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염라마군(閻羅魔君) (1)
안휘에서 시작된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 천하를 뒤흔들었다.
천마신교의 중원 진출.
삼십 년이 넘도록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교가 드디어 세상을 향해 거대한 일보(一步)를 내디딘 것이다.
수많은 정보 단체들이 이 정보가 사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였다. 각 지역의 영향력이 있는 문파들도 발에 불이라도 붙은 듯 뛰어다녔고, 심지어 상가(商家)를 포함한 상회들도 제각기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보 단체, 무림 문파, 상회, 나아가 민중까지.
천마신교의 중원 진출이란 소문이 준 충격은 온 천하를 들끓게 할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났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마교의 힘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마교가 돌연 대외 정책을 축소한 것은 내분에 휩싸였기 때문일 확률이 가장 높다. 지금 이 시점에 마교가 출도했다는 건, 마교의 힘이 과거 이상으로 강해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무림이란 세상의 특성상, 힘을 숨기기 위해 은인자중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물며 천마신교만큼 큰 세력이라면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천마신교가 다시 출도했다는 것은 천하와 한판 승부를 벌여 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마교는 애초에 상식적으로 접근할 만한 단체가 아니다. 그들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든, 천하의 환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지금 이 시점에 중원에 진출했는가, 바로 그것이다.”
제각기 천마신교의 의도를 추측하는 이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와중에, 또 하나의 소문이 다시 중원을 강타했다.
“마교의 소교주가 핍박받던 상인들을 구해 주고, 폭압을 저지른 공손세가를 물리쳤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불신했다. 천마신교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에 천마신교는 언제나 악(惡)이었다. 하물며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이 상인들을 위해 나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금세 드러났다.
안휘에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주루인 비연루를 중심으로, 그 일대 상회가 적극적으로 증언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서량은 구세주와도 같았으니, 은혜는 못 갚을지언정 은인을 향한 세상의 불신은 걷어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강의 수적 떼를 몰살시킨 것도, 무림인들을 납치해 살인한 천룡궁의 횡포를 막은 것도 마교의 소교주란 소문이 다시 한번 천하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일대 충격이었다.
정보가 조작됐거나 마교 측에서 소문을 조장했다면 신경 쓸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문을 낸 것은 철혈성과 남궁세가였다.
특히 남궁세가의 증언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남궁세가에는 검왕이 있고 검절(劍絶)이 있다. 이룬 경지만큼 드높은 협심(俠心)으로 유명한 그들이 직접 증언을 한 것이다.
정파 무림은 남궁세가를 성토했다. 정파 무림의 명망 있는 무가로서 왜 조심스럽지 못하게 나섰냐며 압박했다.
가주, 남궁단의 발언은 압권이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소. 우리 모두가 천마신교를 증오한다 하여, 그들이 명백히 행한 행동까지 숨길 순 없단 말이오. 하면 당신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 정녕 대의(大義)라고 보는 것인가?”
남궁단의 발언에 정파 무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정도(正道)는 곧 바른길이다. 남궁단은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바른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성토했으니, 오히려 정파 무림의 꼴이 우습게 되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적이었소. 나는 과거를 잊자는 게 아니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잘한 건 잘했다고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래야 그들의 잘못 역시 지탄할 자격이 생기니까.”
옳고, 또 옳은 말이었다.
정파 무림 무림인들의 대다수는 남궁단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개중에는 혹시 남궁세가가 마교에게 뇌물이라도 받아먹은 게 아니냐며,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추측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도 쉽게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것이 합리적이지 못한 의심에 불과한, 그저 억측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괜한 말을 꺼내 봐야 남들의 눈초리만 받게 될 뿐이었다.
그때, 정파 무림의 누군가가 말했다.
“현재 마교의 소교주가 소수 병력만 데리고 중원에 나섰다고 하오. 이 기회에 차라리 그를 억류하는 것이 어떻겠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찬성했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반대했다.
바로 그때 나선 것은, 놀랍게도 철혈성주였다.
“나서야 한다면 수로채에 타격을 입은 사파 무림이 나서야지 왜 자네들이 난리지? 아무런 잘못도 안 했고, 오히려 자네들이 그리 부르짖는 협(俠)을 이루었거늘 소교주를 억류해? 자네들은 부끄러움도 모르나?”
절대자의 한마디는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낳았다.
그 발언을 한 정파의 인사는 그대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록 철혈성주 역시 패도(覇道)로 이름 높은 사람이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말해 두지. 본성은 소교주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난 당당함을 원해. 자네들처럼 뒤에서 쑥덕대지 않고, 오히려 천마신교의 중원 진출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 역시 신교의 사업체를 건드렸으니, 과거를 청산하고 당당하게 붙어 볼 것이다.”
너희 같은 소인배들과 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 자극적인 언사에 정파 무림은 크게 들썩였고, 곧 제각기 나서서 당당하게 붙어 보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물론 그 움직임은 산발적이었다. 남궁, 그리고 철혈의 발언이 옳다는 건 알지만 그간 천마신교와의 악연이 너무 깊었다. 고작 사건 몇 개로 단단하게 박힌 선입견이 쉬이 깨질 리가 없었다.
