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02화 (302/774)

302화. 마도(魔道)가 낳은 괴물 (2)

털썩.

“크으윽!”

팽열 옆에 쓰러진 백요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마혈을 짚여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단전은 봉인당하지 않았지만, 마혈이 워낙 강하게 짚여서 좀처럼 풀 수가 없었다.

백요가 외쳤다.

“이 새끼들 잘 만났다! 당장 장문인을……!”

퍼어억!

마동필의 발길질에 백요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그 길로 백요는 기절해 버렸다.

혼혈을 짚어도 될 텐데,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과격한 행동이었다. 과거 화산 장문인을 사로잡으러 갈 때 백요가 보여 준 언행이 아직 마음에 남은 것이다.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백요 옆에 쓰러져 있던 단영(端嶺)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점창파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고 있지만 마동필 앞에서는 그놈이 그놈일 뿐이다. 두 합도 나눠 보지 못하고 사로잡힌 단영에게 마동필의 무공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동필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백요와 똑같이 대하지 말란 뜻이었다.

마동필이 한 걸음 물러나자, 서량이 말했다.

“너희, 아니 당신들 입장에선 내가 불청객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모였으니, 우리 건실한 대화라도 나눠 보지 않겠나?”

후기지수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서량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이거야 원.’

압도적인 실력과 상상 이상의 잔혹함.

거기에 호왕이라는 괴물까지 대동하고 나섰다. 제아무리 대단한 후기지수라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차라리 황보세가 녀석이 나았군.’

초면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진짜 죽일 기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서량으로선 괘씸한 일이었지만, 최소한 놈은 강자에게 덤빌 배짱이라도 있었다. 심성이 어떻든, 놈의 그러한 배짱 아닌 배짱이 서량에겐 그리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가.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이런 꼴을 보여 준다……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건가?’

서량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살왕 천하진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소교주 서량이었다. 말하자면 이들과 같은 세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주가 되어 신교의 체제를 건드려 볼 것이고, 훗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게 되면 신교를 떠날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대립해야 할 이들의 수준이 낮다고 좋아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쿵!

서량이 땅을 밟았다. 그 강한 울림에 후기지수들이 깜짝 놀랐다.

“나는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이다. 그리고 그대들도 각 문파의 수장으로 내정된 이들이거나, 최소한 그만한 자질을 갖춘 이들이겠지?”

“…….”

“결국 우리는 한 세대를 공유해야 할 사이란 것이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힘 있는 자에게 알랑방귀 뀌며 허리만 굽혀 대는 그런 모임 말고, 차후 이 무림이란 세상을 이끌어 갈 동냥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 보는 건 어떤가? 분란 없이 말이야.”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믿소?”

서량이 목소리를 낸 사람을 바라보았다.

큰 키에, 다소 마른 체격의 청년이었다. 등 뒤에 단창이 걸려 있는데 제법 강건한 기도가 인상적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말 그대로요.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겠소?”

“알아듣게 말해.”

“대화를 빙자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린다거나, 목숨을 쥐고 흔들 수도 있잖소!”

발악 어린 외침이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기지수들 절반 이상이 한숨을 쉬거나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단창의 청년이 당황하여 말했다.

“왜들 그러시는 거요? 내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잖소!”

“정파의 후기지수로서 쉽게 할 말은 아니지.”

“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

“힘이 약한 걸 인정한 용기에 찬사라도 보내 주고 싶지만, 우리는 소수고 너희는 이백이 넘어. 붙어 보기 전까지 모르는 게 싸움이라지만, 너무 소심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제야 자신의 발언이 가진 의미를 깨달았는지 청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질문은, 거칠게 말하자면 너무 멍청한 발언이었다.

“너희를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오지도 않았어. 습격을 했겠지.”

“…….”

“게다가 너희 역시 좋은 교육을 받고 지금 이 자리까지 도달한 후기지수들 아닌가? 설령 내 말에 거짓이 담겨 있대도 그 정도는 알아서 꿰뚫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교묘한 발언이었다. 상대를 치켜세워 주면서 동시에 자신은 그리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은연중에 전달한다.

그때, 또 한 사람이 나섰다.

“우리의 능력을 떠나서 귀하가 위험한 사람인 건 분명해요.”

허리춤에 패검을 찬 여인이었다. 적당히 큰 키에 반짝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애초에 이 모임은 정파 후기지수들의 모임이죠. 당신이 마교, 아니 신교의 소교주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도의 무사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어선 안 돼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맞아요. 게다가 당신은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팽가와 황보가의 소가주들을 쓰러트렸어요. 개인사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도 난처해졌다는 걸 모르시나요?”

“그럼 덤비지 그랬나?”

여검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능력으로는 당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덤비지 못했어요.”

“솔직하니 좋군.”

“이 정도 소란을 피운 것만으로도 사건이에요. 귀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이만 나가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름 정중하다면 정중한 말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난 너희를 여기에 붙잡아 두려는 게 아니야.”

“네?”

“얘기를 하자고는 했지만, 뻔뻔하게 여기 나앉아서 너희와 일장토론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연히 싸울 생각도 없어. 나와 정세에 대해 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함께 따로 자리를 잡자는 소리다.”

여검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거야말로 위험한 소리예요.”

“믿음이 안 가서?”

“물론이에요. 저는 조금 전 우 소협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무엇을 믿고 당신을 따르죠?”

“내가 따르라고 했나?”

“네?”

