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염라마군(閻羅魔君) (6)
“헉!”
“뭐, 뭐야?!”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이것은 분명 호랑이의 포효가 분명했다.
몸 전체에 소름을 돋는 괴성.
호랑이의 포효를 들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고 한다. 범의 포효에는 야생의 살기와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음파가 섞여 신경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기 때문이다.
이 포효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탁자가 흔들리고 술병들이 떨어져 깨졌다. 포효 자체가 하나의 음공(音功)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소리를 들은 후기지수들 역시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내력으로 진정시키려 해도, 음파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사자후(獅子吼).
그 사자후를 뿜어낸 야수는 어디에 있는가.
덜컹! 끼이이익.
커다란 대문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절로 열렸다.
어떻게 열렸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문이 어떻게 열렸는지가 아니라, 저 열린 문에서 누가 들어오느냐였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파고들었다.
후우우웅.
그와 동시에 연회가 한창인 공터 쪽으로 무형의 기파가 쏟아져 들어왔다.
연기처럼, 혹은 안개처럼.
탐욕스러운 무형기가 후기지수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허억!”
그 무형지기를 느낀 후기지수들 전원이 비틀거렸다. 개중에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도 태반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위엄.
그들의 힘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무적의 마력이 장원 전체를 감싸고 돌았다.
“텁텁한 냄새로군. 신기(神氣), 도검기(刀劍氣), 살기(殺氣)…… 음? 음기(淫氣)까지? 이거야 뭐 난리도 아니군. 아무리 젊은 남녀들이 한가득이라지만 너무한걸?”
척.
마침내 커다란 발이 문 안쪽으로 들어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 청년의 얼굴에 나른한 빛이 감돌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담담한 목소리에 감당 못 할 난폭함이 깃들었다.
크르릉.
고개를 흔들며 쿵! 쿵! 다가오는 거대한 짐승.
체고(體高)가 청년의 키만 한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황색 가죽을 가진 거대한 호랑이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너는 왜 들어왔어?”
크르릉.
“뭐래, 여기는 먹을 것 없어.”
커헝!
“쟤네들은 네 먹잇감이 아니야, 인마. 이게 아직도 옛날 버릇 못 고쳐서는.”
대호, 호왕이 입맛을 다셨다.
습관인지 뭔지는 몰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무지막지한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모습이었다. 집채만 한 대호가 자신들을 둘러보며 혀를 날름거리는데 두렵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청년, 서량이 고개를 돌렸다.
남궁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교주?”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때 봤던 남궁가의 여식이로군.”
소교주, 남궁가의 여식.
두 남녀의 짤막한 대화에,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경악했다.
“마, 마교?!”
“마교의 소교주다!”
“염라마군!!”
염라마군 서량.
당금 천마신교의 소교주이자 홀로 장강수로채를 뒤집어 놓고, 천룡궁의 칠대호법 중 하나와 온갖 절정고수를 상대했다는 마도(魔道)의 신성(新星).
그 무력이 이미 일파의 종주급이라 하며, 패기 넘치는 발언으로 중원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이름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팽열의 눈가가 씰룩였다.
‘저놈이 마교의 소교주라고?’
그는 가문의 병력이 무서운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저놈, 서량을 잡기 위해서.
‘머저리 같은 놈. 제 발로 찾아왔군.’
그때, 황보준이 외쳤다.
“마도의 잡귀가 예가 어디라고 찾아온 것이냐!”
“음?”
서량이 황보준을 바라보았다.
황보준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콧김은 뜨거웠고, 전신에선 강렬한 기파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서량의 존재감에도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다. 타고난 무골에 절정의 무공을 익힌 후기지수다웠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뭐냐?”
“……이놈이.”
황보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누구냐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저따위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이놈! 내가 바로 황보세가의 소가주니라!”
“산동의 황보?”
“그렇다!”
황보준이 의기양양함을 되찾았다.
서량의 비웃음을 받기 전까지는.
“단순 무식한 무뇌아에 불과한 자신들을 산동호한(山東好漢)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그 황보?”
황보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킥! 소리를 냈다. 웃음이 튀어나오는 걸 막으려 한 듯했지만,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남궁화가 목을 가다듬었다.
“죄송. 저도 모르게 그만.”
“이……!”
황보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네놈이 감히 본가를…….”
“어쨌든, 네놈에겐 볼일 없으니까 됐고.”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팽가의 소가주가 누구냐?”
모두가 팽열을 바라보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너로군.”
팽열의 입가가 씰룩였다.
“마도의 해충 놈이 왜 나를 찾지?”
그야말로 모욕적인 언사였다. 하지만 서량은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차피 작살내 버릴 놈의 언사에 열 받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서량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너, 이리 나오너라.”
“……!”
팽열의 금뢰도(金雷刀)가 부르르 떨렸다.
이건 뭐 숫제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투다. 장담컨대 팽열은, 이리 오만한 자를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황보준의 주먹이 새파랗게 빛났다.
“이놈! 감히 날 무시하는 것이냐!”
파아앙!
황보준이 서량에게 달려들었다.
그다지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보행에 탄력이 넘친다. 황보세가 비전의 보법, 천왕보법이 펼쳐진 것이다.
후기지수 중 몇몇이 소리쳤다.
“화, 황보 형!”
“안 돼!”
아무리 날 선 분위기라지만 마교의 소교주를 함부로 공격해선 안 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과 마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보준은 그들의 외침을 전부 무시했다.
후우우웅!
