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마(魔)의 극치 (8)
쩌어어엉!
신검(神劍)과 마도(魔刀)의 충돌.
그 한 번의 부딪침으로 땅이 갈라지고 공기가 터져나가며, 미풍이 강풍으로 변해 휘몰아쳤다.
‘놀라운 힘이군.’
남궁언은 서량의 도격(刀擊)에 깜짝 놀랐다.
손목과 팔꿈치, 어깨를 관통한 충격이 이내 상반신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다. 폭발적인 힘, 살상력을 극대화한 일격이었다.
파파팡!
물러난 남궁언을 곧바로 따라잡는다.
고작 삼 보(三步) 만에 오 장 거리가 좁혀졌다. 무섭도록 빠르고 탄력적인 보법이었다.
천마도가 미친 듯이 허공을 갈랐다.
쩌저저정! 콰릉!
절정고수의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도검의 충격파가 공기를 찢어발겼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터져 나간 충격파에 휩쓸렸다간 극심한 내상을 입을 만큼 거센 공방이었다.
‘천생대력(天生大力)이란 이런 것이겠지. 강철처럼 단단한 육체가 격렬한 진기와 무척 잘 어울려.’
남궁언의 눈이 깊어졌다.
‘희대의 마공이 단련된 천재의 육체를 만나 꽃을 피웠다. 무서운 전투 능력이야.’
하지만 이대로 계속 공격을 받아 줄 순 없는 노릇.
쿠우웅!
진각을 밟은 남궁언이 갑작스레 몸을 틀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무자비한 맹공을 주고받는 와중에 몸을 빼냈음에도 빈틈이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보법이었다.
남궁언의 검이 서량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쩌엉!
서량의 몸이 십여 걸음이나 옆으로 물러났다.
‘싸움을 제대로 알고 있구먼.’
강력한 검격이지만 서량의 실력이라면 저리 물러나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물러난 것은 머리 때문이다. 힘으로 버틸 순 있겠지만 코앞에서 터진 충격파는 머리를 뒤흔들 것이다.
그 찰나지간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기 위해 몸을 물려 충격을 흩어 낸 것이다.
대단하다. 놀라웠다.
단순히 무공만 강한 게 아니라 백전(百戰)의 경험까지 갖춘 천고의 인재가 여기에 있다.
검왕의 아성을 구축한 자신을 뒤쫓는 천재를 보며, 남궁언의 눈빛도 점차 진지해졌다.
후우우웅!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남궁언의 몸에서 일순 하늘빛 진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신공의 완전한 개방, 창궁무애신공이 제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강하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힘.
지축을 뒤흔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파였다. 마주하는 것조차 힘에 부칠 만큼 농밀한 압력이었다.
남궁단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른 창궁무애신공은 그 자체로 감당키 힘든 살초와 같았다.
콰르릉!
상대가 진지하게 나왔다면 이쪽도 여유를 내려놓아야 한다. 서량 역시 구유마공을 개방했다.
남궁언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하늘 끝까지 치솟을 것 같은 정대한 힘 앞에, 지옥 밑바닥에서 들끓던 겁화의 마력이 치솟았다.
크르릉!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마수(魔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살기가 강하다거나 흉악하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아직 자신보다 아래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 힘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진정한 역천지학(逆天之學)이었다. 지난 세월, 여러 마인을 상대해 봤지만 이런 무공은 없었다.
“갑니다.”
퍼어어어엉!
먼저 신공을 개방한 것은 남궁언이었지만, 위협적인 공격을 가한 것은 서량이 먼저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접근한 그가 지옥풍의 일초를 풀어놓았다.
콰드드드득!
남궁언이 선 땅 주변이 무자비하게 갈려 나갔다.
‘이런 무공이?!’
철판도 찢어발길 도풍이었다. 창궁무애검법으로 막지 않았다면 무지막지한 풍압에 뼈마디가 부러졌을 것이다.
화르르륵!
어느새 부서진 땅 안쪽에서부터 막강한 열풍이 피어올랐다. 구유인화도법의 이 장 종극무간도가 펼쳐지려는 것이다.
파아아악!
무간의 불길이 치솟기 전, 남궁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빠르고 강하며 현란했다. 쾌검과 강검, 변검이 혼합된 상승의 검초였다. 창궁무애검법, 무량인망섬(無量刃網閃)이었다.
서량이 황급히 천마도를 중단으로 휘둘렀다.
콰앙!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난 서량.
‘굉장하군.’
종극무간도가 미처 펼쳐지기도 전에 공격을 당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지옥풍과 연계된 무간도의 도초는 연환식에 가까운지라, 마기의 방어를 뚫고 초식을 끊어 내는 건 누구라도 무리였다.
