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염라(閻羅)의 탄생 (7)
폭음과 함께 날아오른 서량의 모습은 날개 달린 악마와 같았다.
문황이 외쳤다.
“살(殺)!!”
파바바바박!
묵풍대원들이 쏘아 낸 검기와 도기가 서량에게 날아들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과연.’
저 정도 기공 발출이 극마의 고수의 눈에 찰 리가 없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회피할 곳을 모조리 막아 버린 공격의 진식(陣式)이었다.
선상 위, 불안정한 자세에서 느닷없이 조우한 적을 향해 각자가 맡은 역할을 확실하게 해낸다.
어지간한 훈련량으로는 흉내도 못 낼 부대 공격이다.
서량이 손을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문황은 깜짝 놀랐다.
‘소멸해?!’
날카롭기 짝이 없는 검기와 도기 다발이 불꽃을 튀기며 전부 소멸해 버렸다.
마치 범의 앞발질처럼 할퀴듯 휘두른 게 전부인데,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파파팡!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허공을 몇 번 밟더니 순식간에 선두에서 선체 중앙의 허공으로 이동해 버린다.
신들린 신법이었다. 허공답보(虛空踏步)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문황이 장도를 뽑아 들었다.
차아아아앙!
발도(拔刀)와 함께 쏘아지는 도기는 대원들의 부대 공격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서량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사악!
도기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가르고 지나갔다.
언뜻 감당키 힘들어 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한 손으로 부대 공격을 막은 것보다 두 배는 더 놀라운 일이었다.
허공답보에도 정도가 있는 법, 허공에서 이토록 빠른 공격을 회피해 냈다는 건 상대의 신법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이 한 수로 문황은 깨달았다. 상대가 초절정고수인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서량이 선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콰아앙!
배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다. 두 발로 배 위에 내려서는데, 진각(震脚) 두 발을 꽂아 넣은 것과 같은 위력이 전해졌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굉장하군.’
마음먹고 밟은 진각으로 대지를 깨부수는 그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선체 바닥만 부서졌을 뿐, 배 자체는 멀쩡하다는 게 놀라웠다.
‘이 정도로는 침몰하지 않는다…… 과연.’
조선 기술만큼은 관부보다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수로채의 전함다웠다. 게다가 진각을 터트리기 전에 지옥풍과 무간도까지 맞지 않았던가.
휘청거리기는 해도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안이 얼마나 튼튼한 배인지 알 수 있었다.
파바바박!
드넓은 선상, 재빠르게 접근한 묵풍대원들이 서량을 둘러쌌다.
사곡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냐!”
서량은 답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묵풍대 전원이 탄 모양이군. 거기에 쾌속선에 탄 이들까지 합치면 수채 하나가 통째로?’
뭐, 문제 될 거 없겠지.
“마인인가.”
서량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묵풍대 사이에 끼어 있던 문황이 앞으로 나왔다.
“분명 물안개 너머로 느껴졌던 기운은 마기(魔氣)였다. 네놈, 마교에서 온 거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인화도법을 펼치기 전에 약간이나마 마공을 개방했다. 그 짧은 틈에 새어 나온 마기를 읽어 낸 모양이었다.
문황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납치범을 찾으러 가는데 느닷없이 마인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더러운 마교도 놈이 이부인을 납치한 것이군.”
화아아악!
출렁이는 강물 위로 은은한 살기가 깔렸다.
그것은 묵풍대원들의 살기였다. 의천맹과 천마신교를 상대할 때 자연스레 살기를 품도록 훈련받은 것이다.
용아채의 수적들은 달랐다. 그들은 갑작스레 출몰한 마인에 대경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마인이라고?!”
“마교도다!!”
웅성거리는 수적들.
사곡이 버럭 외쳤다.
“닥치지 못해!”
수적들이 금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불안한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 댔다.
그들 중 마교도와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쌓이고 쌓인 악소문이 그들의 공포를 들쑤실 뿐이었다.
이것이 도적들의 문제였다. 한 번 사기가 꺾이면 걷잡을 수 없다.
사곡이 문황을 힐끔거렸다. 문황은 미동도 없는 눈빛으로 서량을 보고 있었다.
‘제기랄.’
묵풍대가 아무리 훈련받은 정예 부대라곤 해도 강에서는 용아채가 몇 수 위다. 그러나 묵풍대원들은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수준 차이 아니겠는가.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마인을 앞에 두고 할 생각은 아니지만 사곡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량에게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선 것은.
“마교도라고?”
힐끔 사곡을 본 서량이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지형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사곡의 얼굴이 벌게졌다. 묵풍대와 부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놈! 쥐새끼처럼 네놈들 땅에 숨어 있을 것이지, 감히 예가 어디라고……!”
퍼어어어엉!
이곳을 보는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크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 사곡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그의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파지지직.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잔존하는 붉은 전광(電光)이 상처를 마구 지져 댄 덕분에 출혈은 적었다.
“묵풍 삼백, 수적 삼백. 총원 육백이라…… 좀 많기는 하다만.”
서량이 싸늘하게 웃었다.
“어려울 것도 없지.”
문황의 눈이 번뜩였다.
‘붙잡을 필요는 없겠군.’
급박한 순간에도 냉철함이 빛난다. 단독으로 쳐들어온 것을 보니, 어차피 생사(生死)에 구애받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인질로 잡아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여라!!”
치이이잉!
묵풍대원들이 도검을 휘둘렀다.
널찍한 선상이지만 백 단위의 장정들이 서 있다. 그 많은 인원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일제히 도검을 휘둘러 봤자 아군만 위험해질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묵풍대의 공격은 그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내치는 도검의 경력이 물샐 틈 하나 없이 서량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콰아앙! 퍼퍼퍼펑!
