해자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피해자가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있는 법이다! 넌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야. 나 못지않은 또 하나의 쓰레기일 뿐이다!”

나 못지않은 쓰레기다.

그 말이 주는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목비의 눈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풀렸다.

저 악마의 말은 궤변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악마가 저렇게 화를 내선 안 된다. 저놈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생각이다. 서량은 이렇게 화를 내선 안 되었다.

동시에 목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서량에게 화풀이를 한다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관계없는 이들까지 몽땅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서량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비는 억울했다.

‘왜 내가 더 나쁜 놈 같지? 정작 피해를 당한 건 난데?’

극에 이른 분노로 유지되던 정신이 조금씩, 조금씩 붕괴된다.

덜컹.

목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목비.

“네 말이 맞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무슨 상관이랴? 널 나락으로 떨어트리겠다는 내 의지가 명확하다면, 지난 과거사를 들먹이며 모욕을 주는 것 따위 무의미한 일일 뿐이지.”

“자수해라.”

“더 이상 선악 따위 따지지 않겠어.”

“자수해.”

고개를 내려 서량을 내려다보는 목비.

흰자위까지 노랗게 변한 그의 눈빛은 사악함보다 애잔함이 느껴졌다.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괴로워해라.”

순간 서량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퍼어억!

우당탕 튕겨 나간 목비가 의자와 탁자 두 개를 부수고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늦었다. 턱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뼈가 부러지지도, 의식을 잃지도 않았다. 미리 대비하고 진기를 잔뜩 집약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서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크르륵…… 느, 늦었어.”

목비의 동공이 흐릿해졌다.

“파멸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사아아아악.

목비의 몸에서 광음사기가 빠져나갔다.

사공을 운용한 게 아니라 내공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사공의 파괴, 내력의 증발이다. 목비의 피부가 조금씩 쭈글쭈글해졌다.

서량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내가 뭘 할지 알고 있나?”

“지금 알았다.”

“그렇군.”

목소리에 힘이 없다.

사공을 원정(原精)까지 침투시켜 내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 운용 원리를 다 알 순 없지만, 목비와 송경의 엄청난 성장에는 그러한 외도(外道)가 밑바탕 되어 있었던 것이다.

흡성진혈공과 결합한 목우의 무공이 바로 이것이었다. 폭발적인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되, 원정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대라신선이라도 회생시킬 수 없는 무공인 것이다.

“그 많은 비수가 어디로 증발했는가. 송경처럼 사람의 몸에다 때려 박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목비가 미소를 지었다.

주름진 얼굴에 드리워진 선한 미소에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배어들었다.

“똑똑하군. 그 사악한 심성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널 차기 신교의 주인으로 인정했을는지도 모르겠다.”

“…….”

“이제야…… 이제야 내 가족의 품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목비의 눈이 텅 비어 갔다.

쿠르릉.

자미루가 진동했다.

한 사람의 목숨, 초절정고수의 육신에 담은 고용량의 기로 운용되는 지형진법(地形陣法)이다.

판마정이 이천상의 절대마기로 유지되는 것처럼,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목비와 다섯 고수의 기로 자미루 인근의 땅을 진법으로 만든 것이다.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말은 그렇지 않았다 해도, 이곳에서 서량을 기다린 것 자체가 이미 생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었다.

고구가 외쳤다.

“삼공자!”

위이이이이잉!!

서량의 마기가 고구를 감쌌다.

“움직여!”

파아아악!

순식간에 일 층으로 내려온 서량이 도위경과 점소이들을, 고구가 숙수들을 들쳐 멨다. 야밤이라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일 층 문을 열었을 때.

콰쾅!

자미루 인근 땅이 폭발하며 수십, 수백만 개의 비수 조각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네놈이렷다?”

고루마존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목정향의 몸이 굳어 버렸다.

“삼공자의 말이 맞았군.”

그가 목정향을 향해 걸어갔다. 목정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우우우웅.

목정향의 두 눈이 샛노랗게 변했다.

고루마존이 걸음을 멈추었다.

‘……살기? 독?’

순간 그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는 곳은 바로 채여민이 있는 곳이었다.

동시에 목정향의 몸이 폭발했다.

콰앙!

수백 자루의 비수가 채여민의 거처 일대를 뒤덮었다.

그러한 자폭 공격이 오공녀, 육공자의 거처에도 일어났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