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마도(魔道)가 낳은 괴물 (5)
“도와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되오.”
여상린은 당장이라도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기세였다.
마동필이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금호와 호왕의 전투력은 나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오. 게다가 소교주님께서는 일대다(一對多)의 난전을 많이 겪으신 분이오.”
“하지만 저들은 팽가라고요! 게다가 저만한 전력은 지금까지 싸워 왔던 이들과 차원이……!”
“우리가 죽소.”
“……?”
“지금 저 전장에 참여하면, 소교주님의 힘에 휩쓸려 우리까지 죽을 수도 있소.”
여상린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가 고구를 돌아보았다.
고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엔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안광은 은은한 명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동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이……?”
“소교주님의 마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요.”
여상린은 문득 마동필의 손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감정의 동요가 있어서도, 내상을 입어서도 아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체내의 마기가 들끓기 때문이었다. 들끓는 마기가 사지 백해로 뻗어 나가 비상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후우우웅.
마동필의 손에서 금강야차마기가 일었다.
그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마기가, 마공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흡!”
의념으로 마기를 억누르자 새어 나오던 기가 다시 체내로 들어갔다.
“소교주님의 마기가…… 그렇게나 강렬한가요?”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강하다거나 독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오.”
“그럼요?”
“지배하고 계신 거요.”
“지배요?”
마동필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이 뱉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느꼈다.
지금의 소교주님은 이전과 또 다른 무공을 선보이고 계신다. 그것이 경지의 상승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마(魔)에 몸담은 이들은, 지금의 소교주님을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을 것이다.
마(魔)에 종속된 인간이라면, 아니 동물이나 식물이라도 소교주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소교주님은 마(魔)를 지배하고 계셨다.
콰아아아앙!
폭풍처럼 날아드는 도풍(刀風)이 패왕대 외곽에 떨어졌다.
패왕대는 하북팽가 최정예 부대였다. 삼백의 도객 중 누구 하나 절정고수 아닌 이가 없었고, 특히 패왕대주는 팽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절정고수였다.
그러한 고수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살점 하나,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리고야 말았다.
콰앙!
서량의 발이 패왕대주가 들고 섰던 칼을 밟았다. 언뜻 보아도 심상치 않은 보도(寶刀)임이 분명한데, 발길질 한 방에 부러져 버렸다.
“너무 방심하는군.”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모두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칼질 한 번에 폭풍이 불어닥치고, 그 소형 폭풍에 직격을 당한 패왕대주가 세상에서 지워졌다.
중원 도맥의 정점이라는 팽가에서 수백, 수천의 도법을 연성해 왔던 그들조차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이었다. 초전 일격에 팽가의 전대 고수 셋을 베어 버리더니, 방금은 무자비한 일격으로 패왕대주까지 소멸시켜 버렸다.
세상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이야.
“소마귀 놈이다!”
선두에 서 있던 노고수들이 패왕대를 가르며 서량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바로 마교의 소교주다! 놈을 잡아라!”
번쩍!
패왕대는 아무런 외침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살기 가득한 눈빛을 피워 올릴 뿐이었다.
‘다르군.’
그들의 눈빛을 보며, 서량은 생각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봐 왔던 놈들과 다르다. 눈앞에서 아군이, 그것도 부대의 대장이 죽었는데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무공이 강한 적은 더 강한 힘으로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처럼 정신력이 단련된 적들은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무너트려 빈틈을 노리면 된다지만, 이들은 쉽게 무너질 만큼 어중간하게 단련된 이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목표지를 타격하여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키워진 살육병기들.
그것이 바로 팽가의 패왕대, 하북 무림 최강의 무력 부대라는 도귀(刀鬼)들이었다.
파바바박!
곧바로 공격이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패왕대는 그러지 않았다.
재빨리 말에서 내린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후방으로 물러났다. 그런 그들의 전방으로 노고수들이 달려왔다.
‘제법이군.’
