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마(魔)의 개척지 (4)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싸움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격렬한.’
구덩이 안쪽에서부터 온갖 비명과 난잡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량과 여상린의 공세에 적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는 나야.’
앞서 보았던 괴인 같은 자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괴인보다 훨씬 기괴하고 강한 무인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예측 못 할 적의 병력을 막아야 했다. 없다면 다행이지만, 있다면 절대 들여보내선 안 된다.
마동필의 왼손이 묵왕검을 꾹 쥐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
마동필의 고개가 후방으로 휙 돌아갔다.
후방 저 멀리서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일전, 남궁대산을 구할 때 상대했던 괴인과 같은 부류다. 불길한 예상이 결국 들어맞은 것이다.
마동필이 강한 진각을 발했다.
쿠웅!
낮은 자세,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가오는 적을 노려본다.
‘강하다.’
놀랍게도, 접근하는 괴인들의 기파는 앞서 보았던 괴인보다 수준이 높았다. 게다가 그 숫자만 다섯이다. 상대하기 쉽지 않은 전력이었다.
‘절대로 못 들어간다.’
과거, 강철 같은 육체와 절정고수 못지않은 전투력을 선보이던 혈랑들과 대치했을 때.
그는 혈랑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혈랑의 전투력이 예상외로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혈랑 못지않은 기괴한 놈들이 또다시 지켜야 할 것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되는 것이다.
“캬앗!”
인간 같지 않은 괴성을 내지르며 마구 달려드는 다섯 괴인.
마동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차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검음(劍音)이었다. 강철의 발검, 구중마검세의 일초인 일검사비세(一劍死飛勢)가 펼쳐진 것이다.
쿠구구궁!
흑사신목공의 장력, 암목괴장(暗木塊掌)과 마주한 검격이 무서운 진동을 발했다.
‘벅차군.’
다섯 장력을 일검에 막아 냈다. 하지만 그 충격이 손목과 팔꿈치, 어깨에까지 치닫고 있었다.
극에 이른 절정고수 다섯의 힘을 막기란 마동필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파파팡!
짧고 탄력적인 보법으로 단숨에 괴인 한 명의 전면에 선 마동필이 그대로 검을 올려 쳤다.
촤아아악!
“크아아아!”
우측 복부부터 좌측 쇄골까지.
사선으로 갈라 낸 검격이 그 어느 때보다도 흉포한 살기를 뿜어 댔다. 괴인의 몸에서 시뻘건 선혈이 솟구쳤다.
퍼퍼퍼펑!
좌우에서 쏟아지는 사이한 장력.
어느새 마동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치고 들어간 보법만큼 탄력적인 후방 이동으로 공격을 피해 낸 그가 다시 한번 마공을 끌어 올렸다.
구중마검세의 이초, 쌍천검포세(雙天劍捕勢)였다.
푸화아아악!
그의 좌우에 선 괴인들의 몸에 수십 개의 검흔이 새겨졌다.
막강한 검력으로 적을 사로잡기 위한 초식이지만 마동필은 힘을 제어하지 않았다.
무자비한 검격에 양옆의 괴인들이 쓰러지자, 멀쩡한 괴인 둘이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묵왕검과 괴인들의 수공이 부딪쳤다.
쩌저정!
귀청을 떨쳐 울리는 쇳소리가 사위를 휩쓸었다. 강력한 충격파에 거목 한 그루의 표면이 거칠게 갈려 나갔다.
번쩍!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괴인 둘과의 승부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어느새 세 명의 괴인이 재차 달려들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던 괴인보다 월등한 회복력, 벌써 상체의 검상이 대부분 아물어 있었다.
쾅!
진각으로 검권(劍圈)을 넓힌 그가 삼절인화세(三絶刃畵勢), 사뢰속검세(四雷速劍勢), 오룡교각세(五龍咬角勢)까지의 연환검을 풀어 냈다.
퍼퍼퍼퍽! 푸화아악!
“크악!”
“카아악!”
새된 비명을 토해 낸 괴인들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다섯 모두 신체가 검상으로 난자되어 있었다.
