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44화 (244/774)

244화. 염라(閻羅)의 탄생 (4)

“후우.”

의자에 몸을 묻은 호요성의 모습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검지와 엄지로 콧대를 잡아 꾹꾹 누르는 동작이 익숙해 보이는 게, 이미 피로가 만성이 되어 버린 듯했다.

“이제는 굴송차도 약발이 다 됐구만. 이러다 진짜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며칠 전부터 중원 정세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그저 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 중원 정세는 이전과 그리 달라진 것도 없는데 이상할 정도로 격렬한 느낌이 든다.

군사의 감이자 천재의 감이다. 동시에 지금의 그가 이천상이 원하는 군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요성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이럴 때 소교주님이 뭔가 일을 저질러 주시면 딱 좋은데.”

사고를 워낙 많이 쳐 대는 양반이지만 결과적으론 신교에 이득이 된 일도 많았다.

물론 서량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느라 고생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야 피로 가득한 삶에 활력을 얻은 것으로 충분히 상쇄된다.

호요성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중원에서 사고 치기는 힘들겠지. 괜히 난리 쳤다간 전쟁 터지는 거 모르는 분도 아니고.”

그래도 뭔가 아쉽다.

“인생 뭐 있나. 오늘은 그냥 이대로 푹 쉬어 볼까…….”

그때였다.

“총군사님!”

“무슨 일인가?”

“호남지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급(至急)입니다!”

호요성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간만에 쉬려고 마음먹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꼬여 주는 이 운명, 참으로 두렵도다.”

그가 문을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마인이 붉은 종이로 동봉된 서신을 건넸다.

순간 짜증이 치민 것이 무색하게, 저 강렬한 붉은색을 보니 긴장이 된다. 안 그래도 중원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와중에 지급으로 온 연락이 아닌가.

‘또 무슨 일인가.’

서신을 펼친 호요성.

곧이어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던 호요성이 이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마인의 얼굴이 어리둥절함으로 물들었다. 호요성이 저런 웃음을 터트린 걸 본 적이 몇 번 없기 때문이었다.

호요성이 검지로 눈가를 훔쳤다.

“참나, 내가 소교주님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군. 중원에 가셔서는 몸을 좀 사리실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더 화려하게 날뛰고 계셨잖아?”

느릿하게 돌던 피가 무서운 속도로 전신을 누비는 것 같았다. 피로만이 가득했던 육신에 힘이 나고, 흐렸던 두 눈에 맑은 광채가 자리 잡았다.

“총군사님. 대체 무슨 일이기에…….”

“소교주님 또 사고 치셨다.”

마인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고죽림에서 귀환한 후, 소교주님께서 치신 오만 사고를 군사부가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한데 중원에서도 사고를 치셨다니?

하지만 자신과는 달리 총군사님은 무척이나 즐거우신 것 같았다.

“그래도…… 큰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큰일이 아니라고?”

“……?”

“철혈성주의 첩을 납치하곤 화산 장문인을 의창으로 부르겠다는데?”

마인은 그대로 졸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요성은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정말이지 소교주님하고 같이 일하면 심심할 일 없어서 좋다니까.”

“지, 지금 당장 전투 부대들에 대기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러지 마라.”

“총군사님?!”

“느닷없이 전투 부대를 출격시키면 중원 전체가 긴장에 빠진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돼.”

마인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소교주님의 안전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이 최우선 아닙니까?!”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말이야.”

호요성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내가 아는 소교주님은 터트리시는 사건마다 상상을 초월했지만, 감당 못 할 일을 벌이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본교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지금과는 양상이 다르겠지.”

“그렇습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섣불리 전투 부대를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존이나 마장을 보내는 건 들개 떼 때려잡자고 호랑이를 보내는 격이고…….”

요악하게 빛나는 눈. 호요성은 진심으로 이 사태를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어찌해야 우리 소교주님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꼬?”

* * *

철썩!

장강(長江)은 달리 대강(大江)이라고도 한다.

머나먼 서쪽 땅에서 발원하여 중원을 가로질러 이내 동쪽 바다까지 치닫는 장강의 길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너비 역시 대단해서 소금기 없는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삼 놀랍구만.”

서량은 혀를 내둘렀다.

“안 본 사이에 더 불어난 것 같아.”

살왕 시절에도 숱하게 장강을 넘어 보았다. 당연히 배를 탄 적도 많았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옛날보다 강물도 더 불어난 것 같고 강폭도 더 넓어진 것 같다.

“어? 호위장님 장강 보신 적 있으세요?”

여상린의 물음에 서량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얘는 어째 한 번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

“아, 엄청 어릴 적에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어릴 때 봤던 거랑은 다르긴 할 테죠.”

“그러게 말이야.”

“근데 호위장님.”

“왜?”

여상린이 마차를 힐끔거렸다.

“저 사람들 그냥 저대로 놔둬도 돼요?”

“안 될 건 또 뭐냐.”

“아니…… 그래도 닷새 넘도록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물이야 꼬박꼬박 마셨지만…….”

“지들이 의심스럽다고 안 먹는 걸 어떻게 하라고.”

여상린이 입맛을 쩍 다셨다. 하긴 느닷없이 납치를 당한 것도 모자라 수적의 배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의심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납치도 당해 본 놈이 아는 거로군요.”

“뭔 소리냐.”

“저는 야수궁에서도, 천마신교에서도 잘 먹고 잘 살았잖아요.”

“넌 그냥 위장이 큰 거잖아. 그리고 본교는 널 납치한 게 아니야.”

