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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80화 (280/774)

280화. 마(魔)의 개척지 (5)

“후욱! 후욱!”

황금빛 동공이 명멸을 반복했다.

파아악!

주춤거리던 목령귀 하나가 기습적으로 돌진했다.

측후방에서의 공격, 피하기도 막기도 힘들다. 하지만 마동필은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묵왕검을 휘둘렀다.

서걱!

목령귀의 몸이 사선으로 동강 났다.

목정의 대사제, 천룡궁의 칠대호법 중 하나가 개방시킨 혈목신기로 내력이 엄청나게 증폭된 상태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면서도 마동필의 검격은 자비 없는 위력을 발했다.

“후우!”

조금 흐트러졌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일정한 호흡.

‘된다.’

목령귀 두 구가 움직였다.

마동필의 몸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드럽게 이동했다.

퍼어어억!

도끼처럼 찍어 내는 검격이었다. 살벌한 검격에 두 목령귀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척추가 끊어져 버렸다.

‘된다!’

찬란하게 불타는 안광. 자욱한 마기를 풍기는 마검.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 아래, 절제된 환희를 머금은 황금빛 마안(魔眼)이 점차 진한 색을 발했다.

금강야차마공이 극성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내기(內氣)와 외기(外氣)가 동조하여 검력(劍力)이 극대화되고, 절묘한 탈력(脫力)으로 긴장과 여유를 동시에 품었다.

자연스럽고도 자연스럽다. 위압감이 넘친다거나 살기를 발산하지도 않는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를 보는 듯했다.

움찔!

그런데도 목령귀들은 그저 주춤거릴 뿐, 마동필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검하고혼(劍下孤魂)이 된 동료들의 수가 벌써 열일곱이 넘었다. 아직 열셋이 남았지만, 덤벼든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바로 이것이구나.’

지켜야 할 대상인 서량.

그러한 서량을 보며 무공을 연마하다 보니 여기까지 성장한 그였다.

한없이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던 귀인(貴人)인데, 어느새 이겨 보고 싶었고 동시에 동경하였다. 그는 서량을 닮고 싶었다.

더 이상은 아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불사의 괴물들을 상대하며, 비로소 마동필은 자신이 이룬 위치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경지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완벽하게 인지(認知)한 지금, 마동필의 무공은 또 한 번 도약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콰르릉!

묵왕검에 황금빛 마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전보다 훨씬 진하고 강렬해 보이는 형태였다. 무아지경에 든 마동필의 마기가 묵왕검이 피워 내는 마기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치솟는 전의(戰意), 터져 나가는 웅심.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마동필의 가슴을 타고 올라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오라!”

광목림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사자후.

명령과도 같은 호쾌한 외침이었다. 지금껏 주춤거리기 바빴던 열셋의 목령귀들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양, 동시에 마동필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악!

사방에서 달려드는 목령귀.

‘보인다. 느껴져.’

시야에 잡히지 않는 후방, 측방까지도 전부 인지가 된다. 그들의 호흡과 기(氣)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심장 박동과 혈관의 수축 정도, 근육의 경직도와 탄력까지 모조리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지도.

검병을 강하게 쥔 그가 마공의 출력을 최고조로 올릴 때였다.

금화(金火)에 휩싸인 묵왕검이 구덩이 안쪽에서 흘러나온 천마기(天魔氣)를 포착했다.

번쩍! 콰르르릉!

원형으로 퍼져 나간 금광(金光)이 목령귀를 휩쓸었다.

강력한 육체를 자랑하던 목령귀 전원의 몸뚱이가 수십 조각으로 찢겨 사방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르릉! 퍼퍼퍼펑!!

금광은 목령귀를 전멸시킨 것도 모자라 반경 십여 장 안에 있는 거목들까지 모조리 파괴했다.

부서지고 터져 나간 나무들, 개중에는 뿌리째 뽑혀 나간 나무도 있었다.

무지막지한 압력에 날아간 나무가 그 뒤의 나무들을 쓰러트리고, 쓰러진 나무들이 대지에 강한 충격을 주며 지진 같은 충격을 일으켰다.

쿠구구궁!

자욱한 먼지가 올라왔다.

자신이 만든 파괴의 장(場)을 보면서도 마동필은 놀라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어떠한 것도 놀랍지 않았다.

그가 묵왕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이것이 너의 진짜 모습이구나.”

어두운 흑색 검신(劍身)을 자랑했던 묵왕검.

검병의 겉면이 부서져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매끈한 본체가 드러났다.

이제 보니, 검신부터 검병까지 전부 같은 재질이었다. 칼받이와 탄성 좋은 목재가 덧씌워져 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묵왕(默王)은 곧 침묵의 왕이라는 의미다.

묵왕검은 더 이상 침묵의 검이 아니었다. 당대 누구도 깨우지 못한 절대마검을 비로소 마동필이 깨웠다.

서량의 마기와 천마도의 마력이 촉매제가 되어 주었지만, 진력을 끌어낸 것은 순전히 마동필의 의지 덕분이다.

화아아악!

검신에서 뿜어지는 마기의 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진정한 주인을 만난 마검이 기쁨에 울부짖는 듯했다.

강호십대마검이자 신교오대마검에 꼽히는 묵왕검.

하지만 묵왕검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으니, 실상 강호십대마검이란 호칭은 구대마검으로 바뀌어야 옳았고,

신교오대마검이란 호칭 역시 사대마검으로 바뀌어야 했다.

흑혈마검(黑血魔劍).

적의 피를 마실수록 마기가 증폭된다는 불길한 검이었다. 이 검을 쥔 자, 자격을 얻지 못하면 누구도 정신이 온전치 못할 것이다.

