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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98화 (298/774)

298화. 염라마군(閻羅魔君) (4)

“오랜만이네요.”

남궁화의 미모는 실로 대단했다.

타고난 미모도 미모지만, 무공 연마를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은 그녀는 무척이나 신비로운 기도를 내뿜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한달음에 다가간 제갈군이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입니다, 남궁 소저.”

“네, 제갈 소협도 잘 지내셨나요?”

“아, 그럼요.”

제갈군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몇 년간 안 나오시더니 어인 일로……?”

“어? 제가 설마 못 올 곳에 온 건가요?”

“예? 아, 아니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남궁가는 언제든 환영이지요!”

제갈군은 드물게 당황했다.

무림에서 흔치 않게 문무(文武) 양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는 제갈세가의 자손이지만, 남궁가의 후예 앞에서까지 목에 힘을 줄 순 없었다.

오대세가의 수좌.

천하제일검가라는 위명으로 수백 년간 무림을 뒤흔들었던 남궁세가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 잘 나서지 않는 편이지만, 남궁의 전설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렇게 후기지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와중.

“오호, 남궁을 이렇게 볼 줄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딱 벌어진 체격. 황보준만큼은 아니지만 어딜 가도 다부지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몸이었다.

키도 컸고, 이목구비 역시 뚜렷했다. 특히 등 뒤에 메고 있는 황금빛 거도(巨刀)가 굉장한 위압감을 발했다.

남궁화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팽 소협이로군요.”

청년, 팽열(彭烈)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남궁 소저의 미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려.”

남궁화는 넉살 좋게 받아쳤다.

“그냥 눈, 코, 입 달린 사람이죠, 뭐. 팽 소협은 예전보다 훨씬 다부져 보이네요.”

“하하! 이렇게 만난 지가 오 년이 넘었는데, 그 사이에 이 정도도 성장하지 않았으면 소가주 짓도 못 해 먹지요.”

팽열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에서 강렬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그만한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구파와 오대세가를 포함, 이곳에 모인 어떠한 후기지수들보다도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 그였다. 싸움이란 붙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이라곤 하나, 무공의 연성 속도만큼은 천재(天才) 소리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나저나…….”

팽열이 남궁화 옆에 선 청년, 남궁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궁룡이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에 뵙소.”

“……그래, 오랜만이긴 하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팽열. 하지만 그의 눈빛은 남궁화를 대할 때만큼 호의적이지 못했다.

“굉장한 기도인데? 수련을 열심히 했나 보군.”

“그래 봤자 아직 누이에게 비빌 수준은 아니외다.”

팽열이 인상을 찡그렸다.

기파를 발산한 것도 아니건만, 남궁룡의 기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이었다. 소가주직을 물려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무공만큼은 일문의 작은 주인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한데 누이에게 비빌 수준이 아니라니?

‘그냥 하는 소리겠지.’

남궁화의 기도는 모호했다. 하지만 팽열은 그녀가 자신보다 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만히 두 남매를 보던 팽열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가십시다. 간만에 남궁에서도 손님이 오셨는데, 우리끼리 한잔해야 하지 않겠소?”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잘도 그런 말을 한다. 팽열이 제법 특권 의식에 찌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궁화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여기서 다른 분들과 담소를 나눌게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그러지 말고 들어가십시다. 별관에 화산의 백요 도사와 점창의 단 소협도 계시오.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모이겠소?”

황보준과 제갈군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당대 남궁세가는 무림에 잘 나서는 가문이 아니었다. 남궁 남매가 내년 천중지회에 또 참여할 확률은 낮으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담소를 나누겠는가?

하지만 남궁화는 요지부동이었다.

“괜찮아요.”

“어허, 그러지 말고…….”

“팽 소협.”

남궁화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러나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다고 했어요.”

팽열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궁룡이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천중지회는 구파와 오대세가의 축제가 아니라 중원 무림 후기지수들의 축제요. 우리는 우리대로 모임에 임할 테니, 팽 형도 천중지회의 참가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겠소.”

남궁화와는 달리 대놓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남궁룡이었다.

