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마(魔)에 종착지는 없다 (5)
쩌르르릉!!
“캬핫! 고작 그게 전부인가!”
“닥쳐!”
콰드득!
괴이한 소리와 함께 검사 한 명의 두개골이 부서졌다. 시뻘건 선혈과 연한 분홍빛의 뇌수가 진득하게 쏟아졌다.
끔찍한 죽음.
섬영조장(閃影組長) 남궁대산(南宮大山)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이 악마 같은 놈!”
파아아앙!
단숨에 거리를 좁혀 검을 내친다. 중원 특유의 날렵한 패검(佩劍)이 아닌 더 굵고 긴 철검이었다.
“제법!”
귀기 어린 목소리가 짧은 칭찬을 내뱉었다.
차아아앙!
“컥!”
답답한 신음이 절로 튀어나온다.
‘엄청난 힘이다!’
빼빼 마른 손에서 뿜어지는 경력이 천근의 무게를 자랑한다. 힘없어 보이는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의 투로가 대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욱.
맥없어 보이는 보행인데 어느새 코앞까지 도착해 있다. 허깨비 같은 신법이었다.
남궁대산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올려 쳤다.
쩡!
검이 뚝 부러져 버렸다.
남궁가에서 생산하는 의정검(義正劍)은 백련정강(百鍊精鋼)보다 단단하고 탄성이 넘친다. 거기에 절정고수의 내력까지 실었는데도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부러져 버린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검(破劍) 이후에 즉살의 공격이 날아온다. 길쭉하고 검붉은 손톱이 단숨에 남궁대산의 목을 노렸다.
‘끝인가.’
쐐애애액! 퍼어억!
남궁대산의 목에 길쭉한 자상이 새겨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남궁대산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던 마른 팔이 옆으로 축 늘어졌다. 그 팔에는 또 다른 의정검이 꽂혀 있었다.
“헉헉! 조장님, 괜찮으십니까?!”
“성연!”
부조장 남궁성연의 참전이었다. 지독한 내상으로 얼굴이 창백했지만, 어떻게든 조장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비검술(飛劍術)을 펼친 것이다.
“크아앗! 벌레 같은 것들이 끈질기기가 바퀴벌레 같구나!”
파악!
자기 팔을 관통한 검을 단숨에 뽑아 버린다.
그러고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흉소를 흘리는 표정도 그대로요, 뿜어져 나오는 음험한 기파에도 한 점 출렁임이 없었다.
살기 어린 눈으로 괴인(怪人)을 노려보던 두 사람의 얼굴이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두둑! 우두둑!
힘줄을 끊고 근육까지 파열시킨 검격.
당연히 불구가 되어야 정상인데, 검에 관통당한 팔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상처 대부분이 회복되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전히 피범벅이지만 검격을 맞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치이이익.
괴인의 몸에서 한층 강한 사기가 뿜어졌다.
“과연 남궁이 남다르긴 하구나. 가주 놈 성격이 그리도 물렁하다고 하더니만, 밑의 것들은 용케 잘 키웠어.”
“이놈! 감히 가주님을!”
“닥치고 이만 죽어라!”
괴인이 쌍장을 휘둘렀다. 이전의 허깨비 같은 동작이 아닌 강한 탄력이 살아 있는 움직임이었다.
파아앙!
허공을 격하고 뿜어지는 막강한 장력.
육신에 닿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장법의 위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장력에 깃든 사기 때문에 그렇다. 사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공기가 텁텁해질 정도였다.
“으아압!”
부러진 검을 휘두르는 남궁대산, 남궁가의 절학 천풍장(天風掌)으로 마주쳐 오는 남궁성연.
콰아앙!
“컥!”
남궁대산이 그 자리에서 벌러덩 쓰러져 버렸다.
‘빌어먹을!’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일순간 팔다리가 마비될 정도로 장력의 위력이 강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런!’
