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63화 (263/774)

263화. 파격적인 출도 (1)

홍산자와 상각의 납치.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근래 이 정도로 큰 사태는 없었다. 호북을 넘어 장강 이북 전체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납치범 일행 중 빙궁주의 여식이 끼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녀의 호위무사들이 구파 장문인보다도 무공이 강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북해빙궁, 새외사궁의 수좌.

지금껏 중원에서 제대로 활동해 본 적 없던 빙궁의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지각 변동을 일으킬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한데 그들이 구파 장문인 둘을 납치해 버렸다니, 이보다 놀라운 일은 없었다.

경악으로 물든 정파 무림은, 곧이어 빙궁에 강한 분노를 쏟아 냈다.

아무리 그래도 납치라니? 삼류 파락호들이나 할 법한 행동이 아닌가. 게다가 문내 제자도 아니고 명성 자자한 구파의 수장이었다.

어느새 들불처럼 치솟는 여론이 빙궁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과격한 자들은 그들을 오랑캐라고 비하하며 당장 몰아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뒤이어 터진 소문은 그보다 파급력이 훨씬 대단했다.

“의천맹이 천룡궁과 검궁, 야수궁과 비밀리 손을 잡았다.

그중 야수궁이 빙궁주의 여식을 납치했었다. 빙궁은 그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는 것이니, 이에 연관된 이들은 빙궁에 사과하고 장문인들을 돌려받으라.”

빙궁 측이 무림의 거물 둘을 납치했다는 것보다 몇 배는 충격적인 소문이었다.

일개 소문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것이, 그 정보가 유출된 곳이 다름 아닌 야수궁이었다.

하오문 운남지부의 확인까지 거쳤으니, 이는 진실일 확률이 구 할 이상이었다.

여론의 시선이 의천맹으로 향했다.

의천맹은 즉각 부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를 새외의 세력과 결탁하는 음흉한 조직으로 만들려는 악소문에 불과하다.

야수궁과 하오문은 이 혼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개방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증거들을 내놓았다. 정보력으로는 하오문과 쌍벽을 이룬다는 개방의 증거들은 그 자체로 굉장한 효력을 지녔다.

바로 그때.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것 같은 혼란의 무대에, 또 하나의 청천벽력 같은 소문이 터졌다.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이 철혈성주의 첩을 살해하려 하였다.

이에 분노한 철혈성의 고수들이 매화검수들을 전멸시킨 후, 의천맹을 상대로 해명을 요구했다.

만일 이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철혈성은 전쟁까지 불사할 용의가 있다.”

앞선 소문도 충격적이었지만, 이것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화산의 매화검수들이 철혈성주의 첩을 죽이려 했다? 이것은 철혈성, 나아가 사파 전체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걸 떠나 첩실을 공격했다는 것 자체가 세인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아무리 경쟁 세력이라지만 무림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거늘, 철혈성주 본인도 아니고 첩실을 살해하려 했다니?

이 소문은 의천맹이 파렴치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 세력이라면 새외의 조직들과 손을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의천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여론전에서 침묵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혹을 증폭시키기에도 좋은 것이 침묵이다.

서서히 조여드는 목줄.

의천맹을 보는 세인들의 시선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차가워지고 있었다.

* * *

“용문염라(龍紋閻羅)?”

“그렇습니다.”

공야치가 담담하게 말했다.

“장강을 타고 흐른 소문입니다. 그 소문이 벌써 호북 전체에 퍼졌지요. 열흘만 지나면 용문염라의 명성은 강북을 진동시킬 겁니다.”

“명성이 아니라 악명이겠지.”

“명성 맞습니다. 적어도 정파 무림인들에게는요. 철혈성의 묵풍대와 장강수로채 중 하나를 수장시켰다면 이는 가히 영웅적인 행보입니다.”

“영웅? 웃기고 계셔. 우리 손에 누가 납치되었는지 벌써 잊었나?”

“정당성은 확보했습니다만.”

“반쪽짜리 정당성이지. 화산과 종남의 명성은 천하를 뒤흔들고 있어. 과하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순 없을 거야.”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최악의 상황이지만…….”

“의천맹과 철혈성이 연수하여 소교주님을 잡으려 들 수도 있겠지요.”

“바로 그거야.”

철혈성주의 첩을 납치하고, 이후 화산과 종남의 장문인까지 줄줄이 납치해 버렸다.

이런 혼란이 터진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서량에게 있었다. 일단 범인부터 잡고 우리끼리의 일을 해결하자는 결론이 나오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여기서 제안드립니다.”

“무슨 제안.”

“소교주님의 정체를 알리시지요.”

서량이 어이없다는 듯 공야치를 보았다.

“미친 거야?”

“그럴 리가요.”

“안 미쳤으면 그런 소리가 나올 리 없을 텐데? 내가 왜 힘들게 정체를 숨기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잊었나?”

“오해하셨군요. 저는 모두에게 알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철혈성주에게만 알리시지요.”

순간 서량의 눈이 빛났다.

“철혈성주에게만?”

“천마신교, 의천맹 모두 철혈성의 적입니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삼십 년이 넘도록 대외 활동을 금하고 있었지요.

언제나 주시해야 할 적이지만, 의천맹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실제로 부딪친 적도 많습니다. 전쟁이 터질 뻔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지요. 물론 세상은 모르고 있지만 말입니다.”

“흐음.”

서량이 턱을 쓰다듬었다.

“흥미로운 발상이긴 하다만.”

“현재 소교주님은 행동의 제약이 큽니다.

단순 정쟁(政爭)이라면 모를까, 매 순간 적들과 조우할 위협이 있지 않습니까? 소교주님은 안전할지 몰라도 일행분들에겐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음.”