황보준의 주먹이 서량의 얼굴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얼굴에 닿지도 않았는데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굉장한 권력(拳力)이었다. 황보세가 최고의 권법, 천왕삼권(天王三拳)의 천왕추(天王椎) 일격이었다.
‘이놈! 잡았다!’
주먹이 턱 바로 앞에까지 도달했는데도, 서량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황보준은 자신의 주먹이 서량의 턱을 단번에 부숴 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터억!
황보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 주먹이 이렇게 말랑말랑해?”
어느새 서량의 손이 황보준의 주먹을 감싸 쥐고 있었다.
황보준의 주먹도 컸지만, 서량의 손도 굉장히 컸다. 길쭉한 손가락이 주먹의 대부분을 감싸고 있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런 동파육 같은 주먹으로 파리 한 마리라도 잡겠어?”
우두둑!
“헉!”
황보준의 팔꿈치가 확 꺾였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외공(外功)은 그럴싸하게 단련했군. 과연 오대세가라 이건가? 제법이야, 그 나이에.”
우두두둑!
“크악!”
황보준의 무릎이 절로 꺾였다.
제법이라는 평가도 그 나이대를 고려한 발언일 뿐이다. 지금의 황보준은 과거 고죽림에서 막 나왔을 때의 서량에게도 십초지적에 불과할 수준이었다.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세 합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서량은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대고수다. 황보준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후기지수들이 몽땅 덤벼도 상처 하나 내기 힘든 무적의 괴수인 것이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초면에 언쟁 정도야 넘어가 줄 수 있다만, 먼저 주먹을 휘둘렀으니 그만한 각오는 했을 거라 믿겠다.”
황보준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량을 보며,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고수에게 덤벼들었다는 걸.
상대는 진짜로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콰득!
“……어?”
황보준이 눈을 끔뻑였다.
뭔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싶더니, 어깨가 허전해졌다.
푸화아악!
“끄아아악!”
황보준이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어느새 그의 팔이 통째로 찢겨 날아간 것이다.
서량이 황보준의 굵직한 팔을 호왕에게 던졌다.
콰득!
호왕이 기다렸다는 듯 팔뚝을 낚아채 씹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팽열은 물론, 제갈 남매와 남궁 남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팔을 생으로 뜯어 버린 것도 모자라, 그걸 집채만 한 호랑이의 먹이로 던져 준다.
세상 어디서도 보지 못할 끔찍함이었다. 그들은 진정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량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제 모르고 나설 놈 더 있나?”
자존심을 자극하는 언사.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살기 한 점 드러낼 수도 없었다.
단 한수로 우열이 갈려 버렸다.
믿을 수 없게도, 마교의 소교주는 이곳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를 단 한 합 만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과는 수준이 다른 고수였다.
서량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완전히 악당이 다 됐군.’
뭐, 상관없지.
상대의 수준도 모르고 먼저 주먹을 휘두른 놈이다. 그것도 진짜 머리통을 날려 버릴 기세였다.
서량으로선 죽이지 않은 것만도 자비를 베푼 격이었다.
“허억! 허억! 네, 네놈!”
서량이 황보준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살고는 싶었는지 재빨리 어깨를 점하여 과다 출혈을 막았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린 듯했다.
“네놈이, 네놈이 이런 짓을 하고도……!”
퍽!
“끄르륵.”
황보준이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서량의 지풍에 혼혈을 짚인 것이다.
“주둥이 잘 놀리는 건 명성 자자한 오대세가급이 맞군.”
서량이 다시 팽열을 바라보았다.
팽열의 얼굴은 충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어떻게?!’
황보준은 분명 자신보다 아래였다. 하지만 저리 쉽게 당할 고수는 절대 아니었다.
한데 말 그대로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설마하니 마교의 소교주가 이 정도의 강자일 줄이야.
“시답잖은 놈 때문에 시간만 잡아먹었군. 거기 팽가 놈, 이리 나오너라.”
“……!”
“나오라는 말 안 들리나?”
서량이 손목을 돌렸다.
우두둑하는 살벌한 소리가 모두의 귀에 천둥처럼 꽂혀 들었다. 삼류 파락호들이 상대를 겁줄 때나 하는 동작인데도, 그 소리가 그처럼 위협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다.
팽열의 금뢰도가 다시 한번 떨렸다.
이전의 떨림은 분노에 기인한 것이지만, 지금의 떨림은 달랐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기묘한 감정이 그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공포, 혹은 두려움이라 불렀다.
“나와.”
“…….”
“나오라고.”
“…….”
“이 새끼 봐라?”
서량의 눈빛이 돌변했다.
“안 나와?”
오늘은 무언가 작정이라도 한 걸까.
서량은 자신의 힘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쿠구구궁!!
삽시간에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무시무시한 기운.
장대한 체격에 멋들어진 미소를 머금은 미청년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그 자리엔 전신 가득 시뻘건 마기를 불꽃처럼 피워 내는 마왕(魔王) 하나가 있었다.
“커헉!”
“우웨에엑!”
무공이 약한 후기지수들이 헛구역질하며 무릎을 꿇었다.
콰지지지직!
서량이 선 땅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연회가 벌어지던 공터의 땅 전체가 부서지고 있었다.
구유마공, 완전 개방이다.
구파의 장로들도 정면에서 마주하기 힘든 압도적인 기파를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후기지수들이 순식간에 십여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지 않으면 이 무자비한 압박감에 전신이 짓눌려 터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파를 발산한 것만으로 압도적인 신위(神威)를 증명한 서량. 실로 염라마군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존재감이었다.
서량이 하얗게 웃었다.
“나와.”
팽열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