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마(魔)의 극치 (1)
“대산! 괜찮으냐?”
공석에서 직함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그만큼 남궁단이 놀랐다는 뜻이리라.
“쿨럭! 괘, 괜찮습니다.”
남궁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 허망함이 담겼다.
“이 무슨……!”
섬영조의 조원들이 몽땅 죽어 있었다.
섬영조의 척후 능력은 발군이다.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않아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싸웠다는 것은 차마 빠져나올 수 없는 전장이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직접 왔어야 했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천룡궁의 전력을 완전히 잘못 파악했다.
이를 악문 남궁단이 품에서 내상약을 꺼냈다.
“네 상세가 지나치게 위태롭구나. 당장 이동조차 쉽지 않겠어. 일단 이것을 먹고 운기하거라. 뇌왕단주가 네 운기를 도울 것이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궁대산은 남궁단이 준 내상약을 먹고 곧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남궁단이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토화된 대지. 살벌한 공방을 주고받은 흔적이 역력했다.
남궁단은 눈을 감았다.
‘모자란 가주를 만나 죽지 말아야 할 곳에서 죽었구나. 날 원망하거라.’
이들 중 남궁씨(南宮氏)는 남궁대산을 합쳐 셋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인(家人)들을 대함에 있어 성씨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모두가 제 사람이니, 그들 모두를 자신이 책임졌어야 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헙!”
“흐읍!”
남궁의 검사들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헛숨을 삼켰다.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마기?!’
저 동쪽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마기가 실로 엄청났다.
가히 파멸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압력이었다. 거리가 제법 떨어졌을 것이 분명한데도 창궁무애진기(蒼穹無涯眞氣)가 마구 날뛰려고 했다.
‘엄청나구나! 설마 서 소교의?!’
아니다.
이 마기는 서량이 풍기던 그 흉악한 기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절제되고 단단한, 강철을 연상케 하는 마기였다.
‘하면 그 검사의?’
남궁단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감탄이 떠올랐다.
‘엄청나다. 나에 비해도 손색이 없어. 그리 젊어 보였거늘, 신교에는 인재가 많기도 하다.’
마인의 힘이 강한 것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풍기는 힘이 너무 인상적이라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쿠구구궁!
광목림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증폭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전의 마기가 강철이라면 지금의 마기는 만년한철(萬年寒鐵)이다. 어둡고 강한, 그러면서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이 사위를 휩쓸고 있었다.
남궁단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의 기는 이전처럼 감탄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전신에 소름이 오싹 올라왔다.
‘사람의 기가 아니다.’
그 검사의 기가 섞여 있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그자의 마기는 아니었다.
훨씬 더 깊고 울림이 강한 마기. 하지만 거기에 생기(生氣)는 없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 금기(金氣)가 묻어 나왔다.
‘마병?!’
소교주가 들고 있던 천으로 감싸인 병기도, 검사의 병기도 심상치 않은 마병이었다. 그 마병 중 하나가 뿜어내는 힘이 분명했다.
‘대체 어떤 마병이기에…….’
그때였다.
콰콰콰쾅!
“헉!”
“크윽!”
무식하리만치 요란한 굉음과 함께 또 다른 마기가 퍼져 나왔다.
‘……!!’
저도 모르게 창천검(蒼天劍)을 움켜쥔 남궁단.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쾅! 콰르르릉!
광목림 전체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게 맹렬한 마기가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늘을 찢을 듯 솟구치는 무자비한 마력이 숲 전체를 불태울 기세로 번져 나갔다.
“이, 이런!”
지금껏 이런 기(氣)를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앞서 퍼졌던 마기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지워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초절정고수인 남궁단조차 순간적으로 공포에 빠질 정도였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검사들이 한참이나 뒤로 물러서 있었다. 의기천추(義氣千秋)의 기치를 걸고 백전을 거듭했던 검사들이 무의식적으로 겁을 먹고 물러난 것이다.
남궁단은 그들을 책잡을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하다.’
마치 아버지의 전력을 보는 듯했다. 아니, 아버지의 충천검기(衝天劍氣)조차 이에 비하면 어딘가 모자라 보일 듯했다.
힘의 집결에선 비등하지만 힘의 크기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그 말인즉, 천하십대고수급의 고수가 최대의 힘을 방출했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두고 봐선 안 되겠군.’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남궁단이 외쳤다.
“전원 이곳에서 대기하라!”
남궁화가 다급히 다가왔다.
“아버지! 어디…….”
파아아앙!
남궁단은 대답도 없이 달려 나갔다.
안휘일절, 천풍신법(天風身法)이 펼쳐졌다. 빽빽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쏜살같이 지나치며 나아가는 남궁단의 모습은 한 줄기 바람과도 같았다.
‘강하다!’
마기가 뿜어지는 곳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압력이 강해졌다. 전신 관절이 삐걱거리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남궁단의 몸에서 푸른 광채가 뿜어졌다.
구름 갠 하늘처럼 맑은 진기였다. 남궁세가 비전 신공, 창천무애신공이 발현된 것이다.
치익.
신공을 개방하니 압력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마기에 충격을 받았던 것인지, 상단전의 희미한 얼룩도 깨끗하게 씻겨 날아갔다.
‘굉장하구나.’
신공을 완전히 개방했는데도 압력이 느껴졌다. 못해도 오십 장 거리는 되는 듯한데 신법의 속도가 느려지는 듯했다. 그만큼 압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쿠구구궁!
순간 자세가 흔들려 넘어질 뻔했다. 간헐적으로 대지진에 준하는 충격이 광목림 전체를 휩쓸고 있었다.
남궁단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파아아앙!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을 전개했다. 마기의 발산지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잠시 후.
