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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26화 (226/774)

226화. 버릴 수 없는 과거, 쥘 수 없는 미래 (6)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던 서량은 즉시 신법을 멈추었다.

콰드드득!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였던지라 몸이 쉬이 멈추지 않는다. 두 발이 만들어 낸 고랑의 길이가 무려 일 장이 넘었다.

발목이 시큰거릴 만도 했지만 서량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이럴 수가!’

서량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이런 강함이……?!’

이 몸으로 들어온 이후 처음.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싶은 이천상의 마공 전개다.

찌이익! 찌이이이이이익!

공간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이천상의 몸 주변으로, 판마정이 만들어 낸 환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마기에 닿는 모든 범위의 환상이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찢어졌다.

화아아아…….

판마정의 풍경이 바뀌었다.

무지막지한 태풍에 휩쓸린 거대한 도시가 온통 불타오르는 광경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 헤아릴 수 없는 시체와 처참히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공포로 장식되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바람을 타고 올라간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해골들이 끔찍한 몰골로 괴성을 질러 댔다.

지옥이다. 선경(仙境)이나 다를 바 없던 판마정의 모습이 한순간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그 지옥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천상의 마기.

비로소 두 사제지간이 서로의 모든 것을 부딪쳐도 될 진짜 무대가 펼쳐졌다.

“폐관 이후 처음이군.”

나른함이 묻어 나오는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가, 지금은 유부에서 들려오는 악귀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제자를 시험하는 무대에서 느껴선 안 될 감정이지만…….”

화르륵.

이천상의 입 주변에서 옅은 흑무(黑霧)가 뿜어졌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입을 열 때마다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는 지옥의 숨결과도 같았다.

“제법 흥분되는구나.”

스르륵.

서량의 몸이 일 장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이천상과의 거리는 이미 충분히 떨어져 있었지만, 저 막강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절대마력의 영역 밖에 있어야 안전할 것 같았다.

적어도 마공을 개방하기 전에는.

우우우우웅.

서량의 안광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동공만 물든 것이 아니라 흰자위까지 몽땅 핏빛으로 물들었다. 내력을 바닥부터 끌어 올려 개방한 구유마공이 그의 신경 하나, 근육 한 올까지 깃들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한다. 그러지 않고선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두 사람의 마기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콰쾅!

땅이 터지고 공기가 일그러졌다.

기파와 기파가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충격파가 나온다. 무의 한계를 초월한 극한의 경지 극마(極魔), 극마를 넘어 마(魔)조차 초월하기 시작한 초마(超魔)의 충돌이 무시무시한 역장을 만들어 냈다.

‘으윽.’

서량의 몸이 서서히 뒤로 밀렸다.

자세를 낮추고 중심을 하체로 밀어 넣었는데도 기파만으로 밀리고 있다.

반면 이천상은 여유 그 자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연스레 걸어오는데 서량의 기파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전에 한 번 봤던 무공일 것이다.”

이천상이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고작 손을 드는 것에 불과한데도 산봉우리가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것 같다. 그야말로 거인의 무공이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능천마라수(凌天魔羅手)다.”

이전처럼 서량을 가르치기 위해 기파(氣波)로 공기를 장악하는 한 수가 아니다.

진짜 마라수가 날아온다. 천자마(天子魔), 마라(魔羅)라고도 불리는 제육천마왕(第六天魔王)의 마수가 초마지경에 도달한 구대천마의 육신을 빌려 지상에 강림한 것이다.

이천상의 손이 움직였다.

‘……!’

느린 듯, 빠른 듯.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공기가 밀려 나가는 걸 보면 벼락처럼 빠른 일수가 분명한데, 어쩐지 서량의 눈에는 느리게만 보였다.

확실한 것은.

‘피해야…….’

이건 못 막는다. 전력으로 개방한 구유마공으로도, 천마벽력권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서량의 몸이 좌측으로 움직였다.

콰드드드득!!

갈라지고 파인 땅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형의 장력이 서량이 서 있던 자리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귀청을 멀게 할 폭음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굉음도 없이 반경 삼 장 너비의 땅을 그대로 박살 낸 것이다.

“흡!”