서량은 패왕대의 대응에 감탄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덤벼들 만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당장 정면으로 붙으면 피해만 더 커질 것을 아는 것이다.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일단 물러나서 전열을 정비한다. 그 하나만 봐도 왜 패왕대가 하북 무림의 공포로 군림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철두철미하겠어.’
“이놈!”
파아앙!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려 들지도, 험한 말로 비방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칼을 휘두른 순간부터 이미 싸움은 시작됐기 때문이다.
콰르르릉!
노고수들이 휘두른 칼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팽열이 구사했던 혼원벽력도였다. 하지만 수준이 달랐다.
진짜 천둥 벼락이 몰아치는 듯 시퍼런 도광이 내리꽂히는데, 극마에 오른 서량조차 아차 하면 베일만큼 빠르고 예리했다.
콰르르릉!
십여 명이 동시에 구사한 벽력도가 대지를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황군림보로 도격을 회피한 서량은 순간 후방에서 몰려드는 기쾌한 칼 놀림을 느꼈다.
‘빨라.’
셋을 죽였다지만 그래도 삼십에 가까운 숫자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초절정에 준했고, 패왕대주보다 강한 자들도 여럿 있었다.
방심하면, 아무리 서량이라도 죽는다.
쩌저저저정!
빠르고 예리한 도기를 막아 낸 천마도가 은은하게 떨려 왔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후방에서 몰아치는 노고수들의 공격. 물러날 새 없이 몰아치는 도격에서 적색의 도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철혈적성도(鐵血摘星刀)!!’
팽가가 자랑하는 사대도법 중 벽력도에 이어 적성도까지 날아왔다.
화르르르륵!
서량의 천마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지저 깊숙한 곳, 구유에서 피어오르는 겁화의 불길이다. 인화도법의 이 장 종극무간도가 펼쳐졌다.
퍼어어어엉! 콰르릉!
“컥!”
“이이익!”
적성도를 구사하던 노고수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삼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초고온의 도기가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내공으로 겨우 막아 냈지만, 넘실거리는 화기(火氣)가 끊임없이 체내로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괴물이……!”
노고수 중 하나가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파 장문인급 무공, 잘해야 그보다 한두 수 위가 알려진 염라마군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리 붙어 보니 알겠다. 저 마귀는 이미 극마에 오른 절대고수였다. 중원 무림이 자랑하는 천하십대고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강호 최상위 강자인 것이다.
“가주의 판단이 옳았구나! 현제(賢弟)들! 아무래도 오늘 목숨을 걸어야겠네!”
“그래야겠소!”
쿠르르릉!
삼십여 명의 노고수들이 서량을 에워쌌다.
‘작정을 했군.’
화산 장문인 홍산자와 장로 광산자, 그리고 매화검수들.
종남 장문인 상각과 은하검수들.
이들은 그들과 달랐다. 구파와 오대세가는 동급의 명문(名門)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되, 팽가는 화산과 종남처럼 자만하지 않았다.
팽가 최강의 부대에 은퇴한 전대 노고수들까지 투입했다. 이 정도면 십대고수라도 무사치 못할 전력이었다.
즉, 서량도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금호!!”
카아아아앗!
내가고수들의 머리를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포효.
이내 번쩍! 하는 광망이 일더니, 어느새 금호가 노고수들 근처까지 도달했다. 단숨에 패왕대를 건너뛴 것이다.
노고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요물!”
콰르릉!
또 한 번 뻗어 나가는 벽력도의 도기.
금호라도 무사할 수 없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금호는 노고수들을 죽이려 들지 않았다.
파아아악!
벽력도기가 뻗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뛰어올랐다. 한 수 앞, 두 수 앞을 읽어 낸 야성이었다.
터어어엉!
함께 날아오른 서량이 금호의 등에 올라탔다.
손에는 길이만 다섯 자가 넘는 대도를 들고, 기마 높이는 거뜬히 되는 영물에 올라탔다. 위풍당당한 마장군(魔將軍)의 위용이었다.
