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화산의 이름값 (6)
급하게 달려온 광산자의 눈에 띈 것은 이쪽을 바라보며 엉거주춤하고 있는 매화검수들이었다.
“적이다!”
광산자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매화검수들은 놈들을 제압해라! 당장!”
백강이 당황하여 광산자를 바라보았다.
“제압이라니요?”
“적이다! 마차는 건드리지 말고 두 연놈만 잡아!”
“대체 그게 무슨……?!”
급박한 와중에도 광산자는 분노를 느꼈다. 감히 장로가 명을 내리는데 저따위 반응이라니?
“닥치고 당장 움직이지 못해!!”
목소리에 실린 분노를 읽은 걸까.
백강이 외쳤다.
“검수 전원은 검을 뽑아라!”
차차차차창!
검을 뽑자마자 휘몰아치는 검기가 팔방을 점했다. 제압이든 살상이든 검진(劍陣)부터 형성하는 것이다.
마동필이 움직였다.
파앙!
순식간에 여상린의 전면을 막고 선 등 뒤의 검병을 쥐었다. 혹시 몰라 하백수채에게서 챙겨 놓은 청강장검이었다.
백강이 외쳤다.
“출(出)!”
우우웅!!
화려하게 비산하는 검기들이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자아냈다. 직접 공격하기 전에 제압이 먼저다. 명문 특유의 검진이 발하는 특성이었다.
마동필은 순간 울컥 올라오는 마기의 파동을 느꼈다.
도문의 신공을 마주한 마공의 반발력이었다. 자극받은 금강야차마공이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당장에 개방하여 저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여상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뒤로요!”
쩌저저저정!!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좌측으로 나온 여상린이 왼손을 쫙 뻗었다. 그녀의 장심(掌心)에서 뿜어져 나온 공력이 강력한 한풍을 뿜어냈다.
파팡! 치이이익!
그녀의 무공은 분명 매화검수보다 강했지만, 그들의 검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엄청난 기파로 주위를 압박하는 검진이 서서히 일행에게 몰려들었다.
여섯 마리의 명마들이 거친 울음을 토해 내고, 살왕기차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마동필이 전투에 임하려던 순간이었다.
“마 호위는 마차를 조작해 주세요!”
“예?”
“말할 시간 없어요! 어서!”
이럴 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마동필은 여상린을 믿었다. 자신보다 약하지만, 그녀가 가진 능력을 믿었다.
파아악!
마차 문을 열고 들어간 마동필.
그를 보는 앵화의 얼굴이 한껏 굳어졌다.
“삼독관(三毒關)을 열어!”
“네!”
앵화가 창가 바로 밑에 돌출된 작은 철구를 돌렸다.
덜컹!
좌우와 후방, 삼면의 지붕에 엄지 굵기의 구멍이 생겨났다.
“철갑호신(鐵甲護身)으로!”
앵화가 창가 좌석 끝에 고정된 길쭉한 쇠막대를 내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키키키키킹!!
마차의 철제 벽면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리며 다섯 치 길이의 돌출 기관이 나타났다.
원통 안에는 당가(唐家)의 역사가 빚어낸 최강의 암기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천장에서는 독을, 사방 벽면에서는 암기를 쏘아 내는 것이다.
끼기기긱.
곧이어 마차 천장에 양각된 호미(虎尾)가 좌석 앞으로 내려왔다.
단순한 장식이라 생각했거늘 그게 아니었다.
호미 끝에 달린 한 쌍의 애체(靉靆)는 원경(遠鏡)이라, 마차 안에서도 외부 전방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기의 물건이었다.
그야말로 궁극의 기관 장치라 할 만하다.
이런 기관 장치를 만들겠다고 한 발상 자체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낸 기술력이었다.
“신호를 주면 암기를 발사하고, 그다음 신호를 주면 삼독관도 열어야 한다!”
“네!”
덜컹!
천장 위, 뚜껑을 열고 나온 마동필.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흡!’
쩌저저저적!!
여상린의 발밑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엄청난 한기가 전방을 통째로 얼리고 있었다.
강력한 검진의 공진 덕에 매화검수들은 한기에 당하지 않았지만, 그들 주변은 몽땅 얼어붙고 있었다.
