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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94화 (294/774)

294화. 세상을 뒤흔들다 (5)

“다시 나타났다고?”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남궁세가에서 푹 쉬었다고 했지?”

“예. 감히 추측해 보자면 아마 검왕(劍王)과도 만났을 듯합니다. 현역에서 물러났기에 더더욱 강자에 흥미를 느꼈겠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만약 비무를 벌였다면 십중팔구 검왕의 승리였을 것이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武)를 보는 눈이 없으니까요.”

송금백이 고개를 저었다.

“검왕의 검은 실로 무섭지. 무공은 나보다 아래일지언정, 검리(劍理)에 관해서 만큼은 의심할 나위 없는 천하제일이야. 하물며 상대는 상극인 마인이었으니, 서 소교가 이길 확률은 만에 하나라도 없을 것이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뭐, 물론 싸움이란 게 붙어 봐야 아는 거지만 말이야. 절정고수가 종종 초절정고수를 쓰러트리기도 하는 게 이 바닥이니.”

송금백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웃긴 놈이야. 천하 만민이 두려워하는 마교도 주제에 용케 남궁가주에게 인정을 받았어. 세상에 그런 놈은 다시없을 걸세.”

황곤이 씁쓸하게 웃었다.

“남궁가주의 성품은 대협(大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서 소교가 천하의 악인이 아닌 이상, 남궁가주는 그를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도 그렇지.”

“하지만 남궁가주는 필경 서 소교를 좋게 보았을 것입니다. 편견이 없는 만큼, 사람의 매력을 잘 파악하는 위인이니까요.”

송금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매력이 출중하든, 유독 선한 사람을 만났든 결과적으론 서 소교가 원했던 것들이 하나씩 쌓여 가는군.”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도 할 일을 해야겠지?”

황곤이 미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 놓았습니다. 이제 하오문에 연락만 취하면 됩니다.”

“좋네.”

송금백이 턱을 치켜들었다.

인간적인 위정자에서, 철혈의 통치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판을 깔게. 마교, 아니 천마신교가 세상을 활보할 수 있도록 중원 천하의 민심을 되돌려 줘.”

* * *

“가주님!”

“이노옴!”

차차창!

제각기 검을 뽑은 공손세가의 무사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편했잖아.”

마동필 역시 흑혈마검을 뽑아 들었다.

서량이 손을 들었다. 참전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공손황이 외쳤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크윽!”

파아악!

무사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금호였다.

커허헝!

외양은 여우와 늑대를 섞은 듯한데 포효는 사자의 그것처럼 낮고 폭발적이다.

순식간에 서량의 옆을 스쳐 지나간 금호가 앞발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끔찍한 소리와 함께 무사 서너 명의 몸이 찢겨 날아갔다.

갯과임이 분명한데 고양이나 호랑이처럼 숨겨져 있던 발톱이 튀어나온다. 황금빛 털에는 서기가 감돌고, 그 힘과 속도는 생명체의 한계를 한참이나 초월해 버렸다.

애초에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퍼어억! 퍼버벅!

발길질 서너 번에 벌써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끔찍하게 죽어 나갔다.

“헉!”

“이, 이런!”

절정고수의 검법보다도 빠른 앞발질.

금호의 자세가 낮아졌다.

크르르릉.

피 묻은 발톱은 강철보다 단단했고, 드러난 송곳니는 보검처럼 날카로웠다.

‘……!’

무사들의 몸이 굳어 버렸다.

금호가 뿜어내는 살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전설상에서나 회자되는 진짜 영물의 힘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적과 조우한 금호는, 살기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일류고수들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 서량이 움직였다.

퍼어어엉!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우수(右手) 일장(一掌)을 내치는 것만으로 대여섯 명의 고수들이 뒤로 쓰러졌다.

퍼억! 퍼버벅! 퍼엉!

그야말로 신들린 움직임이었다.

격렬하진 않지만 빠르고 부드럽다. 강물처럼 도도하고 유연한 보행 이후, 절도 있는 권장(拳掌)이 날아갔다.

누구도 그의 일권, 일장을 막아 내지 못했다.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모두 내상을 입고 중심을 잃었다.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쓰러트리시는구나.’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살상보다 제압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량에겐 살상이나 제압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전력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홀로 문파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 그것이 곧 절대고수다. 지금의 서량은 구파 중 하나와도 결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들 정도로는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

빠각!

팔다리가 부러진 무사들이 줄줄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일방적인 제압이었다. 홀린 듯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무사가 이십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전의를 상실한 무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상대는커녕 마주 서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딜.’

서량이 오른팔을 뒤로 젖혔다.

이전보다 훨씬 큰 동작이었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것 같았다.

지이잉! 파지지직!

그의 오른손에 시퍼런 전광이 이글거렸다.

천마벽력권이 아니었다. 구유마기로 활성화한 뇌전과는 전혀 달랐다.

서량이 땅을 밟았다.

콰아앙!

진각 한 번에 관도가 좌우로 쫙 갈라졌다.

그가 힘차게 손을 뻗었다.

“합!”

파지지직! 퍼어엉!

“크아아악!”

“아악!”

남아 있던 스무 명가량의 무사들이 모조리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주르르륵.

그들의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장법 한 번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압도적인 무력.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손을 뻗고 있던 서량이 천천히 손을 말아 쥐었다.

콰드득!

“크아아아아!!”