팽열의 볼이 살짝 떨렸다.

“남궁 소제가 말을 제법 날카롭게 할 줄 아는군.”

남궁룡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표현이었다.

팽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제갈군이 나섰다.

“남궁 소제의 말이 좀 심한 감은 있습니다만, 틀리진 않습니다. 앞으로 중원 무림을 이끌어 나갈 후기지수들의 모임인데, 따로 무리 지을 필요는 없지요.”

교묘한 발언이었다.

무리 지어선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곳에 모인 후기지수들이 오대세가를 고깝게 보지 않도록 말을 가려 한 것이다.

가만히 남궁룡을 노려보던 팽열이 피식 웃었다.

“뭐, 그러자고. 같이 한잔하기 싫다는데 별수 있겠나.”

남궁화가 고개를 숙였다.

“동생이 말이 좀 심했네요. 제가 대신 사과하지요.”

“아니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

“하면 이만.”

남궁 남매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길을 열어 주면서도 그들 남매를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팽열의 눈에 은은한 혈기가 감돌았다.

‘고것 참.’

사실 그는 남궁룡에게 그다지 화가 나진 않았다. 애초에 남에게 크게 신경을 쓰는 성격도 아니었다.

지금 그의 신경은 온통 남궁화에게 쏠려 있었다.

‘굉장해. 오 년 만에 멋지게 성장했어.’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남궁화의 몸매에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오 년 전에도 예뻤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활짝 핀 한 송이 꽃이 따로 없다.

팽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 모임은 아주 재미있겠군.’

그는 자신과 가문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작년엔 팽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일도 있지 않았던가.

‘잠시 재미 좀 보시게들.’

팽열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등을 돌렸다.

“가세. 우리끼리 한잔하자고.”

하지만 황보준과 제갈군도 팽열과의 술자리에 끼지 않았다.

모든 후기지수들이 보는 앞에서 제법 뜨끔한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들끼리 웃고 떠들 때가 아니라 다른 후기지수들과도 친분을 나눠야 할 때였다.

결국 팽열은 굳을 대로 굳은 얼굴을 한 채 홀로 술잔을 적셔야 했다.

남궁룡은 팽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자는 오 년 전보다 더 타락해 버렸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아니란 말입니까?”

“글쎄…… 아니라기보다는.”

남궁화가 한숨을 쉬었다.

“어디 저 사람뿐이겠니.”

남궁룡이 저 멀리 떨어진 황보준과 제갈군을 보았다.

후기지수들에게 둘러싸인 두 사람의 존재감은 유독 돋보였다. 황보준은 무뚝뚝한 표정 속 은근한 자부심이 엿보였고, 뛰어난 화술로 좌중을 사로잡은 제갈군 역시 얼굴에 옅은 오만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갈군의 동생인 제갈소영도, 황보세가의 여식인 황보희도 비슷했다. 웃고 떠들며 술잔을 주고받지만, 은연중 상대를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후기지수들은 애써 그들의 오만함을 외면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게 정파 무림의 현주소로군요.”

“맞아.”

남궁화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남궁룡이 고개를 저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면 본가도 위험합니다.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궁화가 기특하다는 눈으로 남궁룡을 보았다.

“되지도 않는 자신감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줄 알았더니, 폐관하면서 어른이 다 됐구나?”

남궁룡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어린 시절의 실수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남궁화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은 한 자루 잘 벼린 보검과 같았지만, 폐관에 들어가기 전 남궁룡은 열혈 그 자체였다. 특히 남궁세가에서도 내로라하는 무공광(武功狂)이어서, 하루가 멀다고 가문의 무사들과 비무를 벌여 대곤 했다.

그 과정에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던 동생이 지금은 이렇게나 성장했다. 남궁화는 동생의 무공이 성장한 것보다, 동생이 성숙해진 게 훨씬 더 기꺼웠다.

그렇게 남매가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일남 일녀가 그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남궁 남매가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명성 자자한 남궁가의 검인(劍人)들을 뵈어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하하! 겸손하시군요.”

