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54화 (254/774)

254화. 화산의 이름값 (4)

백요가 충혈된 눈으로 마동필을 노려보았다.

마부석에 앉은 마동필은 한가롭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백요는 물론 매화검수 중 누구도 보지 않았다. 그저 서량이 들어간 곳만 주시하고 있었다.

딱히 무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요에게는, 매화검수들에게는 그것이 무시처럼 느껴졌다.

강호에 나설 때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매화검수라는 이름값에 놀라지도 않았다.

매화검수들에게 그러한 경험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심사가 이렇게까지 뒤틀리는 것은.

“자세가 엉성하군.”

백요의 비틀린 목소리가 향하는 곳에는 마동필이 있었다.

“꼴에 검초 몇 수 익힌 모양이야. 하지만 주제를 알아야지. 하긴, 말이나 모는 마부라면 딱 어울릴 만한 인선인가?”

매화검수 몇몇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상처 입은 자존심에 조그마한 위안이 되고 있었다. 백요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주인 되는 자가 돈은 제법 있는 모양이로구나. 삼류 버러지에게 그럴듯한 검을 건넸어. 검이 슬피 우는 듯하다.”

마동필이 힐끔 백요를 바라보았다.

백요의 표정에 득의양양함이 그득했다.

‘정파 놈들은 원래 이런가?’

저 정도 실력자라면 최소한 품위는 갖추고 있어야 했다. 사람의 품위가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품위다.

한데 저놈들에게는 그런 품위가 없다. 개백정이 보검을 쥐고 흔드는 듯했다.

백요를 힐끔거리던 마동필이 다시 서량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컥!

백요는 가슴 안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분노를 느꼈다.

마동필의 시선이 주는 의미는 분명했다. 말을 섞을 가치가 없다는 것.

“이놈…….”

백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욕지거리를 뱉으려 할 때였다.

“백요, 그만해.”

나선 것은 마동필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장년 사내였다. 여기 모인 매화검수 중 가장 배분이 높은 백강(伯康)이었다.

“장문인께서 대화 중이시다. 사고 치지 마라.”

백요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 여기서 또 사고를 치면 정말로 매화검이 회수될 수 있다. 아니, 장문인인 홍산자라면 체면을 상하게 했다며 파문령(破門令)을 내릴지도 모른다.

백요가 콧김을 뿜었다.

“사고 따위 안 칠 거요. 그저 거슬렸을 뿐, 저런 놈에게 검을 뽑아 봐야 내 칼만 더럽혀질 뿐이오.”

“잘 생각했다.”

백요를 막긴 했지만, 백강 역시 그가 잘못했다고 말하진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뜬다. 백강이 마동필에게 말했다.

“충고 한마디 할까?”

“…….”

“이 강호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협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모두가 우리 같진 않아.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

“그게 강호다. 앞으로 유의하도록 해.”

마치 아랫사람에게 가르치는 듯한 투다.

마동필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들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백강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바로 그런 태도 말이다.”

“…….”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지. 혹여 나중에라도 강호에서 만나는 일이 없길 바라지. 그땐 우리도 참지 않을 것이야.”

백강이 몸을 돌렸다. 반면 백요는 끝까지 마동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글쎄, 진짜 참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영롱한 목소리가 마차 안에서부터 들려왔다.

모두가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동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딸칵.

마차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한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만지면 묻어 나올 듯 새하얀 피부는 언뜻 투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적당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마르지도 않았다.

뒤로 넘긴 흑단 같은 머리카락, 풍성한 소매 사이로 얼핏 드러나는 섬섬옥수.

이목구비 역시 뚜렷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외양만 보면 가히 십전완미(十全完美)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백요는 물론 백강, 나아가 매화검수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아름다움에도 정도가 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홀릴 만한 고혹적인 미모에 좌중은 말조차 잃었다.

마동필은 당황했다.

“왜 나오셨…… 습니까?”

여상린이 미소를 지었다. 순수하면서도 화려하고, 농밀하면서도 천진한 웃음에 세상이 다 밝아지는 듯했다.

“답답해서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안에 있어서 답답한 게 아니라 저치들 때문에 답답해서 나온 거예요.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알량한 무공을 믿고 마 호위를 모욕하는데, 어찌 듣고만 있겠어요?”

주제도 모르는 놈들, 알량한 무공.

여상린의 말은 명백하게 매화검수들을 지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들은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너무도 빼어난 여상린의 자태에 홀린 나머지 입 한 번 뻥끗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동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알아요. 하지만 굳이 참지 않아도 될 일까지 참을 필요는 없잖아요?”

“…….”

“호위장님도 그리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 서량은, 어지간하면 분란을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고개까지 숙여 가며 피하지도 말라고 했다.

고개를 숙여야 할 상황은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진 말라고 하였다.

여상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는 호위장님 말씀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아주 인상 깊었거든요. 속 시원하기도 하고요.”

“중요한 거래입니다.”

“거래요? 과연 거래가 제대로 성사되기나 할까요?”

“예?”

여상린이 한층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도 수틀리면 주먹부터 날리는 분이잖아요? 한데 자기보다 한참 약한 상대한테는 오죽할까요?”

“…….”

“거슬린다 싶으면 일단 작살을 내고 볼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렇다 해도 우리가 분란을 일으켜선 안 됩니다.”

