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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97화 (297/774)

297화. 염라마군(閻羅魔君) (3)

하남 천중산(天中山) 인근에서 시작된 천중지회(天中之會)는 유서 깊은 모임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서로의 무(武)를 견주며 발전을 도모하는 건전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차후 무림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끼리 친분을 쌓고 강한 유대를 형성하니, 각 문파 사이의 분란을 최소화하는 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여러모로 정치색도 강해지고, 편 가르기로 우월감을 자랑하는 모임으로 변질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누구도 천중지회를 의미 없는 모임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그 자체로 정파 무림의 핵심이었다. 그 후예들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천중지회라…….”

서량은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그런 모임이 있긴 했지.’

의천맹주의 제자 놈들도 종종 천중지회에 참여하곤 했다. 심지어 늙은이는 제자들의 호위를 위해 두어 번 그를 딸려 보내기도 했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법 더러운 모임으로 기억하는데.’

말이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지, 그냥 더 강한 힘을 가진 문파의 후예들끼리 으스대는 모임일 뿐이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 문파의 후기지수들도 굉장히 많이 참여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예들에게 아부 떨기 바빴다.

은근슬쩍 희귀한 보물을 바치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기루를 잡아 놓거나 제 누이 혹은 형제들을 방에 밀어 넣는 놈들도 많았다.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맺어, 무림의 중추로 떠오르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하긴 나이 처먹고 권력 휘두르기에만 급급한 머저리들 밑에서 뭘 보고 컸겠나.’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천중지회가 왜?”

공야치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해선 보여 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 년 전, 천중지회에 참가한 후기지수 중 하나가 하오문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오문에?”

그건 또 뜻밖이다.

천중지회는 정파 후기지수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하오문을 찾지 않는다. 천하제일방이라는 개방이 있고, 의천맹 소속 정보단도 있는데 뭣 하러 하오문을 찾겠는가?

“구양세가(九陽世家)라고 아십니까?”

“알지?”

비록 오대세가에 꼽히진 못하지만, 하남에서 제법 세를 떨치는 가문이었다. 세력의 크기나 무사들의 수준을 볼 때 공손세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 년 전, 구양세가의 자제들도 천중지회에 참가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양가의 여식이 봉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봉변?”

“예.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소가주가 구양가의 여식을 겁탈했습니다.”

서량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확실한가?”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저희 측도 반신반의했습니다만, 조사를 해 본 결과 확실합니다.”

공야치는 어지간해선 확신하지 않는다. 가능성을 얘기하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방안을 말해 준다.

그런 그가 확실하다고 말한다면, 팽가의 소가주가 분명 무도한 짓을 저지른 게 맞으리라.

“미친놈이군.”

욕하기도 아까운 놈이다.

얼굴을 잔뜩 찌푸렸던 서량은 동시에 의아했다.

“한데 구양가에선 그걸 팽가에게 따지지 않았나?”

“아무래도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어렵다니? 딸내미가 쓰레기 같은 놈에게 겁탈을 당했는데 바로 멱살 잡아야지. 가주가 그렇게 소심한가?”

공야치가 한숨을 쉬었다.

“구양가주는 제법 협과 도의를 아는 사람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이기도 하지요. 그가 팽가에 따지지 못한 건, 권력 때문이 아니라 딸 때문이었습니다.”

“딸 때문이라고?”

“딸이 그것을 원치 않는 모양입니다.”

딸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량은 순간 드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다.

“무서운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무도한 짓을 당한 여성은 대개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피해자는 동정 어린 시선조차도 힘겨워한다. 피해 사실을 알려 가해자가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정작 잠 못 들고 고통받는 건 피해자다.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외쳐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숨고, 아파한다.

사회가, 세상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한데 왜 하오문에 의뢰를 했지? 아니, 의뢰라는 말도 이상하군. 하오문은 해결사 집단이 아니라 정보 단체잖아? 도대체 뭘 의뢰한 거야?”

“가주는 아니고, 피해자의 오라비가 본문에 의뢰를 했습니다. 팽가의 소가주가 술에 곯아떨어지거나 빈틈을 보이는 순간이 오면 연락해 달라고요.”

서량의 눈이 빛났다.

“직접 처리할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팽가주가 직접 나서서 구양가의 여식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하북팽가는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소가주가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알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외적으로 피해 사실을 공표하는 것도 힘들다면, 결국 방법은 직접 징치하는 것뿐이다.

“천만다행히도 피해자가 정신적 파탄 상태를 벗어난 모양입니다. 오라비도 피해자의 허락이 있지 않았다면 의뢰를 하지 못했을 거라더군요.”

“그렇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왜 고민을 하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내 도움 없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나?”

팽가의 소가주가 혼자 있을 때, 혹은 무방비 상태인 순간을 알려 달라.

말은 쉽지만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야말로 속도가 생명인 정보인지라, 하오문이 구양세가 측에 정보를 전해 준다 한들 그 순간을 놓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다만 하오문이라면 분명 가능하다.

하오문은 연락 체계가 탄탄하고 빠르다. 구양세가의 무사들과 동행하여 순간순간 연락을 주고받는다면, 언제고 분명 그러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소교주님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중원에 나왔으니 그를 억류하자고 하였으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발언을 철회한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팽가인가?”

