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마(魔)에 종착지는 없다 (1)
멀어져 가는 마차를 보던 송금백이 피식 웃었다.
“그것참, 맹랑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다.”
황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위험한 자입니다.”
“세상천지에 위험하지 않은 무림인이 어디 있나.”
“물론 그렇습니다만.”
“하긴, 자네 말마따나 저만큼 인상적인 무인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싶네. 섣부른 짓은 절대 안 할 거라 생각되지만……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기도 하네.”
송금백의 눈이 깊어졌다.
“참으로 이상한 녀석이야. 딱히 그릇이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거늘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어.
위엄이라고 해야 할지, 유독 존재감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지.”
황곤의 얼굴에 다소간의 놀라움이 깃들었다.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사파의 군주라 불리는 철혈성주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혹시 자네도 느꼈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 자리에 마교의 소교주를 보러 왔네. 한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녀석을 소교주가 아니라 증오에 불타오르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었어.”
“…….”
“그래서 무섭네. 한 길만 보는 사람처럼 다루기 쉬운 사람이 없다지만, 세상에는 저런 녀석도 있는 게야.
어쩌면 그 압도적인 목적의식이 지금의 녀석을 만든 게 아닌가 싶네.”
송금백이 환야를 돌아보았다.
“어떻더냐?”
“무례한 자입니다.”
환야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깃들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겠습니다. 소교주의 무재(武才)가 저보다 한참 뛰어나다는 것을요.”
“그 정도가 아니다.”
“예?”
송금백의 얼굴에서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단언컨대 저 녀석은 무상보다 한 수 위다.”
“……!!”
“마공과 사공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지금의 비요왕도 아차 하면 당하겠다 싶을 정도야.
본성에서 저 녀석을 분명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만한 사람을 꼽자면 전대까지 뒤져도 나를 포함, 셋을 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싸워 봐야 알겠지만.”
환야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마교의 소교주가 극마의 고수라는 건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인 줄 알았다. 극마에 올랐지만 천하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아닌 수준.
그러나 스승의 평가는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저 나이에…… 그것이 가능합니까?
화경의 초입에 든 고수가 십대고수급으로 성장한다는 건 이제 막 검을 쥔 무사가 화경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오랜 시간을 요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맞다.”
“……!”
“그래서 저 녀석이 대단한 것이다. 이립이 안 된 연배에 저만한 무공이라면 가히 역사에 다시없을 재능이다. 마교주가 정녕 괴물을 키웠어.”
환야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드리워졌다.
호승심도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한 수준이어야 품을 수 있는 법이다.
삼십도 안 된 나이로 십대고수와 승부를 논하기 어려운 경지라면, 당장 오 년만 지나도 천하제일인이 될 거란 뜻이었다.
“앞으로 저 맹랑한 녀석으로 인해 무림 천하의 판도가 바뀌겠지.”
어떤 칭찬을 얼마나 퍼붓더라도 아쉽지 않을 놈이다. 수십 년간 온갖 인재들을 봐 온 송금백으로서도 처음 보는 유형의 재인이었다.
‘다만.’
환야는 재능을 보았고, 황곤은 성정을 보았다.
송금백은 달랐다.
그는 재능과 성정 이전에, 서량이 품고 있는 미지의 마력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분명히 나보다 약하다. 어설프고, 때로는 거칠기까지 해. 유연한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송금백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그자를 보는 듯했어.’
성주직에 오르기 전.
철혈성의 촉망받는 후기지수라 불리던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한 마인.
사십이 안 된 나이로 극마를 깨우쳐 천마신교의 새로운 신(神)으로 군림했던 무정한 악마의 그림자가 서량을 감싸고 있었다.
‘아직 정권 교체가 되지 않았다면 마교의 수장은 여전히 그자겠지. 그렇다면 저 녀석도 그의 제자일 것이다.’
송금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군. 사제가 똑같이 괴물이야.’
그가 몸을 돌렸다.
“이만 돌아가세. 할 일이 많겠어.”
* * *
“후우, 힘들어라.”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앵화가 조심스레 수통을 건넸다.
“소교주님. 이거…….”
“어? 어어, 고맙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서량이 다시 축 늘어졌다. 생사결을 마치고 온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여상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기운이 빠져 있으세요?”
“당연하지. 그런 괴물과 마주했으니. 차라리 칼 뽑고 싸우는 게 낫지, 진짜 못 해먹을 짓이다.”
“고작 대화 조금 나눈 게 전부인데요?”
“너한테는 그냥 날이 좀 선 대화로 보였겠지만 그 안에는 치열한 기공전(氣功戰)이 난무하고 있었어.”
“헤에.”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방심 못 할 위인이야.’
껄껄껄 웃음을 터트릴 때도, 지그시 바라볼 때도, 혹은 장난처럼 대화를 넘기는 그 순간에도.
송금백의 기(氣)는 끊임없이 서량을 두들기고 있었다. 마치 그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것처럼, 진기로 둘러친 무형의 방벽을 줄곧 날카롭게 찔러 댔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겨룸이 아니었다.
몇 차원 높은 경지에 오른 절대자의 정련된 기(氣)가 닥치는 대로 빈틈을 쑤시고 들어오니,
어떻게든 그 기를 막아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기가 침투했다면 서량의 중단전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감정 조절에도 문제를 겪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에 오른 자, 수라제라 불리는 송금백의 힘이었다.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늙은이보다도 무서웠어.’
무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정의 문제였다.
집요하게 파헤치다가, 안 되면 쥐어뜯고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탐욕의 기(氣).
그것이 바로 송금백이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자가 분명했다.
설령 온 천하가 불타오를지라도.