“뭐, 맞는 말이긴 해요. 그래도요.”

여상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욕은 할 수 있잖아요?”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그때, 백강이 앞으로 나섰다.

“뉘신지 모르겠지만 그냥 듣고 넘기기엔 언사가 지나치다 생각하지 않소?”

여상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소저는 방금 우리를 모욕했소. 그것까지야 참아 줄 수 있어도 장문인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소.”

“모욕? 그게 왜 모욕이에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백강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 자태를 보아하니 필경 높으신 분의 자제라도 되는 듯한데, 세상 경험은 그다지 없어 보이는군. 잘 들으시오. 강호에서 본산의…….”

“말끝마다 본산, 본산. 게다가 당신은 경험이 얼마나 많다고 저희를 가르치려 드나요?”

“참으로 당찬 소저로군.”

“당신 우리 알아요? 내 이름은 뭔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고 있나요?”

여상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점쟁이도 아니면서 내가 세상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마 호위가 강한지 약한지는 어떻게 알고 그따위 망발을 뱉어 대나요?

설마 진짜 점쟁이? 요새 도사는 좌도방문의 술(術)도 배우나요? 그럼 그런 말 못 할 텐데.”

백강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나마 백요보다는 어른스럽다지만 그 역시 근본은 다르지 않다. 몰아치는 여상린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고, 동시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장난은 그만하시오.”

“말장난 아니에요. 사실을 말하는 것뿐. 할 말이 없으니 대화를 끊어 버리는 그 행태를 보아하니 당신도 당신 사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저열한 인간이군요.”

“말조심하지 못하겠소?”

“게다가 신분이 높아 보인다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마부석에 앉은 사람 앞에선 거만하게 굴어요.

세상에 신분이 분명하다지만, 적어도 도사라는 당신들은 그리 행동해선 안 되잖아요?”

여상린의 눈이 빛났다.

“신분이 높든 낮든 모두가 귀하고 소중하다. 왜냐? 결국 우리 모두는 자연의 구성 요소이므로. 고로 상하(上下)도, 남녀(男女)도, 귀천(貴賤)도 없다.”

“…….”

“도덕경(道德經) 몇 줄만 읽어 봤어도 자신이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완전히 도사 실격이군요.”

말 몇 마디로 사람 하나를 너끈히 죽일 수 있겠다.

평소에는 유독 정신 사나웠던 여상린의 언사. 마동필은 문득 여상린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요사한!”

순간 여상린의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말조심해.”

사아아아악!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퍼져 나왔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강력한 한기(寒氣)였다. 천하에 음공(陰功)과 빙공(氷功)이 많다지만 이 정도로 음한(陰寒)한 무공을 찾기 어렵다.

순백의 광기. 빙백(氷魄)의 백천(白天)을 지상으로 끌어오는 자들.

사궁의 수좌, 북해빙궁(北海氷宮)의 여식 여상린의 진짜 모습이었다.

“헉!”

“으헉?!”

백강을 위시한 매화검수들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이 심상치 않은 한기와 위엄은 압도적인 위압감이 되어 그들 전체를 휩쓸었다.

단순 실력만 봐도 여상린은 그들 중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는 고수였다.

“뒷배 믿고 설쳐 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좋아. 그럼 똑같이 상대해 주지.”

쩌저저저적!

여상린의 발밑으로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한기를 따라 살얼음의 영역이 확대됐다.

“감히 화산파의 검수 따위가 빙궁의 여식을 모욕해?”

“……!”

“의천맹 전체라면 모를까, 화산파 따위야 본궁 병력의 절반만 보내도 쓸어 버릴 수 있다. 어떻게, 너희 사문의 운명을 걸어 볼래?”

백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목소리에 실린 진심은 분명했다.

아름다운 미모 속에 숨겨져 있는 포악한 짐승의 살기.

실전을 제법 겪어 본 백강은 알 수 있었다. 여상린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걸.

수틀리면 문파 대 문파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광기에 물든 여자였다.

여상린이 피식 웃었다.

“저것 봐, 확 쪼그라들었네. 너네 진짜 화산파 검사 맞아? 쓸어 버리겠다니까 덜덜 떨고 있네?”

“이익!”

“하긴 의천맹주한테 치이고 종남파한테 차이고, 난리도 아니니 겁도 나겠지. 여차하면 멸문될 텐데.”

욕이라도 뱉으려 나선 백요는 순간 ‘멸문’이라는 단어에 움찔했다.

멸문(滅門)이란 문내(門內)의 사람이 모조리 죽는다는 말이다. 즉, 한 집안이 몰살당한다는 뜻.

아무리 백요의 성질이 더러워도 멸문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선 벗어날 수 없다. 백요의 입이 절로 닫혔다.

여상린이 엄하게 말했다.

“딱 말한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우니까 이쪽 신경 건드리지 마. 알겠냐? 진짜 확 조져 버릴까 보다, 같잖은 새끼들.”

그녀가 홱 하니 등을 돌렸다.

마동필은 감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빙궁의 자식이라고 누구나 저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위엄과 배포가 굉장했다.

여상린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어땠어요?”

마동필이 어색하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여상린이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모두의 시선이 굉음이 터진 곳으로 향했다.

여상린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거의 해탈한 표정이었다.

“병신들 조지고 있을 때 터트리지 않아 줘서 고맙네, 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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