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28화 (228/774)

228화. 버릴 수 없는 과거, 쥘 수 없는 미래 (8)

“군사부에서 나왔습니다.”

마동필의 얼굴에 의아함이 맺혔다.

“무슨 일로……?”

마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현재 마 호위의 몸 상태를 알아보러 왔습니다.”

군사부에서 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러 왔지?

의문이 들었지만 마동필은 순순히 대답했다.

“나쁘지 않소.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이 빨라지고 있소.”

“거동에 불편함은 없습니까?”

“물론이오.”

“그럼 되었습니다.”

마인이 품에서 화려하게 포장된 서신을 꺼내 들었다.

“그게 무엇이오?”

“삼공자 서량의 호위장 마동필은 본 교주의 신서(神書)를 받으라.”

마동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빨리 침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경건해 보였다.

“신(臣) 마동필, 삼가 교주님의 신서를 받듭니다.”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받은 그가 다시 한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서신을 펼친 마동필.

이내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이틀 후, 내성 중앙 광장입니다. 그때까지 준비해 주시길.”

“…….”

“마 호위?”

“……알겠소.”

“그럼.”

마인이 방을 나섰다.

마동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격동이 일었다.

“공자님…….”

* * *

“푸헐!”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 내는 위홍련의 손길이 희미하게 떨렸다. 수련이 힘들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기어이 이렇게 됐구만.”

“무슨 일이냐?”

연무장으로 들어서던 위찬의 얼굴에 의아함이 맺혔다.

“군사부 정복을 입은 마인이 왔더구나. 혹, 네게 볼 일이 있었던 게냐?”

“네.”

위홍련이 서신을 흔들었다.

“이걸 전해 주러 왔어요.”

“또 사고를 쳤더냐?”

“……아니거든요.”

“하면?”

위홍련이 위찬에게 서신을 건넸다.

서신을 펼쳐 든 위찬의 눈이 흔들렸다.

“짐작은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죠.”

“그렇구나.”

“마존분들한테는 따로 연락이 갈 것 같아요.”

“그렇겠지.”

위찬이 눈을 감았다.

“교주님께서 마음을 제대로 드셨구나. 그때 마신궁에서 퍼진 충격파는 역시…….”

“마신궁이요?”

위찬이 반듯하게 접은 서신을 다시 위홍련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일부턴 바빠질 것이다. 오늘은 날 샐 각오하거라.”

“쳇, 알았어요.”

서신을 품에 넣은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어쨌거나 내가 줄 하나는 잘 잡았구만.”

* * *

마신궁에서 발송한 서신은 내성 곳곳으로 전달되었다.

군사부 총군사와 환희원주, 신장부주, 원로원주는 물론 각 전투 부대의 수장들에게도 서신이 전달되었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서신의 내용은 삽시간에 신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닌가? 파순제까지 기다린다고 하시더니 왜……?”

“이 사람이? 지금 교주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에 의문이라도 품는 겐가?”

“헉! 누, 누가 그렇다고 했나! 그냥 의아해서 그런 거지!”

“말조심하게. 근래 교내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입 잘못 놀리다간 큰일을 치를 걸세.”

“음, 맞는 말일세.”

“다른 걸 떠나서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 사실 삼공자님 만큼 후계자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지.”

“동의하네. 다만 근래 삼공자님을 중심으로 너무 많은 사건이 터졌어. 여론이 좋진 않을 걸세.”

“나는 그 부분을 가지고 자질 운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네.”

“응? 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 아니던가?”

“나올 수 있는 반응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놈들이라면 말이야.”

“……커험.”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 모르는 곳에서 후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겠나? 이건 투표로 당선자를 가리는 싸움이 아닐세. 상대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걸 교주님께 증명해 보이는 싸움 아닌가? 안 보이는 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공작들이 있었을 걸세.”

“그랬겠지.”

“진짜라면 미안한 말이지만, 난 솔직히 목 씨들 관련된 일도 사실인지 모르겠어. 다른 후계들의 수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어허, 거기까지 의심하는 겐가?”

“자넨 자신하나? 그게 진실이라고?”

“……뭐, 확신하냐고 묻는다면야.”

“바로 그걸세. 후보분들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섰네. 작정하고 계책을 짜면 우리 같은 마인들은 속을 수밖에 없단 말일세.”

“하긴.”

“물론 진짜일 수도 있겠지. 요(要)는, 후계자에 가까워질수록 어떤 추문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란 말일세. 다른 데에 줄을 댄 자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테니.”

“자네 말이 맞네. 이렇게 들으니 확실히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어.”

“결국에는 능력일세. 정파 샌님들이 부르짖는 협(俠) 따위는 평생 가지도 못해. 삼공자님의 능력은 본교 역사상 제일을 논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네.”

“맞는 말일세. 단시간에 극마를 깨닫고 교외(敎外) 일까지 싹 정리해 놓지 않으셨나.”

“암! 오히려 교주님께서 빨리 결단을 내리신 게 지혜로운 일이라 생각하네.”

여론의 반응은 신기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과거 서량이 저질렀던 끔찍한 과오로 나빠졌던 여론이 눈에 띄는 속도로 수그러졌다.

교주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파순제까지 기다리겠다던 교주가 마음을 바꿔 지금 당장 삼공자를 후계로 내세우겠단다. 교주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서량에 대한 마인들의 인식을 단숨에 바꿔 버릴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신(神)이기 때문이다.

