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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36화 (236/774)

236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한 걸음 (8)

“그럼, 부탁 좀 할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염마장(染魔匠)의 얼굴에 환희의 감정이 드리워졌다.

신교 최고의 풍운아라는 소교주가 직접 부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까닭은 그의 손에 들린 한 자루 칼 때문이었다.

기존의 용린도보다 도신(刀身)이 좁아지고 길이도 한 자나 더 짧아졌지만, 충분히 대도(大刀)라 불릴 만한 칼이었다.

또한, 길이가 짧아진 대신 도배(刀背)가 더 굵어졌다.

이 정도면 베는 게 아니라, 상대를 때려 부수는 칼 모양의 철판이라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칼 전체에 영롱한 먹빛이 감도는 게,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초대천마의 용린도, 즉 참룡마도와 칠대천마의 칠야도는 물론 유성쌍도까지 녹여 섞고,

불순물은 모조리 날려 만들어 낸 게 바로 이 칼이다. 비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비범함을 염마장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따로 세공을 넣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정말이지 이리도 완벽한 칼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히 휘어진 곡선 하며, 두께에 맞도록 약간만 날을 세운 것까지, 그야말로 예술입니다.”

애초에 세공을 넣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근데 칼은 예리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런 대도(大刀) 종류는 오히려 날을 조금 뭉툭하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무게가 많이 나가다 보니 날을 너무 세우면 다른 병기와 부딪쳤을 때 부러지기 십상이거든요.”

“그렇구만. 그런 걸 신경 써 본 적이 없어서.”

“물론 이 정도 강도와 탄성이라면 날을 예리하게 세워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신병이기라 불리는 병기들이 으레 그렇지요.”

“여하간 적당히 마감해 줘. 손잡이든 뭐든 최대한 단단하고 손에 착 감기게 만들면 되니까.”

“맡겨 주십시오. 아, 칼받이는 어떻게?”

“없어도 상관없어.”

“하긴 칼날 자체가 큰 편이니까요. 알겠습니다. 하면 그렇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염마장에게 칼을 맡긴 서량이 혈혼각으로 향했다.

그가 혈혼각에 들어서자마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君臨聖敎), 천마불사(天魔不死)!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천마(天魔)라는 단어가 실린 여덟 자구의 신마경어(神魔敬語)는 오직 교주와 소교주만 들을 수 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참 쓸데없는 데에서 세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어들 나.”

자세를 바로 한 의원들이 감히 신교의 소교주님을 똑바로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앞으로 이럴 필요 없다.”

“…….”

“한시가 급한 의원들이 인사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면 환자들은 어떻게 해? 앞으로 인사 생략해. 알겠나?”

“소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서량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삼공자 때도 그랬지만, 소교주가 되고 난 이후 받는 이 지나친 예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낯부끄러웠다.

“하여튼 징글징글하다니까.”

후다닥 마동필의 방으로 들어간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얼레?”

“아! 소교주님 오셨습니까?”

바로 무릎을 꿇으려는 마동필을 서량이 잽싸게 막았다.

“너까지 그러지 마라.”

“……아, 예.”

“그나저나 회복이 왜 이리 빨라? 내상이 거의 다 잡힌 것 같은데?”

의복을 정갈히 차려입은 마동필에게서 장중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의원이 말한 시기까지 족히 열흘은 남았는데도, 내상의 징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얼추 다 나았습니다.”

“칼질은?”

“문제없습니다.”

“철골이 따로 없군. 종일 운기만 했냐?”

“깨어 있을 때는 거의 그랬습니다.”

독한 놈.

운기조식이란 게 생각보다 그렇게 쉬운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르면 그보다 지루한 수련을 찾기가 어렵다.

그 지루함과 짜증을 인내심 하나로 내리누른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내상을 바로잡았다는 것. 새삼 이놈은 마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퇴원해도 되냐?”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담당 의원에게 허가를 받으러 가려던 중입니다.”

“좋아.”

서량이 마동필의 어깨를 툭 쳤다.

“거처로 가서 밥 먹고 있어. 좀 이따 들어갈 테니까.”

“어디 가실 곳이라도 있으신지요?”

“응. 네 상태가 어떤지 보려고 잠깐 들렀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네.”

서량이 창가로 몸을 날렸다.

“이따 보자!”

파아악!

순식간에 점이 되어 멀어지는 서량을 보며 마동필이 피식 웃었다.

“여전하시구나.”

혈혼각을 나선 서량이 도착한 곳은 환희원이었다.

쓸데없는 인사를 받기 싫어 은신까지 하며 이동한 그가 단숨에 원주의 집무실 창가까지 이르렀다.

문서에 도장을 쾅쾅 찍어 대던 소연심은 순간 시야를 어둡게 하는 그림자에 깜짝 놀랐다.

파아아악!

바로 몸을 휘돌려 주먹을 뻗어 내는데, 그 속도와 탄력이 대단했다.

턱!

그녀의 주먹이 서량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잡혔다.

본능적으로 후속타를 준비하려던 소연심이 이내 멈칫했다.

“어?”

“새삼 느끼는 건데, 주먹이 엄청 맵습니다.”

“삼공…… 아니, 소교주님?”

“예이.”

“아니 왜 정문으로 오지 않으시고?”

“인사받기 귀찮아서요. 여하간 미안합니다. 자꾸 도둑처럼 창을 넘게 되네요.”

소연심이 후다닥 의복을 정리했다.

“환희원주가 소교주님을 뵈어요.”

“그 인사는 좀 낫네요.”

“차를 내올까요?”

“좋지요.”

“굴송차?”

