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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01화 (301/774)

301화. 마도(魔道)가 낳은 괴물 (1)

“그래서 군사부의 이번 사분기…….”

“음.”

“잉?”

호요성이 눈을 끔뻑였다.

“교주님,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이천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가를 바라보며 눈을 빛낼 뿐이었다.

‘소교주님을 생각하시는 건가.’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겠다.

근래 이천상은 뭐랄까, 상당히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 주고 있었다. 이전의 이천상이 분석은커녕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마신(魔神) 그 자체였다면, 근래의 이천상은 고고한 하늘의 절대자가 아닌 태산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한 변화에서 호요성은 다소 안타까움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교주님께서 약해지신 것 같지는 않은데, 유(柔)한 모습을 보여 주실 때마다 뭔가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호요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 소교주님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요성이 애써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이지 소교주님을 향한 교주님의 애정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쥐 잡듯이 잡으셨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예?”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기를 얻었다면, 그것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작정하고 파헤쳐야지 익숙한 것에만 매몰되어선 안 되지.”

이게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호요성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소교주님의 마기를 느끼시는 것입니까?”

이천상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표현하기 어렵군. 느낀다는 말 이외에 적합한 표현을 찾기 힘들지만, 그보다는 훨씬 복잡하지.”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아니야.’

현재 소교주가 하남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보고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지금쯤 하남에 들어섰을 것이다.

광동의 십만대산에서 하남의 천중산까지.

아예 다른 세상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먼 거리이거늘, 교주님은 그 거리를 무시하고 소교주의 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것이 대체 어찌 가능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멋대로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었던 건 아닌지.’

근래 언행에선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묻어 나오지만, 절대자의 능력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신이(神異)한 능력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무기라 하심은 군림마황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번에도 이천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호요성이 입맛을 다셨다.

“소교주님만 한 천재에게도 어렵긴 어려운 무공인가 봅니다.”

“그건 당연하네. 하지만…… 음?!”

“또 왜 그러십니까?”

가만히 창가를 노려보던 이천상.

이내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유가 있었군.”

“군림마황기를 꺼내 들었습니까?”

이천상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호요성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대개 호기심도 많다. 눈치가 빨라서 말을 안 해 줘도 어느 정도는 꿰뚫어 볼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이천상 정도의 천인(天人)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의 기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이천상이 진정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다.

“천중지회라?”

호요성은 문서를 한옆으로 치웠다. 분위기를 보니 조직별 예산안 보고는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천중지회가 궁금하십니까? 따로 더 조사를 해 볼까요?”

“그까짓 애송이들의 모임 따위, 궁금하지도 않네.”

그럴 만한 분이지.

“그래도 소교주님 때문이라면…….”

“그저 연배가 비슷할 뿐, 량이가 정파의 애송이들과 공유할 만한 건 하나도 없네.”

맞는 말씀이야.

더 자세하게 말해 보자면, 소교주는 그런 애송이들과 같이 어울릴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다스린다면 모를까.”

“다스리다니요?”

이천상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호요성이 가슴을 퍽퍽 쳐 댔다.

“시원하게 말씀 좀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 죽겠어요, 진짜.”

“나중에 보고로 듣게.”

“아, 정말.”

이천상이 태사의에 등을 묻었다.

무뚝뚝한 절대자의 얼굴에 흥미로운 미소가 걸렸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냐?’

그간 나른한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이놈이 또 사고 한번 제대로 치려나 보다. 그것이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 * *

‘가지 마.’

팽열은 스스로에게 그리 명했다.

‘움직이지 마! 다가가지 마!’

이성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다리는 두뇌에서 전해지는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서량에게로 걸어가는 그의 보행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빌어먹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육체가 통제되지 않는다. 이십오 년을 살아오며 처음 겪는 일이었다.

팽열이 충혈된 눈으로 서량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는 안구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번쩍!

서량의 핏빛 안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공과도 같았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시신경이 타 버릴 것 같다. 전신에 힘이 쭉 빠지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미친 듯이 들끓는 내력은 그저 들끓는 데에서 끝날 뿐, 전신으로 퍼지지 못하고 곯아 버렸다.

‘이것이 마기?!’

그렇다. 그것이 마기다.

하지만 서량이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 한들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이것은 기(氣)의 질적 차이가 아니라, 순전히 무공 수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극마에 이른 절대고수가 발산하는 무언의 명령.

팽열 정도의 실력으로는, 그 정도의 정신력으로는 서량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때, 팽열의 머리로 서량의 전음이 들려왔다.

[작년 천중지회에서 만인의 지탄을 받을 만한 짓을 했다면서?]

‘헉!’

팽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량의 안광이 더욱 진해졌다.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력이 부서지고 있는 상태다. 팽열의 표정만으로도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작살내려고 왔지만, 이걸로 확실해졌군.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데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어. 그렇지?]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

팽열은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정신이 없는 탓에 주변의 시선도 인지하지 못했고, 머릿속에 울리는 게 전음인지 뭔지도 신경 쓸 수 없었다.

후기지수들의 눈이 빛났다.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그들 역시 눈이 있고 귀가 있다.

팽열의 반응과 목소리를 듣고 그들은 깨달았다.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팽열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후우웅.

