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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72화 (272/774)

272화. 마(魔)에 종착지는 없다 (2)

“철혈성주와의 대담이 성공리에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군.”

“다음 행선지는 경석산 인근의 광목림이라는 곳입니다.

안휘, 강서 사람들도 쉬이 접근하지 않는 곳인데, 그곳에 천룡궁(天龍宮)의 병력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겠군.”

“예,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천룡궁은 검궁과 야수궁과는 또 다릅니다.

사궁의 수좌라는 빙궁에 가장 근접한 무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사이한 술수에도 능해서, 극마의 고수에게도 위협이 될 만한 방문좌도의 술(術)을 많이 보유했다고 합니다.”

“…….”

“그래도 놓치기 힘든 먹잇감임은 분명합니다. 현재 의천맹에 대한 여론은 지극히 안 좋습니다.

아직 삼궁(三宮)과의 관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판국이니, 이럴 때 천룡궁의 병력을 처리해 중원 전체에 소문을 퍼트리면 상황이 여러모로 편해질 겁니다.”

“아니, 단순히 그들이 강해서 힘들겠다고 한 게 아닐세.”

“예?”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요성.

술잔을 비운 이천상이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쯤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군.’

군림마황기를 익힌 자, 아니 욕계문을 열어 천마지도(天魔之道)에 오른 자가 마주해야 할 숙명.

‘언제나 처음이 중요한 법이다. 그 길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면 차후 맞이하게 될 난관들이 몇 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전, 호요성과 대화하며 욕계문에 대해 설명할 때.

앞으로가 더 힘들 거라 말했던 것은 중원을 향한 서량의 단판 승부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막말로 나아가는 길이 힘에 부치면, 그땐 신교의 병력을 운용하면 된다.

진짜 힘든 것은 서량 개인이다.

‘그리고 그 길을 돌파하고 나면, 내가 어떻게 세상을 주시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안다고 해서 서량이 자신처럼 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 자신이 오른 산은, 제자에게 따라오라 하기엔 너무나도 거칠고 황량하니까.

다만 또 다른 산을 발견했으면 한다.

지나치게 고독한 이 땅이 아닌, 훨씬 더 인간적이고 편안한 산길을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먼 훗날,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오를지라도 이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천상이 서량에게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아, 그리고 이건 아직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뭔가?”

호요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개방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지들이 동냥질하는 거야 언제나 있었던 일이지. 특별할 게 있나?”

“아무래도…… 하오문을 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거지들이 냄새 하나는 잘 맡는 법이네.”

이런 말을 이천상이 하니 왠지 재미있게 들린다.

“그렇지요. 그놈들은 항상 냄새를 잘 맡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하오문이 제법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제대로 파고 있거든요. 화산과 종남의 병력까지 쥐고 흔드는 모양입니다.”

이천상이 눈을 빛냈다.

“확신하고 움직인단 거군.”

“그런 것 같습니다.”

호요성이 은근슬쩍 물었다.

“어떻게, 이쯤에서 한번 쿡 찔러 볼까요?”

“자네 마음대로 하게. 비각은 자네 휘하 조직이 아니던가.”

“예에, 그렇기는 한데요. 제가 말한 건 단순히 비각을 운용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하면?”

호요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용두방주 모가지를 뽑아 볼까 하고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겼다.

이천상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거지 대장을 직접 건드리겠다, 이건가?”

“파급력이 크긴 할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 소교주님이 중원에 크나큰 파도를 일으키지 않았겠습니까?

그 파격적인 움직임 때문에 중원 북부 전체가 난리입니다.”

호요성이 확신 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이럴 때 적의 앞발 하나를 잘라 두면 두고두고 편해질 겁니다. 소교주님만이 아니라 저희한테도요. 하긴 그게 그거지만요.”

“그리 마음을 먹었다면 한번 해 보게.”

“예, 그런데 용두방주가 또 보통 놈은 아니잖습니까? 아무래도 끗발 좋은 고수를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를 말함인가?”

“얼마 전, 본교를 떠난 이들 중에 굉장한 고수 하나가 섞여 있지 않습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호요성이 문서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났다.

그대로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뭔가 말하고 싶은 게 남아 있는 듯 호요성이 주춤거리며 나가길 망설였다.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할 말이 있는가.”

“저…… 교주님.”

“말하게.”

“좀 뜬금없기는 합니다만.”

호요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부디 만수무강하셔야 합니다.”

느닷없이 하는 인사가 그의 말마따나 상당히 뜬금없다. 천하의 이천상조차 이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끔뻑거렸다.

“……알았네.”

“예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일 또 보고하러 오겠습니다!”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동의 말투 같다. 후다닥 대전을 나서는 호요성의 발걸음에 생기가 그득했다.

닫힌 대전의 문을 바라보던 이천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본교에는 참으로 별종들이 많군.”

하기야 남들보다 뛰어난, 결이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자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상식과는 한참 떨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

이천상이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무심한 그의 눈에 작은 피로가 어렸다.

“충분히 만수무강했지.”

* * *

“소교주님.”

“…….”

“소교주님?”

“엉? 어어, 불렀냐?”

“예. 이것을…….”

“아, 고맙다. 잘 끓였네. 이거 사슴 고기냐?”

“그렇습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고깃국이냐.”

서량이 허겁지겁 국을 먹었다.

