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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77화 (277/774)

277화. 마(魔)의 개척지 (2)

느닷없는 폭발이었지만 서량은 놀라지 않았다.

후우우우웅!

시커먼 연기, 그리고 샛노란 사기가 엄청난 속도로 사방을 집어삼키려 들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치이이이익!

어느새 서량의 몸 주변으로 거대한 구(球)가 형성되었다. 군림마황기로 만든 기막으로, 검기조차 차단할 만큼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진기의 방벽이었다.

덕분에 터진 괴인의 살점도, 뼛조각도, 지독한 연기와 사기도 서량 일행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우웅! 우우웅!

서서히 작아지는 진기의 구.

어느새 서량의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아진 구가 노랗다 못해 은은한 청록빛을 띠었다.

“제법 갑작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서량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퍼엉!

진기의 구가 폭발하며 사기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괴인의 살점과 뼛조각까지도.

“차라리 폭죽이 더 나을 뻔했어.”

화르르르륵!

서량의 손에서 시퍼런 귀화(鬼火)가 번뜩였다.

이천상이 피워 낸 소천겁화의 수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림마황기를 이용한 삼매진화는 분명했다.

욕계문까지 개방했으니, 이천상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소천겁화의 극양지공(極陽之功)을 쓰는 날이 머지않았을 것이다.

“소교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서량은 대답 없이 여인을 노려보았다.

여인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썩어서 너덜거리는 살점이 쩌저적 갈라졌다. 그야말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놀랍구…….”

퍼어어어엉!

여인의 몸이 산산이 조각났다. 서량의 벽력권이 만들어 낸 참상이었다.

후두두둑.

썩은 살점과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자.”

두 남녀가 얼떨떨한 얼굴로 서량을 보았다.

“환영이다.”

“화, 환영이요?”

“실제에 근접한 환영이지. 환영에 생기(生氣)까지 불어넣었으니 그 노력과 기술만큼은 인정해 줘야겠군.”

마동필이 혀를 내둘렀다. 초절정에 이른 그조차도 눈앞의 여인이 환영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살문(殺門)에서도 이와 비슷한 걸 가르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마음의 빈틈이 생기면 그 틈을 이용해서 환각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거지.”

“그, 그렇군요.”

“별로 놀라운 건 아니야. 한번 익숙해지기만 하면 파훼하기 어렵지 않다.”

담담하게 말하는 서량.

다소 불경하지만, 마동필은 서량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종류의 환상진은 익숙해지기도 어려울뿐더러, 익숙해진다고 쉬이 파훼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대체 이런 경험은 어디서……?!’

왜일까?

근래 소교주님은 어쩐지 이전과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저 느낌에 가까웠다.

조금은 감당하기 어렵고, 한편으론 무척이나 친근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요즘은 선뜻 말 한마디 붙이기가 어려웠다.

이전에는 그냥 넘겨도 상관없었던 것들이, 요즘은 하나하나 신경이 쓰인다.

‘아니, 소교주님께선 변하지 않으셨다. 변했으면 내가 변했겠지.’

마동필은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서량이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푸스스스.

땅에 발이 닿은 곳을 기점으로 숲의 경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곳은 광목림 안이었다. 다만 샛길로 빠지도록 환상미로진(幻想迷路陣)이 둘러쳐졌을 뿐이었다.

진짜는 바로 이것이었다.

“구덩이?”

그들 앞에 장정 서넛은 한 번에 들어가도 될 법한 큼지막한 구덩이가 뚫려 있었다.

어떻게 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래를 들여다봐도 끝이 없는 어둠만 가득한 것이, 그 깊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선 놀랍도록 깊은 목기(木氣)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로구만.”

서량이 여상린을 보았다.

여상린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나?”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풍문으로 들은 적은 있죠.”

“뭔데?”

“칠요집전술(七曜集戰術)이요.”

“그게 뭐야?”

“천룡궁의 칠대신공은 제각기 수목화토금(水木火土金)의 오행(五行)과 일월(日月)의 음양(陰陽)을 딴 무공들이에요.

하지만 오행이든 음양이든,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무공은 반드시 파탄이 나게 마련이죠.”

