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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51화 (251/774)

251화. 화산의 이름값 (1)

“으다다다!”

크게 기지개를 켠 앵화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다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자정이 훌쩍 넘어 잠들었는데도 이른 새벽에 기상했다. 수년 동안 몸에 밴 생활 습관이었다.

“휴, 청소라도 해야지.”

몸은 더 자고 싶어 하지만 정신은 그걸 거부한다. 새벽에 일어나 주변 청소부터 마무리 지어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간 앵화는 순간 머리를 긁적였다.

‘벌써 청소했네.’

손님들이 다 자는 시간에 일꾼들이 조용히 청소를 마쳐 놓은 것이다.

앵화는 자신이 신교를 나와 중원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익숙해져야겠지.’

편해야 하는데 묘하게 불편하다. 내 집이 아니니 당연하지만, 그래도 해소하기 힘든 거북함이 있었다.

한숨을 폭 내쉰 앵화는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옆으로 쭉 뺐다.

“헙!”

정좌 뒤편, 연못 앞에 서량이 앉아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모습이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운기를 하는 건지 단순한 명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중을 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앵화가 살금살금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서량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발소리 안 줄여도 된다.”

“앗, 깨셨어요?”

“응.”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도 많다. 왜 이리 일찍 깼어?”

앵화가 머뭇거렸다.

“아…… 그냥 잠이 좀…….”

서량이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이리 와 봐.”

앵화가 잽싸게 서량의 곁으로 다가갔다.

“앞에 와서 앉아.”

“아, 네.”

앵화가 조심스레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맥문.”

“넵!”

그가 앵화의 맥문을 쥐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 연마를 멈추지 않고 있구나. 잘했다.”

“헤헤.”

특수감찰사로 출교할 때, 서량은 직접 주석을 단 내공심법을 앵화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때 받았던 내공심법을 지금껏 끊임없이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앵화는 내공 연마에 소질이 있었다.

전투에도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함과 인내심이 가장 중요한 심법 단련엔 상당히 특화되어 있었다.

잠시 턱을 쓰다듬은 서량이 말했다.

“너, 본격적으로 무공 배워 볼래?”

“예엣?! 제, 제가요?”

“그럼 너지 누구야.”

앵화의 얼굴이 쩌저적 굳어졌다.

무공을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의아했고, 동시에 소교주님이 직접 그리 말씀해 주시니 놀라웠던 것이다.

“어…… 그, 그게요…….”

“싫은가?”

“아뇨! 절대 아뇨!”

“…….”

“그냥…… 그래도 되나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야? 무공 익히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이라고. 남들 다 익히는걸.”

“그렇긴 하지만요.”

앵화가 우물쭈물 말했다.

“괜히 제가 소교주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가 싶어서…….”

서량이 피식 웃었다.

“너 하나 가르치는 데 시간을 얼마나 빼앗긴다고. 그런 걱정일랑 하지도 마라.”

“……헤헤.”

“내가 너에게 진지하게 무공을 익혀 보겠냐고 묻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신교 안에만 있을 때면 모르겠지만, 난 앞으로 중원 전역을 누비고 다닐 거다. 물론 그때마다 네가 따라올 이유는 없지.”

서량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지금 너는 분명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널 지켜 주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럴 때는 너 혼자서 위험을 헤쳐 나와야 해.”

“…….”

“말하자면 무공 연마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그럼에도 네게 이리 물어보는 것은 너의 진심을 알고 싶어서야. 네가 싫다고 하면 난 깔끔하게 포기하겠다.”

놀라움으로 굳어져 있던 앵화의 얼굴이 어느새 진지해졌다.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고된 일이라는 것은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소교주님.

그럼에도 제가 무공을 연마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럼?”

“제가 소교주님께 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소교주님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무공을 익히면 강해진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앵화는 분명 마인이되, 여느 마인들과는 달랐다. 강함보다도 중요한 것, 그것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윗사람의 편의와 안전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간 보고 배운, 그렇게 살아온 환경이 지금의 앵화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물끄러미 앵화를 보던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 돼.”

“……네?”

“너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익힌다면 난 널 적극적으로 단련시킬 거다. 하지만 날 돕기 위함이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앵화는 아차 싶었다.

“아, 물론 저는…….”

“네 마음을 안다. 실제로 넌 지금까지 날 위해 많은 것을 해 주었어. 말은 안 했다만, 그간 너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코끝이 시큰거린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소교주님은 한 번씩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네 역할이 무엇인지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네?”

“너는 동필이와 달라. 동필이는 처음부터 날 지켜 주기 위해 선발된 무사다. 말 그대로 호위가 주 업무지.

하지만 넌 호위무사가 아니다. 넌 너의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될 뿐, 그 이상의 도움을 줄 필요는 없어.”

상당히 섭섭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앵화는 서량의 말에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 빠르고 똑똑한 그녀는 서량의 말에 숨겨진 한 줄기 정(情)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을 때 비로소 조직은 완성된다.

어쩌면 내게도 너의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전까지, 넌 너의 생존과 호신(護身)에만 집중하면 돼. 그것을 잊으면 유대는 여전할지라도 일행의 움직임에 한 줄기 금이 가게 된다.”

앵화는 비로소 서량의 말을 알아들었다.

