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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43화 (243/774)

243화. 염라(閻羅)의 탄생 (3)

“대주님!”

문황의 눈이 번뜩였다.

빠른 속도로 돌아오는 광성의 얼굴에 환희가 어려 있었다.

“발견했습니다!”

“어디냐.”

“마차의 흔적이 적벽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바퀴의 흔적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볼 때, 이곳에서 이틀 거리 정도 되는 듯합니다!”

이틀 거리라면 대략 삼사백 리가량 벌어졌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각 후 출발한다. 중간에 쉬지 않을 터이니 잠시 체력을 비축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부대주는 장강수로채에 연락을 넣도록.”

“수로채 말씀입니까?”

“적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십중팔구 물길로 가겠다는 뜻이다. 북쪽으로 가든 서쪽으로 가든, 배를 탈 가능성이 크다.”

녹림칠십이채나 장강삼십육채는 사파로 분류된다. 비록 철혈성 소속은 아니지만 철혈성 역시 사파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바, 그들은 절대로 철혈성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찾아내라고 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향후 수로채는 본성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문황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이 유독 뜨거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해가 지기까진 한 시진이 채 남지 않았다.

“반드시 잡는다.”

* * *

손을 털고 온 서량의 얼굴은 지나치게 담담해 보였다.

여상린은 쌤통이란 표정으로, 마동필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량을 맞았다.

그리고 공야치는?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가.”

“무리해서 하백수채의 채주를 불렀습니다. 한데 그를…….”

공야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서량의 주먹질 한 방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한 양유는 그대로 물에 처박혔다. 물론 그를 물에 처박은 사람은 서량이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었다. 거의 물고문을 당하다시피 강물에 담가졌다가 건져지길 반복한 양유는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내공도 봉인당하고 마혈까지 짚였으니 평소처럼 긴 호흡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수적 나부랭이지.”

“장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수로채의 이인자란 말입니다.

감히 덤비지는 못하겠지만, 저들이 힘을 쓰면 호위장 일행은 절대로 장강을 넘지 못할 겁니다.”

“거기까진 안 되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때부터 수로채는 빙궁의 이름값 위에 천마신교의 이름값도 부담해야 할 거다.”

공야치의 눈빛이 흔들렸다.

“들키지 않고 가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아. 하지만 쓸데없이 머리까지 숙여 가며 갈 생각도 없어.”

“대체 왜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는 겁니까?”

“뭔 소리야?”

“그냥 한 번만 참으면…….”

순간 공야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을 바라보는 서량의 안광이 무섭게 번뜩였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공야치는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서량이 공야치에게 실망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대가리 한 번 숙이면 편해지는 거 모르는 게 아니다.”

“……예?”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개 숙일 수 있다. 그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일에도 대가리를 숙여야 하냐는 거지.”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나는 당신을 높이 평가한다.

만난 적은 몇 번 안 되지만 적어도 당신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줄도 알았고, 배포 있게 행동할 줄도 알았어.

그런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지.”

“…….”

“하지만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당신이 우리를 지원하는 데에 있어서 항상 최선이 아닌 최고를 지향해야 한다는 걸.

당연히 그 최고란 영역에는 우리의 기분과 체력적 안배도 들어간다.”

“……그렇군요.”

“우린 화산파의 장문인과 담판을 지으러 가는 중이야.

더 멀리 보면 의천맹과도 싸워야 하지. 별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지체하거나 다 상한 기분으로 적을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단 말이다.”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일을 최고로 잘할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첫 연수부터 이런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서량은 제힘으로 소교주가 됨으로써 공야치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제는 공야치 차례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 일행을 의창에 데려다주어야 하며, 차후 의천맹과 싸울 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즉, 서량은 양유에게 화를 낸 게 아니라 공야치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공야치가 포권을 취했다.

“잠시 여독을 풀고 계십시오. 이 건에 대해서는 제가 제대로 처리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부탁하지.”

서량이 몸을 돌렸다.

여상린이 은근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확 휘어잡아 버리셨네요?”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며 말하는 게 참 빙충맞아 보인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휘어잡긴. 그냥 서로 일 확실하게 하자는 거지.”

“하긴, 바쁘다고 이런 거 확실히 안 해 두면 꼭 나중에서야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죠. 저는 호위장님이 잘 터트렸다고 봐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제부터 심법 수련 열심히 해라.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호위장님이 지켜 주시겠죠.”

“더하여 네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몰라.”

“에에?!”

“왜? 날 도와주려고 남았다며? 그럼 제대로 도와줘야지.”

“쩝, 그리 말씀하시면 참 할 말 없습니다.”

그때, 마차 문이 열리며 앵화가 나왔다. 앵화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호, 호위장님.”

“왜 그래?”

“그…… 두 사람이 정신을 차렸어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 너희들은 더 쉬고 있어.”

그가 마차에 올랐다.

그러자 소호향과 차위의 눈이 서량에게로 향했다. 서량을 보는 그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마차 문을 닫고 푹신한 방석에 몸을 묻은 서량이 피식 웃었다.

