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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35화 (235/774)

235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한 걸음 (7)

판마정을 떠나는 서량을 보며, 이천상이 정자 위로 올라왔다. 어느새 정자에는 조촐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특유의 나른한 자세로 앉아 잔을 들어 올릴 때.

째앵!

잔이 떨어졌다. 깨진 술잔 조각과 사방으로 튄 술이 이천상의 의복을 더럽혔다.

이천상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리했군.’

극마를 초월하여 미지의 경지에 진입한 지 어느새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러한 경지를 세인들은 신화경(神化境)이라 부르고, 이천상 자신도 그렇게 칭했지만 실은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경지다.

그저 한없이 깊어지고 또 깊어지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를 초월해 버리기 위해 날아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신화(神化)든 초마(超魔)든 그러한 경지에 진입한 순간 공력이 마르지 않는 바다처럼 급증한다는 것이다.

극마의 내력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지만, 이 경지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인체에 진정한 우주를 담아내는 것. 무한의 공력으로 삼라만상의 이치조차 농락하는 경지.

그처럼 방대한 기(氣)를 가진 이천상에게도 마도(魔刀)를 제련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神)이라 불리고 있지만, 진정 신의 능력을 보여 줄 순 없다는 것이지.’

소위 신병이기(神兵異器)라 불리는 병장기에도 급이라는 게 있다.

서량이 들고 다니던 유성쌍도(流星雙刀)의 경우, 압도적인 예리함을 품고 있었지만 진정한 신병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진관용이 들고 다니던 영마검(永魔劍)이나 마동필의 애병인 묵왕검(默王劍)이야말로 진짜 신병이라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유성쌍도보다 밀리는 것 같지만, 숨겨진 힘을 발휘하면 천리(天理)를 뒤흔들 수 있는 기병이 바로 영마와 묵왕이다.

물론 그러한 진력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명 나기도 힘들다.

이천상이 만든 마도(魔刀) 역시 그러한 수준의 병기에 들 수 있다.

술법(術法)이나 도술(道術)의 영역으로 보았을 때, 이천상은 병기에 귀(鬼)나 신(神)을 담은 고대의 반선(半仙)들과 비슷한 일을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신도, 신선도 아니지만 능히 초월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바다처럼 깊은 공력을 칼날에 주입하다 보니 기력이 과하게 쇠했다는 것이다.

공력을 주입하는 것까진 문제없지만, 그 공력을 칼날 깊이 봉인하는 것은 이천상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천상이 손을 휘둘렀다.

치이이익!

술이 증발하고 깨진 잔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또 다른 잔을 꺼내 술을 채운 이천상은, 문득 드는 생각에 피식 웃어 버렸다.

“변화는 내게도 찾아온 것인가.”

방금까지 여기에 있던 셋째가, 아니 후계자가 떠올랐다.

고구를 제외하곤 제자 중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던 자신이, 제자를 상대로 비무도 해 주고 깨달음도 안겨 주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이제는 후계자가 되었다고 무공을 전수해 준 것도 모자라 마병까지 제련해 주었다.

이천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신(神)은 그저 홀로 고고할 뿐, 누군가를 위해 그리 애를 쓰지 않는 법이다.

“만약 내가 변화했다면, 그 역시 녀석 덕분이겠지.”

처음 셋째를 보았을 때, 그저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커 가는 과정을 보며 실망했고, 이후 입마에 들었다고 할 땐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하지만 입마에서 벗어난 셋째가 자신을 대면했을 때.

그는 셋째의 무언가가 크게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마 판마정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어도 제자의 변화를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서량의 변화는 컸다. 가히 변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서량이 어느새 극마에 올랐고, 이내 후계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를 쟁취해 소교주가 되었다.

나름의 편애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애초에 제자와 비무를 해 주었다는 것 자체가 서량을 향한 이천상의 관심과 애정이 크다는 걸 뜻한다.

하나, 가르침 자체는 투명했다. 살코기는 던져 주었지만, 그것을 요리한 것은 전적으로 서량의 능력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천상 역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녕 믿을 만한 놈인지, 이놈에게 기대를 걸어도 될지.

인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여전한지, 혹은 이미 다 사라져 없어졌는지.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훨훨 날아 보아라.”

시원하게 잔을 비운 이천상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조금은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후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삼십 년의 대외 활동 축소화…… 신(神)으로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기다림이었지만, 너라면 그 역할을 맡겨도 될 것 같다.”

* * *

“사흘 밤을 새웠습니다.”

“…….”

“거짓말 같지요? 정말입니다. 진짜 사흘 동안 쪽잠도 안 자고 기다렸습니다.”

서량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미안합니다.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나도 몰랐거든요.”

호요성이 콧방귀를 뀌었다. 뾰로통한 표정이지만 거무죽죽해진 눈 밑을 보니 진짜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흘 동안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셨습니까?”

“딱히 얘기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흘이나…… 엥?”

그제야 서량의 등에 걸린 칼을 본 모양이었다. 시커먼 천으로 둘둘 감긴 칼날은 얼핏 보아도 그 크기가 대단해 보였다.

“그건 뭔가요?”

“교주님께서 새로 만들어 주신 칼입니다.”

“교주님께서 칼을 만들어 주셨다고요?”

“예.”

“본래 갖고 있던 네 자루 칼을 녹여서요?”

“그렇습니다.”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무공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저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음.”

그가 서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차기 교주가 될 사람을 보는 눈빛이라곤 상상조차 못 할 만큼 무례했지만, 서량은 불쾌한 기색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왠지 사흘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이는데…….”