“나는 너희에게 명령을 내릴 위치가 아니야. 그저 권하는 것이다. 왜 자꾸 강압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여검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서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의 분란 때문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너희에게 내가 적이듯, 내게도 너희는 적이야. 먼저 적지로 들어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의심스러울 순 있어도, 그렇게까지 마음을 닫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아련함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후기지수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몇몇 소수의 인원과 중원으로 나왔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내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정파 무림 전체와 겨룰 수는 없어. 위험을 안고 나온 길이란 말이다. 하지만 개죽음을 당하고 싶진 않아.”

“…….”

“이제 내 뜻을 알겠나?”

“즉, 귀하의 말은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만 따로 자리를 가지겠다는 말이죠?”

“이제야 알아듣는군.”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그때, 장천수가 손을 들었다.

“들어 보고 싶군요.”

순간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장천수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서량을 보는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저는 아직 귀하에 대해, 천마신교에 대해 잘 모릅니다. 과거 정마(正魔)가 치열하게 부딪친 숙적이라는 건 알지만, 제가 직접 겪어 본 것은 아니지요.”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 과격하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그런 사람을 온전히 믿기란,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한다.”

“그러나 당신의 말에서 어느 정도 진심을 느꼈습니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가 내가 널 죽이려 들면 어쩌려고?”

“내 안목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겠죠. 그리고…….”

장천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제 무공도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이곳에 온 처음으로.

서량의 얼굴에 진심 어린 웃음이 깃들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관천도문의 장천수라 합니다.”

“좋다. 좋은 술과 고기를 대접하긴 힘드니, 자리가 퍽퍽하다는 불만은 통하지 않아.”

“나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한 것뿐입니다.”

참으로 당찬 녀석이다. 서량은 진심으로 장천수에게 감탄했다.

당당하고 솔직하며, 자신의 능력에 나름의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제법 걸물이 있었군.”

장천수의 발언, 그리고 서량의 중얼거림.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후기지수 중 여럿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장천수를 바라보았다.

제갈세가의 자제가 모욕을 주었을 때는 나서지 않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적대세력인 천마신교의 소교주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나선다.

그 모습이 후기지수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남궁룡이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우리 남매 역시 함께할 것이오.”

“남궁?”

“그렇소.”

서량의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때 못 봤던 것 같은데. 소가주인가?”

“아직은 아니오. 그럴 능력도 되지 않고.”

“재미있는 말이군. 얼핏 봐도 자네의 무공은 이 팽가의 머저리 놈보다 한 수 위일 것 같은데.”

남궁룡이 고개를 저었다.

“승부란 붙어 보기 전까지 모르는 법이라 했소.”

“그 또한 맞는 말이지. 잘 배웠군.”

서량의 존재감이 워낙에 뛰어난 만큼, 후기지수들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도 놀랐다. 이곳에서 신교의 소교주를 당해 낼 만한 무인은 전무하다. 그런 고수가 남궁룡더러 팽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했다.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남궁룡이 굉장한 고수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또 없나?”

그때, 또 다른 청년이 손을 들었다.

“우리는 빠질 것이오.”

“좋다.”

“그리고 알릴 것이오. 이곳에서 무슨 사달이 일어났는지.”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퍼질 소문이다. 알아서들 해라.”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니 오히려 말한 사람의 배알이 꼴린다. 이를 간 청년이 외쳤다.

“가자!”

하나, 둘 자리를 뜨는 후기지수들.

눈치를 보던 이들이 청년의 뒤를 따랐다. 그 수가 족히 백 명은 넘는 듯했다.

대문 인근까지 걸어간 청년이 멈칫했다.

“신교의 소교주라 했소?”

“그런데?”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오늘은 이대로 물러나지만, 당신의 행위는 분명 정파에 대한 도전…….”

“또 나갈 사람 없나?”

서량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청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그가 뭐라 한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비켜 주실래요?”

대문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언제 나타났을까? 문 앞에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를 본 청년이 입을 쩍 벌렸다.

‘서, 선녀?!’

순간적으로 그런 착각을 할 만큼 아름다운 용모였다.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라지만, 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천상의 미(美)가 따로 없었다. 미모만으로도 은근한 위엄이 느껴질 만큼, 가히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참여하려고?”

“왜요? 저는 안 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저도 빙궁(氷宮)의 여식이에요. 새외의 세력을 대표하는 자로서, 참관 정도는 가능하리라 믿어요.”

서량만큼이나 후기지수들을 놀라게 하는 이의 등장이었다.

사궁의 수좌, 북해빙궁의 여식이란다. 어떤 의미로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보다 보기 힘든 사람인 것이다.

여상린이 주춤거리는 청년을 힐끔거렸다.

“길 막지 말고 나와 주실래요?”

청년은 저도 모르게 물러났다.

여상린이 웃으며 서량에게 다가갔다.

“근데 여기서 할 거예요? 우린 불청객이잖아요.”

“따로 나가야지.”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래.”

여상린을 보낸 서량이 힐끔 청년을 보았다.

“뭐 하나?”

“……에?”

“이 사태를 알리겠다면서? 가라.”

청년의 눈이 흔들렸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는 물론 빙궁주의 여식까지 있는 자리였다. 심지어 빙궁주의 여식은 충격적일 만큼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뭔가 실수한 느낌이랄까. 연이 닿을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저런 미인 앞에서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준 것 같다.

부들부들 떨던 청년이 몸을 휙 돌려 버렸다. 왠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서량이 남은 후기지수들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절반가량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자리가 되겠어. 우리도 나가 보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