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50화 (250/774)

250화. 염라(閻羅)의 탄생 (10)

“이각 전, 천비특객(天秘特客) 일행이 의창 선착장에 내렸다고 합니다. 그 즉시 철검귀와 귀곡궁대와 부딪쳤다는 보고입니다.”

“그런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특객과 관련된 보고 주기를 반 시진에서 이각으로 줄인다. 특객 일행은 물론 그들을 주시하는 이들의 정보 또한 놓치지 말도록.”

“존명!”

수하가 나가자 공야치가 창가로 다가갔다.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주루는 의창 삼대 주루 중 하나인 신강루(神江樓)였다. 그리고 신강루는 천하에 산재한 주루 중 하오문의 영향력을 제법 강하게 받는 주루이기도 했다.

공야치가 신강루의 꼭대기, 주루실에 홀로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보통 마차가 아니었어. 전력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보호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물건은 아닐 것이다.’

소교주 일행은 큰 제약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력의 제약이었다.

소교주야 말할 것도 없고, 호위인 마동필과 빙궁주의 여식 여상린도 훌륭한 전력이다.

극마에 이른 고수와 초절정, 그리고 절정고수의 조합이라면 소수 정예로도 보기 드물다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의창이 중원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소교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동필은 본래 무력의 반절도 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마공을 개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뚫을 수 있겠지. 소교주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거야.’

공야치의 눈이 깊어졌다.

‘다만, 적을 물리칠 때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향후 중원 활동을 함에 있어 선(線)의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서량을 떠올렸다.

처음 봤을 때는 피로해 보였음에도 묘한 여유가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을 절대고수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교주가 되고 난 후, 다시 본 서량은 달랐다.

여유는 나른함이 되었고, 자신감은 위엄이 되었다. 더하여 이전에는 여유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적인 매력까지 엿보였다.

마주하는 누구라도 고개를 숙일 패왕의 기질이 거기에 있었다.

무언가를 쫓아가기 바빴던 서량은, 이제 누군가의 목표가 될 만한 위치에 앉아 천하를 굽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였다. 마기를 피우든 그렇지 않든, 소교주의 비범함은 곧장 드러나게 될 거야.’

그 비범함에 감탄하고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모난 돌은 정을 맞게 마련이다. 그 뛰어난 존재감과 재주는 누군가에게는 감탄을, 누군가에게는 질투와 증오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바로 그 질투와 악의로 잔뜩 물든 시선 속에서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게 되느냐가 지금의 전투에 달렸다.

‘얼핏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결코 생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잘 처신하겠지.’

이각 후.

“보고 드립니다! 철검귀 삼십삼인 전원, 귀곡궁대 이백인 중 백오십 명이 패사했습니다!”

공야치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벌써?”

“그렇습니다!”

“남은 병력은?”

“남은 궁수 오십은 특객 일행을 쫓지 않고 남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남쪽이라니? 남쪽 어디?”

“정보원의 말을 들어 본 결과, 철혈성의 지부나 연수한 문파로 도주한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볼 때, 장강을 건널 확률이 높다고 해석됩니다!”

느닷없이 남하를 한다고?

비록 지부에 속한 부대지만 귀곡궁대는 능히 일류라 불릴 만하다.

훈련도 철저히 받아서 끝까지 싸우거나 보고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한데 갑자기 왜?

‘설마?’

공야치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마공을 개방한 건 아니겠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극에 이른 마기는 절정고수의 정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서량이 작정하고 마기를 터트렸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니, 그러진 않았을 거야.’

보고를 들어 보니 뿔뿔이 흩어진 게 아니라 단체로 이동 중인 게 분명하다. 마기 때문에 미쳐 버렸다면 그처럼 한데 뭉쳐 남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그때, 또 한 명의 정보원이 주루실에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철혈성의 비밀지부가 발각되었습니다!”

“뭣이?”

“위치는 호남 중부와 호북 남부 두 곳으로, 현재 철혈성과 대적하는 집단들이 그 두 지부를 공격하기 위해 암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공야치는 실로 오랜만에 당황했다.

