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273화 (273/774)

273화. 마(魔)에 종착지는 없다 (3)

“해서, 그렇게 하면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허헛, 자네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하구먼.”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세파(世波)를 어중간하게 겪어 본 자들의 어설픈 자기 위로에 불과할 뿐이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뭐 하러 세고 있겠는가.”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겠지요.”

“정녕 끝까지 가 볼 생각이신가?”

“아시겠지만,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어디 자네 하나뿐이겠는가. 저 마교의 교주도 그럴 것이고, 철혈성의 주인 놈도 욕심은 많네.

자네가 이리 나서면 결국 또 한 번 세상이 시끄러워질 걸세.”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강 노선배께서도 원하시는 바 아닙니까?”

“원하지는 않지만 살 만해지기야 하겠지.”

“그거면 되었습니다. 목적이 일치하니 다시 한번 달려 보시지요. 예전처럼 말입니다.”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구먼. 한데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종주의 엉덩이가 가벼우면 문파의 격이 떨어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저는 정파 무림 연맹의 수장아닙니까. 경거망동해서는 아니 되지요.”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먼. 수틀리면 체면도 잊고 날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

“어쨌든 알겠네. 그리하면 되는 겐가?”

“그렇습니다.”

“하오문이라…… 쥐새끼들을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다만 잠시 그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정도면 됩니다. 용두방주가 제대로 괴롭히고 있으니, 신호를 주면 바로 움직여 주십시오. 금방일 겁니다.”

“알았네. 아, 그나저나.”

“……?”

“근래 남궁(南宮)이 제법 시끄럽다고 하던데,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흐음, 천룡과 기 싸움을 하고 있다던데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안휘에 들러서…….”

“노선배님.”

“……?”

“부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알겠네. 내가 괜한 참견을 한 모양이군.”

“그럼.”

“나중에 보세.”

* * *

“남궁?”

“그렇습니다.”

서량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남궁세가라…… 골치 아픈 놈들이 끼었군.”

남궁세가는 대대로 오대세가의 수장 역할을 담당했던 가문이었다.

실제로 가문의 세력이 가장 강한지는 알 수 없다. 가문마다 제각기 숨겨 놓은 힘이 있을 테니까.

다만 세인들은 언제나 남궁세가를 오대세가 중 최고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남궁세가의 이명이 바로 천하제일검가(天下第一劍家)였다.

“저도 오늘 아침까지는 몰랐습니다. 사실 동선을 보고 추측한 것일 뿐, 십 할 확신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근데 궁금하네. 왜 남궁이 천룡궁을? 어떻게 보면 동맹 세력 아냐? 의천맹이 삼궁과 손을 잡았는데.”

“아시다시피 의천맹은 연맹체입니다. 같은 연맹체라도 철혈성과는 성격이 다르지요.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런저런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

잠시 고심하던 서량이 앵화를 바라보았다.

“앵화야.”

“네, 소교주님!”

“근처에서 요리 연습 좀 하고 있을래?”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마동필도, 공야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앵화와 여상린은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네! 돌아오실 때쯤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을 거예요!”

“좋아.”

현재 광목림에는 천룡궁의 고위급 무사들과 남궁세가가 대치 중이라 하였다.

어지간하면 함께 가도 되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앵화는 떼어 놓고 가겠다는 뜻이다.

서량이 공야치에게 말했다.

“이 근처에 하오문의 안가가 있나?”

“물론입니다. 다만 이전처럼 편안하거나 극도로 안전하진 않습니다.”

“괜찮아.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마동필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교주님.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천룡을 잡으실 겁니까?”

“문답무용 생사결을 벌일 순 없다만, 싹 잡아다가 새외로 보내 버릴 생각은 하고 있다. 말 안 들으면 몇 놈 제대로 조져야겠지.”

“하면 대치하고 있다는 남궁 측은 어찌……?”

“못 본 체하면 지나칠 것이요, 괜스레 시비라도 건다면야…….”

서량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밟아야지.”

“알겠습니다.”

마동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상린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남궁을 밟겠다고요?”

“그럼 어째? 다짜고짜 시비 트는데 그걸 그냥 놔둘 수도 없잖냐.”

“아니, 그렇기야 한데…… 이제 본모습을 숨기지도 않으실 거잖아요?”

“당연하지.”

“무조건 싸움이 나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그럴 확률이 낮다고 보는데?”

“왜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생각이란 게 있으면 감히 신교의 소교주한테 함부로 덤비겠냐. 나중에 뒤에서 쑤시려 든다면 모를까, 앞에서 대놓고 칼질은 못 하지.”

“그것도 그러네요.”

“그나저나 넌 어떻게 할래?”

“뭐가요?”

“같이 가서 조져 볼래, 아니면 앵화랑 있을래?”

여상린이 씩 웃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판에 빠지면 섭하죠. 앵화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앵화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언니가 소교주님과 함께 가 주시는 게 저로선 더 안심이에요. 언니는 강하잖아요.”

“내가 어디 가서 밀리는 편은 아닌데, 이 양반들 앞에서는 감히 그런 말 못 하겠더라.”

“그래도요.”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면 이쪽이야 감사하지. 네 빙공은 여러모로 도움이 크게 되거든.”

“뭐, 그리 말씀해 주신다면야.”

서량이 손뼉을 쳤다.

“자, 움직이자.”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무운을 빕니다.”

“소문낼 준비나 하고 있어.”

