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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52화 (252/774)

252화. 화산의 이름값 (2)

“흐음.”

홍산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널찍한 방 안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황족까지는 아니더라도 흔치 않은 거부의 안방 정도로는 보였다.

홍산자의 얼굴에 흡족함이 어렸다.

“나름 신경 좀 썼군.”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천하제일검문의 주인을 모시기에는 다소 누추하지요. 회담 장소를 급하게 잡느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럴듯한 방향도 뿌리고, 대접이 제법이야.”

“그리 봐 주신다니 참으로 송구합니다.”

“송구는 무슨.”

광산자가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 말씀대로 향이 참 좋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공야치가 공손하게 말했다.

“향낭 몇 개를 마차에 넣어 두겠습니다. 예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담이 잘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평소엔 지나치리만치 무뚝뚝했으면서 손님을 대할 때는 혓바닥에 기름을 바른 듯 부드럽다. 홍산자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신경을 써 준다니 참으로 고맙군. 내 앞으로도 자네들의 귀한 고객이 될 일이 많을 것 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함세.”

“오히려 저희가 영광이지요.”

고개를 숙인 공야치의 눈이 싸늘해졌다.

‘너희가 이래서 문제인 것이다.’

도사가 안빈보다 사치를 추구하고, 풀 내음보다 방향을 좋아한다.

이미 홍산자와 광산자는 도사가 아니었다. 그럴듯한 도사의 외관을 한 무림인일 뿐이었다.

오히려 꾹꾹 숨겨 둔 욕망은 여느 무림인들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았다.

이래서야 정파 무림의 기둥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아마도 구대문파의 장문인들 대다수가 홍산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면 저는 이만.”

“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자네도 하오문에서 제법 위치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네.”

“부끄럽습니다.”

“그런 자네를 다룰 정도면 상대도 보통 신분은 아니겠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가?”

공야치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손님들은 본문의 특객으로, 외부인에게 정체를 알리는 것이 불가합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길.”

“내게만 말해 주면 안 되겠나?”

“죄송합니다.”

홍산자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구름 위의 신선이라는 화산의 장문인이 요구하는데도 비밀이라며 말하지 않겠단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광산자가 좋은 말로 홍산자를 달랬다.

“이 사람 덕분에 우리도 꽤 덕을 보지 않았습니까? 장문인께서 참으시지요.”

“커허험!”

“앞으로도 이들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오늘의 무례에 대한 보답은 훗날 알아서 갚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가?”

광산자가 공야치를 보며 물었다.

무엇이 무례이고, 왜 그것을 갚아야 하는가. 이들의 셈법은 참으로 이상하다.

하지만 공야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상대가 이리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계속 불쾌해하면 그것도 체면 상하는 일이다.

홍산자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 못난 모습을 보였군. 이해하시게.”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쯤 온다던가?”

“곧 도착할 것입니다.”

“알았네. 이만 가 보시게.”

“예, 하면 이만.”

공야치가 총총걸음으로 물러났다.

의자에 앉은 홍산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떤 건방진 놈이기에 대(大) 화산파의 장문인보다 늦게 올꼬. 거래가 끝나면 제대로 버릇을 고쳐 줘야겠네.”

광산자가 마주 웃었다.

“물론입니다.”

똑똑한 이라 데리고 왔다지만, 제삼자가 볼 땐 홍산자나 광산자나 거기서 거기였다. 진정 지혜로운 자였다면 이 거래를 끝까지 막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화산 역사에 다시없을 치욕을 만들지도 모르는 무뢰배들의 웃음.

그 웃음에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울 마귀가 마침내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 * *

마차 안, 서량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소호향과 차위가 여전히 기절한 채 누워 있었다.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여상린이 서량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생각.”

여상린의 얼굴에 의아함이 맺혔다.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지 않을까요? 호위장님의 무공이라면 화산 장문인 정도야 뭐…….”

“난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잖아. 제약이 걸린 싸움이라면 화산 장문인이라도 무시할 수 없어.”

“왜 저는 호위장님이 절대로 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그럼 지겠냐? 당연히 이기지.”

“피이.”

서량이 눈을 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홍산자가 홀로 이곳에 왔다면, 나는 그를 제법 존중해 줄 생각이다.”

“이유는요?”

“최소한의 수치가 뭔지 알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여상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량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대동하고 왔으면요?”

“존중할 가치가 없지. 애초에 숙이고 들어갈 생각도 없지만.”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것은 얼마나 많은 파락호들을 데리고 왔느냐인데.”

여상린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구대문파의 일익, 천하일절의 무공으로 명망 높은 화산의 검수들을 두고 파락호라고 한다.

서량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리 말하지 못할 것이다.

“제 사람 한둘만 쓱 데리고 왔다면 바보인 와중에도 나름대로 뒤를 생각할 줄 안다는 의미겠고.”

“만약 병력을 끌고 왔다면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에 죄책감이 전혀 남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

“죄책감 같은 거 원래 안 느끼시잖아요.”

“확.”

“그냥 그렇다고요.”

두두두두.

마차의 속도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다 왔나 보군요.”

“그래. 그리고 확실해졌다.”

“네? 뭐가요?”

“죄책감 따위 전혀 가질 필요 없는 것 같아.”

여상린의 얼굴에 한 줄기 긴장이 드리워졌다.

“많이 데리고 왔나요?”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겠지.”

덜컥!

마차가 대문을 넘었다.