음험한 경력이 단숨에 체내로 침투해 오고 있었다. 그 속도와 파괴력이 이제껏 경험해 본 어떤 무공보다 뛰어나고 괴이했다.
창궁심법(蒼穹心法)의 내력으로도 속도만 늦췄을 뿐, 침투경 자체를 와해시킬 순 없었다.
그때, 남궁대산이 옆을 돌아보았다.
주르르륵.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선 남궁성연의 코와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연!”
한 차례 부르르 떨던 남궁성연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죽은 것이다.
“이…… 이!”
충격적인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푸스스스스.
쓰러진 남궁성연의 몸에서 누런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시신이 빠른 속도로 부패되었다. 살점이 썩어 문드러지고 뼈가 조각났으며, 정광 넘치던 눈빛이 매력적이었던 두 눈은 움푹 꺼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썩은 이후엔 더 이상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끔찍해 보인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뼈만 남는 법이야.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이곳의 나무들도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닥쳐라.”
남궁대산이 몸을 일으켰다.
끊임없이 내상을 유발하는 침투경에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극에 이른 분노가 고통을 억눌렀다.
어차피 죽을 목숨, 최소한 적의 팔 하나는 가져가야 성에 차는 것이다.
괴인이 히죽 웃었다.
“하나같이 신체가 건장하니 멋진 양분이 되겠다! 영양가가 높은 몸이야!”
“이익!”
우우우웅.
남궁대산의 몸에서 푸르른 기운이 피어올랐다.
깊은 내상을 입었음에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진기를 피워 낸다. 목숨을 걸고 기를 끌어 올리는 것이다.
“죽인다!”
파아앙!
창궁신법을 이용,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침투경을 막던 기까지 끌어왔기에 속도가 무척 빨랐다.
하지만 괴인은 여유만만이었다.
빠각!
남궁대산의 몸이 튕겨 나가 쓰러졌다. 발길질에 턱을 맞은 것이다.
‘진정 끝이로구나.’
통나무도 부러트릴 일격이었다.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남궁대산의 몸을 시커먼 그림자가 잠식했다.
“킬킬! 이렇게 건장한 놈은 또 오랜만이다! 역시 남궁을 선택하길 잘했어!”
괴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고통 없이 죽여 주마!”
그 순간이었다.
‘……?’
길쭉하게 찢어진 괴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어?’
단숨에 흉부를 박살 내 죽일 생각이었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칭칭 옭아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힘을 써서 내리치려 했지만, 마비가 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설마 허공섭물(虛空攝物)?!
그때, 한 줄기 차가운 목소리가 괴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목숨만 붙여 놔.”
파아아악!
잠잠했던 기도가 일순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마기가 삽시간에 일대를 뒤덮었다. 북방명왕 비사문천의 힘을 담은 금빛 마기의 해일이었다.
“헉!”
마기가 풍겨 나옴과 동시에 팔이 움직였다.
하지만 괴인은 남궁대산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를 공격하는 순간 몸이 두 쪽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아아악!
순식간에 이 장 앞으로 도약한 괴인이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오른팔이 날아갔다. 어깨부터 잘려 나간 팔이 바닥에 떨어지며 꿈틀거렸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절로 튀어나오려 했다. 찢어지고 뚫린 정도라면 모를까,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으니 재생(再生)을 시킬 수도 없다.
‘위?!’
괴인이 남은 왼손을 휘둘렀다. 목표는 정수리 위 상단이었다.
훅.
‘……!!’
늦었다.
머리 위에서 팔을 끊어 낸 한 검객은 어느새 괴인의 전면 삼 보 앞에 나타나 있었다.
‘빠르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이었다.
금빛 마기를 머금은 흑색 장검이 무자비한 난격(亂擊)을 퍼부었다.
파바바바박!
“크아아악!”
비로소 괴인의 입에서도 비명이 튀어나왔다.
내장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상체에 이십여 개의 검상을 만들어 놓았다. 반의반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검법,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검술이었다.
풀썩!