“호북 남부에도 지부가 있었던가?”

호남은 알고 있었다. 대외 활동을 축소했음에도, 호남은 아직까지 마도 무림의 입김이 강한 곳이었다.

하지만 철혈성은 마도의 눈을 피해 비밀리 호남지부를 세웠다.

언제고 천마신교를 공략할 때가 오면, 그곳을 기점으로 천마신교를 타격하기 위해 거점을 만들어 둔 것이다.

한데 그러한 지부가 호남은 물론 호북 남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호남은 마도 무림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지만 바로 윗동네인 호북은 다르다.

호북에 어떤 문파가 있던가? 소림사와 함께 태산북두라 칭해지는 무당파가 있다. 즉, 호북은 정파 무림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철혈성…… 확실히 만만치 않아.’

철혈성은 호남과 인접한 호북 남부에 비밀지부를 둠으로써, 정파와 마도를 동시에 공략함은 물론 한 곳이 무너졌을 때의 퇴로까지 상정한 셈이었다.

치밀한 전략보다, 그 치밀함을 숨기기 위해 돈과 인력을 투입한 추진력이 더 무섭다.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을 것이다.

“출처는? 정보의 출처가 어디라고 하더냐?”

“출처 불명입니다!”

“출처 불명의 정보로 의심 많은 무림인들이 움직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작 그리 말한 공야치도 알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의심이 많은 만큼이나 호기심 또한 많다는 걸.

철혈성과 마찰을 심하게 빚은 문파일수록 사소한 정보에 흔들리기 더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파들이 지부를 습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귀곡궁대 남은 오십 인원이 남하하는 까닭은 그들의 지부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그럴 확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기가 막힌 시기에 누가 그런 정보를……?”

순간 공야치의 눈이 흔들렸다.

있었다. 딱 한 군데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 절묘한 순간, 소교주를 뒤쫓는 병력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려 박을 조직이 하오문을 제외하고 하나가 더 있었던 것이다.

“무섭구나.”

공야치가 탄식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적의 한 수는 결코 무섭지 아니한 법.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터트리기 위해 모른 체하고 있었단 말인가?”

신교 역사상 최강의 교주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인재.

그 말은, 아직 그 인재가 성장 중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고, 완전할 수 없다.

그러한 인재를 지키기 위해 천마신교는 목숨을 걸 것이다.

병력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로운 한 수, 그것은 정보였다.

천마신교는 출처 불명의 정보를 흘림으로써 소교주에게 집중된 철혈성의 시선을 흐트러트린 것이다.

수천 리 떨어진 거리에서 절묘하게 허점을 찌르고 들어와 대국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린 천마신교의 맹공.

공야치는 문득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철혈성은 더 이상 특객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철혈성에 집중되었던 정보원 중 칠 할을 의천맹 측으로 돌려라!”

“존명!”

* * *

“음?”

호요성이 귀를 후볐다.

“누가 내 욕을 하나? 왜 이리 가려워?”

몇 번 귀를 후비고 나니 귀지가 제법 묻어 나왔다. 호요성이 진저리를 치며 손을 털었다.

“그나저나 공야치라…… 하오문이 작정하고 키워 낸 희대의 천재라더니만, 이렇게까지 유능할 줄은 몰랐군. 본교에 영입하고 싶을 정도야.”

문서를 들여다보던 호요성은 혀를 내둘렀다.

이 문서에는 그간 공야치가 의천맹 측의 정보를 교란키 위해 만들어 낸 정보원들의 허위 정보와 갖가지 동선이 기재되어 있었다.

서량의 편안한 북상을 위해 짜인 기가 막힌 정보의 그물.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파악하기 위해선 의천맹이라도 보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보름 안에 서량은 장강을 타고 의창에 들러, 이후 섬서까지 일직선으로 치고 올라갈 것이다.

‘이런 정보망을 순식간에 그려 내고 직접 정보원을 부려 현실로 구현해 낸다는 것은 누구라도 힘든 일이다.

나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천재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아.’