난검(亂劍)과 쾌검(快劍), 강검(强劍)의 검초를 연달아 맞았으니, 회복력이 좋은 그들이라도 주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동필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퍼어어억!
어느새 괴인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간 마동필. 높은 허공에 괴인 둘의 머리통이 떠올랐다.
폭발적인 주행으로 검압(劍壓)을 증폭해 절단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사람의 목이 아닌 강철이라도 일검에 양단할 무시무시한 살법이었다.
“이, 이놈!”
줄곧 괴상한 비명만 질러 대더니, 드디어 말문이 트인 모양이었다.
파아앙!
순식간에 구덩이 앞에 선 마동필이 재차 묵왕검을 중단에 세웠다. 언제, 어느 때라도 공방이 가능한 중도(中道)의 자세였다.
그때였다.
파바바박!
저 멀리서 또 다른 사기(邪氣)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와 유사한 괴인들이 또 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걱정 없다.
호법원을 나와 서량의 호위무사가 된 지금에서야 진정한 호법(護法)의 모습을 보여 주는 그였다.
극한의 무공과 적당한 여유, 완벽한 방어로 어떠한 위협도 놓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신교의 모든 호법이 보고 배워야 할 모범과도 같았다.
후우우우웅.
금강야차마공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마동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안으론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지잉! 지이이잉!
묵왕검에서 짙은 마기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 * *
“이년!”
콰아앙!
달려온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가는 여상린.
하지만 괜찮다. 공격을 흘려 보내 피해를 최소화하니, 빙혼수의 한기가 아직도 양손에 가득했다.
“합!”
쾅!
땅을 디딘 발이 일곱 치나 되는 고랑을 만들어 냈다.
사방으로 한기를 뿜어내며 돌진하는 여상린의 속도가 실로 놀라웠다. 한기를 발산하는 걸 제외한 내공 전부를 속도에 쏟아부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대사제의 앞에 다다른 그녀가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여상린의 몸이 뒤흔들렸다.
하지만 괜찮다. 그녀가 익힌 내공심법은 흑사신목공보다 명백히 위였다.
기공전(氣功戰)이라면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근접 박투술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녀의 두 주먹이 연달아 질러졌다.
파파파팡!
대사제의 양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여상린의 권법은 그녀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속도가 빠르고 타점이 절묘했다. 가볍게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후웅.
몇 차례의 공방 끝에, 대사제의 장이 여상린의 명치를 향해 질러졌다.
음험하고 묵직한 일격이었다. 아무리 여상린이 박투술에 능하다 해도 근본적인 경지의 차이를 메울 순 없었다.
여상린의 몸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콰앙!
‘큭!’
비틀거리며 물러난 여상린의 입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빌어먹을 년! 북천괴성의 핏줄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우우우웅.
대사제의 몸에서 샛노란 사기가 뿜어졌다.
내상을 감수하고 접근하려던 여상린이 주춤했다. 순식간에 기공의 벽을 쌓아 올리는데 섣불리 치고 들어갔다간 세 합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제길!’
대사제는 기공과 사술(邪術)에 능한 고수였다. 거리를 벌리지 않고 압박하려 했는데, 너무도 쉽게 거리를 내주었다.
“이 기회에 사지를 찢어 죽여 주마!”
예측 불가의 위협인 서량보다 한 번 본 적도 없는 여상린에게 더욱 적의를 불태운다. 빙궁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가 엿보였다.
대사제가 손을 뻗었다.
콰드드득! 콰득!
여상린의 주위에서 굵은 나뭇가지들이 땅을 비집고 솟아났다.
의도는 명백했다. 단숨에 꿰뚫어 죽일 셈이었다.
창날처럼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들이 단숨에 여상린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쾅!
나뭇가지들이 여상린이 서 있던 자리에 박혀 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후웁!”
가지 사이를 통과한 그녀가 두툼한 나뭇가지 하나를 밟고 섰다. 나뭇가지가 미처 쏘아지기도 전에 움직여서 겨우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우웅!
