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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92화 (292/774)

292화. 세상을 뒤흔들다 (3)

“이,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지 마라? 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콰앙!

“헉!”

종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후두두둑! 콰직!

부서진 천장에서 떨어진 목재가 그대로 탁자 두 개를 부쉈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격공장(隔空掌)은 허공을 격하고 기물을 깨부순다. 격공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고수라면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라고 봐야 한다.

당연히 범인(凡人)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보름 전에 말했을 텐데? 가부간의 결정을 내리라고 말이야.”

“그, 그것은……!”

“이봐, 총관. 우리가 느닷없이 이러는 게 아니잖나. 무려 반년 동안 설득했고, 자네도 기다려 달라 했어. 그 반년 동안 이 주루와의 계약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아는가?”

종구는 억울했다.

공손세가 측이 말하는 반년 동안은 그야말로 협박의 세월이었다. 세상 어떤 주루가 수입의 육 할을 바치라는 거래에 응하겠는가? 사파 무리도 사업장과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진 않는다.

그래놓고 가부간의 결정을 내리라며 보름 전 제멋대로 통보한 것이다. 이 정도면 노상강도나 다를 바 없다.

“육 할은…… 너무 과합니다, 각주님.”

공손세가의 투검각주(鬪劍閣主) 공손명(公孫明)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하여 그게 과하다는 것이지?”

“그리하면 저희 주루의 관리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인건비를 줄이면 되는 거 아닌가?”

이거다. 바로 이게 문제다.

사람을 덜 쓸 생각도, 그간 이 주루에서 종사해 온 일꾼들의 월전을 내릴 생각도 없다. 오히려 월전을 올려 주지 못해 걱정하던 판국에 인건비를 줄이라니?

피땀 흘려 세운 주루를 말아먹으라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종구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되면 당신들도 돈을 못 벌게 된단 말이오!’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 온 일꾼들을 잃게 되고, 신선한 재료 또한 얻지 못할 테니 자연히 평판도 떨어질 것이다. 당장은 돈이 들어올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망할 게 분명했다.

공손세가 정도의 명문가라면 그러한 이치를 모를 리가 없다. 한데도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공손명이 말했다.

“나는 자네와 계약 조항으로 왈가왈부할 생각 자체가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것은 하나야.”

“…….”

“본가와 거래를 할 거야, 말 거야?”

종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공손명의 눈이 번뜩였다. 그 흉포한 눈빛은 호랑이의 안광보다도 무서웠다.

“당장 결단을 내리게.”

당연히 거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는 공손세가가 암중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정도를 표방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악행으로 사람을 말려 죽이는 곳이 공손세가였다.

‘루주님.’

결국은 이렇다. 세상에 도의(道義)가 어쩌고 하지만 힘없는 자들은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종구가 고개를 숙였다.

“루주님과…… 대화할 시간을 주십시오.”

공손명이 히죽 웃었다.

“이보게, 종 총관.”

“예.”

“내 진즉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줬어.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자네들이지.”

공손명이 품에서 잘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계약서에 서명하게.”

“가, 각주님!”

“총관은 루주가 부재 시 루주의 권리를 대행할 자격이 있지 않은가?”

“……!”

“찍게.”

종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신더러 루주 대신 계약서에 서명을 하란다. 이 일이 알려지게 되면 그는 앞으로 안휘의 주루업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공손명의 눈빛이 더욱 흉흉해졌다.

“읽어 볼 시간이 필요한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계약자 간의 도리는 지키겠네. 읽어 보게.”

종구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들었다.

순간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알았지?!’

비연루(飛燕樓)는 비밀리 소매상점 세 곳을 마련해 두었다. 말하자면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공손세가는 비연루가 소매상점을 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소매상점에 대한 수입까지도 거두겠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다 읽었나?”

“…….”

“이제 찍으면 되겠군.”

“각주님. 그러면 수익 배분율을 조금만…….”

공손명의 눈빛이 더더욱 험악해졌다.

“찍어.”

한층 더 강압적인 말투였다.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다. 한 번만 더 시간을 끌면 이대로 주루를 불태워 버리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결국 종구가 붓을 들려 할 때였다.

덜컹!

일 층 문이 활짝 열렸다.

“이건 뭐 엉망진창이군.”

공손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몸을 돌렸다.

‘뭐야?’

주루 입구에는 웬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언뜻 보아도 상당한 검술을 익힌 듯한 탄탄한 체형의 장년 사내, 그리고…….

‘허어.’

공손명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장년 사내 옆에 선 청년은 실로 보기 드문 체격을 갖고 있었다. 장년 사내도 육 척 장신인데, 청년은 그보다 네다섯 치는 더 컸다. 게다가 팔다리도 길고 골격도 다부진 것이, 그야말로 이상적인 육체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뭐 하는 놈들이냐?”

청년,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강압으로 주루 하나를 망하게 만들려는 파락호 집단을 보며, 이 강도 놈들을 으깨 죽일지 찢어 죽일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뭐?”

“네놈이 공손세가의 투검각주라고?”

공손명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놈이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서량이 피식 웃었다.

동시에.

번쩍!

순간 공손명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의 좌우에 도열해 있던 십여 명의 검사들 또한 안색이 창백해졌다.

스르릉.

마동필이 언제 뽑았는지 모를 검을 다시 착검했을 때.

쿠구구궁!