서량의 얼굴이 붉어졌다.

느릿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번개처럼 빠른 저 일수를 피하기 위해 마기를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찰나만 늦었어도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이승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그렇다. 그런 공격이었다.

이천상의 무공은, 구대천마의 진정한 마공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외물이라도 가루로 만들 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파아아아악!

확실히 서량의 담대함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이천상이 발휘한 무공의 압도적인 위력을 보면서도 회피나 방어가 아닌 속도감 넘치는 공격을 선택했다.

마황군림보를 밟으며 접근한 서량이 쌍장을 휘둘렀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콰아앙!

공격한 것은 서량인데 정작 밀려난 사람도 그였다. 이천상이 한 것이라곤 쏟아져 들어오는 장력을 향해 주먹을 한 번 지른 게 전부였다.

‘내상.’

튕겨 나온 것만으로 내상을 감수해야 했다. 반탄강기(反彈罡氣)의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 미치도록 강한 무공이었다.

“재미있는 발경법(發勁法)이로군.”

혼신의 힘을 다한 쌍장의 폭산경, 폭산쌍두경(爆山雙頭勁)을 주먹질 한 번으로 허물어 버린 사람의 한마디는 실로 경외감이 들었다.

파아아앙!

서량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공격이 통하지 않아? 방어만으로 내상을 유발시켜?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진신진력을 끌어낸 이천상의 무력은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을 넘보기에 손색이 없다. 지닌바 모든 무공을 쏟아부어도 터럭 하나 건드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대강자이기에 오히려 무섭지 않다.

공격하고, 또 공격한다. 물러섬이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몰아붙여서 기어이 한 방 먹여 주겠다.

서량의 마음은, 서량의 투지는 그런 호쾌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콰아앙!

어느 때보다 힘차게 대지를 밟아 가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르르릉!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지는 화탄 같은 권풍(拳風)이다. 소용돌이치는 권풍 주위로 붉은 전광(電光)이 이글거렸다. 천마벽력권의 분천뇌공포(焚天雷公砲)였다.

이천상의 좌수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파바바박!

채 절반도 나아가지 못한 뇌공포가 허공에서 번갯불을 일으키며 소멸했다. 어떤 수법으로 뇌공포를 무너트린 것인지 감도 안 온다.

하지만 괜찮다.

뇌공포를 구사하자마자 이미 서량은 이천상의 측면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무리한 움직임으로 전신의 관절이 죄다 어긋나는 것 같았지만, 극에 이른 인내심과 구유마공을 믿고 견뎠다.

순식간에 측면을 점한 서량의 쌍권이 뇌후(雷吼), 호전(呼電), 구천호벽(九天護霹)의 삼 초식을 연달아 풀어 냈다.

이천상의 얼굴 좌측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콰콰쾅!

일격, 일격의 힘은 모자랄지라도 연환으로 내치면 분천뇌공포에 맞먹는 파괴력이 나온다. 연환기가 끊기지만 않으면 속도에서도 앞서니, 근접전에서 이보다 더 위력적인 권법도 드물다.

보통은 그렇다.

퍼어어억!

서량의 입에서 울컥 피가 배어 나왔다.

손등, 손바닥, 손목 관절을 이용해서 파괴력 넘치는 삼연타를 모조리 흩어 내곤 팔꿈치로 복부를 밀어 쳤다. 구유마공이 방어하지 않았다면 내장이 터졌을 것이다.

‘여기!’

사아아악!

이천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바뀐 눈빛에 어린 감정은 다름 아닌 놀라움이었다. 자세가 무너지고 피를 토해 내면서도 기어이 각법을 올려 쳐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피슉!

이천상의 좌측 턱에 날카로운 상처가 새겨졌다. 상처에서 난 붉은 핏물이 목까지 흘러내렸다.

‘굉장하군.’

초절정고수 두세 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공격들이 모조리 허(虛)였다. 거기에 자신의 몸을 내밀어 공격을 유도하고, 내외상을 입어 가면서 기어이 한 방 먹였다.

스르륵.

턱을 매만지는 이천상의 안광이 형형해졌다.

‘이 정도로 성장했단 말이지.’