교주는 인신(人神)이기 때문에,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신의 대리자가 직접 선포했기 때문에.

그 하나로 여론은 확 바뀌었다. 여전히 삼공자의 과거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었지만,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삼공자를 욕한다는 건 교주의 안목을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이천상이 서량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 가진 파급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 한 수는 곧 차후 서량이 교주직을 승계할 시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조금의 문젯거리도 날려 버렸다.

서량이 달리 서량이 아니라면, 이천상도 달리 이천상이 아니다. 한 번의 판단, 한 번의 언행으로 판을 엎을 수 있는 거인의 심계는 그처럼 대단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신교의 사방 성문이 모조리 잠겼고, 수많은 인사가 내성 중앙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신이 될, 구대천마 이천상이 직접 뽑은 후계자를 공표하는 자리가 깔린 것이다.

* * *

신(神)이라는 존재를 믿은 적은 없었다.

부처도, 신선도 믿은 적이 없다. 초월적인 존재가 이승 바깥에서 천하를 관조한다는 등의 자극적인 흥미에 중독되기엔 지난 세월이 너무나 각박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진 않되, 믿고 싶어졌다.

“음…… 이렇게 하는 건가.”

수십 개의 무덤 앞에 선 서량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한 번도 죽은 자를 애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세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량은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설픈 자세지만, 진심은 확실하게 전달되는 모습이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솔직하게 말할게.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었어. 나는 그때 당신들을 괴롭히던 악질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야. 아, 그렇다고 내가 악질이 아니란 말은 하지 않겠어.”

한숨이 나왔다.

신체의 골격이 바뀔 정도로 상승한 경지다. 안 그래도 장신이었던 서량의 키는 세 치나 더 커져, 이젠 이천상과 네다섯 치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어깨도 더 벌어졌고, 팔다리도 더 길어졌다. 근육의 질은 말할 것도 없다. 수련의 여지는 있지만, 이 정도면 환골탈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변화를 겪고도 이 번뇌는 완전히 씻겨 나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죄책감이라고 봐야겠지만.

“교주님의 말씀이 맞아. 내가 저지른 짓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그리 크진 않아. 솔직히…… 잠깐이었지만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쾌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생각이다. 서량의 무공은 분명 대단하지만,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성인군자도, 대인도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해도 어떻게 져야 할지 모르겠어. 죽는 것도 싫고, 매번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싫다. 난 나만의 인생이 있거든.”

냉정한 발언이다. 냉혈한이라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다.

서량이 진정 그들을 해쳤다면.

그러나 천하진의 혼(魂)이 담긴 지금의 서량은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런 사람의 말이기에 차갑게도, 역겹게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안타깝게 들릴 뿐이다.

“기억할게. 당신들을. 하나하나 전부 기억할게. 이 몸뚱이를 가진 놈이 할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교 내에서 당신들처럼 억울한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힘쓸게.”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그것뿐이야.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유족이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분이 풀릴 때까지 패고, 찌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서량은 어린애 하나 남겨 두지 않았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었다.

그래서 죽은 이들에게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못내 안타깝고 한스러웠다.

“과거를 버리지 않겠다. 당신들이라는 과거가 내게 속해 있음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

서량이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말이 없는 서량.

이내 그가 한숨 쉬듯 말했다.

“있잖아? 난 목표가 있어. 의천맹과 철혈성을 무너트리고 훌쩍 떠나 버리고 싶다는 꿈이 있어. 내가 후계자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가 그거야. 내가 움직이기 쉽다는 거. 신교의 병력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

여전히 그는 교주직을 바라지 않았다. 신교의 교주가 다른 방파의 수장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런 자리는 앉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교주가 될게.”

서량의 눈에 결심의 빛이 흘렀다.

“교주가 돼서, 다시는 당신들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신교를 뒤집어엎을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그렇게 바꿔 볼게.”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모른다. 진정 유혼(幽魂)이라는 게 있다면, 자신을 뻔뻔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저 권력을 쥐고 싶을 뿐인 게 아니냐며 비꼴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바로 그때 신교를 떠날게. 당신들에게 지지 못했던 책임을, 미래의 변화로써 지도록 할게.”

과거는 결코 버릴 수 없고, 미래는 섣불리 쥘 수 없다.

서량은 이 몸에 들어왔기 때문에 과거의 책임을 지려 했고, 이 몸에 들어왔기 때문에 미래의 꿈을 연장했다.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량이 품에서 술병 하나를 꺼냈다.

“육천심주야. 교주님이 고생해서 만든 술이야.”

퐁!

마개를 딴 서량이 무덤 곳곳에 육천심주를 뿌렸다.

“이것으로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바라건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어.”

육천심주를 전부 뿌린 서량이 몸을 돌렸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야. 신교를 나가는 그때, 당신들 앞에 떳떳할 만큼 신교를 바꾼 뒤에, 바로 그때 찾아올게.”

푸스스스.

술병이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해진 내공 조예였다.

“간다.”

과거를 버리진 못했지만, 번뇌는 털었다.

미래를 쥐진 못했지만, 또 다른 목표를 잡았다.

그거면 됐다. 그는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서량은 내성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시대, 다음 세대의 신(神)으로 내정된 마군의 걸음엔 힘이 넘쳤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