도검기가 불꽃을 튀기며 소멸했다.
문황의 눈이 흔들렸다.
‘지하로?!’
콰앙! 콰아앙!
선상의 바닥을 박살 낸 서량이 밑층으로, 그리고 또 그 밑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따위 타고 내려갈 시간도, 필요도 없다. 연달아 세 개의 층을 부수고 내려간 서량은 순식간에 용안의 선저에 이르렀다.
콰콰쾅!
사곡이 입을 쩍 벌렸다.
서량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서는 순간 묵풍대 절반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쫓아 지하로 뛰어들었다. 나머지 절반은 좌우로 흩어져 포위망을 형성했다.
“미, 미친놈들! 그러다 배가……!”
콰아앙!
용안이 크게 출렁였다.
외부에서의 충격은 어지간하면 다 막아 낼 수 있지만, 내부에서의 충격은 어떤 배라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서량은 용안부터 침몰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퍼어어어엉!
용안의 선저 부근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내장된 화포가 터져 버린 것이다.
“크아악!”
터져 버린 선체 바깥으로 묵풍대원 네다섯 명이 튕겨 나왔다. 튕겨 나온 그들의 몸은 시뻘겋게 익어 있었다.
문황의 눈이 번뜩였다.
“좌측으로!”
파앙!
용안의 밑바닥에서 서량이 뛰쳐나왔다.
뛰쳐나온 서량이 향하는 곳은 용조(龍爪)였다. 용안만큼은 아니지만 용조 역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바, 그러나 절대의 무공을 지닌 자에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단숨에 용조를 부수려던 서량은, 문득 한 줄기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문황이었다.
‘이놈!’
수면에서는 진각으로 힘을 받지 못하기에 권력(拳力)을 극대화할 수 없다. 반면 문황은 중력에 속도를 더해 칼을 내리치고 있었다.
무공 격차를 줄이기 위해 틈을 노린 실전 감각이 빛나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콰아앙!
‘흡!’
그래도 밀린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문황은 약간의 내상을 입었음을 깨닫곤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무슨 괴력인가?’
허공답보, 초상비(草上飛), 수상비(水上飛).
신법 최고의 경지를 뜻하지만 그러한 신법을 펼치기 위해선 강한 집중과 막대한 공력이 필요하다. 쓸 수 있는 힘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밀린다는 것은?
‘설마!!’
문황이 서량을 내려다보았다.
그 잠깐 새에 서량은 이미 용조의 선체를 그대로 뚫고 들어가 버렸다. 속도도 속도지만 이번 한 수에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끝을 모르는 왕성한 공력, 무식하리만치 강한 체력.
그리고 숨 쉬듯 자연스레 펼치는 허공답보까지.
“……화경의 고수라고?”
콰지지직! 퍼어어엉!
“크아악!”
“아아아악!”
“피, 피해라!”
용조 하나가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속도를 위해 크기와 무게를 줄였으니 내부에서 받는 피해가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아예 반으로 쪼개져 버린 용조 위, 강을 향해 뛰어드는 수적들이 보였다.
그때, 구유마공이 개방되었다.
화아아악!
자맥질을 치려던 수적들 모두가 얼어 버렸다.
파악!
하늘 높이 날아오른 서량이 재차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엔 진한 마기가 집약되어, 육장이 보이지도 않았다.
문황이 외쳤다.
“모두 물 밖으로……!”
퍼어어어어엉!!
강물이 십여 장이나 솟구쳤다.
파지지직! 화아악!
붉은 마기가 전광이 되어 팔방으로 치달았다. 이내 물에 빠진 수십 명의 묵풍대원과 수적들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극대(極大)의 발경(發勁), 폭산충파경(爆山衝波勁)이다.
벽력권의 구결에 폭산경을 섞어 터트리는 수법으로, 빠르고 둔중한 충격파가 물에 빠진 모두를 죽음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철썩! 철썩!
파도처럼 들썩이는 강물 위.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는 여기서 다 죽는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무시무시한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맨몸으로 거대한 배 두 척을 부순 것도 모자라, 일격에 수십 명을 죽여 버린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가 하는 말이다. 장난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피해서는 안 되는 전투.
문황이 외쳤다.
“일 조와 이 조는 놈을 죽여라! 그리고 삼 조는 우회해서 육지로 올라가!! 마교도가 중원에 나타났음을 알려라!”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첨벙!
문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십 명의 묵풍대원들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방금 서량의 무지막지한 발경으로 동료들이 죽은 걸 봤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판단력이 좋군.’
이쪽이 대외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음을 파악했다. 무공은 자신보다 아래지만 눈치와 추진력, 판단력만큼은 강호 정상급이라 할 만하다.
파아앙!
서량이 단숨에 문황을 향해 뛰어들었다.
문황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부대를 찢어 신경을 분산시켰다. 당연히 이놈은 부하들을 따라가야 했다.
그런데도 부대의 수장인 자신에게 달려든다. 지휘 체계부터 엉망으로 만들어야 싸움이 편해진다는 걸 꿰뚫어 본 것이다.
‘무서운!’
그때, 용익선 두 채에서 번쩍이는 광채가 터졌다.
콰아아앙!
쾌속선에도 화포를 실어 놓은 모양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량의 아래, 수면이 박살 나 하늘 높이 솟구쳤다.
대량의 물이 서량을 덮쳤고, 그 틈을 문황은 놓치지 않았다.
“다시 공격해!”
파아아아악!
물과 물, 배와 배 사이를 넘나드는 고수들이 벌이는 희대의 수상전(水上戰).
배 두 척이 망가지고 수십 명의 무인들이 죽어 나갔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진짜 싸움다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