“예. 정확히는 팽가주입니다.”

“한데 그게 왜?”

“팽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교주님을 잡으려고요.”

“……오호?”

서량의 안광이 형형해졌다.

“증명해 보이겠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또한 그것이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알지만, 막상 그들이 소교주님을 사로잡으면 여론이 바뀔 것입니다. 정파 무림은 틀림없이 팽가가 숭고한 희생을 했다며 그들을 두둔하겠지요.”

이제야 공야치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겠다.

“그들의 움직임은 생각 이상으로 은밀하고 빠릅니다. 이미 팽가의 병력이 산동성 남서부까지 치고 들어온 상태지요. 빠르면 닷새, 늦어도 열흘 안에는 소교주님을 찾을 겁니다.”

“자네가 정보를 교란해 주면 어떤가?”

공야치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바라십니까?”

서량이 마주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하북팽가의 병력을 날려 버릴 기회가 찾아왔다. 이미 적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의 교전은 전혀 무섭지 않다.

“어차피 소교주님께서도 나서셔야 할 상황이니, 겸사겸사 이쪽 일도 처리해 보시는 게 어떤가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물론 해야지. 굳이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라면 두 손 두 발 걷어야지 않겠나.”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지만,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천중지회는 언제지?”

“나흘 뒤입니다.”

“장소는 하남 천중산 인근이고?”

“예. 소영리(蘇嶺里)라는 곳에 엄청나게 큰 장원이 있습니다. 올해는 거기서 모임을 가진다고 합니다. 살왕기차로 간다면 사흘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지요.”

“좋아.”

서량이 몸을 돌렸다.

“애들아! 움직일 채비들 하자!”

* * *

사흘 뒤.

“왁자지껄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황보준(皇甫俊)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도통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제갈군(諸葛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말입니까?”

“언제부터 천중지회에 저런 떨거지들까지 참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황보준이 턱으로 장원의 중앙 공터를 가리켰다.

굉장한 넓이를 자랑하는 그 공터에는 족히 이백은 넘는 인원이 모여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하나 같이 영준한 기도를 가진 젊은이들로, 일신의 무력이 고강해 보였다.

그들은 중원 전역에서 모인 후기지수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후예가 아니었다.

제갈군이 미소를 지었다.

“뭐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오히려 활기차서 보기 좋은데.”

“활기? 저게 어딜 봐서 활기인가. 격 떨어지는 머저리들의 소음이지.”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황보 형.”

황보준이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들었다.

“무인다운 무인은 하나도 없어. 그저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은근히 눈짓이나 보내는 연놈들뿐이야. 저런 놈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야 한다니, 참 답답하구먼.”

“하하! 뭐 어쩌겠습니까? 세상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제각기 성정과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제갈군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작년에 봤을 때와는 또 다릅니다그려. 천왕권(天王拳)의 성취가 또 오른 모양인데요?”

“그래봤자 칠 성(七成)이야.”

“칠 성이요? 벌써요?”

“벌써라니? 멀어도 한참 멀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보준의 얼굴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드러났다.

이십 대 중반의 연배로 황보세가의 비기인 천왕권을 칠 성이나 익혔다. 영약은 돈으로 구할 수 있지만 깨달음은 스스로 얻어야 하는 법,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성취라 할 만하다.

“그러는 자네도 제법인데? 작년보다 기도가 한층 날이 섰어.”

“황보 형만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멀었어요.”

그리 말하는 제갈군 역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표정에서 자신감이 담뿍 묻어났다.

황보세가와 제갈세가는 각 지방에서 최고의 무가로 명성을 떨치는 가문이었다. 어린 나이로 출중한 경지를 쌓아 올렸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다.

“그나저나 당가에서는 안 오나?”

“가주님과 독룡각주님이 실종되지 않았습니까. 모임에 참가할 상황이 아니겠지요.”

황보준이 피식 웃었다.

“거참, 안타깝군. 그렇게 활기차게 잘 놀던 녀석이 말이야.”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맨주먹으로 무림을 헤쳐 가는 황보세가에게 독과 암기로 공포를 떨치는 당가는 좋은 인상으로 보이기 힘들었다.

“그나저나 자네 누이동생은 여전하군.”

제갈군의 눈이 공터에 모인 수많은 무리 중 하나로 향했다.

유독 많은 젊은이들이 무리 지은 곳에서 화사한 미모의 여인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청년들의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제갈군이 입맛을 다셨다.

“워낙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요.”

“그래?”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제갈군의 동생 제갈소영은 남들의 칭찬과 관심에 유독 신경을 썼다.

“이번 해는 구파에서도 거의 오지 않았군. 남궁은 뭐 여전히 안 올 것 같고. 제법 썰렁한 연회가 되겠어.”

그때였다.

덜컹!

저 멀리, 장원의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회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일제히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그것은 황보준과 제갈군도 마찬가지였다.

“……남궁?!”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

바로 남궁세가의 후기지수 남궁화(南宮華)와 남궁룡(南宮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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