서량의 칼질에 손바닥이 베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마공을 끌어 올리지 않았으며, 비무가 아닌 가르침에 가까웠다.

지금은 아니다.

타인과의 진지한 비무에서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얼마 만인가. 천마의 칭호를 받기 전에도, 교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도 얼굴에 일격을 허용한 적은 없다.

접근은커녕 맞서 싸울 생각마저 없애 버리는 절대마신의 육체에 생채기가 난 것은, 그렇게나 의미가 큰 일이었다.

이천상의 발이 땅을 밟았다.

쿵!

그 한 걸음에 지옥 같던 풍경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재미있어.”

양손을 펼친 이천상.

커다란 손과 굵고 긴 손가락 사이로 시커먼 번개 줄기가 휘몰아쳤다. 파지직, 파지직 위협적인 소리가 서량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너의 성취를 볼 때마다 느꼈다. 항상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시커먼 마기를 뿜어내며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섬뜩했다.

“초점을 달리해야 했다. 네가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준 게 아니라, 내가 너의 능력을 얕잡아 본 것에 가까운 것이었어.”

차아아앙!

허리춤에 걸린 칠야도를 뽑은 서량.

그뿐만이 아니었다. 왼손을 곧게 뻗어 날카로운 수도(手刀)를 만드는데, 그 수도에 핏빛 전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기공으로 만든 마도(魔刀), 살기로 제련된 사도(死刀).

두 자루의 도를 들고 이천상을 노려보는 서량의 눈엔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가마.”

“안 되지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살기로 물든 미소가 아닌, 호쾌함이 묻어 나오는 미소였다.

“제가 먼저 갈 겁니다.”

이천상이 마주 웃었다. 군림마황기를 개방하자 감정 표현이 훨씬 풍부해졌다.

“좋다. 언제든지 와 봐라.”

“으압!!”

파아아악!

아홉 줄기의 태풍이 이천상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뿜어진 불기둥이 태풍과 함께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구유인화도법, 육연지옥풍과 종극무간도가 동시에 펼쳐졌다. 연환식으로는 쓸 수 있어도 구결 상 두 개를 동시에 구사할 수는 없는 무공들이었다.

그런데도 동시에 썼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서량도 몰랐다.

화르르르륵!

상상 초월의 불지옥 다음엔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는 얼음 지옥이 찾아간다. 핏빛 비명을 지르다 온몸이 얼어 터져, 붉은 연꽃처럼 변해 죽어 버린다는 혈규대홍련이었다.

거기서도 끝나지 않는다.

번쩍!

하늘 높이 떠오른 칠야도와, 칠야도를 보필하듯 떠오른 붉은빛 날카로운 광채 세 개가 섬뜩한 살의를 뿜어냈다.

칼이 부족해서 진기로 칼날을 유지했다.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었지만 위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인화도법의 사 장, 유혼비천이었다.

콰콰콰쾅!!

바람과 불, 얼음에 이은 유혼(幽魂)들의 거친 비명이 이천상의 몸을 마구 두들겼다.

사람이라면, 아니 사람의 육신을 갖고 있다면 누구도 버틸 수 없다. 제아무리 이천상이라도 마공 개방 정도로 이것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후두두둑!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초토화된 대지.

화아아악!

어느새 그 연기 한가운데에 돌풍이 일며 주변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거대한 손이 벼락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렸다는 듯 서량이 주먹을 휘둘렀다. 모든 초식을 건너뛴 천마벽력권 최강의 절기 진천벽력파(振天霹靂波)였다.

콰아앙!

자욱했던 연기가 일거에 사라져 버렸다.

파지지지직!

서량의 주먹을 움켜쥔 이천상의 손이 검게 그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타들어 간 이천상의 소매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인상적이구나.”

우두둑.

서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을 빼려 했지만, 도무지 빠지질 않았다. 무식한 악력이었다.

주먹으로 공력을 운용, 폭산경을 터트렸다.

쾅!

손이 살짝 벌어진 틈을 타 서량이 냉큼 주먹을 뺐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으면 손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이천상이 하얗게 웃었다.

그가 이빨이 다 보이도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주 좋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서량이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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