목소리가 무척이나 맑고 시원시원한 청년이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장천수라 하고, 이 녀석은 제 동생인 장상희라 합니다.”

남궁룡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남궁룡입니다.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궁룡은 상대가 누군지 몰랐지만, 남궁화는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참악협도(斬岳俠刀) 장 소협?”

장천수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그런 거창한 별호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장 소협을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남궁화는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남궁룡은 아무도 모르게 남궁화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사람을 아느냐는 행동이었다.

남궁화가 아차 싶어 말했다.

“너는 폐관에 들어서 몰랐겠구나. 참악협도가 장 소협의 별호야. 일 년 전, 녹림채 하나를 단신으로 상대한 고수시지.”

남궁룡의 눈이 커졌다.

“단신으로 녹림채를요?”

깜짝 놀랄 만도 했다.

비록 산적 무리라고 폄하되고 있지만 녹림채의 힘은 장강수로채 이상이었다. 적어도 도적질로 먹고사는 이들에게는 구파일방과도 같은 대접을 받는 무리가 녹림채 아닌가.

장천수가 재빨리 손을 저었다.

“단신으로 상대하다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잠시 그들을 붙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건 또 무슨?”

남궁화가 말했다.

“산동 남부의 한 마을이 청랑채(靑狼寨)의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어. 그때 나선 분이 장 소협이야. 마을 주민들이 도주할 수 있도록 끌어 주고는, 뒤에서 청랑채의 병력을 홀로 막아 낸 신성(新星)이시지.”

“허어!”

“게다가 청랑채의 부채주를 일도(一刀)에 베어 버리셨다더구나. 부채주의 무공은 채주만큼 강하다고 들었어. 그 부채주의 별호가 산악혈부(山岳血斧)라, 그를 벤 장 소협에게 참악협도라는 별호가 붙은 거야.”

남궁룡이 재차 포권했다.

“천하의 협객을 몰라뵈었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남궁룡입니다.”

장천수는 진짜로 당황했다.

“그,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그냥…… 어, 그러니까…….”

웃음소리와 목소리는 그리도 시원시원하더니,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장상희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오라버니가 쓸데없이 부끄러움이 많아요. 두 분께서는 이해해 주세요.”

남궁룡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누구도 그런 일은 쉽게 해내지 못합니다. 진정 협객이라 불릴 만하십니다.”

“그게…… 이것 참.”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면서도 얼굴은 잔뜩 붉어졌다.

남궁룡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순수한 사람이구나.’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공적이 드러나자 부끄러워한다. 조금 더 자신감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겸손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첫인상이 무척이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남궁룡이 말을 이었다.

“도(刀)를 쓰시나 보죠?”

“예? 아, 예.”

“실례지만 어느 문파에서 수학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천하의 남궁세가에서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장천수의 당황은 가실 줄 몰랐다.

“저와 제 동생은 관천도문(貫天刀門)의 자제입니다.”

남궁룡은 관천도문이란 문파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유명세 없는 문파라고 해서 장천수를 얕잡아 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놀랐다.

“관천도문이라…… 제 배움이 얕아서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 소협 같은 협객이 나는 문파라면 안 봐도 그 대단함을 알겠어요.”

“하하.”

장천수는 결국 웃어 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좋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장상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 오라비가 숫기가 없어서요. 그래도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남궁세가의 귀인분들과 인사라도 나눠 보겠나 싶어서 용기 내서 왔어요.”

남궁화가 고개를 저었다.

“귀인이라니요. 저희는 장 소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문의 명성과 무공의 대단함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이 이룩한 위업과 품성을 볼 뿐이다. 남궁 남매가 그리 나오니, 장 씨 남매도 한결 마음 편하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남 이녀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금세 친해졌다. 아무래도 성정이 담백한 이들이라 친해지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던 것이다.

한참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였다.

“어머, 부러워라. 천하의 남궁 남매들과 벌써 그리 친분을 쌓다니, 놀라워요.”

네 사람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갈군의 동생, 제갈소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기야 친(親) 마도파(魔道派)라 할 수 있는 남궁가이니만큼 사람을 사귐에 있어 귀천을 따지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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