괴인이 무릎을 꿇었다.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퍼어어억!
흑색 장검을 든 검객, 마동필의 발이 괴인의 턱을 올려 찼다. 강력한 힘이 담긴 발길질에 괴인의 아래턱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이 정도 위력이면 목숨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괴인의 각법은 통나무도 손쉽게 분질러 버리지만, 마동필의 각법은 바위도 우습게 박살 낸다. 인간의 몸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풀썩!
몇 바퀴나 굴러간 괴인이 풀썩 쓰러졌다. 그러고도 움찔거리는 걸 보니 다행히 목숨줄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크으윽.”
괴인이 어떻게든 상체를 세우려 들었다.
그때, 큼직한 발 하나가 그의 상체를 밟았다.
퍼억!
“아아악!”
난자된 상처를 흙 묻은 발로 밟아 버린다. 괴인은 끔찍한 고통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앞으로 그가 당할 고난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양반이었다.
“흐음, 이건 뭐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것이 참으로 묘하구만?”
장난스러운 어조에 실린 나른한 목소리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일그러진 눈으로 자신을 밟은 자를 올려다본 괴인.
순간 그의 동공이 무섭도록 조여졌다.
번쩍!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쌍의 시뻘건 안광과 마주친 괴인의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 버렸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투명한 붉은 마기가 해를 가리고 목기(木氣)를 잡아먹었다. 앞선 금빛 마기도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의 붉은 마기는 또 달랐다.
차원이 다른 공포를 전해 주는 포식자의 기도.
“얼씨구? 이것 봐라? 상처가 또 금세 아물어 버린다?”
“누, 누구……?”
콰득!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부러졌던 턱뼈가 다시 붙었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으스러져 버렸다.
붉은 눈이 살짝 휘어졌다. 웃고 있는 것이다.
“다시 회복시켜 봐.”
우둑. 우두둑.
놀랍게도 아래턱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회복력이었다.
“호오? 신기한데? 어디.”
빠각!
아래턱이 또 부서졌다. 괴인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부서진 턱은 또다시 슬금슬금 회복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괴물 같은 회복력이 괴인의 고통을 극대화했다.
끔찍한 행위의 연속이요, 신통한 회복의 반복이었다.
“허! 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그때,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사신목공(黑砂神木功).”
“흑사…… 뭐?”
“천룡궁의 칠대신공 중 하나예요. 하지만 절대 저 정도 회복력은 보일 수가 없는데? 저건 완전히 허구의 기담(奇談)에나 나올 법한 강시 수준이잖아요?”
“강시라…… 아닌 게 아니라 네 말이 맞네. 이 정도면 강시 저리 가라야. 뭐, 넘쳐흐르는 생기(生氣)를 보면 진짜 강시는 아니겠지만.”
붉은 눈의 광인, 서량이 히죽 웃었다.
“하지만 난 네놈이 강시인지 아닌지보단 네 친구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가 더 궁금해.”
강시는 죽일 수 있지만 도망친 놈들은 죽일 수 없으니까.
굴강한 손이 괴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후욱.
너무나도 쉽게 들어 올려진다. 숨이 막힌 괴인이 몸부림을 쳤지만 서량의 팔은 미동도 없었다.
“이이익!”
“턱주가리 벌써 회복해 놨나?”
“이, 이놈!”
괴인의 왼손이 그대로 서량의 우측 얼굴을 후려쳤다.
퍼어어엉!
“……흐음. 짭짤한 맛이군.”
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량이 얼굴을 이리저리 털어 댔다. 그게 끝이었다. 어떠한 상처도, 충격도 없어 보였다.
일격으로 절정고수의 몸도 날려 버릴 공격이, 서량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사공(邪功)이기 때문이다. 천하제일마공을 익힌 서량에게, 이 정도 사공은 위협이 될 수가 없었다.
“한 번만 더 뺨 날리면 나도 싸대기 갈길 줄 알아. 알았나?”
“……!!”
“어디 있어, 네 강시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