검의 광기(狂氣)로는 천하제일이 분명할 것이라는 절대마검이 비로소 기지개를 켠 순간이었다.

* * *

“음?”

서량이 지나온 통로를 힐끔거렸다.

‘동필인가?’

마동필의 마기가 금속성의 마기와 동조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증폭된 마기로 인해 순간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묵왕검의 마기다. 엄청난 증폭도야.’

서량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깨웠군.’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동필이 묵왕검의 진체(眞體)를 깨운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그것을 깨울 만큼 급박한 상황이란 뜻도 된다.

즉,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대사제가 마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통에 찬 발버둥은 점차 약해져만 갔다. 근육을 뚫고 뼈를 조각낸 천마도의 마기가 그녀의 사기(邪氣)를 뿌리부터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다. 슬슬 끝내도록 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천마도의 마력 증폭을 억누르기 위해 내공을 소모하고 있었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

서량의 주먹이 대사제의 머리통을 갈기려는 순간.

“크흐흐, 늦었어.”

“음?”

“용신을 향한 의식은 너희가 침입하던 때에 끝이 났다. 내 후계가 빠져나갔으니, 더는 미련이 없다.”

대사제의 일그러진 눈매에 일말의 안도가 깃들었다. 이룰 것을 모두 이룬 자의 후련함이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곧 네 후계도 잡을 테니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광목림 안에 있는 한, 그리고 내 후계가 혈목신기를 흡수한 이상 누구도 녀석을 잡을 순…….”

치이이익!

순간 대사제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놀란 것은 서량도 마찬가지였다. 내공으로 억지하던 천마도의 마기가 무서운 속도로 힘을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지? 분명 구유마공으로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때, 남은 목령귀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윽!”

“꺼어억…….”

심장 부근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던 목령귀들이 이내 하나둘씩 털썩 쓰러져 버렸다.

사아아아악!

그들의 몸에서 희뿌연 황색 사기가 뿜어졌다.

의지로 내공을 발산하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기(氣)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명력과도 같았던 흑사신목공의 사기가 모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스스스.

대사제의 의지대로 움직였던 나뭇가지들도 점차 생기를 잃어 갔다. 정확히는, 그 안에 깃들어 있던 혈목신기가 빠져나가면서 시들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껏 사방에 가득하던 혈목신기가 왜 사라지고 있는가.

그 이유가 곧 밝혀졌다.

후우우우웅!

“끄르륵.”

대사제의 얼굴에 시퍼런 핏줄이 돋아났다.

코피가 흐르고 입가에 거품이 일었다. 덜덜 떨리는 그녀의 전신에서 강력한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기는 천마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헉!’

서량이 이를 악물었다.

천마도의 마기가 무서운 속도로 증폭되고 있었다.

극마의 고수가 온 힘을 다해 억누르는데도 팽창을 멈추지 않던 마병이,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화르르륵!

매끄러운 도신(刀身)에 다시 검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끄아아아!”

대사제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불타올랐다. 사기가 빨려 나간 그녀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그 주름들은 초고온의 불길에 따라 점차 녹아들고, 이내 타들어 갔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화형(火刑)이야말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이라 하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대사제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푸스스스!

시커멓게 타들어 간 대사제의 몸이 툭툭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업보였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그 피로 사공(邪功)의 성취를 올리려 했던 자의 말로였다.

하지만 서량은 대사제의 죽음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소교주님!”

“이익!”

천마도를 양손으로 쥔 그가 마공의 출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콰르르릉!

도신이 꽂혀 있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천마도의 화력과 구유마공의 마기가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한 것이다.

후우우우웅!

자흑색 칼날이 이내 선명한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빨아들인다?!’

그렇다.

이곳 전체에 흐르고 있던 혈목신기가 천마도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기를 빨아먹은 천마도는 그것을 마기로 정제한 후 더 강한 힘을 축적하고 있었다.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흡정(吸精)의 공능이었다. 무한한 파괴력을 가진 절대마병의 힘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의문이 듦과 동시에 해소가 된다.

극에 이르지 않는 한, 사기(邪氣)는 마기에 종속된다. 혈목신기는 천하에 다시없을 농도를 보여 주고 있었으나 선천(先天)의 영역을 넘보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힘이 해방된 천마도는 마치 배고픈 거인 마냥 혈목신기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여 균형을 이루려 했다.

혈목신기라는 외기(外氣)를 끌어들여 선천마기인 이천상의 내기(內氣)를 제어하려는 것이다.

‘이런 젠장!!’

문제는 서량에게 이 엄청난 힘을 다스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천상이 직접 제련한 칼이다. 이천상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누구도 천마도를 제어할 수 없다.

그리고 제어가 되지 않은 천마도는, 균형이 맞춰지기 전까지 말도 안 되는 파괴를 저지를 것이다.

‘이런 건 진즉에 말을 해 줬어야지!’

속전속결로 끝내려다가 재앙을 불러일으킨 격이다.

‘어떻게 하지?’

천마도는 그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힘을 불리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혈목신기의 농도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방법이 없는가? 이대로 끝인가?

순간 서량의 눈이 빛났다.

‘아니다, 방법은 있어.’

이천상이 말하길, 애초에 고위의 마공은 흡기(吸氣)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칼이 아니라 내가 빨아들이면 된다.’

그에겐 흡성대법, 흡정마공 같은 무공이 없다.

그러나 천마도를 통해서라면 가능하다.

천마도는 구유마기와 연결되어 있는바, 혈목신기를 칼날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면 이 미칠 듯한 파괴도 멈출 것이다.

‘그릇은.’

우우우웅!!

서량의 핏빛 안광이 어느새 푸른 안광으로 바뀌었다.

‘군림마황기로.’

후욱!

혈목신기가 천마도를 매개로, 서량의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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