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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34화 (234/774)

234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한 걸음 (6)

다시 들어온 판마정은 이전처럼 기화요초 만발한 선경의 모습이었다.

서량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긴 정말 신기한 곳입니다.”

“그런가.”

“예. 특히 기묘한 공기가 놀랍습니다. 포근한 듯하면서도 신비로운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영기도 풍성하니, 마치 고죽림 같습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고죽림의 절진(絶陣)을 본떠 만든 허상의 세계니까.”

“그렇…… 예?”

서량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죽림의 절진을 본떠 만들었다니요?”

이천상이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별빛처럼 작은 빛들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내 희끔한 빛무리가 되어 그의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맴돌았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고죽림은 본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곳 대산에 존재했던 신비의 숲이다. 그곳엔 실체인지 허상인지 모를 온갖 영물들이 득실거린다.

너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봤지요. 몇 번이나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고죽림에서 지낸 기간은 팔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팔 개월간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으로 뇌리 한가운데 콱 박혀 있었다.

“산해경에 기록된 요괴 비스무리한 것들이 날뛰던데요?”

“산해경이라는 것 자체가 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서(奇書)다. 허구의 소산이지. 그중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영물은 몇 마리 되지도 않는다.”

“하긴, 워낙 잡다한 내용이 많으니까…… 엥?”

서량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영물이 몇 마리 안 된다는 말씀은, 산해경에 적힌 영물 중 몇몇은 정말 존재한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다. 너도 보지 않았더냐.”

“제가요?”

이천상의 눈빛이 묘해졌다.

“아직 모르는군.”

“……?”

“네가 데리고 다니는 여우, 시랑(豺狼)을 말함이다.”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금호 말씀이로군요.”

“너는 금호라 부르나 보군. 뭐라 부르든, 그 녀석이야말로 세상에 다시 나기 힘든 진짜 영물이다.”

“시랑이라…….”

금호가 영물이란 것은 진즉에 알았다. 금호는 독특하거나 괴이하다기보단 신비로움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으니까.

하지만 산해경에 실린 영물이라는 건 몰랐다.

“여우 요괴 중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것은 청구산(靑邱山)에 산다는 구미호(九尾狐)다.

하지만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에선 시랑과 비교할 수 없지. 물론 나 역시 구미호를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영향력이라니요?”

“시랑이 나타나면 나라 안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

“……!”

“해서 과거 사람들은 시랑을 죽음을 몰고 다니는 역병 같은 존재로 취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녀석이 나타날 때마다 온갖 환란이 터졌으니까.”

서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氣)의 조화로 태어난 영물이나, 다른 요괴와 영물과는 근본부터가 달라.

역병이든 전쟁이든, 그로 인해 환란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존재만으로 인세(人世)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은, 시랑이 품고 있는 기(氣)가 운명에 관여할 정도로 왕성하다는 뜻이다.”

“……대단하군요.”

“결국은 기다. 천지만물의 조화는 결국 기로 시작해 기로 끝난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반복하지.

시랑이란 존재가 바로 그렇다. 녀석 역시 죽고 살아나길 반복하는 영물이니까.”

순간 서량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고죽림 중심부에서 곤히 자고 있었던 새끼 시절의 금호였다.

몸길이가 팔뚝만 했던 금호는 누가 봐도 새끼였다.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아기처럼 순수하기 짝이 없는 생기(生氣)를 품고 있었다.

‘수명이 다 된 몸을 벗고 새로 태어났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금호가 그리 놀라운 녀석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보이더군.”

“예. 제게는 그냥 좋은 친구니까요.”

“살벌한 친구를 뒀군.”

서량이 피식 웃었다.

“세상이 악귀 소굴이라 부르는 신교의 소교주에겐 더없이 걸맞은 친구 아닙니까?”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도 그렇군.”

“한데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이천상이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언뜻 방만해 보이면서도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자세였다. 평소의 이천상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유마공이라 했더냐?”

“제 마공이요?”

“그렇다.”

“그렇습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결과 법문을 읊어 봐라.”

