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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87화 (287/774)

287화. 마(魔)의 극치 (7)

“덕분에 편하게 잡았소. 감사하오.”

“별말씀을.”

전평의 시신을 보는 공야치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복잡해 보였다.

가만히 그를 보던 양정이 툭 던지듯 물었다.

“저 거지대장과 악연이 있었던 모양이오.”

“그렇습니다.”

“……혹, 복수를 해야 할 만큼 깊은 원한이오?”

“그렇습니다.”

양정이 한숨을 쉬었다.

“복수의 대상을 왜 우리에게 넘겼소? 사정을 알았다면 군사도 결코 강행하지 않았을 텐데.”

“저희 하오문과 귀교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비록 전평이 소인배일지언정, 그의 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지요. 지금 잡는 게 여러모로 맞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음?”

공야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싸늘한 밤공기에 폐부가 얼어붙을 것 같았다.

“저놈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복수가 되지 않습니다. 제 복수의 끝은, 의천맹을 와해시켜 하오문이 당당하게 양지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

“거기까지 가야 제 복수가 끝납니다. 고작 이따위 소인배 목숨 하나에 아쉬워한다면, 저는 앞으로 하오문을 이끌어 나가지 못할 겁니다.”

물끄러미 공야치를 보던 양정이 미소를 지었다.

“큰 사람이군.”

“예?”

“당신은 큰 사람이오. 복수라는 마물에 매몰되어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여럿 봐 왔소. 하지만 당신은 그 이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소.”

“과찬이십니다. 그저 비루하게 살기 싫을 뿐입니다.”

조금은 공허하게 들리는 말.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성된 대기(大器)는 아니었지만, 그는 양정이 마음에 들었다.

“함께 가십시다.”

“예? 소교주님께요?”

“슬슬 뵐 때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갑시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는 동안 나와 이런저런 얘기나 나눕시다. 소교주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빙궁의 소궁주도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람이었소.

소문주도 필시 그런 사람일 것이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 보통 그리 말하더이다.”

공야치가 고소를 지었다.

“소교주님은 현재 남궁가에 계십니다.”

양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궁가? 그 남궁가 말이오?”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엔 무척 놀랐습니다만, 마 호위의 서신을 보니 제법 부드러운 관계를 쌓으신 모양입니다.”

“허어.”

양정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깃들었다.

“정파제일의 검가라면 본교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거늘…… 게다가 그곳에는 검왕이 있지 않은가.”

그때, 고구가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왜 그렇소?”

“선배께서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소교주님의 안목은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생존 본능에 있어선 가히 최고라 할 만합니다. 그분이 남궁가에 계신다는 건 남궁가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일 겁니다.”

양정이 묘한 눈으로 고구를 보았다.

“형법당주는 소교주님을 잘 알고 계시는군.”

“알 만큼만 압니다. 기실 그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분은 온 천하에 교주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구가 몸을 돌렸다.

“어쨌든 결정이 되었다면, 이만 가 보도록 할까요?”

“좋소.”

그렇게 호법원의 전대 고수 셋과 형법당주, 호법원 최정예 위사 백 명과 공야치가 남궁가로 향했다.

* * *

“경치가 좋군요.”

“그렇지?”

서량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황산의 어디인지는 모른다. 이름 없는 공터를 찾아왔으니까.

다만 주변에 별것이 없어도 충분한 매력을 뽐낸다. 그리고 그 매력은 단순히 좋은 경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기(靈氣)가 출중해.’

황산 전체에 영기가 몹시 풍부했다.

물론 고죽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황산엔 고죽림에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고죽림의 영기는 지나치게 과하여 그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십중팔구 죽는다. 초절정고수라도 일 년 이상 고죽림에 거하면 신체에 이상이 올 수 있다.

황산은 아니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영기가 돌고 돌아 산 전체에 생명력을 꽃피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영산(靈山)이라 불릴 만했다.

‘왜 금호와 호왕이 여기로 왔는지 알겠어.’

서량은 잠시 기감을 넓혔다.

단순히 마기를 운용한 게 아니라, 아직도 체내에 남은 영죽의 핵(核)을 개방한 것이다.

움찔!

서량의 눈이 동쪽으로 향했다.

‘거기에 있었구나.’