그걸 남궁언이 해냈다. 그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라라락!
청백색 검기가 사방천지를 메우며 쏟아졌다.
맥을 끊고 허를 찌르는 안목, 나아가 반격에 이은 압박까지.
가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러운 보법에 채찍처럼 유연한 검법이다. 회피할 곳까지도 모조리 틀어막는 노회한 검술이었다.
쾅! 콰릉! 퍼어엉!
폭음을 내며 부서지는 검력.
남궁언의 검공은 분명 강하지만, 힘에서는 서량이 앞선다. 어려운 공식이 튀어나오면 풀지 않고 찢어발긴다.
“역시!”
굉장한 젊은이였다.
세상에 패력강공(覇力强攻)을 중시한 무공이 많다지만 저처럼 막강한 공격력을 뽐내는 무공은 또 없을 것이다.
최선의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고는 해도 창궁검을 마주 공격해 상쇄시켜 버린 놈은 처음이었다.
‘자격이 있어. 그런 녀석이야.’
후웅.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그대로 하강해 또 다른 검격을 뿜어낼 것 같았던 남궁언이 허공에 머물렀다. 허공답보의 신기였다.
콰앙!
서량이 날아올랐다.
직선으로 쏘아지는 서량의 몸은 마기 그 자체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시뻘건 화염의 마기를 뿜어내며 비상하는 그의 모습은 세상을 찢고 나온 마왕과도 같았다.
남궁언의 기질이 변한 것은 그때였다.
‘……!’
상대의 코앞까지 다가간 서량은, 일순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뭐야?’
아까 그 이상한 수법을 펼친 건가?
‘아니다.’
이것은 그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는 신공(神功)이자 검공이었다.
순간 서량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이건?!’
알 것 같았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창궁의 검은 남궁가 최고의 검이지만 최강은 아니라고.
그 검은 적을 완벽하게 섬멸할 때에만 펼쳐진다고 하였다. 워낙 난해하고 복잡하여 남궁가 역사상 열 명도 대성치 못했다는 무공을 세상은 이렇게 불렀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가가 자랑하는 무적의 검도(劍道).
가문의 비기(秘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대의 검격이 서량의 면전에 쏟아졌다.
콰아아앙!
“컥!”
서량의 몸이 훨훨 날아 땅에 처박혔다.
자세를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태산이라도 허물 듯 강력한 검압에 관절이 죄다 어긋나는 것 같았다.
“그걸 막았나? 놀랍구먼.”
스르륵.
마침내 땅으로 내려온 남궁언이 무명검을 중단으로 세웠다.
“다시 가네.”
파아앙!
그처럼 막강한 검법을 펼쳤음에도 내력 운용에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접근한 남궁언이 제왕검형의 일초, 제왕의(帝王衣)를 펼쳤다.
무섭도록 증폭되는 검력.
남궁언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치닫는 청백색 검풍이 마치 제왕의 전포처럼 펄럭였다.
쿠구구궁!!
반경 오 장 안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금이 가고 부서졌다.
그 안에 발을 들인 자, 누구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검풍으로 검권을 장악하고 무자비한 진기로 압력을 가하는 천고의 중검(重劍)이었다.
하지만 서량은 거기에 없었다.
퍼뜩!
남궁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하다니.’
제왕의가 펼쳐지기도 전에, 서량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제왕의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그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파아아앙!
허공에 발을 휘둘렀음에도 마치 땅을 박찬 것 같다. 서량이 남궁언에게 화살처럼 쏘아졌다.
남궁언이 미소를 지었다.
‘패기만만하군. 젊음이 좋기는 좋아.’
그러나 다음 일격을 받고도 정면 승부를 고집할 수 있을까.
남궁언의 검이 상단으로 올라갔다. 느릿해 보이는 동작인데 어느새 하늘을 가리킨다.
번쩍!
무명검에서 타오르는 청색 불꽃이 다시 한번 사위를 휩쓸었다. 제왕검형 이초, 제왕시행(帝王始行)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때였다.
콰득!
‘헉!’
남궁언의 발이 땅속으로 쑥 파묻혔다.
진각의 힘을 받아 제대로 된 일격을 구사하려 했는데, 정작 진각을 내리친 땅이 푹 꺼져 버렸다. 마치 안이 텅텅 비어 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한순간 자세가 무너지니 진기가 출렁였다. 미세한 흔들림은 검형의 속도와 파괴력에 영향을 주었다. 아니, 시전 속도마저도 늦추었다.