“그렇습니까.”

“전수받으셨군요? 군림마황기.”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총군사의 눈치는 못 당하겠습니다.”

“눈치랄 게 있겠습니까. 소교주가 되셨으니 마땅히 전수받으셔야지요. 그냥 넘겨짚어 본 겁니다.”

호요성의 얼굴에 작은 놀라움이 피어났다.

“오히려 제가 놀랐습니다. 사흘 만에 그걸 다 이해하신 겁니까?”

“전부 이해했다고 하기엔 좀 뭐하지요. 어떤 원리로 운용되는지만 파악했고, 나머지는 그냥 외웠습니다.

무공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습니다.”

서량이 턱을 짚었다.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굉장한 마공입니다. 구유마공과는 달리 무척이나 체계적이에요.

그러면서 난이도는 구유마공보다 한술 더 뜨니…… 이런 게 진짜 완벽한 무공이란 것이겠지요.”

순식간에 군림마황기에 집중한다. 집중력이 좋다기보다는 그만큼 군림마황기가 인상적이라는 뜻이리라.

호요성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정말 놀라운 사람이야.’

무공의 경지가 높지만 않을 뿐, 어지간한 마학은 다 읽어 본 그였다.

천재의 안목은 문무(文武)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이천상을 제외, 신교의 마공을 가장 많이 분석해 본 사람은 단연 호요성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량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재능을 얻었을까? 아니, 이걸 단순히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십대마공만 해도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을 매달려도 대성치 못하는 극상승의 마공이다.

하물며 군림마황기는 천하 모든 마공의 지배자이자 천년마도를 지탱한 역사 그 자체다.

그런 마공의 운용 원리를 고작 사흘 만에 파악했다고?

‘무재(武才)나 해석력만으로는 불가능해. 무(武)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는 것이다. 감각 자체가 여느 무인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게 분명해.’

호요성이 피식 웃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소교주님을 보면, 조직의 선봉장이나 결전 병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하지만, 무(武)가 너무 두드러져서 오히려 교주란 자리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벌써부터 답답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군요.”

호요성이 차를 우려내며 말했다.

“아, 그리고 말씀 편히 하셔도 됩니다.”

“그럴까?”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른 변화네요.”

“왠지 총군사한테는 존댓말 쓰고 싶지 않거든.”

“캬하하!”

차를 내온 호요성이 품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보십시오.”

“이게 뭔데?”

“섬서 지도입니다. 인접한 성 주변의 자그마한 샛길까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서량은, 이내 지도를 받아 들었다.

장강 이북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하지만 그것은 살왕이었을 때의 기억일 뿐, 지금의 서량은 모르는 게 정상이다.

“잘 받지.”

“그래서, 교주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까?”

“물론.”

“좋습니다. 한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문제?”

“이 일의 특성상, 눈에 띄는 호위는 붙일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장강 이북은 의천맹의 영역이니, 그들 눈에 다수의 마인이 보이면 그 즉시 비상이 걸릴 겁니다.

호위를 잔뜩 보내는 것보다 훨씬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서량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단독으로 의천맹을 상대할 순 없다. 당장 십대고수 둘만 모여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반면 호위가 부실해도 문제가 됩니다. 만일 적의 정보망에 소교주님께서 포착되면 그 즉시 병력이 파견될 겁니다.

함부로 건드리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최소의 호위로 가시겠습니까?”

서량이 피식 웃었다.

“동필이만 같이 가도 충분해.”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나한테는 동필이 못지않은 호위가 둘이나 더 있거든.”

“……아!”

호요성이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대체 그 영물은 뭡니까? 그 무지막지한 호랑이야 야수궁주가 ‘만든’ 마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다른 한 마리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야수궁의?”

“아니.”

“그럼요.”

“그냥 내 친구다.”

이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해 버린 듯한 발언에 호요성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당황했다.

“뭐…… 어찌 되었든 위험하긴 매한가집니다. 게다가 그 두 영물이야말로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합니다. 너무 눈에 띄어요.”

“그것도 그렇지.”

잠시 고심하던 서량이 씨익 웃었다.

“뭐, 굳이 어렵게 갈 필요가 있나 싶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뭐가 어찌 되었든 섬서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나?”

“그렇긴…… 한데요. 달리 묘수라도 있습니까?”

“묘수? 음, 묘수라고 하긴 뭣하지만…… 어떻게든 목적만 달성하면 되잖아?”

호요성은 왠지 불안해졌다.

“소교주님.”

“응?”

“이런 말씀하긴 좀 그런데, 본교에서 사고 치는 것과 대외에서 사고 치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젭니다. 아시지요?”

“당연히 알지.”

“예에.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해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그동안 한 단체를 지나치게 오래 잊고 있었다는 생각 안 들어?”

“철혈성 말씀이신지요?”

“에헤이, 지금 그놈들하고 엮이면 문제가 커지지.”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인질로 적어 뒀지만 손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하나가 내 거처에 있잖아. 그동안 농땡이만 부렸는데, 이 기회에 아주 제대로 써먹어 줘야지.”

* * *

“으음.”

“왜 그러세요?”

“아, 좀 추워서.”

“춥다고요?”

앵화가 검지에 침을 묻히곤 허공을 휘휘 저어 보았다.

“꽤 시원해지긴 했어도 아직 더운 날씨인데요? 게다가 여긴 남부에요, 언니.”

“알아. 알긴 아는데…….”

여상린이 부르르 떨었다.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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