그리고 반 각 후, 마차가 멈추었다.

“호위장님.”

“알았다.”

마차 문을 열고 내린 서량의 눈에, 쭉 도열해 있는 검사 수십 명이 보였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파를 뿜어내고 있는 진짜 검사들. 도사답지 않게 탁한 눈을 하고 있지만, 전신 가득 둘러쳐진 예기만큼은 진짜였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산의 간판, 매화검수(梅花劍手)라?’

강호의 절정고수로 이름 높은 절정의 검수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후반까지, 무림의 동년배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불리는 화산파의 자랑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화검수 중엔 이미 장로급의 무공을 자랑하는 후기지수들도 몇몇 있다고 하였다.

그런 고수의 수가 무려 오십이었다. 삼십삼 인의 철검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귀곡궁대 이백 명보다도 저들 오십이 더 위험해 보인다.

아니, 단순 전력만 보면 묵풍대 삼백 인원에 비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작정하고 데려왔군.’

초절정고수인 화산파 장문인과 그보다 조금 아래라 느껴지는 고수.

나아가 절정의 매화검수 오십이면 그야말로 막강한 전력이다. 천하 어디에서라도 통할 전력인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파의 수장이라고 병법에 능통할 필요는 없지만, 생각이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있나.”

이만한 전력을 외부로 빼 버리면 그만큼 본산의 전력이 부족해진다. 그 본산에 장문인이 중심을 지키고 있다면 모를까, 이건 너무 과하다.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가.’

그때, 검수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왔다.

“방금 뭐라고 하셨소?”

서량의 눈이 빛났다.

마동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안에 기별을 넣어 주시오. 약속 상대가 왔다고.”

“뭐라고 했느냐 물었소.”

그 검수는 이제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사이로 보였다. 다소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화산파의 매화검수 백요(伯曜)였다.

“설마하니 방금, 장문진인의 흉을 본 것인가?”

노화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마동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다시 한번 말하겠소. 안에 기별하시오.”

“마부는 빠지거라.”

기가 막히는 대응이다. 비록 마차를 몰고 왔지만 허리춤의 검은 물론 정련된 기도를 보면 고수라는 걸 알 텐데 서슴없이 모욕을 해 온다.

서량도 가끔 이런 식의 도발을 감행하곤 했지만 지금은 거래를 하러 온 자리였다. 하물며 상대는 도문의 도사가 아니던가?

‘이렇게 나오면 나야 편하지.’

상황에 따라 조종해서 써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감히 대(大) 화산파의 장문진인을 모욕하다니, 만족할 만한 사과가 있기 전까지 당신들은 절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오.”

서량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가 마동필에게 말했다.

“동필아.”

“예, 호위장님.”

“가자.”

“알겠습니다.”

마동필이 대뜸 마부석에 앉았다. 서량 역시 등을 홱 돌리곤 마차로 걸어갔다. 한 점 아쉬울 게 없다는 모습이었다.

백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짓인가?”

히히히힝!!

여섯 마리의 한혈마가 우렁찬 울음을 토해 냈다. 천하의 고수도 깜짝 놀랄 만한 용음(龍吟)이었다.

서량이 백요에게 말했다.

“화산 장문인한테 전해라. 별 시답잖은 매화검수 한 놈의 주접이 이 거래를 망친 거라고.”

“뭐, 뭐라?!”

“손님 대접도 못 하는 머저리의 혓바닥이 정국(政局)의 판도를 바꿨다. 종남 장문인에게 갈 터이니, 제대로 긴장 빨고 있으라고 전해.”

화아악!

순간 매화검수 모두가 살벌한 예기를 피워 올렸다.

종남이라는 이름에 발작적으로 반응한다. 화산의 중진뿐만이 아니라 그들도 종남을 지극히 싫어하는 것이다.

바늘처럼 촘촘하고 도끼날처럼 묵직한 기파. 살기까지 섞인 그 기파는 무척이나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마동필의 눈가에 살기가 일었다.

“호위장님.”

“음?”

“종남 장문인에게 가기 전에, 이들부터 손봐 주고 가시지요.”

놀라운 말이다. 마동필의 입에서 나왔다곤 생각하기 힘든 언사였다.

그들이 화산파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철혈성이나 수로채와는 인식부터가 다르다. 이들은 천마신교와 수백 년간 대립해 온, 말하자면 명백한 적(敵)이었다.

호의를 가지기 힘든 놈들이 감히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에게 살기까지 품었다. 마동필로서도 참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거래가 박살 나면 저희들 장문인 손에 개작살이 날 놈들인데 뭐 하러 쓸데없이 힘을 빼냐?”

“…….”

“가자.”

“예, 호위장님.”

서량은 진짜로 마차에 올라 문을 닫아 버렸다. 아쉬울 게 없다는 정도를 넘어 시원함마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백요를 위시한 매화검수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천하 어떤 무림인도 화산파의 이름값 앞에선 고개부터 숙이고 들어온다.

그들은 이토록 과격한 이들을 처음 만나 봤다.

히히히힝!

살왕기차의 차체가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당황한 백요가 소리쳤다.

“당장 멈추지 못……!”

그때였다.

콰앙!

후원의 대문으로 향하는 문이 부서지고, 한 중년 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어떻게든 미소를 짓고 있다.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는 듯했다.

마차에 탄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미소를 본 여상린이 고개를 저었다.

“또 나왔네, 저 악당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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