여상린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대사제의 암목괴장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콰아앙!
“컥!”
훨훨 날아간 여상린이 벽에 맞고 튕겨 나왔다.
관절 곳곳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빙백기(氷魄氣)로 막아 냈지만, 충격이 너무 강했다.
혈목신기로 힘을 얻기 전에도 대사제는 초절정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고수였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망할 년! 빙백을 이었구나!”
대사제가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힘으로는 날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오죽하시겠어?
여상린은 그렇게 툴툴거리고 싶었다.
‘제길! 얼마나 더 버텨야 돼?!’
후우우웅!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대사제가 다시 한번 장력을 발출한 것이다.
콰아앙!
여상린의 몸이 다시 한번 튕겨 나갔다.
대사제는 기가 막혔다. 이번에도 여상린이 자신의 장력을 대부분 피해 낸 듯했다.
“개 같은!”
그때였다.
‘……?!’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낼 요량으로 흑사신목공을 끌어 올리던 대사제는 순간 온몸이 덜컥 멈추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부들거리던 여상린이 씨익 웃었다.
“빨리 좀 하시지. 너 이제 좆 됐어, 이년아.”
대사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번쩍! 콰아아앙! 화르르르륵!
한 줄기 붉은빛이 번뜩이자 핏빛 혈목들이 모조리 박살 나 흩어졌다. 흩어진 혈목의 파편은 몽땅 불에 타 스러졌다.
빛줄기가 다시 한번 번뜩였다.
번쩍! 콰르르릉!
이전보다 한층 정교해지고, 훨씬 위력적인 무공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화기를 머금은 도기의 폭풍이 목령귀 삼십 구를 그 자리에서 증발시켰다.
그렇다. 그것은 증발이었다.
살점 하나,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일격이었다.
서량의 몸이 움직였다.
퍼어어어엉!
공기를 터트리며 나아가는 육신이 마병에 압력을 더했다. 자흑색 칼날이 세상을 가를 기세로 휘둘러졌다.
번쩍! 사아아아악!
몇 장 밖에 떨어져 있던 목령귀 이십 구의 육신이 그대로 동강 났다.
마치 거인이 휘두르는 칼날 같았다. 목령귀가 아닌 누구라도 이 일격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화르르르륵!
동경처럼 맑은 천마도의 도신(刀身)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꽃의 색은 어둡고 음산했다. 검붉은 화염에 둘러싸인 천마도가 또 하나의 마신(魔神)이라도 되는 듯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자아냈다.
“오래 기다렸지?”
조금은 억눌린 듯한 목소리.
실제로 서량은 상당히 무리하고 있었다.
천마도를 둘러싼 시커먼 천 안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부적 수십 개가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천마도의 진정한 힘을 감추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공으로 천을 불태우고, 천마도에 진기를 주입하자마자 말도 안 되게 맹렬한 마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단순한 마기의 발출만으로 땅에 균열이 갈 만큼 엄청난 증폭도였다. 제어하지 않고 무공을 구사하면 이곳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거센 힘이었다.
‘빌어먹을! 이거 어떻게 되어 먹은 칼이야?!’
심지어 놓을 수도 없었다. 마치 더 강한 힘을 달라는 듯, 도병이 손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속전속결을 위해 뽑아 든 것인데, 파괴력이 너무 강해서 더욱 신경을 쏟아야 했다.
‘어쩔 수 없지.’
서량이 남은 목령귀를 힐끔거렸다.
움찔!
열 구의 목령귀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공포를 모른다는 그들이 서량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대사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사제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전까지는 대적하기 힘든 고수였지만, 지금은 막을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애초에 싸울 생각을 말고 도망부터 쳤어야 했다.
콰아앙!
서량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대사제가 본능적으로 몸을 물렸다. 하지만 서량의 신법은 그녀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퍼어어어억!
“꺄아아아악!!”
그녀의 우측 쇄골을 뚫은 천마도가 그대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벽에 고정된 대사제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조금은 힘에 부친 듯한 얼굴이었지만 보람도 가득해 보였다.
“이렇게 쉬운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