무시무시한 두뇌의 소유자다. 이런 자가 소교주님의 뒤를 받쳐 주고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인재로군. 아주 기특해. 굴송차 찻잎이라도 한 아름 싸서 보내 줘야겠어.”

이천상이 직접 천거한 정쟁(政爭)의 천재 호요성.

하오문이 작정하고 키워 낸 정보의 천재 공야치.

든든한 두 날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를 받쳐 주니, 서량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자유롭다.

철검귀와 귀곡궁대를 물리친 서량 일행은 그날 자정, 신강루에 도착했다.

* * *

“으아…….”

수욕을 마친 여상린이 후원 정자에 드러누웠다.

“죽는다, 죽어.”

벌러덩 누우니 대충 둘러 입은 치맛자락이 올라가 맨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동필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렸고, 앵화는 얼굴이 벌게져 다가왔다.

“으헉! 다리 좀 오므려요!”

“언니 피곤해, 화아야”

“좀!”

“칫.”

다리를 오므린 여상린이 비칠비칠 상체를 세우더니 정자 난간에 등을 기댔다.

“어깨에 불이 난 것 같아. 이전 여행은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이건 여행이 아니잖아요.”

“누가 뭐래니. 얼른 이 일이 끝났으면 싶어서 그래.”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여상린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그건 앵화도 마찬가지였다.

철검귀와 귀곡궁대의 병력을 뚫을 때, 흔들리는 마차를 제어하기 위해 두 사람도 움직여야 했다.

서량과 마동필은 전투를 벌여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왕기차 정도 되는 큰 마차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새삼 마동필이 그간 얼마나 힘든 일을 해 왔는지 알수 있었다.

여상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긴, 앓는 소리 뱉을 때가 아니지. 그나저나 소교주님은?”

“언니!”

“왜?”

“호위장님이라고 해야죠.”

“우리끼리만 있는데 뭐 어때. 그쵸?”

여상린이 마동필을 보며 물었다. 마동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교주님께서는 하오문 소문주와 함께 오실 것이오. 조만간 음식이 나올 테니, 먼저 드시면 되겠소.”

“소교주님 체력은 정말 강철이네요, 강철. 무공이 대단해서 그런가?”

앵화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로 지치실 것 같으세요? 우리 소교주님을 뭘로 보고.”

“우리 소교주님이라…… 이 정도면 사랑인가.”

“언니!”

“장난이야.”

앵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여상린이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앵화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피로가 제법 풀리는 기분이었다.

일각 후, 정자에 음식이 차려졌다. 가짓수만 열다섯에 달했다. 여상린의 얼굴이 밝아졌음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벌어졌던 식사가 마무리된 것은 반 시진 뒤였다.

배불리 먹은 일행이 차를 마실 때, 기다렸다는 듯 서량과 공야치가 후원으로 들어왔다.

“뭐야? 다 먹었냐?”

“먼저 먹으라면서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내 건 안 남겨 놨어?”

“또 시키면 되죠.”

“섭섭한걸.”

“섭섭하긴 우리가 더하죠. 공야 소문주랑 소교주님 둘이서만 회의하시다니, 우리도 궁금하다고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별 얘기 안 했다. 그냥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간단한 얘기만 나눴을 뿐이야.”

“네, 바로 그게 서운하다구요.”

“그 시간에 밥 처먹기 바빴으면서 뭔 웃기지도 않는 소릴.”

“헤헤.”

여상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세요?”

피곤하다, 죽겠다, 말은 많았지만 그녀는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모험이지만, 어쨌든 간에 흥미진진하면 그만이다.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화산 장문인이 이미 의창에 들어왔다더군.”

“으헥?! 벌써요?”

“그래.”

“그, 그럼 내일 바로 움직이나요?”

“미룰 이유 없잖아?”

“아니…… 그래도 나름의 정비라는 걸 좀…….”

서량이 공야치를 바라보자, 그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믿음직한 아군이 있는데 정비는 무슨. 됐고, 음식이나 새로 시켜 봐. 어떻게 한 접시를 안 남겨 놨네, 이 싸가지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