서량이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한번 마셔 보지요.”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리 소교주라도 멋대로 집무실에 드나든다면 화가 날 만하다. 그런데도 소연심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꾸며 낸 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후, 굴송차의 진한 향이 집무실 전체를 감돌았다.

서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맡는 향이로군요. 묵직하고 비릿한 이 향은 여전합니다.”

“마시다 보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굳이 괜찮아질 필요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소연심이 빙긋 웃었다.

“좀 늦었지요? 후계자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때 광장에서 인사 안 하셨습니까?”

“했죠.”

“그런데 뭘 새삼스레.”

“그래도 사석에서 뵙고 인사하는 건 다르지요. 직접 찾아뵐까 했는데 아시다시피…….”

“예, 압니다. 원주의 공사가 다망한 거.”

두 사람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게 된 두 사람이었다. 삼공자 때는 나름의 선을 그어 둔 긴장감 있는 관계였는데, 막상 소교주가 되고 나니 제법 편해졌다.

“해서, 오늘은 어쩐 일로 이리 찾아오셨나요?”

“공사가 다망하신 원주의 시간을 더 뺏으면 안 되지요.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서량이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웃으며 그의 말을 듣던 소연심의 얼굴이 점차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런 식으로 섬서까지 가신다고요?”

“어차피 보여 주기식이니까요. 사실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도 상관은 없습니다. 혹시 몰라서 이러는 거예요.”

“…….”

“문제라도 있습니까?”

“무, 문제는 없지만…… 아니, 이게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고…….”

소연심이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어요?”

“음? 이게 뭐 독특한 생각이라고 그러십니까?”

“당연히 독특한 생각이죠. 본교의 품위와 관련된 문제인걸요?”

서량이 손을 저었다.

“품위는 지위가 아니라 언행에서 드러나는 겁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하지만 소교주님 정도 되면, 겉으로 보여 주는 품위도 충분히 중요하다고요.”

“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본교의 누구보다도 품위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할 소교주님께서, 타 문파의 후계자도 아니고 고작 후계 혈육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시겠다니요?!”

그렇다.

서량이 섬서까지 가려는 방법은 간단했다. 여상린을 전면으로 내세워 그의 호위무사 신분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겠다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호요성도, 소연심도 그 위험성보다 서량의 체면이 무너지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신교의 소교주라는 자리는 다른 문파의 소문주와 비교해선 안 된다. 문주는 신이 될 수 없지만, 신교의 교주는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동시에 그만큼의 품위와 신성(神性)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애초에 소교주 신분으로 무모한 작전을 감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거늘, 거기에 신분까지 속이다니?

신교를 넘어 마도 소속 무림인들이 본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아시죠? 이거 들키면 소교주님의 안전도 안전이거니와, 마도 무림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 될 거예요.”

“압니다.”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그 충격의 여파는 교주님께도 미치게 될 거예요!

설령 교주님께서 그걸 상관하지 않으신대도, 마인들의 전의(戰意)가 땅을 치게 될 거라고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네?!”

“교주님은 그걸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

“이미 허가도 받았고, 진행만 하면 됩니다. 다만 린이와 함께 탈 크고 튼튼한 마차를 제조할 만한 곳이 환희원이라 들른 것뿐이에요.”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소 원주께서 끼실 판은 아닙니다.”

소연심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소교주님은 하나도 안 달라지셨네요.”

“천성 어디 안 가더이다.”

“……알겠습니다.”

결심을 굳힌 듯 소연심이 종이 하나를 가져왔다.

“이걸 보세요.”

“어라? 이거 뭡니까? 마차 그림 같은데…….”

“전투용 마차예요.”

“마차에 일반용도 있고 전투용도 있습니까?”

“…….”

“죄송합니다. 계속하십시오.”

소연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경 아시죠?”

“당경? 아, 독룡각주?”

“네. 정신이 망가졌는데도 당가의 독과 암기에 대해서는 나름 빠삭하더군요.”

“그러겠지요. 평생 그것만 공부해 왔을 텐데.”

“그뿐만이 아니에요. 당가는 독과 암기를 제조하는 만큼 온갖 병장기와 기관을 만드는 데에도 능하죠.

이 마차는 당가 특유의 은밀함과 실용성, 독과 암기들이 내장된 살왕기차(殺王機車)에요.”

서량이 움찔했다.

“살왕?”

“네. 천하제일살수 살왕 아시죠? 지금은 죽고 없는.”

“……압니다.”

“살왕의 살법은 역사상 최고를 논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뭐, 그 고수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은밀하고 강력하다는 의미에서 붙여 본 이름이에요.”

“그렇군.”

자신의 과거를 타인의 입으로 듣는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몇 번의 시험을 거친 완성형이 하나 있어요. 그걸 타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위급 시에는 마차 자체에 내장된 기능으로 독과 암기를 쏠 수 있으니까 여기 적힌 걸 외우시면 될 거예요. 조작법이 간단해서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종이를 받아 드는 서량을 보며 소연심이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말씀하십시오.”

“왠지 기뻐 보이시네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까?”

“네, 무척이나요.”

“잘 보셨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그렇게 나가고 싶으세요? 전에도 그러시더니.”

“글쎄, 나가는 게 기쁘다기보다는 드디어 목표를 향해 한발 내디딜 수 있어서 그런 거겠지요.”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계십시오.”

소연심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디 몸 건강히 귀교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이제는 본교의 후계자이신데 제가 불편하네요.”

“그러지.”

“네, 이제야 편하네요.”

미소 짓던 소연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출발 예정 날짜는 언제인가요? 마지막으로 마차를 점검해 봤으면 싶은데…….”

서량이 씨익 웃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잖아?”

“……?!”

“오늘 바로 출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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