금호 역시 자신을 보는 게 느껴졌다. 한동안 구유마공과 군림마황기로 닫아 두었던 기사(氣絲)가 다시 활성화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우우우우!

저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남궁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희한한 소리일세그려. 한데 묘하군. 짐승의 울음에 어찌 이리도 풍성한 기(氣)가 묻어 나온단 말인가?”

서량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시작할까요?”

남궁언의 미소가 짙어졌다.

“자네도 몸이 달긴 달았구만.”

“천하제일검객이라 불리는 무인이 앞에 있습니다. 자제해야 할 이유가 없지요.”

“허허! 그리 말해 주니 참으로 기분이 좋군.”

스르릉.

놀랍게도 먼저 검을 뽑은 사람은 남궁언이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신검(神劍)이다.’

묵왕검 못지않은 병기였다. 검신(劍身)을 타고 흐르는 청백색 창룡(蒼龍)의 무늬가 굉장한 박력을 풍겼다.

“내 애검일세. 이름은 붙이지 않았네. 무명검(無名劍)이지.”

“이름 없는 검으로 남기에는 지나치게 대단한 검이로군요.”

“그렇지? 하지만 아직까지 어울리는 이름을 찾진 못했네.”

“조만간 멋진 이름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나도 그러고 싶네.”

서량이 역수로 쥐었던 천마도를 바로 쥐었다.

남궁언의 눈이 깊어졌다.

“아까도 봤지만 정말 대단한 병기일세. 이름이 무엇인가?”

“천마도(天魔刀)입니다. 저 역시 마땅한 이름을 찾기 힘들어서 그냥 그리 이름을 붙였습니다.”

“허허허.”

천마의 칼.

간단한 이름이지만 그 뜻은 심상치가 않았다.

천마가 만든 칼, 혹은 천마가 사용하는 칼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듣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여느 박도(朴刀)와는 다르군. 도병만 삼 척 길이에 도신이 두 자 반이라…… 군용대도(軍用大刀) 계열이야.”

우우우웅.

천마도가 도명(刀鳴)을 발했다.

마기를 싣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울림을 토해 낸다. 남궁언의 무명검을 보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듯했다.

남궁언이 손가락으로 검을 튕겼다.

지이잉. 지이이잉.

“이 녀석도 흥분한 모양일세.”

“좋군요.”

서량이 자세를 낮추었다.

“시작할까요?”

몸을 낮추고 천마도를 자연스레 뒤로 뺐다. 후방 하단세, 폭발적인 일격을 내치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반면 남궁언의 자세는 여전히 고고했다. 허리를 쭉 펴고 자연스레 검을 늘어트린 그의 모습은 한 마리 학을 연상케 했다.

“자, 어디 한번 와 보시게.”

웃으며 준비를 마친 남궁언.

서량은 대답 없이 곧바로 공격을 치고 나가려다가 움찔했다.

‘…….’

뭐지?

준비를 끝낸 남궁언의 모습은 이전과 여일(如一)했다.

그러나 서량은 쉽사리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급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차분하게 달아오른 분위기가 남궁언을 철옹성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다.’

그렇다.

서량에게 없는 것이 저 남궁언에게는 존재했다.

마치 고죽림과 황산의 차이라고 할까. .

폭발적으로 기세가 오른 것도 아니요, 신공의 순간적인 개방으로 기파가 증대된 것도 아닌데 어느새 난공불락의 검성(劍城)이 만들어졌다.

서량에게는 저러한 자연스러움이 없었다.

그의 무공은 언제나 일격필살이며, 폭발적이고 격렬했다. 경지가 오르고 강(强) 못지않은 유(柔)를 얻었지만 남궁언만큼 도도하진 않았다.

‘촘촘하게 짜인 검기의 그물. 완벽하다. 자연스러운 게 전부가 아니야.

언제 어느 때라도 최선의 공방을 펼칠 수 있도록 심(心), 신(身), 기(氣)가 일치되어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남궁언의 진면목.

그는 검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신검(神劍)의 형태였다. 공격을 가하면, 오히려 공격한 측이 베일 것 같은 무상의 예기가 함께하고 있었다.

‘……음.’

서량은 시작부터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상대의 회피 능력이 출중하든 방어 능력이 완벽하든, 그는 이제껏 선공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회피와 방어를 무산시킬 수 있을 만큼 강공(强攻)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르륵.

