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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08화 (308/774)

308화. 신화(神話)가 시작되다 (3)

“그랬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담사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저기 구름이 흩어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맑은 하늘이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주둥이는 가벼울지언정 나서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가려낼 줄 아는 자라 생각했거늘.”

“…….”

“그래서 팽가주는 뭐라 변명을 하던가?”

“일단,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군.”

“예. 하지만 시인하는 것보다는…….”

“아니지. 여론이 이렇게 안 좋을 때는 차라리 나서서 시인하고 몇 년을 자중하는 게 나아. 정말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 해도, 가문의 수장이란 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어쩌자는 겐가.”

담사영이 피식 웃었다.

“하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권력이란 놈을 쥐고 흔들다 보면, 자신의 실수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네. 그래서 그것을 숨기려 들기 일쑤지.”

“…….”

“그래도 이번에는 심했군.”

팽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정파 무림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팽가가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죽이기 위해 단독으로 병력을 파견했다는 소문이 중원 전체로 일파만파 퍼지는 중이었다.

팽가는 처음엔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이내 소문의 여파가 너무 커지자 병력 파견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다음 보인 행동이 가관이었다.

팽가주는 패왕대라는 부대 자체를 없애 버렸다. 자신의 명을 듣지 않고 노고수들과 획책하여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는 이유였다.

더하여 존장이라 할 수 있는 노고수들 역시 제명해 버렸다. 그들 모두에게서 팽가의 성씨를 박탈했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않으려 했다.

팽가주로선 자신의 무고를 알리려는 조치였지만, 안타깝게도 여론은 팽가주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책임을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자기 식구들조차 버려 버린 최악의 무인이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지어는 오대세가(五大世家)에서 팽가를 제외하라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다.

보통 이러한 사건 사고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점차 잊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 팽가 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책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핏줄까지 버려 가면서.

강호 무림은 문파(門派)의 소속감을 중시한다. 그런 세상에서 팽가는 무림인들이 분노할 만한 짓만 골라서 저지른 셈이었다.

결국 팽가주는 가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일 년 동안 대외 활동을 축소하겠다 천명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명령이 아니었다는 걸 강조했고, 대외 활동을 축소한 것도 고작 일 년이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세상을 실망시킨 것이다.

“그쪽은 어떤가?”

“예?”

“마교도 측에 대한 여론은 어떠하냐는 말일세.”

“그것이…….”

담사영이 고소를 지었다.

“물어볼 것도 없겠군. 좋아졌겠지.”

“……그렇습니다.”

신교의 소교주는 일약 강호 최고의 풍운아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 전, 소교주가 신교의 중원 진출을 선포했을 당시 세상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소교주 서량의 화통한 행보와 시원시원한 발언에, 간만에 걸물이 뛰쳐나왔다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세상에 없는 신비한 두 영물과 함께 단신으로 팽가의 전대 노고수들과 패왕대를 격파한 서량에게 세상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물론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단신으로 그 많은 고수들을 쓰러트렸다는 건, 서량이 십대고수에 육박하는 고수란 뜻이기 때문이었다.

염라마군 서량의 나이는 많이 봐야 이립(而立)에 이른다고 하였다. 수천 년 무림사에서 이립에 화경을 깨달은 무인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당연히 서량이 그런 괴물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는 진실이라 믿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서량이 진정 십대고수급의 고수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량이 만든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팽가의 병력과 당당하게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만한 배포였다.

후기지수라 부르기엔 너무도 뛰어난 무공. 신비로운 두 영물을 데리고 다니며, 누구와도 맞설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준 호탕함.

그것만으로도 열광의 도가니가 될 판인데, 심지어 정파 후기지수들과 대담까지 벌였단다.

평화를 주제로 논하던 그의 언사는 후기지수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감했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이상이라 치부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껏 그들이 생각했던 마인(魔人)과는 수만 리 떨어진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정파의 후기지수들과 직접 대담을 벌이는 마교도가 있을 줄 뉘라서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서량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천마신교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저런 자가 신교의 작은 주인이라면, 천마신교 역시 이전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퍼졌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자도 많았다. 개인은 그럴 수 있을지라도, 집단의 성격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마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쥐뿔도 없는 애송이가 뛰쳐나와 이목이나 끌어 보려는 수작으로 보았거늘, 보통이 아니로군.”