마동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흘 전, 철혈성주와의 대담 이후 소교주님께서 왠지 좀 달라지신 것 같다.

‘괜찮으시겠지.’

예전에도 몇 번씩 저런 모습을 보여 주시지 않았던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스스로 이겨 내셨다.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역시나 서량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마동필이었다.

고깃국을 입 안에 부어 넣으며 서량은 생각했다.

‘그냥 악몽일 뿐이야. 애초에 난 그런 거 신경 쓰는 놈도 아니었잖아.’

이게 소위 말하는 예지몽 같은 거라도 상관없다. 정말 이것이 예지몽이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만들면 그뿐이었다.

그에게는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나를 믿고 이 녀석들을 믿는다. 공야치를 믿고 신교를 믿는다.

내 뒤를 받쳐 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걱정할 필요 없다. 어? 살점 크네.’

열심히 고기를 씹는 서량의 눈빛에 점점 활기가 차올랐다.

‘이 녀석들을 걱정하는 건 오히려 얘넬 무시하는 거지. 이놈들도 어디 가면 천재 소리 듣는 놈들인데. 오? 동필이 이 자식, 나름 챙겨 줬네. 크다.’

후루룩하더니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 버렸다. 마동필이 물었다.

“한 그릇 더 드시겠습니까?”

서량이 여상린을 힐끔거렸다.

여상린은 정신없이 국을 퍼먹고 있었다. 그릇까지 씹어 먹을 기세였다.

“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

“……아, 예.”

“진짜 신기하지 않냐. 저 얇디얇은 허리에 어떻게 저 많은 양이 다 들어갈 수 있는 걸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야, 저게?”

“저는 그냥 내려놨습니다.”

여상린이 고개를 들어 서량과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손을 저었다.

“먹어, 먹어.”

“흣.”

여상린이 다시 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서량이 앵화를 바라보았다. 앵화는 무엇이 걸리는지 고깃국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네? 아, 아니요! 그냥…….”

“마음에 안 드냐?”

“절대로요! 그런 게 아니라…….”

앵화가 우물쭈물 말했다.

“그냥 향신료를 좀 더 챙겨 오면 좋았을 걸 싶어서요.”

“마음에 안 드는 거 맞구먼, 뭘.”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저는 그냥…… 아쉬워서…….”

“노숙 중에 이 정도면 흔치 않은 성찬이야.”

“네에.”

그래도 아쉽긴 아쉬운 모양이다. 맛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뭔가 좀 더 그럴싸한 요리를 해 보고 싶은 것 같았다.

마동필도, 여상린도 그리고 앵화도 일전과 똑같다. 여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 여유 부리는 건 안 좋지만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일행이 옹기종기 모였다.

“반나절쯤 더 이동하면 광목림이 나오겠군.”

“그렇습니다.”

“공야치는 언제 온다고 했지?”

“사시(巳時)가 다 지났으니 곧 올 겁니다. 정오 전에 마지막 확인을 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렇구만.”

그때, 서쪽 인근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동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척을 낸 사람은 바로 공야치였다.

서량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벌써 여기까지 오셨군요.”

“나는 댁이 더 신기해. 대체 어떤 샛길로 다니길래 여기저기 신속하게 가로지를 수 있는 거냐?”

“본문 기밀입니다.”

“어련하시겠어.”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지? 그새 얼굴이 완전히 삭아 버렸는데?”

여상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보기론 공야치의 얼굴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원체 무뚝뚝한 표정의 소유자다 보니 뭐가 다른지 살펴보기도 힘들었다.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공야치가 한숨을 쉬었다.

“제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말씀을 드리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개방이 움직였습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개방이?”

“예.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저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요.”

“그럼 꽤 큰 문제 아냐?”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개방은 개방이더군요.

상당히 조직적으로 조사를 해 오는데 그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한테 말해 줘 봤자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군.”

“예.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언제가 되었든 알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해결해 줄 순 없지만,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알고 있지.”

“예?”

공야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량이 엄지로 남쪽을 가리켰다.

“하오문은 의천맹과 척을 졌다. 대신에 본교가 뒤를 봐주고 있잖아?”

“……!”

공야치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천마신교가……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계약 관계 아니었어?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지. 하오문 덕에 내가 편하게 이 난장을 치고 있는 거 아냐?”

“그, 그렇지만…….”

“막말로 하오문을 도와주는 게 날 돕는 거고, 날 돕는 건 본교를 돕는 거야. 결국 돌고 도는 관계라는 거지.”

공야치는 한 번도 이런 식의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간의 습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오문은 언제나 무언가를 해 주는 쪽이었지, 받는 쪽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무언가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돈이었다. 고객과의 철저한 계약으로 정보를 팔고 돈을 버는 것이 그들의 사업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호 군사도 하오문의 사정을 알고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 조막만 한 머리로 천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분석하고 기억하는 인간이거든.”

“…….”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 보도록 하자고.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있어 봐. 거 사람 참, 진즉에 말할 것이지.”

“그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 아니래도.”

서량이 손뼉을 쳤다.

“됐고, 이제 일 얘기나 하자. 저쪽 정보는 다 가져왔지?”

“예!”

공야치의 얼굴이 밝아졌다.

반면 서량의 얼굴은 점점 살벌하게 변해 갔다.

“이제 뱀 대가리 놈들을 어떻게 구워 먹을지나 의논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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