‘설마?!’
콰아앙!
남궁언이 땅을 부수며 뒤로 물러났다.
검배(劍背)로 막았지만 전신에 충격이 남았다. 정말이지 근골이 부서질 것 같은 일격이었다.
콰앙!
땅으로 안착한 서량이 재차 돌진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제왕검형은 언제 어느 때라도 펼칠 수 있는 비기지만, 내력이 흔들린 지금 펼치려 들었다간 서량에게 일격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불꽃처럼 격렬한 천마도가 남궁언을 집어삼켰다.
콰콰쾅! 쩌저정!
한순간에 반전된 승부였다. 서량이 단숨에 남궁언을 몰아붙였다.
연신 뒤로 물러나는 남궁언.
‘이런 무서운 놈이 있나!’
제왕검의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도 상대의 다음 수를 읽고, 암경으로 땅 내부를 부숴 놓았다.
남궁언이 진각으로 힘을 받으려 할 걸 미리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그걸 몰랐던 남궁언의 실책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기실 그것을 실책이라 말하는 건 남궁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누구라도, 설령 저 의천맹주라도 예상하기 힘든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허점이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공략한다!’
정신없는 순간에도 한 수 앞, 두 수 앞을 읽어 내고 준비한다. 본능적으로 짠 전술에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그야말로 전투에 이골이 난 자였다. 세상에 일인 군단이라고까지 칭해지는 절대고수를 상대로 이런 함정을 파 놓는 사람은 서량밖에 없을 것이다.
화르르르륵! 쩌저저저적!
팔열지옥의 불길, 거의 동시에 팔한지옥의 얼음 폭풍까지 날아온다. 한 자루 칼로 이런 무시무시한 기공술을 펼칠 수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파아악! 쾅! 쩌어어엉!
땅은 신음하고 하늘은 울부짖었다.
두 사람의 도검이 미친 듯이 부딪치며 공터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전력을 개방한 승부는 아니었지만, 파괴력 넘치는 기공전보다 훨씬 위험한 승부였다.
“크합!”
한참 뒤로 밀리던 남궁언이 땅을 강하게 밟았다.
파아아앙!
마주 공격해 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자신의 등을 타 넘고 있다. 서량은 상대의 노련한 대응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가 그대로 몸을 돌려 팔꿈치를 휘둘렀다.
콰아앙!
남궁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공격을 막아 낸 손바닥이 마비될 것 같았다. 도법만이 아니라 체술 역시도 극한까지 익힌 게 분명했다.
재차 전진하려던 서량이 움찔했다.
스르륵.
서량의 소매가 그대로 잘려 나갔다.
‘……무서운 노인장이군.’
몸을 타 넘던 그 잠깐 사이에 베인 것이다.
서량은 알 수 있었다. 남궁언이 작정했다면 소매가 아니라 팔뚝이 날아갔을 것이다. 남궁언은 일부러 소매만 베고 지나간 것이다.
“후우, 아프구만. 이거 멍이 오래가겠는걸?”
“왜 그러셨습니까?”
“음? 무엇을?”
서량이 드러난 팔뚝을 들어 보였다.
남궁언이 피식 웃었다.
“목을 노리고 심장을 노렸네. 하지만 내 검에는 살기가 없었어. 알고 있었잖나?”
“그렇지만…….”
“이 싸움은 실전과 같을 뿐이지 진짜 죽고 죽이는 생사결이 아닐세. 자네의 마기는 내게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자네의 칼날에도 살기는 없었어.”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되 이런 한 수를 봤는데도 비무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서량이 자세를 풀었다.
“제가 졌습니다.”
“잉? 벌써 끝내려고?”
남궁언이 불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노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더 하지 않을 텐가? 나는 아직 자네에게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많네. 자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더 하세. 자네 내일 간다며? 기회는 오늘밖에 없단 말일세.”
묘하게 떼를 쓰는 모양새였다.
가만히 남궁언을 보던 서량이 피식 웃었다.
“여러모로 굉장하신 분이 맞습니다.”
“껄껄.”
“좋습니다. 그럼 다른 마공을 펼쳐 보겠습니다.”
“호오? 그와 비슷한 마공을 또 익히고 있었나? 자네 정말 보면 볼수록 대단하구만!”
“이 정도로 익히지는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재미는 있을 겁니다.”
“좋네! 아주 좋아!”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우우우우웅.
구유마공이 수그러들고.
그 자리에 천고의 마공, 군림마황기가 진한 청색 위엄을 채우기 시작했다.
환하게 웃던 남궁언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서량이 청색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살기가 섞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