‘이런!’
안 그래도 하얗던 여상린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흑백이 또렷하던 눈이 완전히 청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빙공을 극한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힘을……?’
한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매화검수들은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한기는 그냥 한기가 아니었다.
북해빙궁 최강의 절기 빙백신공(氷魄神功)의 힘이다. 후계자가 아니기에 전반부만 익혔으나, 그것만으로도 이 정도 위력이 나온다.
‘극도로 무리하고 있다. 일순간 방출되는 한기는 굉장하지만, 내공 소모 역시 극심할 게 분명해.’
마동필의 생각은 정확했다.
애초에 빙백신공은 그녀의 수준으로 펼칠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초절정고수 정도의 내공량이 아니면 전개만으로도 내상을 입는다.
유리잠력대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후계자인 여강휘에게 빙백의 힘을 건네주어 신공의 수준을 증폭시키고, 그녀의 몸에 부담을 주는 빙백기(氷魄氣)를 제거함으로써 폭발적인 내력의 증가를 도모하는 것이다.
애초에 대법을 시행하기 전, 여상린은 무리해선 안 될 몸이었다. 빙백기는 곧 양날의 검이라,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만큼 시전자의 몸에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사삭. 사사삭.
어느새 뿜어지는 빙백기가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광산자가 검을 뽑았다.
차아아앙!
허공을 격하고 쏘아지는 검기는 극도로 예리했다. 초절정에 이른 무력, 단숨에 여상린을 베어 죽이겠다는 의도였다.
마동필이 움직였다.
쩌어어어엉!!
청강장검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광산자의 눈이 흔들렸다.
“그걸 막았다고?”
부러진 검을 쥔 마동필의 손이 부르르 떨려 왔다. 마공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광산자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때, 여상린의 눈이 광산자에게 향했다.
번쩍!
쏘아지는 안광 자체가 또 하나의 무공 같았다. 청백색 안광을 마주한 광산자의 몸이 절로 굳었다. 등줄기를 서늘케 하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주춤거리는 광산자.
동시에 매화검진의 힘이 무섭도록 증폭됐다.
파바바바박!
얼음으로 뒤덮였던 대지가 무차별적으로 터져 나갔다. 수십 개의 검기들이 땅을 가르며 여상린과 마동필에게로 향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콰아앙!
폭음과 함께 날아온 홍산자의 몸이 양 진형 중앙에 떨어졌다.
매화검수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검진의 힘을 빼지 않으면 장문인의 몸뚱이가 토막 나게 생긴 것이다.
“충(衝)!!”
퍼어어엉!
대지를 가르며 쏘아진 검기가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무리하게 검기를 운용하느라 검수들 대부분이 미약한 내상을 입었다.
바로 그때.
후욱!
사방을 뒤덮는 위압감.
마공을 개방하지 않아도 뿜어내는 존재감 자체가 다르다. 무력의 화신(化神), 서량의 등장이었다.
광산자가 외쳤다.
“산개(散開)!!”
파바바박!
매화검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매화검수들에게 더 이상의 명령은 필요치 않았다. 광산자가 내린 명령은 명백했다. 이제 이들은 적이다. 제압이든 살업이든 총공세를 감행해야 하는 것이다.
서량의 두 발이 땅을 찍었다.
쿠궁!!
대지를 떨쳐 울리는 진각이었다. 한혈마들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었다.
“마차를 후방으로!”
파아악!
빙백기를 푼 여상린이 비틀거렸다. 마동필이 재빨리 그녀를 들쳐 메고 마부석으로 향했다.
동시에 마차를 향해 돌진하는 매화검수들.
오십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들이 원으로 둘러싸고 다가오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다. 격식 있는 진법이 아니기에 압박감은 적었지만, 심리적인 위압감은 배가 된다.
마동필이 외쳤다.
“앵화!!”
쾅!
주먹으로 마차 선두를 후려치는 마동필.
동시에 마차 사면에 튀어나온 수십 개의 원통에서 불이 뿜어졌다.
퍼퍼퍼퍼펑!
“헉!”
“크악!”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느닷없이 벼락이 떨어져도 이렇게 놀랍진 않겠다.