쓰러진 무사들의 팔다리가 뒤틀렸다.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저 무공은 뭐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공이었다. 서량은 지금껏 저런 무공을 구사한 적이 없었다.

“후욱.”

서량이 숨을 들이쉬며 손을 내렸다. 어느새 손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청색의 전광도 사라져 있었다.

‘이 정도 힘은 제어가 되는군.’

천하제일마공, 군림마황기의 절대장공 만압금마장(卍壓禁魔掌)이다.

과거 이천상과 마지막 비무를 벌였을 때, 유일무이한 절대마신이 선보였던 무상의 장법이 서량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금마란 곧 마를 금(禁)하는 것.

마인을 상대로 했을 때 무적의 위력을 발휘하는 장법이었다. 하지만 금마장은 그 자체의 위력도 출중한지라, 상대가 누구라도 일격필살의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러한 금마장으로 이십 명이나 되는 검사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해 두었다. 무공에 관한 서량의 탁월한 이해도를 엿볼 수 있었다.

“끝났군.”

서량이 손을 털었다.

멍하니 서량을 보는 공손황의 얼굴에 지독한 충격이 깃들었다.

‘……괴물이다!’

황금빛 털을 휘날리는 짐승도 괴물이지만, 저 청년이야말로 진짜 괴물이다.

세상에 반 각도 되지 않아 저 많은 검사들을 쓰러트리다니? 듣도 보도 못한 경지였다. 적어도 공손황은 평생을 수련해도 도달하지 못할 지고한 경지였다.

“넋이 나갔군.”

퍼뜩 놀란 공손황이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서량의 눈이 이전보다 더 진한 청색 광망을 뿌렸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공손황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일문의 수장인데, 수하들이 저리 당했으니 복수는 해야지?”

“……!”

“기회를 주마. 검을 뽑아라.”

부르르르.

공손황의 몸이 떨려 왔다.

말이 끝나자마자 안개처럼 스며드는 기묘한 진기가 전신의 힘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섬뜩한 진기였다. 체내로 스며드는 순간, 두려움 외에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머리는 텅 비어 버렸고, 격렬하게 날뛰던 진기도 숨어 버렸다.

마기(魔氣) 중에서도 가장 순도가 높은 군림마황기의 마기는 초절정을 눈앞에 둔 공손황의 심신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

주르르륵.

공손황의 하의가 축축해졌다. 극심한 공포에 방광이 열려 버린 것이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공손가가 당했어!”

“어떻게 혼자서……?!”

불신 어린 눈으로 서량과 금호를 보던 사람들은, 이내 공손황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이 어렸다. 그간 이 지역을 제 것처럼 다스렸던 폭군이 팔 하나가 잘린 것도 모자라 오줌까지 지린 것이다.

그 모습이 사람들의 환상을 깨부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도 결국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가만히 공손황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우우우웅.

“크윽!”

공손황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떨떠름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허공에 떠오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우우우우웅.

서량의 손에서 뻗어나간 청색 마기가 공손황의 몸 주변을 에워쌌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저 믿기 힘든 조화를 일으킨 것은 공손황이 아니라 서량이라는 걸.

“나는 너희 가문을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는 담담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공손황에게는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간 너희가 저질러 왔던 치졸한 짓들, 말도 안 되는 폭압에 대항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바로 이 사람들이다.”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맑았다. 가히 신(神)과 같은 무력을 구사한 청년인데, 눈빛만큼은 현자(賢者)만큼이나 투명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그러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들도 알 수 없었다.

“가문의 정예 병력이 불구가 되었고, 가주인 너는 체면을 구겼다. 너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늑대들이 많을 테니, 앞으로 너도 지옥을 겪어야 할 거야.”

공손황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재앙신(災殃神)을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이 괴물은 깔끔하게 죽여 주는 아량조차 베풀지 않는 진짜 악마인 것이다.

“대, 대체 당신은 누구요?!”

욕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결국 궁금한 것은 그것이다.

이 청년은, 이 악마는 누구인가.

서량의 눈이 빛났다.

세상이 신교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계획의 일환. 마인이 당당하게 천하를 활보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것.

철혈성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남궁세가는 천룡궁의 악행을 세상에 까발릴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는 걸 알려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사람의 존재감을 근본적으로 키워 줄 수는 없다.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일 뿐.

서량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머나먼 남쪽, 십만(十萬)의 봉우리를 간직한 신산(神山)에서 왔다!”

팔방으로 치닫는 목소리에 강렬한 위엄이 드러났다.

천성적으로 갖고 있던 출중한 매력을 보여 준다. 서량은 지금에 와서야 자유를 갈망하던 과거의 살왕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종사(大宗師)로서의 정체성을 쌓아 올렸다.

“교도들은 나를 마군(魔君)이라 부르며 경외했고, 장강의 뱃사람들은 나를 용문염라(龍紋閻羅)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호칭 중 무엇도 나를 증명하지 못한다.”

불을 뿜듯.

잔잔하고 부드럽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격렬한 화산처럼 변해 사위를 휩쓸었다.

“나는 대(大)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소교이며, 차후 만마(萬魔)를 지배키로 약속된 이다! 십만마도(十萬魔道)의 대종주가 될 자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신교의 중원 진출을 선포한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끝 모를 위엄과 무서운 자신감이 어려 있다.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

왜인지 모르지만 웃음이 나온다. 만천하에 자신을 증명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웃음기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바로 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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