“그래도요. 사람이 배고프면 힘을 못 쓰는 법이에요.”

“먹기만 왕창 먹고 들입다 눕기 바빴던 놈이.”

“아픈 데 찌르신다.”

“하긴, 너처럼 긴장 없이 살기도 힘들지만 쟤들처럼 유난 떠는 것도 우습지 싶다. 나라면 왕창 먹어서 체력이나마 유지했을 텐데.”

애초에 두 사람은 평범함과 거리가 있다. 차위와 소호향의 반응이 오히려 일반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여상린이 배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배 진짜 크네요. 이 정도면 살왕기차 열 대는 실어도 되겠어요.”

“열 대는 무리지. 어쨌든 나도 이런 배는 처음 본다.”

“빠르기도 엄청 빠른데요?”

“그러게.”

선저(船底) 쪽의 가장 밑층까지 치면 선체 외부까지 합쳐 사 층이나 되는 높이인데도, 높다기보다는 길쭉하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선체 좌우로 포문(砲門)까지 장착되어 있다. 아무리 수적이라도 그렇지 관부의 눈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크고 무거운 배가 어지간한 쾌속선보다 훨씬 빠른 속력을 내고 있었다.

수백 년간 자체적으로 조선(造船) 기술을 발달시킨 장강수로채의 역량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순조롭군.’

선주인 양유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것도 잘 해결됐다. 이제는 의창에 도착할 때까지 잘 쉬기만 하면 된다.

선체 끄트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은 서량이 문득 품을 뒤적거렸다.

‘음.’

작은 금낭에 싸인 동그라면서도 납작한 물건.

그것은 바로 신교의 소교주임을 증명하는 적룡패(赤龍牌)였다.

‘새삼 신기하구만.’

서량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정말로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이 되어 버릴 줄이야.’

철썩이는 물소리, 햇빛을 받아 마구 타오르는 수면의 환상 같은 광경.

이질적인 환경이지만 묘하게 기분이 편안했다. 그래서일까? 불쑥 지난날이, 자신이 지나온 길이 떠올랐다.

‘뭐라도 해 보려고 정신없이 뛰기야 했다만…… 참나, 이 정도면 인생 역전인가?’

이것도 놀랍다. 설마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되는 걸 인생 역전이라 생각하게 된 날이 온 것이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확실히 세상이 보는 천마신교와 내가 아는 천마신교는 달라.’

강호 무림은 천마신교를 마교라 부르며, 유구한 무림 역사상 최악의 조직이라 매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현 무림인 중 천마신교의 마인과 조우해 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천상의 대외 정책 축소화로 인해 마인들이 강호에 나서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악소문은, 중원 정벌을 나선 천마신교의 지난 과거 때문에 퍼진 것이다.

‘지난 역사가 천마신교의 악행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정파나 사파라고 다를 건 없었지.’

큰 의미에서 보면 광동과 광서 역시 중원이다. 결국 정파와 사파, 마도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날뛰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천마신교의 지난 악행들이 묻히는 건 아니지만.

‘다 똑같아. 더 좋은 환경, 더 많은 부(富), 더 괜찮은 삶을 위해서 창칼을 들고 설쳐 대는 것뿐.’

그런 면에서 보면 이천상의 대외 정책 축소화는 확실히 남다른 선택이었다.

“……적(敵)이 주는 긴장감을 떨어트려 내부 조직의 부조리를 극대화한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이천상이 직접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를 볼 때, 그가 노린 바는 명백하다.

그는 정파 무림이, 중원 무림이 내부부터 썩어들어 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창칼을 들고 위협하지 않아도 알아서 무너지게끔, 그림자 속에 숨어 세상을 관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면 쉽사리 쓸 수 없는 전략이다. 물론 진짜로 그걸 유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량이 고소를 지었다.

‘만약 교주님이 진심으로 지금의 사태를 유도한 것이라면, 나 역시 그 사람이 퍼트린 악의 물결에서 태어난 괴물이란 말이로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천상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진 않는다. 그런 식으로 꼬리를 물면 증오의 대상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사해야지.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봤으니까.’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무리 지어 창공을 노닐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빨리 끝나 버렸으면 좋겠…… 응?’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새는 뭐지?’

깃털이 붉고 유독 날개가 커다란 새였다.

그때였다.

“채주님! 적회조(赤會鳥)입니다!”

양유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지.”

까아아악!

마치 까마귀처럼 요란하게 울던 새가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부채주 장구(張龜)가 팔뚝을 올렸다. 적회조는 정확히 장구의 팔뚝에 내려앉았다.

양유가 다가와 적회조의 발목에 묶인 서신을 펼쳤다.

“……!”

부릅뜬 눈, 파랑을 일으키는 기도. 모두의 시선이 양유에게로 향했다.

양유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적혈염강령(赤血染江令).”

“헉!”

“적혈이?!”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혈염강령? 그게 뭐지?

그때, 양유가 서량을 돌아보았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오?”

“…….”

“문제라도?”

“서 호위장이라 했소?”

“그렇소만.”

“미안하게 되었소.”

“잉?”

양유가 장구에게 눈짓했다. 장구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전투 준비!”

차차차창!

제각기 창칼을 뽑아 든 하백수채의 수적들.

그들의 흉흉한 눈이 서량 일행에게로 향했다.

여상린이 탄식했다.

“아, 또 뭐야…….”

“알 것 같군.”

“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사파라 이건가.”

일행이 일촉즉발의 순간을 맞이한 그때.

묵풍조가 적벽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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