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염라, 그리고 마군 (4)
“뇌운검(雷雲劍) 상각. 올해 나이 마흔아홉이다. 칠 년 전 장문인직에 올랐어.
무공 수위는 화산 장문인과 동급으로 추측되며 강검(强劍) 위주의 검법을 구사한다고 하더군. 그건 너랑 비슷하네.”
“…….”
“괜찮겠어?”
“맡겨 주십시오.”
“상대는 구파 장문인이다. 천하십대고수다 뭐다 말들 많지만, 그들은 수백 년간 정파 무림을 떠받쳐 온 기둥의 수장이야.
강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절대로 만만치 않을 거다.”
“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많이 컸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
“농담이야, 인마.”
“예.”
“강하고 격정적인 검법을 구사하지만 진짜 절학은 따로 있다고 하더군.
숨겨 둔 한 수인 만큼 꽤 위험할 거다. 초반 강격으로 최대한 승기를 잡고 전투를 이끄는 게…….”
“소교주님.”
“응?”
“걱정하지 마십시오.”
“…….”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버티기라도 해. 최대한 빨리 쓸어 버리고 도와주러 갈 테니까.”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좋아, 그럼 간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 * *
정운(鄭澐)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가?”
“여기 맞는 것 같소.”
“흐음.”
“왜 그러시오?”
“그냥 께름칙해서 그러네.”
명효(明曉)가 피식 웃었다.
“께름칙할 것도 많소.”
“저 너머 공터는 과거 천음교(天陰敎)란 사교의 무리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네. 중앙에 솟은 땅을 깎아 교주가 연설하던 자리를 만들었다고 하지.”
“나도 들었소. 당시 무당파의 고수들이 이곳을 쳤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네. 사교 무리의 수장과 술사(術士)들이 줄줄이 맹으로 체포되었다고 하지. 그때 토벌에 앞장선 분이 바로 그 현천진인일세.”
정운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좌우가 온통 절벽으로 막힌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무척이나 좁고 작아 보였다.
“본문에서도 그처럼 대단한 고수가 나와야 할 터인데.”
“갑자기 왜 감상에 젖으셨소? 이만 갑시다.”
“그러세나.”
명효가 뒤를 향해 외쳤다.
“가자!”
“예!”
그의 외침을 시작으로 백팔십이나 되는 검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은하검수와 벽산십검을 합해 팔십, 그리고 태룡가에서 파견 나온 검사들의 숫자가 무려 백이었다. 일전 화산파의 전력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전력이었다.
그렇게 종남 일행이 광장 입구를 지나 중앙 광장 부근에 도달했을 때였다.
콰아아앙!
느닷없는 폭음에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콰아앙! 콰아아앙!
연달아 터지는 강렬한 폭음.
뒤이어 폭음과는 조금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콰르릉! 쿠구구구궁!!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산사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을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굉음이요, 진동이었다.
‘입구가?’
정운이 당황하여 명효를 보았다.
명효 또한 크게 놀랐지만 애써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 근처 지반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소? 저기도 그런…….”
그때였다.
콰앙!
뭔가 거대한 것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바위?!’
바위가 하늘을 난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문제는 그 바위가 하강하는 위치였다.
정운의 눈이 커졌다.
“피해라!”
은하검수들과 벽산십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아앙! 쿠르릉!
땅을 깨부순 바위가 앞으로 굴러가다가 퍽! 하고 쪼개졌다.
지름이 웬만한 성인 남성의 신장보다도 큰 바위였다. 이런 바위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간 초절정고수라도 무사하기 힘들다.
‘화약? 아니면…….’
“역시 그 정도로는 안 되나?”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무너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거칠 것 없는 보행이다. 발소리가 사방을 울리고 있었다.
“많이도 모였다, 이 잡것들.”
푸스스스.
자욱한 흙먼지 속, 흐릿한 인영(人影)이 점점 커졌다.
훅.
마침내 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
육 척이 훌쩍 넘는 키에 장대한 골격을 가진 청년이었다.
병장기는 들지 않았지만 전신에 둘러쳐진 위험천만한 기운은 어떠한 신병이기보다도 날카로워 보였다.
명효가 외쳤다.
“누구냐!”
“입구 틀어막고 바위까지 던졌으면 뻔한 거 아냐?”
청년, 서량이 히죽 웃었다.
“적이다.”
“이놈이!”
왠지 놀림을 받은 것 같다.
덩치만 컸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놈의 놀림은 감당키가 쉽지 않다. 명효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느냐!”
서량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종남이잖아.”
“……알고도 그랬단 말인가?!”
“그럼 모르는 놈들 잡아 죽일까? 나 미친놈 아니야.”
명효는 기가 찼다. 느닷없이 나타나 조롱조로 말하는 저놈은 미친놈이 분명했다.
그가 뭐라 한마디 더 뱉으려던 그때였다.
“문답무용이라는 것인가.”
정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말라.”
“안 해, 새꺄.”
가관이다.
짧은 대화였지만 저 말투는 정말이지 들어 주기가 힘들다. 한 번 들을 때마다 분노가 울컥 치미는데 당장이라도 출수하고 싶을 정도였다.
정운이 외쳤다.
“은하와 벽산은 저놈을 잡아 꿇려라!”
차차차차창!
팔십 명의 검사들이 일제히 장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태룡가의 백인대(百人隊)도 검을 쥐었다.
쏟아지는 살기, 그리고 예기.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하군.’
사방이 막힌 장소.
그 너머에도 사람은 없었다. 기감으로 느끼기에도 그러하며, 일각 전에 받은 하오문의 정보에도 그러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나도 강해서 수십, 수백 장까지 뻗어 나갈 마기를 감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간 꼭꼭 숨긴 채 싸우느라 어찌나 고생이 많았는지, 원.’