서량의 안광이 본래의 흑색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사위를 짓누르던 강력한 기압도 사라졌다.

“허억!”

“후우! 후우!”

후기지수들이 거친 호흡을 토해 냈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이 사라지자 살 것 같았다.

하지만 팽열은 아니었다.

그 역시 압력에서 벗어났지만 이미 구유마기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서량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 점차 살기가 실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팽가가 비밀리 나를 잡으려고 병력을 푼 게 그리 큰 비밀인가?”

팽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후기지수들은 서량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뭐, 뭐라고?!”

“팽가가?”

“이럴 수가…… 이 시국에 그러면…….”

순식간에 번져 나가는 웅성거림.

그제야 후기지수들은 팽열의 반응을 이해했다. 아무도 모르는 팽가의 병력 이동을 서량이 알아채자 놀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서량이 의도한 대로였다.

남궁화의 눈이 흔들렸다.

‘나락으로 떨어지는구나.’

조금 전, 서량이 황보준의 팔을 뽑아 호왕에게 던져준 것에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충분히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마인이 지나치게 잔혹한 사람인 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싹 날아가 버렸다.

팽가가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억류하려 했다니? 이건 전쟁을 하자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팽가 따위야 별로 무섭지도 않다만, 모르고 당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게다가 행위 자체에 불순한 의도가 있으니, 나라고 그냥 봐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

“그나저나 그 칼은 휘두르려고 뽑은 거냐?”

서량이 턱으로 금뢰도를 가리켰다.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죽여 버린다!!”

콰르릉!

팽열의 몸에서 맹렬한 진기가 피어올랐다.

그를 보는 후기지수들은 깜짝 놀랐다. 기파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했던 것이다. 팽열의 기파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남궁 남매뿐이었다.

팽가의 비기, 건곤미허신공(乾坤彌虛神功)의 힘.

매서운 기파와 함께 팽열이 달려들었다.

파아아악!

황보준의 접근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번개처럼 접근한 팽열이 금뢰도를 쳐들었다.

‘죽여야 한다. 죽여야 돼!’

마교의 소교주라서가 아니다. 제 가문이 이놈을 잡기 위해서 병력을 파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놈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놈이었다.

언제, 어디서 주둥이를 털지 모른다. 이번 일격으로 아예 입을 봉해 버려야만 한다.

“카합!”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금뢰도가 서량의 정수리를 향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무서운 일격, 건곤미허신공으로 펼치는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였다. 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공이자, 일격필살의 묘(妙)가 살아 있는 절대살초였다.

그때, 서량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콰르르릉!!

그의 주먹에서 터져 나오는 천둥소리는 팽열의 혼원벽력도를 속삭임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무지막지했다.

천마벽력권(天魔霹靂拳)의 구천호벽(九天護壁)이었다.

콰아앙!

“크아악!”

팽열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튕겨 나갔다.

콰지직! 쾅!

탁자 두 개를 부수고 날아간 그의 몸이 건물 외벽에 박혔다. 권풍(拳風)의 반탄력이 그의 도기(刀氣)와 내력을 두 배의 위력으로 돌려준 것이다.

부르르르.

벽에 박힌 팽열이 몸을 떨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칼은 쥐고 있었으니, 제법 무사다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서량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가 팽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팽열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콰직!

이내 그의 몸이 벽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곤 그대로 서량에게로 날아왔다.

“……허공섭물(虛空攝物)?!”

더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후기지수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오 장이 넘어가는 거리, 게다가 건장한 청년과 묵직한 칼을 동시에 끌어오는 허공섭물이었다.

차원이 다른 무공이었다. 심지어 이 정도 수준의 허공섭물을 조금의 힘든 기색도 없이 구사하고 있었다.

구파의 장문인, 오대세가의 가주라도 이런 신위를 보여 줄 수 있을까.

“으윽!”

팽열의 몸이 심하게 떨려 왔다.

심한 내외상을 입었지만 어떻게든 내력을 끌어올려 빠져나오려 한다. 근성 하나만큼은 봐 줄 만했다.

그 순간,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콰직! 콱!

“크아아악!”

팽열의 두 팔이 마기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그제야 금뢰도가 땅으로 떨어졌다.

“이, 이 죽일 놈! 당장 내려놓지 못해?! 찢어 죽인다!”

순간 서량의 눈에 아무도 모르는 살기가 번졌다.

그 살기를 마주한 팽열의 호흡이 턱 멎어 버렸다.

‘이걸 확 죽여?!’

마음 같아선 몇 날 며칠 동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고문을 가하고 싶었다. 이런 놈에게는 죽음도 사치다.

하지만 이놈을 징치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심호흡으로 분노를 가라앉힌 서량이 내력을 풀었다.

털썩!

땅으로 떨어진 팽열이 꿈틀거렸다. 살기와 마기에 침습을 당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끼리 얘기나 좀 해 보자고. 아, 그 전에.”

그가 저 멀리 떨어진 건물 하나를 돌아보았다.

“동필아. 저기 숨은 두 놈도 좀 끌고 와라.”

파아아악!

부서진 대문 밖에서 황금빛 광채가 번개처럼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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