“여기까지 치고 들어왔으니, 이젠 당당하게 날개를 펴도 될 것 같습니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 좋아. 하지만 철혈성주가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있잖아?”

“그러지 못할 겁니다.”

“왜?”

공야치가 눈을 빛냈다.

“저희 하오문이 가진 정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바로 철혈성입니다.”

“엥?”

“천마신교야 당연히 정보원을 파견하기 어렵습니다.

의천맹은 그나마 쉽지만 그곳엔 개방과 맹회에서 자체적으로 굴리는 정보단이 있습니다. 그들의 견제는 정말 만만치 않지요.”

“……철혈성은 다르다?”

“그렇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두 집단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저희 측에는 철혈성이 숨기고 있는 몇몇 중요 비밀들이 있습니다.”

“…….”

“그 정보를 이용하면 됩니다.”

서량이 묘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의천맹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

“그만한 비밀을 터트리겠다는 건, 이번 일에 하오문의 사활을 걸겠다는 뜻이야. 철혈성과는 원수지간이 된다는 거지.”

“대신 천마신교와 손을 잡지 않았습니까.”

“삼세(三勢)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왔기 때문에 하오문이 지금껏 성장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공야치가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그럴 순 없습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서량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 부분은 생각해 보기로 하지.”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최소한 총군사와는 상의를 해 봐야 할 문제지.

신교에서 답이 오길 기다린다면 최소한 한 달은 걸릴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오지요.”

“그래.”

“아,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제가 모르는 뭔가를 노리시는 것 같긴 합니다만…… 굳이 화산과 종남 장문인을 납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놈들 죽이면 우리는 무림 공적이 되잖아. 당연한 얘길.”

“그게 전부입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아니지.”

“말씀하시기 곤란한 사항인가 봅니다.”

“곤란할 것까지야 없지만…… 나중에 말해 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공야치가 나가자 서량은 그대로 침상에 누웠다.

‘힘들구만.’

이것저것 재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나마 공야치가 도와줘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속이 다 뒤집혔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막 나가도 되나, 싶기도 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건 그만큼 심리적으로 지쳤다는 뜻일 것이다.

그간 숱한 싸움을 거쳐 소교주의 위(位)에 올랐지만 중원 한복판에서 날뛰는 건 신교에서 난장을 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돌이켜 보면 나도 참 웃기는 놈이군.’

편하게 가도 될 걸, 꼭 큼직한 사건을 터트리며 나아간다.

결과적으론 다 좋게 흘러갔지만, 최상의 방법을 택했다고 보긴 어렵다. 마음 가는 대로 일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이 내게 이롭게 작용하도록 노력한 거니까.

그렇게 보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도 말장난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억눌렸던 과거의 삶을 보상받고 싶은 것일지도 몰라. 속 시원하게 사고를 쳐 대면서 말이지.’

서량이 눈을 감았다.

‘됐어. 결국 일은 저질러졌고, 지금은 이걸 어떻게 하면 수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겠지.’

어차피 홍산자와 상각이 손에 들어왔다. 그 둘에게서 ‘비밀’을 알아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쉰 서량이 벌떡 일어났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뭐여?! 언제 왔어?”

여상린이 눈을 끔뻑였다.

“방금 왔어요. 불러도 대답 안 하시던데.”

“아, 그랬냐?”

“피곤해 보이시네요?”

“피곤하기는 뭘. 괜찮아.”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말해 봤자 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안 느껴진다.

여상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음? 할 말 있나?”

“무지막지하게 많죠.”

“뭔데?”

의자에 앉아 보란 듯이 다리를 꼰 여상린이 지긋이 서량을 노려보았다.

참으로 부담스러운 눈빛이다. 서량의 얼굴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왜 그래?”

“빙궁의 입장을 아주 곤란하게 만드셨던데요?”

“잉? 그게 뭔 소리야?”

“저를 이용해서 비난과 창칼에 대한 보호막을 만드신 거 아니었어요?”

“어, 그랬지?”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여상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사전에 말도 안 해 주고 이러기 있어요? 저야 당연히 소교주님을 도와야 하지만 그래도 말은 해 주셔야죠! 깜짝 놀랐잖아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얘기했잖아?”

“언제요!”

“신교에서 출발하면서 얘기했잖아? 빙궁 이름값 좀 빌리겠다고. 네가 빽 소리 지르기는 했다만, 어찌어찌 수긍했었잖아?”

“……?”

“내가 좀 막 나가긴 해도 그렇게까지 경우 없는 놈은 아니야. 다 끝난 얘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아니었어?”

“……그랬었나요?”

“아, 물론 일 저지르기 전에 한 번 더 말해 주려고는 했었는데 깜빡했다. 워낙 정신이 없었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미안하다. 다음부터 안 그러마.”

여상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어…… 그럼 됐고요.”

시시한데?

따지려고 온 것도 맞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온 것 같다. 서량이 의문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상린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희 오라버니한테는 말했어요?”

“물론이지. 공야치가 잘 처리했어. 미리미리 서신도 보내 놨고.”

“그럼 됐어요.”

“…….”

“…….”

“그래서, 왜 왔니?”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그 부탁이라는 게 꽤 난처한 건가 보지? 빙궁 이름값 운운하면서 빚을 지게 만든 후에야 말을 꺼내야 할 정도로?”

“완전 귀신이시네.”

“내 눈치가 좋은 게 아니라 네 얼굴에 다 드러나서 그런 거다. 그래서, 부탁이 뭔데?”

여상린이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계집애가 또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었다.

“저기요…….”

“뭐.”

“어려운 부탁이긴 한데,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니까 뭐냐고, 인마.”

“저 소교주님 제자 하고 싶어요.”

“……뭐?”

여상린이 꾸벅 절을 올렸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서량이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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