쿠우웅!
대지를 뒤흔드는 진각.
진각을 펼친 발밑에서 시뻘건 기운이 뭉클뭉클 새어 나왔다.
순리를 거부하는 역천(逆天)의 기운이다.
하늘의 이치에 반하는 공포의 마력, 지저(地底)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 올린 구유(九幽)의 마기가 넘칠 듯 끓어오르고 있었다.
끓어오른 마기가 그의 정강이와 허벅지를 타고 오른다 싶더니, 이내 전신을 뒤덮었다.
콰르르릉!!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듯하다.
달려들던 은하와 벽산, 뒤를 받쳐 주던 백인대.
그리고 정운과 명효까지, 모두가 경악했다.
“이, 이 기운은?!”
은하검수와 벽산십검, 그리고 백인대원들은 젊어서 모른다. 애초에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운과 명효는 달랐다. 어릴 적, 혹은 젊었을 적 몇 번이나마 마인을 상대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기?!”
“마공이다!!”
부르르.
서서히 몸을 떨던 서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목에 불거진 핏줄이 목젖을 타고 올라 턱 밑까지 이어졌다. 붉어진 얼굴과 부르르 떨리는 몸이 심상치 않은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좌우로 자연스럽게 늘어트린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 두 주먹을 쥐고 펴길 반복하니, 끓어오르는 기운을 온전히 육신에 잡아 두는 듯하다.
“후우.”
뱉어 내는 숨결에 나른한 만족감이 깃들었다.
장강에서도 마공을 완전하게 개방하진 않았다.
이천상과 겨루었을 때 이후 처음으로 구유마공을 완전히 개방해 보는 것이다.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마기가 사지육신으로 뻗어 나가니, 그 어느 때보다도 황홀한 기분을 느낀다.
고개를 내린 서량이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싹!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잘생긴 얼굴 위, 흉악한 마귀의 그림자가 한 겹 둘러 씌워진 듯했다.
“간다.”
콰아아앙!
적의와 환희를 안고 나아간다. 마황군림보도, 무엇도 아닌 순수한 마기의 힘으로 쏘아지는 서량의 신형은 번개처럼 빨랐다.
“막……!”
퍼어어엉!
은하검수 다섯의 몸뚱이가 통째로 찢겨 날아갔다.
감당할 수 없는 폭군의 전진이다. 주먹질 한 번으로 절정고수 다섯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다. 압도적인 힘과 위력이었다.
퍼어엉! 콰지직!
발길질 한 번에 벽산십검 둘의 몸뚱이가 상하로 찢어지고, 중단으로 내지른 장법 일격에 백인대원 일곱이 폭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날아갔다.
삼 초식이 아니라 세 동작이다. 찍어 치고, 후려치고, 나아가 밀어 치는 동작 세 번에 무려 열넷의 사상자가 나왔다.
정운이 입을 떡 벌렸다.
“이럴 수가……!”
퍼퍼펑! 콰앙!
잠시 얼이 빠져 지켜보는 가운데, 또다시 대여섯 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건 뭐 감당이 안 되는 무력이었다. 양 떼에 뛰어든 호랑이가 따로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휘두르고 감고 후려치는데, 일격이 들어갈 때마다 최소 셋 이상의 목숨이 날아가고 있었다.
‘극마!!’
명효가 이를 악물었다.
“이노옴!”
파아악!
그가 몸을 날렸다.
‘안 돼!’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이미 명효는 순식간에 은하검수의 후방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정운 역시 신법을 전개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자가 있었다니?’
명효보다 한 수 위의 고수이기에.
명효가 볼 수 없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실력과 연륜이 있기에.
그래서 아는 것이다. 저 괴물은 분노나 혈기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명효는 강맹한 위력의 권각만을 보았지만, 자신은 그만한 위력을 자아내기 위해 고농도의 마기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괴물이다! 저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거늘 어찌?!’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복잡한 진기 운용. 동작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한 동작에 실린 마기가 발경의 위력을 극대화화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라!”
번쩍!
명효가 휘두른 검이 단숨에 서량의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졌다.
서량이 귀찮은 듯 왼손을 휘둘렀다. 마치 파리를 쫓는 듯한 동작과 비슷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콰앙!
“컥!”
돌진할 때와 비슷한 속도로 튕겨 나간 명효가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검을 쥔 손에서는 피가 배어 나온다. 감당 못 할 위력에 호구가 찢어진 것이다.
아무리 극마의 고수라지만 이 차이는 너무 심했다.
십대고수에 이른 공력과 천하제일을 다투는 마공, 그리고 섬세하지 못한 명효의 공격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터어엉!
서량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뛰어오른 게 아니다. 날았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도약력이 엄청났다.
날아오른 서량의 주먹이 점차 붉게 물들었다.
파지지지직!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지는 마기.
그 위에 덧씌워진 뇌전의 힘에 하늘마저 어두워지는 듯했다.
정운이 외쳤다.
“모두 흩어져라!”
서량이 조소했다.
“늦었어.”
콰르르릉!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보다, 타점(打點)에서 뿜어진 권풍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천마벽력권 최후의 초식, 일격필살의 진천벽력파였다.
콰앙! 파지지지직!
엄청난 경파와 함께 이십여 명의 검수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버렸다.
뭉개진 그들의 시체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벽력의 전광이 피부를 태워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전설상에서나 회자될 법한 공부였다. 인간의 무공이 아니었다.
콰아앙!
대지로 내려선 서량이 무시무시한 외침을 발했다.
“제대로들 해 봐!”
퍼어어엉!
터져 나가는 피와 육신이 광장 일대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