자리를 뜨려던 서량이 순간 멈칫했다.

그가 살왕기차를 돌아보았다.

잠시 후.

“들고 가시는 겁니까?”

“응.”

서량이 검은 천에 싸인 천마도를 보란 듯이 어깨에 걸쳤다.

“혹시 모르니까.”

한 시진 뒤.

“와, 안휘에 이런 숲이 있었어? 장난 아닌데요?”

여상린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숲을 둘러보았다.

마동필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티는 내지 않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거목들을 보며 꽤 감탄하는 듯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숲도 아닌데 이렇게 큰 나무들이 촘촘하게 들어섰다는 게 놀랍습니다.”

땅속으로 파고들어야 마땅할 뿌리들이 땅 위로도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그냥 헤치고 나아가면 되는 일반 숲과 달리, 가끔 돌아서 가야 하는 이유였다.

“역시 중원 땅은 놀랍다니까. 하얗기만 한 북해와는 차원이 달라. 얼추 다 봤다, 싶으면 또 새로운 곳이 튀어나온단 말이야. 안 그래요, 소교주님?”

“…….”

“소교주님?”

“응? 어어, 왜?”

“왜 그렇게 멍하세요?”

“멍하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서량의 얼굴은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진짜로군.’

분명 꿈에서 봤던 그 숲이었다. 나무의 질감, 크기, 밀집 정도까지 확실했다.

완연한 가을인데도 한여름의 숲처럼 싱그러운 나뭇잎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동필의 말마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숲도 아닌데, 참으로 신기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개꿈에 불과할 뿐이다. 괜한 걱정에 사로잡혔다가는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크게 심호흡을 한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웃음이었다.

“숲이 크긴 크다. 뱀 대가리 놈들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 확인 좀 해 볼까?”

서량이 눈을 감고 기감을 증폭했다.

사아아아악.

무형의 진기가 끝 간 데 모르고 퍼져 나간다.

‘반경이 넓어졌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군림마황기 덕분이군.’

무공이란 것이, 꼭 열(十)에 열(十)을 더한다고 스물(二十)이 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구유마공을 익힌 상태에서 군림마황기까지 익혔다고 무공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무공에 신경을 쏟지 않으면 퇴보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공을 깊게 익히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서량의 그릇은 구유마공과 군림마황기, 두 절대마공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이득은 전부 챙길 수 있었다.

‘음?’

서량이 눈을 떴다.

“걸렸어요?”

“여기서 십 리 정도 되는 거리야.”

여상린은 혀를 내둘렀다. 이토록 우거진 숲에서 십 리나 떨어진 곳의 기감을 읽어 냈단다.

사방에서 새들이 짹짹거려서 시끄럽기도 오죽이나 시끄러운 곳인데.

“그런데 천룡은 아닌 것 같다.”

“네?”

“무섭도록 정련된 예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검기.”

서량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남궁이다.”

“진짜로 이곳에 있었군요. 대체 여기서 뭣들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마동필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량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파아악!

순식간에 쏘아져 나간 서량의 뒤로 마동필과 여상린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투둑! 투두둑!

굵고 탄력적인 나뭇가지를 쳐 내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서량은 능숙하게 나뭇가지를 부러트리고 베어 냈다. 그것도 오직 왼손 수도(手刀)로만.

서량의 뒤를 따르던 여상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좀 다른데?’

평소의 서량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왠지 경직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흐음.’

원체 알아서 잘하는 위인이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괜찮겠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박.

일행이 걸음을 멈추었다.

“알아챘군. 높아진 기의 밀도가 이쪽을 향하고 있어. 경계하고 있는 게 분명해.”

마동필의 눈이 깊어지고, 여상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량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동필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굳이 억누르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가자.”

쿠구구궁!!

서량의 몸에서 강력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구유마공이 개방되며 무시무시한 기파가 사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서량을 보던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평소 건들거리던 특유의 몸짓은 사라지고, 등과 어깨를 쫙 편 채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서량의 모습은 가히 일국의 대장군을 보는 듯했다.

‘더 강해지셨다?’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지금 마동필의 경지로 서량의 성장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지셨다는 건 분명했다. 기존의 마기보다 더 깊고 풍성한 느낌, 금강야차마공이 저도 모르게 개방될 정도였다.

‘끊임없이 변화하시는구나. 중원에 나오시고도.’

이제는 놀라는 것도 지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콰아앙!

일행 앞, 삼십 장 거리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궁!

동시에 두 그루의 거목이 쓰러졌다. 쓰러진 거목이 또 다른 나무를 부쉈고, 부서진 나무는 다시 그 옆의 거목에 상처를 냈다.

화아아악.

훅 끼쳐 드는 숲의 공기, 그리고 기파.

“어떤 고인이시기에 이리도 흉악한 기를 뿜어내시는지 모르겠소. 정체를 밝히시오.”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다. 쓰러진 거목 뒤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가만히 쓰러진 거목을 보던 서량이 왼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시뻘건 마기가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쿠구궁!

거목이 들썩였다. 그리도 무거운 나무가 제멋대로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정체를 물어볼 땐 본인 낯짝도 까야 하는 법이지.”

서량이 왼손을 꽉 쥐었다.

콰드드드득!

부러진 거목이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뒤로, 경악한 얼굴의 중년 사내가 보였다.

“여어, 거기 계셨구만.”

서량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남궁가주라……? 거물이 납셨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