서량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천상이 궁금해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가 구결을 천천히 읊었다. 두 번, 세 번도 읊어 줄 수 있지만 왠지 이천상이라면 한 번만 듣고도 구유마공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천상은 구결과 내력 운용법을 모르는 암영진마공을 몇 번 상대해 본 것만으로 보완점을 찾아내지 않았는가.

서량의 짐작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굉장하구나.”

이천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놀라움이 묻어 나오는 눈빛이었다.

“상대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리 들어 보니 보통이 아니군.”

“어…… 좀 새삼스럽긴 하네요. 전에는 상대해 보신 것만으로도 보완할 심득을 적어 주셨잖습니까?”

“생명력 넘치는 숲에 뛰어놀 동물 몇 마리 풀어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폈지. 그러니 다를 수밖에.”

“아.”

“진마공 위에 불가의 무학을 덧씌운 걸 안다. 기반은 마공이지만 탑을 단단케 한 것은 신공이었지?”

“그렇습니다.”

“완전히 하나로 녹여 냈지만, 각자의 특성은 또 분명하군. 누구라도 쉽게 만들지 못할 명작이다.”

이천상이 그리 말해 주니 뿌듯하다. 고금을 논할 절대자가 명작이라 할 정도면, 구유마공은 가히 역사에 남을 마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아쉽군.”

“그렇습니까?”

“구유마공은 그 자체로 완성된 무학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명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큰 단점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역사입니다.”

“정확하게 보았다. 구유마공은 네가 직접 만든 마공이다.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한 무공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지.”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군림마황기는 다르다.”

“…….”

“군림마황기는 초대천마께서 틀을 잡으신 후, 수 세대에 걸쳐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온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마공이다.

마학의 수준은 구유마공과 큰 차이가 안 나지만, 방대함에 있어서는 구유마공을 압도한다.”

서량은 순순히 인정했다.

구유마공이 대단한 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마(魔)를 관통하는 무리(武理)에 있다.

그것을 단계로 나눈 것이 지옥문(地獄門)으로, 층을 통과할수록 수월하게 다음 경지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단한 완성도를 위해 포기한 것이 바로 방대함이다.

군림마황기를 기반으로 쓸 수 있는 마학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하지만 구유마공을 기반으로 쓸 수 있는 마학은 손에 꼽힌다.

그나마도 서량의 경험과 깨달음 덕에 녹여 낸 것이지, 구유마공 하나만 갖고는 효과적인 외가 무공을 익히기 어렵다.

즉, 접근성에 있어서 군림마황기에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교주님.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하라.”

“어째서 진관용에게 군림마황기를 전수해 주신 겁니까?”

이천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녀석 이외의 제자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하?”

“고구에게 이미 들었겠지? 고구야말로 첫째 제자였다는 걸.”

“……아, 예.”

“녀석은 의천맹에서 보낸 첩자였다. 비록 너나 다섯째, 막내에 비할 순 없었지만 재능도 출중했지.

그 정도면 나만큼은 아닐지라도, 말년에는 천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서량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천상의 미소에 씁쓸함이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난 제자라는 존재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다. 그런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달랐어.

처음으로 받은 제자에게, 놀랍게도 내 마음은 전에 없이 큰 흔들림을 맞았지.”

“…….”

“난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녀석의 재능보다는 배포와 눈빛이 좋았지.”

“그러셨군요.”

“그래서 녀석을 죽이지 않았다. 이곳, 판마정의 환상을 이용해 시신을 만들었고, 몇몇 수뇌부에게 보여 준 것으로 마무리했지.”

“그리고 형법당으로 보내신 겁니까?”

“그렇다. 무재(武才)도 출중했지만, 진법(陣法)과 기관(機關)에 대한 재능은 감히 천하제일을 논해도 될 정도였지.

형법당의 지하 뇌옥과 미로, 그리고 이곳 마신궁의 배치와 판마정의 진법을 보완한 것도 전부 그 녀석이다.”

서량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굉장하군요.”

“하지만 녀석은 본인의 가장 큰 재능을 인정하지 않아. 그래서 무공에 집착했지.”

순간 서량은 고구의 말을 떠올렸다.

- 다만 나도 부탁이 있소. 앞으로 일 년간, 내가 원할 때마다 나와 비무를 해 주시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 사건으로 난 제자를 받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후계를 세우지 않을 순 없었다.