“그렇지.”

얼핏 생각하면 여상린의 빙공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빙궁의 빙공이나 신교의 열양공은 그 결이 다르다.

두 무공은 모두 절기(絶技)라 불릴 만한 것들로, 기본이 탄탄한 무공들이었다.

치우치지 않은 바탕을 밑거름 삼아, 그중 특색 있는 기(氣)를 살려 장점을 만드는 식이라고 봐야 했다.

천룡궁의 칠대신공은 달랐다.

정확히는, 일월을 제외한 오대신공들은 뿌리부터 편중된 기를 불살라 만든 무공들이었다.

그래서 마공 못지않은 연성 속도를 지니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벽에 부딪혀 성장에 방해가 된다.

심할 경우 주화입마에도 빠질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천룡궁의 오대신공은 마기를 뿜지 않는 마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장의 벽을 막고 파탄을 억누르는 기술을 칠요집전술이라고 해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런 환경을 만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런가?”

“네.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로는, 단순히 벽을 뚫는 걸 넘어서 최적의 전투장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시던데요.”

서량은 다시 한번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흑사신목공은 무공 이름만 들어도 오행 중 목기(木氣)에 해당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구덩이 안에서는 엄청난 농도의 목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기를 바탕으로 한 무공을 익힌 자가 이런 곳에서 싸운다면 필경 실력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방에서 넘쳐흐르는 기(氣)가 내공심법의 성취를 올리니 힘과 속도, 내력의 이동 속도까지 증가할 것이다.

“뭐, 별거 있겠어? 일단 내려가…….”

순간 서량은 멈칫했다.

무작정 내려가려던 그의 발걸음을 붙든 것은 일전에 겪었던 악몽이었다. 마동필과 여상린, 앵화가 끔찍하게 죽은 그 악몽이 그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설마.’

천마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에 미세한 망설임이 깃들었다.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그 악몽은 분명 심상치가 않았어.’

게다가 동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열 번, 스무 번 되짚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을. 고작 불안감을 떨쳐 내려고 이 녀석들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건 지나치게 치졸한 짓이야.’

서량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긴장하자. 나보다 강한 놈은 없을지라도, 나보다 위험한 놈들은 있을지도 몰라. 항상 그걸 염두에 둬야지.’

우우우우웅.

몸 안에서 군림마황기가 은은하게 진동했다.

‘들어가라.’

치이이익.

청색 마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붉은 마기가 치솟았다. 구유마공이 개방된 것이다.

구유마공을 끌어 올리자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욕계문이 닫히고, 지옥문이 열려서 그렇다. 무공의 다름을 넘어 인지력까지 달라졌다.

물론 서량은 욕계문이란 걸 잘 몰랐지만, 그 미세한 차이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흐릿하다. 최소한 백이 넘는 고수가 포진해 있어.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불명이다. 목기가 너무 강렬해서 고수들의 인기척까지 흐려 놓았어.’

번쩍!

그가 눈을 떴다.

“동필.”

“예, 소교주님.”

“너는 이곳을 지켜라. 내가 놓친 자가 이 구덩이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혹시 모를 적들이 출현하면 오롯이 네 몫이야. 모조리 참(斬)해라.”

두 사람의 눈빛이 삽시간에 교환되었다.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 쏙 빼놓고 가겠다는데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저 흉흉한 붉은 안광이 그런 믿음을 주었다.

“명을 받듭니다.”

“좋아.”

서량이 여상린을 보았다.

여상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리 말하지만 고맙다, 미안하다, 뭐 그런 말 마세요. 난 재미있어서 따라…….”

“뭔 소리야. 넌 무조건 따라와.”

“……인성 뭐예요?”

“시끄러.”

여상린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녀 역시 서량의 미세한 변화를 느꼈던 모양인지 얼굴에 한층 여유가 생겼다.

스르륵.

어깨에 걸친 천마도를 내린 서량.

구덩이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 찬란한 마기가 어렸다.

“붙어.”

여상린이 서량의 몸통을 안았다. 신법에서 비교조차 안 된다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상린의 허리를 단단히 붙든 서량이 탁탁 발을 굴렀다.

“가자.”

팍!