공손명과 종구 사이에 있던 탁자가 수십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그 위에 놓인 계약서 역시 갈기갈기 조각나 버렸다.

“누군가와 계약을 맺으려거든 최대한 공정하게 해야지. 안 그런가? 수입의 육 할이라니, 뒷골목 염왕채(閻王債)도 너희처럼은 안 받아먹는다.”

공손명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순간의 발검.

검을 뽑았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 그는 마동필이 검을 어떻게 휘둘렀는지 보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번개가 따로 없었다.

만약 그 검이 자신을 향했다면?

순간 오금이 저려 왔다. 장담컨대 자신은 저 이름 모를 검객의 무공을 일초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동필아.”

“예, 소교주님.”

소교주란다.

무림에선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그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나는 저놈들 사정 봐줄 필요를 못 느끼겠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 마음 가는 대로 처리해 봐.”

마동필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을 뽑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레 걷는 그의 전신에선 강자의 위엄이 새어 나왔다.

공손명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저들을 공격……!”

파바바바박!

“헉?!”

공손명이 입을 떡 벌렸다.

투두두둑.

좌우에 선 무사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들의 목젖 아래가 한 치 깊이로 푹 들어가 있었다.

마동필이 주먹을 들었다.

완전한 주먹이 아닌, 중지를 반만 말아 급소를 눌러 타격하는 반지요수(半指凹手)의 평권(平拳) 형태였다.

마동필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랫사람은 상관의 부덕에 직언하기 어려운 법이다. 해서 목숨은 해치지 않았다만, 죄 없는 상인을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으니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스르륵.

주먹을 푼 마동필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평생 벙어리로 살 것이다.”

목젖 밑을 눌러 기절시킨 것도 모자라, 그 잠깐 사이에 침투경을 이용해 성대를 손상시켰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섬세함과 진기 운용이 극에 이른 무공이었다.

서량이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놈 이거, 완전히 괴물이 다 됐군.’

극마와 초절정고수 사이의 신법이나 보법의 속도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진기 운용을 얼마나 섬세하게 하느냐, 상대의 움직임을 얼마나 능숙하게 제어하느냐다. 즉, 무공의 구사 형식과 깨달음에서 차이가 날 뿐, 육체가 낼 수 있는 힘과 속도는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다.

마동필의 이동 속도는 압권이었다. 게다가 찰나지간 침투경을 실어 원하는 부위만 파괴하는 진기 운용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자격을 갖추었어.’

극마.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마동필은 이미 극마에 오를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컸는지, 원.’

서량은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만약 제자가 있다면 이런 마음이리라.

공손명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이,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마동필은 말하지 않았다. 이미 손을 쓴 이상,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마동필.

공손명의 눈에 악독한 빛이 흘렀다.

“이익!”

파아악!

순식간에 종구의 후방으로 이동한 공손명이 그의 목을 졸랐다.

“멈춰라! 더 이상 접근하면……!”

서걱. 툭!

공손명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종구의 목을 두른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그의 팔꿈치 밑이 허전해졌다.

푸화아악!

“크아아악!”

우당탕! 콰직!

뒤로 넘어진 공손명이 탁자를 부수고 나뒹굴었다.

묵왕검, 아니 흑혈마검을 뽑아 든 일격이 아니었다. 마동필이 수도(手刀)로 검기를 피워 정확하게 공손명의 팔뚝만 잘라 낸 것이었다.

공손가의 무사들을 쓰러트릴 때에 버금가는 섬세함이었다. 이런 섬세한 진기 운용이 있기에 그의 강검(强劍)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투두둑!

공손명이 재빨리 팔의 혈을 짚었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고통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상실감이 훨씬 컸다. 앞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공포가 그의 심장을 마구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 줄기 그림자가 공손명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강하지?”

공손명이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두 눈 가득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는 한 마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가라.”

“헉헉! 뭐, 뭐라고?”

퍼어억!

“카악!”

공손명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부러진 치아 대여섯 개가 쏟아져 나왔다.

마동필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깟 얼치기가 함부로 대할 분이 아니다. 언사를 조심하도록.”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 녀석도 꽤 거칠어졌다니까.

“공손세가로 돌아가서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상세히 알려라.”

“우웨에엑! 콜록!”

“가서 가주는 물론 쓸 만한 전력을 몽땅 데려와.”

서량의 두 눈에서 은은한 살기가 뿜어졌다.

“아주 뿌리를 뽑아 주마.”

* * *

“음.”

고구의 눈이 빛났다.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지만 그 정도의 고수가 이만한 내력의 파동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벌써 한판 벌였군.’

그때, 여상린이 눈썹을 조였다.

“설마 무슨 일이 터진 건가?”

고구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느껴지는가?”

“네?”

“저쪽, 내공의 파동이 느껴지냔 말이다.”

여상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하죠. 저도 나름 고수 소리 듣는 사람이라고요.”

호랑이 앞에서 고양이가 포효하는 격이다.

하지만 고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상린의 수준이면, 이 정도 거리의 기파는 느끼지 못해야 정상이다. 초절정고수인 그조차도 미세한 흐름을 잡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터진 것인지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괴물이군.”

“네?”

“아니다.”

그때였다.

고구의 눈이 흔들렸다.

‘어디로?’

마차 뒤에서 어슬렁거리던 두 마리의 영물 중 하나가 사라졌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언제 사라진 거지?

“……괴물투성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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