‘어느 정도 동질감이 느껴졌던 이유도 바로 철혈성주의 그런 면모 때문이겠지.’
서량이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로가 물밀 듯 밀려왔다.
“나 좀 잘란다. 깨우지 마.”
“그러세요.”
‘요’라는 말을 듣기도 전에 서량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간 쌓인 정신적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든 까닭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량이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끄으응.”
삭신이 은근히 쑤셔 온다. 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어깨를 몇 차례 빙빙 돌린 서량은, 문득 마차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차가 멈췄네? 다들 쉬고 있나?’
그가 마차 문을 열고 나갔다.
‘응?’
마차가 선 곳은 우거진 숲이었다.
사방이 거목이요, 팔방이 푸른 잎이다. 이토록 억세고 울창한 숲은 서량도 처음 보았다.
아니, 그나저나.
“이것들이 다 어디로 갔대?”
마동필도, 여상린도, 앵화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걸 넘어 기감에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마차를 끌던 말들도 보이지 않았다.
서량의 눈썹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디 가면 간다고 서신이라도 남겨 놓고 가지. 위험한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서량은 문득 마차 바퀴를 내려다보았다.
‘어?’
그가 뒷바퀴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바퀴 자국이 없지?’
이상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애초에 바퀴 자국이 있을 수가 없다.
제멋대로 뿌리를 내린 거목들이 빽빽하게 드리워져 있어서, 애초에 이 정도 크기의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숲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묘한 불안감.
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마기가 치솟았다. 위기를 느끼자 군림마황기가 저절로 발동한 것이다.
그때였다.
‘헉!’
마침내 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그들의 사기(死氣)가 느껴졌다.
퍼어어어엉!
순식간에 사기가 깃든 장소로 날아간다. 앞을 가로막는 거목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나아가니, 어느새 사기가 감돌았던 장소에 도달했다.
“……!!”
서량의 얼굴에 충격이 깃들었다.
눈이 절로 충혈되고,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양손이 덜덜 떨려 오고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이, 이봐.”
한 걸음, 한 걸음에 불신과 공포가 깃들었다.
“야! 동필아! 앵화야! 린아!”
시야를 가린 나뭇가지들을 마구 쳐 내며 달려 나간 서량의 눈 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위이잉! 위이잉!
수백, 수천 마리의 날벌레들이 들끓었다.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마동필과 여상린, 앵화의 시체가 있었다.
팔다리가 너덜거리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세 구의 시신,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함이었다.
수많은 시체를 봐 온 서량조차도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이었다.
“애들아!!”
미친 듯이 달려간 그가 마구 손을 저었다. 벌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시신과 서량의 몸에 달라붙었다.
“동필아! 동필아!! 정신 차려, 인마!”
벌레가 몸에 붙든 말든 상관도 안 한다. 다급한 손길이 마동필의 시신을 거칠게 흔들었다.
“이 새끼야! 너, 너 갑자기 뭐야?! 왜 이래!”
툭!
떨어져 나온 마동필의 머리통이 땅 위를 굴렀다. 시체는 손만 대도 쉬이 망가질 만큼 썩어 버린 상태였다.
앵화도, 여상린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인의 시체에 손을 대기가 무섭게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나간다. 썩은 얼굴의 반은 이미 해골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서량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으아아아!!”
그때였다.
투욱!
누군가가 서량의 손목을 잡아챘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이천상이 귀신처럼 웃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헉!”
깜짝 놀란 서량이 비명과도 같은 숨을 들이켜며 상체를 세웠다.
“소, 소교주님!”
“으악! 깜짝이야! 뭐예요, 갑자기?! 괜찮으세요?”
서량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여상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불러도 안 깨시더니. 그나저나 어디 아프세요? 아까부터 웬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시고.”
“뭐, 뭐라고?”
서량이 멍하니 여상린과 앵화를 보던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땀에 푹 젖은 상의가 달라붙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그대로였다.
‘꿈?!’
그가 다시 두 여인을 보았다.
걱정 가득한 여상린의 얼굴, 어쩔 줄을 모르는 앵화의 표정.
서량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저절로 이마에 손이 갔다.
“꿈이었구나.”
“아하? 악몽을 꾸셨구나. 근데 뭔 악몽을 그리 살벌하게 꾼대요? 간질이라도 걸린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동필이는?”
“마차 몰고 있잖아요.”
“그렇구나.”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런 몰골로 걱정하지 말란다고 진짜 걱정 안 할 수가 있나요.”
서량은 여상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꿈 치고는 너무 생생했는데.’
보통 잠에서 깨면 꿈을 조금씩, 조금씩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서량은 꿈에서 나온 장면 하나하나를 복기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였다.
‘왜 애들이 다 그 꼴이 됐지? 그리고 교주님은 왜 나타난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왜 구유마공이 아니라 군림마황기를 운용했지?’
그에게 익숙한 마공은 구유마공이다. 그런데도 꿈속의 그는 군림마황기를 운용했다.
‘……제길, 그냥 개꿈인가?’
찝찝하기 짝이 없는 꿈.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악몽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머리에 담아 놔서 좋을 게 하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피곤하긴 했나 보군.’
* * *
여전히 고단해 보였지만 공야치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별거 아냐. 그나저나 눈이 또 왜 그래? 날 샜냐?”
“아닙니다. 그냥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쉬엄쉬엄해.”
“알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것까지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다음 행선지는 제가 추천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추천? 그거 좋지. 어딘데?”
“광목림(狂木林)이라는 곳입니다.”
“……광목림?”
“예. 안휘와 강서의 경계에 있는 경석산 근처의 숲인데, 아름드리 거목들이 빽빽한 숲입니다. 그곳에 천룡…… 소교주님?”
서량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