서량은 그녀에게 어떻게 움직일지를 확실히 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을 때, 앵화가 도움이 되겠답시고 이상 행동을 하면 일행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서량의 목적이었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자신을 위해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앵화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소교주님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행위라면, 저는 반드시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소교주님.”

“내 뜻을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

“아, 아니에요, 소교주님! 오히려 제가…….”

앵화는 문득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신교에 이처럼 아랫사람을 생각해 주는 사람은 달리 없을 것이다. 신교만이 아니라 세상 어떤 가문도, 문파도, 조직도 비슷하리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걸 넘어 짐승만도 못하게 대하는 소인배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교주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서량이기에 앵화는 다시없을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무공을 익혀, 소교주님께서 불안해하실 상황을 절대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서량이 앵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앵화는 스스로 복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서량도 마찬가지였다.

윗사람이라고 다 악독하지 않듯, 아랫사람이라고 다 선하지는 않다.

앵화는 신교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자신의 시녀였기에 그간 의식주를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

훗날 서량이 만인의 찬사를 받을 그 날이 온다면.

서량이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 중에 앵화는 반드시 꼽히게 될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지. 옛날부터 생각해 둔 무공이 하나 있다. 아침 먹을 때까지 공부해 보도록 하자.”

“네!”

한 시진 후.

기지개를 늘어지게 켠 여상린이 후원으로 나왔다.

“아이고, 등허리에서 오도독 소리가 아주…… 엥?”

여상린이 눈을 끔뻑였다.

“소교주님 뭐 하시는 거예요?”

진즉에 나와서 호법을 서고 있던 마동필이 답했다.

“앵화에게 무공을 알려 주고 계시오.”

“오, 앵화에게요?”

여상린이 기대된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앵화는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옆에서 서량이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며 진기(眞氣)를 움직여 보는 게 분명했다.

여상린이 히죽 웃었다.

“언뜻 보니 음한(陰寒)한 무공인 것 같은데, 좋은 무공이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무공 정도가 아니오.”

“네? 앵화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뭔지 알고 계세요?”

“물론이오.”

마동필의 얼굴엔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월음마공(月陰魔功)이라니…….”

월음마공은 신교십대마공 중 하나다.

마동필이 저 마공을 알아볼 수 있는 까닭은 실제 저 무공의 위력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 총관.’

환희원의 총관 주화가 익힌 마공이 바로 월음마공이었다. 월음마공으로 펼쳐지는 상천수(霜天手)에 그 흉포한 혈랑들이 쉬이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주화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위력이었다.

물론 뒤늦게 배운 무공으로 천재라 불리는 주화의 경지를 따라잡긴 힘들겠지만, 무학 자체의 질이 높으니 제 한 몸 건사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동필의 설명을 들은 여상린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신교십대마공이라…… 소교주님은 정말 통도 크셔. 그렇죠?”

“그렇소.”

“근데 저 마공, 희한하네요?”

“무엇이 말이오?”

“정확히는 마공이 아니라 화아의 상태가 희한해요.”

여상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눈곱까지 붙어 있는데도 아름다운 외모였다.

“보통 상위의 무학을 익힐 때, 기존의 내공은 축소되기 마련이에요.

그것은 내공의 소실이라기보다 불순물이 제거된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새로운 내력으로 치환되며 더 단단하고 순도 높게 응축되는 거잖아요?”

“물론 그렇소.”

“한데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요? 앵화의 내공.”

“음?”

마동필이 앵화에게로 감각을 집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상린의 말대로였다.

앵화의 내력은 고수의 그것이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하찮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었다. 딱 제 나이대에 맞는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달까?

하지만 그 내공이 점차 월음마기로 바뀌고 있음에도 내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 모든 내력, 모든 진기가 월음의 마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굉장하군.’

마동필은 내심 깜짝 놀랐다. 기존의 내공이 보다 고차원적인 내력으로 응축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앵화의 내공이 깊고 탄탄하다는 증거였다.

여상린이 나직이 감탄했다.

“소교주님께서 도와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그간 내공을 단련할 때 조금의 잡념도 없이 운공을 했다는 방증이겠죠?”

“그런 것 같소. 저만큼이나 순수한 내력이라…… 외가 무공은 모르겠지만 내가 무공의 영역에서만큼은 타고났다고 봐도 되겠소.”

고개를 끄덕이던 마동필은 문득 놀란 눈으로 여상린을 보았다.

‘어떻게?’

자신도 느끼지 못했던 걸 여상린은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호법을 서며 영역 전체에 감각을 개방했기에 한 곳에 집중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여상린의 기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저 미세한 농도 차이를, 그것도 잠도 덜 깬 상태에서 꿰뚫어 보다니?

‘무공의 경지는 낮지만, 감각만큼은 나 못지않다는 뜻. 세상에는 이리도 재인(才人)이 많구나.’

앵화에 감탄하는 여상린, 여상린에게 감탄하는 마동필.

지금껏 모르고 있던 서로의 진면목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 가는 순간, 비로소 그들은 진정 조화로운 집단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서량이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서로의 성격을, 실력을, 재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기 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행은 날이 지날수록 단단해져 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큰 도움이 될 조직력의 성장이었다.

반나절 뒤.

“다들 준비됐냐?”

“예.”

서량이 마차 문을 열었다.

“자, 매화에 환장한 꽃집 주인 낯짝이나 구경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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