두 사람이 그대로 구덩이로 떨어졌다.

휘이이이잉!

엄청난 바람이 두 사람을 찢어 버릴 기세로 불어닥쳤다.

서량의 마안(魔眼)이 더더욱 형형해졌다.

‘굉장하군.’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두 사람.

상당히 깊이 내려왔음에도 끝이 어디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구덩이를 팠는지 모르겠다.

그때였다.

‘기망(氣網)?!’

우우우우웅!!

서량의 왼팔 전체에 붉은 마기가 일렁였다. 그가 벽에 팔을 박아 넣었다.

콰드드드드드득!!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여상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괜찮……?”

“입 열지 마! 혀 깨문다!”

콰드드드득! 툭!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멈추었다.

여상린이 이마를 훔쳤다.

“휴우, 간만에 염통 쫄깃해졌네요. 근데 왼팔 안 아프세요?”

“…….”

“잉? 소교주님?”

“역시 알고 있었군.”

“네?”

구덩이 밑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놈들, 우리가 내려오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야…… 그렇겠죠. 그 환영 비슷한 걸 보면 저쪽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러네?

서량은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그 당연한 걸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군림마황기 때문인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원하게 붙는 수밖에 없겠군.”

“당연히 그럴 줄 알고 따라왔는데요.”

“…….”

“천룡궁하고 좀 얽힌 게 있어서 그래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서량이 벽에 박아 넣은 왼팔에 폭산경을 터트렸다.

콰아앙!

강렬한 폭발과 함께 두 사람이 다시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이잉!

기괴한 소리와 함께 샛노란 사기가 치솟는 게 보였다.

서량이 여상린을 위로 던졌다.

후웅!

허공에 떠오른 그녀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서량의 허공섭물이 그녀를 공중에 띄운 것이다.

동시에 그의 몸이 사기의 폭풍과 부딪쳤다.

콰콰쾅!!

“크아악!”

“으아아악!”

핏빛 비명이 터져 나온다. 무자비하게 내리친 벽력권에 사기가 모조리 증발하고, 천룡의 무사 십여 명이 피떡이 되었다.

콰앙!

서량의 두 발이 바닥을 찍었다.

‘빌어먹을.’

발목부터 무릎, 고관절 전부가 삐걱거리는 기분이었다.

일격에 전멸시키기 위해 발산한 내공과 여상린을 허공에 띄워 두기 위해 발산한 내공 때문에 신체에 오는 부담이 엄청났다.

하지만 괜찮다. 궁극에 이른 육체가 치미는 고통과 부담을 빠른 속도로 없애 주었다.

서량 정도의 고수가 아니었다면 이 절묘한 습격에 무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기적절하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후우우웅.

여상린의 몸이 부드럽게 바닥에 안착했다.

“이, 이럴 수가?!”

어둠 속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량의 붉은 안광, 여상린의 하얀 안광이 동시에 번뜩였다.

“여기 있었구만, 이 두더지 새끼들!”

“대, 대사제(大司祭)님께 알려라! 적습이다!”

“시끄러워!!”

파지지직! 콰르릉!

붉은빛 전격의 폭풍을 일으키는 서량, 새하얀 얼음 폭풍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여상린.

순식간에 전면으로 치고 나가는 두 사람의 무공은 눈이 부실 만큼 대단했다.

어둠 속에서 공격해 오는 무사들이 많았지만, 벽력권의 뇌광(雷光)과 빙혼수(氷魂手)의 백광(白光) 덕에 시야가 활짝 트였다.

콰드득! 퍼어어엉!

두 사람이 구덩이로 들어온 지 촌각도 지나지 않아 지하 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진격하는 두 남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귀로 듣지 않아도 지하에 모인 이들이 명백한 적이라는 걸 살의만으로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고민 없이 살수를 가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빛이다!’

저 멀리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인위적인 빛, 야명주(夜明珠)가 뿜어내는 빛이었다.

파아아앙!

속도를 올린 두 사람이 이내 광장에 도달했다.

“……!”

여상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량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것들, 아주 본격적으로 난장을 치고 있었군.”

광장 중앙에서부터 흘러나온 핏물이 사방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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