“혼혈을 그리 심하게 짚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떻게 사흘 동안 내리 쓰러져 있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두 사람의 호흡이 격해졌다. 아혈이 풀린 것이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차위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네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서량은 대답 없이 소호향을 바라보았다.

차위가 버럭 외쳤다.

“그 천한 눈을 어디다 돌리는 것이냐! 당장 고개를 조아려라! 이분은 성주님의……!”

“첩이라며?”

“…….”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인마. 본처도 아닌걸.”

차위는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본처든, 첩이든 철혈성주와 살을 섞는 사이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저따위 망발이라니?

“네놈, 편히 죽지는 못할 것이다.”

“너희보다는 오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지금이라도 우릴 놓아주면 고통스럽게는…….”

그때 소호향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당장 날 풀어 주지 못해?!”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풀어 줄 거면 왜 잡았겠어?”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나는 대(大) 철혈성의…….”

“알아, 이년아.”

“뭐, 뭐라?!”

소호향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철혈성주의 첩으로 들어간 이후, 이런 험한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서량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너희들 처지 운운하고 싶진 않고, 내 딱 한 마디만 할게.”

“이……!”

“죽을래?”

소호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장난스럽게 툭 던진 말에 무시무시한 진심이 깃들어 있다.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몸통에 달린 살덩이들 다 뽑아 버릴 줄 알아. 알겠나?”

상상을 초월하는 협박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위치나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눈앞의 이 무례한 놈은 진짜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끄르륵.”

소호향이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철혈성주의 첩씩이나 되는 사람이 간덩이는 콩알만 하군.”

그가 차위를 바라보았다. 차위의 안색도 소호향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단련된 무심(武心)과 독기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우릴 풀어 주거라. 아니, 이부인이라도 보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본성의 표적이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풀어 주면 뭐, 살려나 줄 거고?”

“…….”

“웃기는 소리 그만하고 우리 조금 더 건설적인 얘기를 해 보자고.”

서량이 상체를 앞으로 수그렸다. 적극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몸짓이었다.

“얘기에 앞서 하나는 확실히 해 두지. 난 너희를 절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다.”

“……이놈!”

“놓아줄 생각은 없는데, 양도할 생각은 있어.”

양도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서량이 씨익 웃었다.

“우리는 화산파 장문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거기서 화산 장문인한테 너희를 넘길 거야.”

차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산 장문인이라면 바로 홍산자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당대 화산 장문인 홍산자는 그 무공이 초절정의 영역을 넘본다는 거인으로, 나이를 감안하면 훗날 화경에 오를 가능성이 큰 진짜배기 고수였다.

“작금의 철혈성이 가장 거슬려 하는 집단이 어디야? 의천맹 아닌가?”

“…….”

“그리고 그건 의천맹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상황에서 너희가 화산 장문인의 손에 떨어지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지 않나?”

“……한마디만 하마.”

차위의 눈이 불을 뿜었다. 공포와 당황만이 가득했던 그의 표정이 어느새 완고함으로 물들었다.

“넌 지금 감당치 못할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그래 뵈나?”

“화산 장문인의 손에 이부인의 신병이 들어가면…… 그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건 알고 있느냐?”

“가능성이 제법 커질 거라는 건 알지.”

“장담하는데, 네놈은 절대 그 사태를 감당할 수 없다.

아직 어려서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전쟁이 터지면 중원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 있다. 그리되면 이득을 보는 것은…….”

순간 차위의 얼굴에 창백해졌다.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왜 그래?”

“……네, 네놈은 누구냐?”

“이제야 그게 궁금해졌나?”

“설마…….”

차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마교도는 아니겠지?!”

똑똑한 놈이군.

아니, 똑똑하다기보다는 감이 좋은 놈이다.

하기야 누군가를 호위하기 위해선 이성보다는 감각이 중요한 법이다.

언뜻 보아도 차위의 호위 능력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는바, 단숨에 천마신교를 떠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봐 주면 고맙고.”

감각과 이성을 동시에 교란하는 발언이었다. 서량은 차위에게 여상린이 빙궁주의 여식이라는 걸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해 주는 이유는 하나야.”

“…….”

“처신 잘하시라고.”

단순히 그 이유가 전부일까?

그것은 차위도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서량은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 버렸다.

“가는 길이 제법 멀어. 답답하긴 하겠지만 고통스러운 여행길이 되고 싶지 않다면 부디 잘 참으시게.”

차위가 으르렁거렸다.

“본성은 반드시 우리를 찾을 것이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그것도 괜찮지.”

마차를 나온 서량을 맞이한 것은 공야치와 양유였다. 어떻게 구슬렸는지, 양유의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호위장님. 이 사람이 의창까지 잘 모셔다드릴 겁니다.”

공야치가 양유를 바라보았다.

양유가 고개를 숙였다.

“하백신(河伯神)께 맹세컨대, 계약을 끝까지 완수하겠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부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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