모두가 침묵한 그때.
비로소 서량이 나섰다.
“시비를 걸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라. 무인으로서 받아 주겠다. 뒤에서 꿍꿍이를 꾸미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 보아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주겠다. 하지만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너희를 건드리지 않겠다. 적어도 당분간은.”
패기 넘치는 선언이었다.
불같은 호승심을 불러일으켰으되, 섣불리 나설 수 없도록 만드는 발언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량을 건드렸다간 정말 악인(惡人)으로 낙인이 찍힐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를 건드릴 만한 배짱이 있는 고수도 흔치 않았다.
마교의 소교주는 무서운 무력의 소유자였다. 홀로 공손세가의 일백 병력을 해치우고 가주를 농락했으며, 나아가 수상전에 특화된 수로채까지 홀로 섬멸하였다.
특히나 천룡궁의 칠대호법 중 하나와 절정고수급의 괴물들을 모조리 참살했다는 소문은 그중 단연 압권이었다.
구파 장문인이라도 쉽게 보여 줄 수 없는 엄청난 신위. 드러난 사건만 보더라도, 마교의 소교주는 대문파 수장, 그 이상의 무력을 갖춘 천재임이 분명했다.
장강에서 흘러들어 온 이름, 염라.
그리고 마인들이 칭송했다는 호칭, 마군.
중원의 지옥신(地獄神) 염라라는 별호와 불교에서 부처의 마지막 수행을 방해했다는 마라, 마군이라는 별호가 모두 그를 가리켰다.
세상이 알기도 전에, 아니 서량이 소교주가 되기도 전에 운명 지어진 그 이름.
공포로 점철된 염라마군(閻羅魔君)의 별호가 폭풍처럼 천하를 강타했다.
* * *
“굉장하셨습니다.”
“뭐가?”
공야치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 어떻게든 제대로 터트리시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멋진 파괴력을 보여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철혈성과 남궁세가가 나서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깔끔한 판이 깔리진 않았을 거야. 두 집단에 고마워해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두 집단의 도움은 분명 컸지만, 일전 소교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웬일로 혓바닥에 꿀을 발랐어?”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그만해. 귀 간지러워.”
손사래를 치던 서량이 되물었다.
“그나저나 비연루는 어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괜찮은 사람이었지?”
“종 총관 말씀입니까? 마냥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더군요. 안휘 북부를 맡겨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루주는?”
“병석에 누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태가 있고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병석에 누웠다고? 나이가 많나?”
“오히려 종 총관보다 어립니다. 수준은 낮지만 양생을 목적으로 내공심법도 익히고 있었다 합니다. 한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서량이 눈을 빛냈다.
“공손가에서 손을 쓴 건가?”
“그럴 확률이 높다고 보입니다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알아보고 그게 진짜면 또 한 번 제대로 터트려 줘.”
“물론입니다.”
“알지? 어떻게 터트려야 하는지? 정파 쪽을 아주 그냥…….”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은근슬쩍 정파 쪽에 불리한 분위기를 조성해 보겠습니다.”
“좋아.”
공야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벌써 가게? 밥이라도 한 끼 하지?”
“다소 바쁜 일이 생겨서요. 식사는 나중에 하시지요.”
“어이쿠, 얼마나 바쁜 일이길래 얼굴 한 번 보기가 그리 힘든가? 왜? 이번에도 그 거지새끼처럼 주제도 모르고 파고드는 놈들이 있나?”
공야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더군요.”
“그렇구만.”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밥 먹고 가.”
“제가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자리에 제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지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얼른 너희 문주님한테 문주직 양도해 달라고 해라. 그 정도면 일문의 수장을 맡기 충분해 보여.”
“하하.”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공야치가 드물게 웃음까지 터트렸다.
마주 웃으며 공야치를 보던 서량이 일순 표정을 굳혔다.
“한마디 해도 될까?”
“말씀하십시오.”
“거지 놈도 죽었고, 판도 잘 깔렸어. 여기까지 오려면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험로를 걸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편하게 잘 도착했다.”
“아닙니다. 다 소교주님 덕분…….”
“끝까지 들어. 나와 신교는 큰일 하나를 마무리 지은 셈이야. 앞으로는 조금 여유를 갖고 나아가도 돼.”
서량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너희는 달라.”
“……?”
“우리를 위해 기뻐해 주는 것은 좋지만, 결코 긴장을 늦추지 마.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정파든, 사파든 뒤에서 우리를 캐 보려 들 거야. 그리되면 십중팔구 하오문이 다치게 돼.”
“……그렇겠지요.”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도울 테니, 혼자 해결하려 들지 말고 필요할 때 꼭 말해라.”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소교주님의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서량이 손을 저었다.
“나중에 보자고.”
“예.”
그렇게 공야치가 자리를 떴다.
서량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말했듯 큰일 하나를 치렀더니 몸이 다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의 옆으로 고구가 다가왔다.
“여기서 얼마나 지내실 겁니까?”
“글쎄다? 사나흘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왜?”
“…….”
“알았다, 알았어. 가자, 가.”
고구가 몸을 돌렸다.
서량이 투덜거렸다.
“쉴 틈을 안 주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