노고수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초절정고수의 도격까지 피해 내는 짐승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저 짐승은 마교의 소교주 놈 못지않은 놀라움을 안겨 주고 있었다.
“달려!”
크아아앙!
금호가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며 질주했다.
목표는 패왕대 쪽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벽력도를 구사하는 노고수 십여 명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량이 외쳤다.
“비켜!!”
번쩍!
허공을 가른 혈규대홍련의 도기가 뇌성벽력을 일으키는 고수들의 도기와 부딪쳤다.
콰아앙!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팔방으로 치달았다.
금호가 주춤했다. 극한의 고수들이 벌이는 공방 속이니만큼, 제아무리 영물이라도 충격을 아니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금호는 금호였다.
캬아아앗!
굵은 듯, 날카로운 듯한 포효와 함께 재차 달려드는데 그 속도가 실로 빨랐다. 종전의 속도를 한참 웃도는 돌진이었다.
노고수 한 명의 눈이 커졌다.
“이, 이……!”
퍼어어억!
“크아악!”
무공도 뭣도 아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돌진하는데, 그 속도가 칼질보다 빨랐다.
금호의 머리에 들이받힌 노고수의 몸이 훨훨 날아 패왕대 앞으로 떨어졌다. 금호와 부딪치기 전, 서량의 암경(暗勁)에 오른팔이 부러진 그는 피까지 토했다.
찰나지간 벌어진 일. 하지만 남은 노고수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번쩍! 콰르르릉!
벽력도와 적성도, 그리고 패왕도(覇王刀)가 날아왔다.
하나같이 천하를 논할 수 있는 강호 정점의 도법들이었다. 오랜 실전의 부재로 손발이 잘 맞진 않았지만, 위력만큼은 현역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천마도를 양수로 쥔 서량이 다시 한번 지옥풍을 불러냈다.
콰아아아앙!
‘큭!’
서량과 금호가 붕 떠올랐다.
힘을 합친 노고수들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했다. 경력의 질은 서량보다 떨어졌지만, 넘쳐흐르는 힘은 서량 개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내상.’
속이 찌르르했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이다.
비무가 아닌 실전에서 내상을 입어 보는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 사실이 서량의 긴장을, 그리고 투지를 타오르게 했다.
콰앙!
천마도를 대지에 고정해 금호의 중심을 잡아 준 서량이 좌수를 뻗었다.
‘……!’
노고수들의 얼굴에 급박함이 일었다.
공기를 밀어 내고,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일수였다. 얼핏 느릿해 보이는 손짓에서 어느새 거대한 경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경력은 노고수들을 호신강기처럼 에워싸고 있던 도기의 그물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피해!”
“안……!”
퍼어어어어엉!!
끔찍한 폭음과 함께 노고수 하나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공간을 지워 내는 제육천마왕의 손짓, 능천마라수(凌天魔羅手)였다.
실전에서는 처음 써 보는 무공. 그 파괴력은 서량도 놀랄 정도였다.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구사한 무공이었지만, 일격에 도기의 그물을 뚫어 내고 초절정고수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림마황의 무공이다.
이것이 바로 천마(天魔)의 무공인 것이다.
제 손으로 만들어 낸 광경에 서량 본인도 얼떨떨해 있는 사이.
우우우우우웅!!
금호의 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일었다.
고죽림의 영기(靈氣)였다. 그 영기가 마공보다도 빠르게 서량의 내상을 치료해 주었다.
고죽의 핵(核)으로 연결된 일인일수의 상생 관계는 그처럼 신묘하기 짝이 없었다.
크아아앙!
금호의 포효.
크허어어엉!!
뒤이어 터져 나오는 호왕의 포효가 팽가의 고수들을 전율케 했다.
“가자!”
노고수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서량과 금호가 패왕대를 향해 폭풍처럼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