그래서 첫째에게 군림마황기를 전수했다. 알아서 잘 커 보라고 던져 준 것이지. 더는 후계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무책임하셨습니다.”

“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뭐, 그러면 됐지요.”

하긴 진관용이 제대로 컸으면 서량도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충분히 높게 올라온 경지임에도 작정하고 안광을 뿜는 이천상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서량의 몸이 절로 굳어졌다.

“고구는 익혀선 안 될 녀석이었다. 첫째는 익혔지만 후계 싸움에서 패배하고야 말았다.”

“…….”

“본교 최고의 마공을 전수하는 데에 있어 세 번이나 실패를 맛보고 싶진 않다.”

“저는 구유마공으로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다.”

“왜 그렇습니까?”

“네가 본교의 소교주이기 때문이다.”

“아…….”

“군림마황기는 네가 나의 하나 된 후계자라는 증명이자 정통성 그 자체다. 차후 신교를 이끌어 가기 위해선 무조건 대성해야 할 것이다.”

서량이 헛기침을 했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구유마공과 충돌을 일으킬지도 모르고요.”

“엄살 부리지 마라. 난 소화도 못 시킬 놈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사람이 아니야.”

“엣헴.”

이천상이 잠시 서량을 주시했다.

“하지만 충분히 자리를 잡은 구유마공 때문에 적잖은 고난이 예상되기도 하지.”

“그렇죠.”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칼이 네 자루씩이나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서량이 혀를 내둘렀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안 그래도…….”

“꺼내 놓아라.”

“옙.”

서량이 용린도와 칠야도, 유성쌍도를 꺼내 들었다.

이천상의 안광이 번뜩였다.

카아아아앙!

칼 네 자루의 손잡이가 모조리 박살 났다. 서량이 입을 떡 벌렸다.

“칠야도를 제외한 세 자루의 칼은 본교의 장인들도 쉽게 다룰 수 없다. 시간도 오래 걸릴 터이니, 내가 직접 녹여 주마.”

“녹여요?”

이천상이 손을 뻗었다.

우우웅.

칼날만 남은 네 자루의 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번쩍!

이천상의 손에서 시커먼 불길이 치솟았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한순간 뿜어진 화기(火氣)가 너무 지독해서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군림마황기의 소천겁화(燒天劫火)라는 수법이다.”

부글부글!

허공에 떠오른 네 자루의 칼이 점점 녹아들더니, 이내 펄펄 들끓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쇳물이 끓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광경이었다.

오른손을 고정한 이천상이 왼손을 들었다. 그리곤 검지와 중지를 모아 허공에 선을 그렸다.

화르륵!

잘려 나간 쇳물의 파편이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그러자 남은 쇳물이 점차 거대한 칼날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치이이이이이익!

차가운 공기에 닿자마자 칼날에서 엄청난 양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칼날을 보며, 이천상이 말했다.

“자질구레한 세공은 필요치 않겠지.”

“뭐든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게 좋죠.”

담담하게 말했지만 서량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경이롭기 짝이 없는 무력이었다. 저 소천겁화라는 수법을 보면 상마진화를 기반으로 한 것 같은데, 그 온도와 위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카아아앙!

거대한 칼날이 땅에 꽂혔다.

마공으로 제련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끄러운 형태였다.

미세하고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칼날은 자흑(紫黑)색으로 물들어, 별다른 세공이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비범해 보였다.

“칼에 군림마황기를 넣어 고정시켰다. 막힐 때마다 기감을 확장해 끊임없이 나의 기(氣)를 확인토록 해라. 나름 도움이 될 것이다.”

“…….”

“칼받이나 도병(刀柄)은 알아서 처리하도록.”

“……감사합니다.”

“후우.”

이천상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 믿기지 않는 작업은 그에게도 다소 힘든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답지 않게 지친 모습이 놀라웠다.

“좀 쉬시는…….”

“이제부터 군림마황기를 전수하겠다.”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천상의 눈빛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네 수준을 감안해도 사흘 밤낮은 걸릴 것이다. 제대로 집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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