손가락보다 작은 암기 수천 개가 쏘아졌다. 돌출된 원통의 끝부분에 불꽃이 일렁이는 걸 보니, 화약을 이용해 사출형 암기의 폭발력을 극대화한 것 같았다.
쩌저저저정! 퍼억! 퍼펑!
빠른 속도로 접근하던 매화검수들이 모조리 삼 장 밖으로 물러났다.
현란한 검법으로 대다수의 암기를 쳐 냈지만 모두가 암기를 막아 낸 건 아니었다.
털썩!
“쿠웨에엑!!”
“크르륵.”
네 명의 검수들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광산자가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뭐야?!”
폭우철강탄(暴雨鐵鋼彈).
당가비전(唐家秘傳)의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을 개량한 물건이었다.
폭우이화침보다는 폭발력도 약하고 한 번에 쏘아지는 암기의 개수도 적지만, 대신 여러 개를 장착해 살상 범위를 극대화했다.
철컹! 치리링!
수십 개의 원통이 일제히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원통들이 삐져나왔다.
폭우철강탄은 총 세 번을 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제 한 번을 썼으니 두 번이 남았다.
마동필이 다시 외쳤다.
“일독(一毒)!”
푸쉬쉬쉬!
마차를 몰아 들어왔던 길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삼독관에서 시뻘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겁한 검수들이 뒤로 물러났다. 언뜻 보아도 심상치 않은 독연(毒煙)이었다. 실제론 극독이 아니며, 적의 심리를 위축시킬 의도로 만든 첫 번째 독이었다.
마차가 빠져나가고, 독연으로 추적을 끊었으며, 철강탄으로 방비 또한 완벽하게 해 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서량의 몫이었다.
퍼퍼퍼퍼퍽!!
독연을 피해 뒤로 물러났던 매화검수 십여 명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빠른 속도로 달려든 서량의 권각에 맞은 것이다.
“이노옴!!”
파아앙!
홍산자가 득달같이 뛰어들었다.
치졸하고 악랄하지만, 적어도 무인의 호승심을 잃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두 눈 가득 살기를 뿜어내며 접근해 오는데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쿠웅!
대지를 찍어 내는 진각과 함께 정권(正拳)을 휘둘렀다.
피하면 그만일 것 같은 정직한 일격. 하지만 홍산자는 상대의 주먹이 집채만 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그가 화천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권풍과 검풍의 충격으로 공기가 요동쳤다.
‘흡!’
홍산자가 뒤로 물러났다.
권풍이 강력해서? 단순히 그 이유가 아니었다. 충격으로 흐트러진 호흡을 비집고 독연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틈.
바로 그것이 승부의 승패를 갈랐다.
휘이이이잉! 퍼어어억!!
번개처럼 다가온 서량의 발끝이 홍산자의 복부에 박혀 들었다.
홍산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발등의 삼분지 일이 파고들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번쩍!
광산자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서량의 정강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치 그럴 줄 알았던 것처럼 반응이 엄청나게 빨랐다.
파아악!
발을 뺀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
순간 광산자의 몸이 굳었다.
검을 회수하고 방어를 하려는데, 찰나지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혹은 금강불괴의 고수에게 잡힌 것처럼.
‘왜?’
광산자가 서량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서량과 시선이 마주친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마기!!’
퍼어어엉!!
광산자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의 각법. 뜯겨 나간 목에서 줄기줄기 피를 뿜어내던 광산자의 몸이 기우뚱 쓰러졌다.
순간의 마기 방출로 행동에 제약을 걸고, 단숨에 목숨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독연에 주춤한 홍산자를 보고 즉석에서 떠올린 방법이었다.
잔머리라면 잔머리일 수 있지만 뭐 어떤가? 결과만 좋으면 됐지.
서량이 재차 움직였다.
퍼억! 쾅! 콰드득!
다시 한번 복부에 일격, 흉부에 일격을 넣어 내상을 극대화하고 다리 하나를 분질러 버렸다. 홍산자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후욱.”
숨을 몰아쉰 서량이 홍산자의 목을 밟고 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화검수들이 경악한 얼굴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공방이 너무 빠르고 위력적이라 끼어들 틈도 없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너희 장문인의 목숨이 화산의 이름값보다 높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 반대인가?”
“……!”
“길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