남궁단이 멈춰 선 순간, 땅이 무너져 내렸다.
콰콰쾅! 쿠구궁!
지반이 붕괴하며 굵은 거목들이 마구 엉켜 쓰러지는 모습은 장관 아닌 장관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그때, 남궁단의 시야에 마동필이 포착되었다.
마동필의 얼굴에 급박함이 묻어 나왔다. 당장이라도 무너지는 지반 밑으로 몸을 날릴 기세였다.
파아아악!
단숨에 달려 나간 남궁단이 마동필의 어깨를 붙들었다.
순간 마동필의 주먹이 움직였다. 본능적인 대처였다.
파아앙! 퍽!
남궁단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손으로 마동필의 주먹을 막았지만, 그 힘이 굉장했다. 힘이 조금만 모자랐어도 손목이 나갔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마동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당신은?”
“물러섭시다!”
“그럴 수 없소! 저곳에 소교주님이……!”
그때였다.
번쩍!
검붉은 화염이 충천의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퍼어어엉!
화염의 충격파가 대단했다. 만근의 무게로 떨어져 내리는 거목들이 무수한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엄청난 기력(氣力)이었다.
파아앙!
불꽃을 헤치고 두 남녀가 뛰어올랐다.
파아악!
그대로 날아오르는 서량과 달리, 여상린은 중간에서 튕겨 나왔다. 서량이 튕겨 낸 건지 스스로 이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큭!”
땅을 구른 여상린이 비틀거렸다.
마동필이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 소저! 괜찮소?”
“끄으응! 그런대로요.”
어지러운 듯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던 여상린의 얼굴이 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지금 제가 문제가 아니에요! 소교주님이……!”
후아앙!
하늘 높이 치솟던 불꽃이 어느새 뚝 끊겨 버렸다.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것 같던 서량의 몸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잠깐의 체공.
그다음은 하강이다.
파라라라락!
서량이 걸친 장포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하강하는 속도가 엄청났다. 허공답보를 펼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서량의 몸이 세 사람의 후방, 지반이 무너지지 않은 숲으로 떨어졌다.
“소교주님!”
콰아앙!
강한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서량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십여 그루의 거목들이 부러지며 충격을 더했다.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공의 방벽을 세워 두었다. 지기(地氣)와 충돌한 마기가 충격파를 발생시킨 거야.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런 힘이……!’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파아아앙!
마동필과 여상린보다 더 빨리 달려 나간 그였다. 순식간에 서량 앞까지 다가간 그가 창천검을 뽑았다.
차아아아앙!
검을 뽑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파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패기와 웅혼한 검기가 남궁단의 몸 주변을 감쌌다.
“서 소교!”
“크으으윽!”
치이이익!
역수로 쥔 천마도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졌다.
불꽃의 형태는 아니었다. 구결로 운용되지 않은 순수한 마기가 가시 영역으로 구현될 정도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웅! 우웅! 우우웅!
미친 듯이 떨리는 천마도. 하지만 이전처럼 마기를 파괴적으로 방출하진 않았다.
문제는 서량이었다.
“크아악!”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비명까지 지른다. 부르르 떨리는 몸에서도 시뻘건 기운이 새어 나왔다.
구유마공의 마기가 아니었다. 정제되지 않은 혈목신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서량의 단전이 제아무리 방대하다 한들, 진법으로 구축한 대량의 목기(木氣)를 전부 수용할 수는 없었다.
절정의 무공을 구사하던 목령귀를 백 구가 넘도록 만들어 내고도 풍성하게 흐를 만큼 목기의 양이 많지 않았던가.
치이이이익!
붉은 연기가 갈수록 짙어졌다.
수용하지 못한 기가 끊임없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놀랍게도, 빠져나온 기는 일전보다 사기의 농도가 훨씬 옅어져 있었다.
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양의 사기를 빨아들이면서도, 순간순간 마기로 정제하여 ‘군림마황기’의 크기를 불려 가고 있었다.
서량이 무사한 까닭이었다. 혈목신기를 압축한 마기를 구유마공으로 담았다면 지금쯤 몸이 터져 버렸을 것이다.
군림마황기는 크고 강하다.
구유마공은 깊고 질기다.
특질이 다른 두 마공 중, 성취가 좀 더 미약한 마공을 혈목신기를 이용해 성장시킨다.
그 깨달음이, 성취가 서량의 목숨을 살림과 동시에 고통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우두둑!
서량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기가 너무 거대해서 육신이 파괴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목숨이?!’
남궁단은 서량의 상태를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마기와 상극인 신기(神氣)를 궁극의 영역까지 익혔기에, 현재 마기의 증폭 정도를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보던 남궁단.
‘……별수 없구나.’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던 그가 다시 눈을 떴다.
번쩍!
찬란한 안광을 빛내던 남궁단이 창천검을 중단으로 들어 서량에게 겨누었다.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우우우웅!
창천검의 검신(劍身)이 순청(純靑)으로 물들었다.
파아앙!
마동필이 말릴 새도 없이 뛰쳐나간 남궁단이 창천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고고한 검신, 웅혼한 검력에 실린 의지.
남궁단의 아버지이자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였던 검왕(劍王)의 깨달음이 녹아든 심인상인(心印傷人)의 검도, 심인도(心刃道)가 펼쳐졌다.
번쩍!
사선으로 내리그어진 검력에, 뿜어져 나오던 사기가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끊임없이 서량을 괴롭혔던 사기의 사슬을 절단해 버린 것이다.
“허억!”
고개를 쳐든 서량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르르르륵.
팔방으로 치닫던 마기가 그의 몸에 빠른 속도로 흡수되었다.
털썩!
서량이 쓰러졌다.
남궁단이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곤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