서량의 목덜미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다.’

이상하다.

딱히 방심한 것도 아니고, 상대의 위세에 눌린 것도 아니다. 그런 것으로 자신의 무(武)에 먹칠을 하기에는 그간 헤쳐 온 아수라장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도 쉬이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때, 남궁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움찔!

서량의 몸이 더욱 낮아졌다.

마치 감당키 힘든 사냥감을 마주한 맹수의 모습과 흡사했다. 남궁언은 그런 서량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턱대고 이빨을 들이미는 맹수가 아니야. 하지만 공격이 시작되면 천하 누구보다 거센 맹공을 쏟아붓겠지.

올바른 진퇴(進退)가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습득한 녀석이로다.’

어린 나이에 기특했고, 동시에 호승심이 일었다.

‘저런 고수와 싸워 볼 수 있다니, 이 남궁언의 운이 아직 죽지 않은 것이렷다.’

그때였다.

“후우.”

서량이 자세를 풀었다.

남궁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심인도(心刃道)의 극의는 기(氣)를 넘어 의지만으로 상대를 베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공의 궁극이라는 심검(心劍)과도 닿아 있었다.

당연히 그는 심인도를 대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형의 심인도로 상대를 제어하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심인도를 풀었나?’

아니다.

극에 이른 창궁무애신공의 진기가 아직도 서량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서량이 인지하기도 전에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선 저 기망(氣網)의 존재를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

‘한데 어찌 자세를 푼 것이지?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우우우웅.

서량의 오른발에 시뻘건 마기가 치솟았다.

어찌나 지독한 마기인지, 한순간 남궁언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서량이 강한 진각을 구사했다.

쿠웅!

이전처럼 힘을 받아 내는 게 아니라, 땅 밑으로 힘을 투과시키는 진각이었다.

지잉.

순간 그를 감싸고 돌던 창궁무애진기가 뒤흔들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절대고수의 예민한 감각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서량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남궁언의 얼굴이 굳어졌다.

‘벌써 알아챘군.’

파아아아앙!

창궁무애진기의 기망이 벗겨지면 압박감이 사라진다. 남궁언이 빛살 같은 속도로 쏘아졌다.

서량의 왼 주먹에 붉은 뇌광이 번뜩였다.

콰아앙!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서량. 하지만 남궁언은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천뢰장(天雷掌)의 위력은 벽력권을 앞섰다. 게다가 심인도로 반응 속도를 늦춰 놓았다. 서량이 밀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곧바로 치고 들어간 남궁언이 천풍권(天風拳)을 구사했다. 서량처럼 아직 병장기는 쓰지 않았다.

그때, 서량의 몸이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남궁언의 눈이 흔들렸다.

‘다리?’

느닷없이 몸을 돌려 낮추더니 허공을 향해 발을 차올려 팔뚝을 휘감으려 했다.

퍼어어엉!

길쭉한 다리가 노고수의 팔을 감기도 전에 경력이 터졌다.

하지만 서량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천마도를 땅에 꽂아 지지대로 삼고, 더 빠르게 남궁언에게 접근해 무자비한 각법을 전개했다.

콰아앙!

서량의 뒤꿈치가 땅을 부쉈다.

어느새 남궁언은 삼 장 거리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대뜸 접근전이라?”

“괴상한 수법에 저만 당할 수는 없잖습니까.”

남궁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신을 감싼 기망에 시전자까지 끌어당겨 피 튀기는 육박전을 벌이겠다는 의도였다.

지금껏 심인도를 이렇게 빨리 꿰뚫어 본 사람도, 이런 식으로 파훼하려 든 사람도 없었다.

스르르륵.

서량이 어깨를 돌렸다. 남궁언의 기망이 사라졌음을 느낀 것이다.

“잔재주로 어찌해 볼 상대는 아니라 이건가?”

“피차 마찬가지 아닙니까?”

“허허, 그렇지.”

우우우우웅.

남궁언이 서량에게 검을 겨누었다.

“맛은 충분히 봤네. 제대로 해보세.”

“바라던 바입니다.”

콰앙!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고수.

크아앙!

흉포한 범의 포효가 황산 일대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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