담사영은 서량의 행보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을 읽었다.

언뜻 보기에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의 막무가내식 중원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껏 서량이 내보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단시간에 이만큼이나 세인의 주목을 받은 무림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조차도 그런…… 음?!’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조금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어떤 부분에서 말씀이십니까?”

“마교의 소교주 놈 말일세. 그놈 행보가 마치 젊은 시절의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네.”

“……!”

“나 역시 세상에 나와 단시간에 강호의 주목을 받았었지. 물론 그놈처럼 여기저기 판을 뒤흔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말이야.”

담사영이 재미있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만일 내게도 뒤를 받쳐 주는 조직이 있었다면, 놈과 비슷하게 천하를 활보했겠지. 그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놈이란 생각이 들었네.”

각자의 이해관계가 살벌하리만치 어긋나는 미친 전장을 전전하다가, 기어이 정파 무림의 수장이 된 입지전적인 사람이 담사영이었다.

그런 담사영이라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원을 활보하고 있는 풍운아가, 과거 그의 밑에서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던 최악의 혈검(血劍)이었다는 사실을.

천하제일살수라 불리며 그의 행보와 정치력을 하나하나 봐 온 또 다른 괴물이라는 것을, 그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골치 아프게 되었군. 만인의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 마도 무림에 대한 시선이 밝아지고, 우리를 보는 시선은 오히려 어두워졌어.”

“그렇습니다.”

“큰일을 행하려 하는 이 시점에 이러한 여론의 변화는 결코 좌시해선 안 되지.”

담사영이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전에 내가 말했던 건 어찌 되었는가? 문내 늙은이들은 다 휘어잡았는가?”

중년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왜 맹주님을 뵈러 왔겠습니까. 그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껄껄. 가끔은 내 제자들도 자네를 좀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맹주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용봉(龍鳳)들입니다. 심지어 지금 당장 일파의 종주가 되어도 부족하지 않은 이들도 있잖습니까?”

“능력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녀석들은 경험이 부족해. 가진 능력 이상의 결과를 보이려면 맨몸으로 들판을 뒹굴어 봐야겠지.”

“그러고 보니 대공자가 귀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막(大漠) 쪽 일을 아주 멋지게 처리했다고 하던데요.”

“나쁘진 않았네.”

“하하! 제자에게 너무 엄하신 것 아닙니까? 무공, 지략, 인맥, 경험 등등. 대공자야말로 천하제일의 기린아라 불릴 만합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제자 얘기는 이쯤 해 두지. 그래서, 늙은이들을 어찌 지내고 있는가?”

“얌전히 있습니다. 필요할 때 골라서 써먹으면 될 정도지요.”

“잘 조련했군.”

“선을 넘는 싸움에서는 제가 일가견이 있는 편입니다.”

“그런 것 같군.”

툭. 투둑.

“허어, 비가 오는군요.”

방금까지만 해도 맑은 하늘이지 않았던가. 근래의 날씨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정자로 올라온 담사영이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곧 강 노선배에게서 연락이 올 것일세.”

“역시 하오문이로군요. 쉽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본래 범을 때려잡는 것보다 쥐새끼를 잡는 게 더 힘든 법이네.”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알고 있겠지? 강 노선배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시작해야 하네.”

“맡겨만 주십시오.”

담사영이 찻잔을 들었다.

다 식어 버렸지만 그는 막 우려낸 차를 마시듯 천천히 찻물을 들이켰다.

“재미있는 겨울이 되겠어.”

* * *

“가만히 있어 봐!”

크르르릉!

“아오! 덩치도 큰 놈이 엄살은!”

퍽!

사정없는 주먹질에 호왕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여상린은 낑낑대며 호왕의 뒷다리에 붕대를 감았다. 원체 거대하다 보니, 뒷다리 하나가 사람 몸통보다도 크다. 정말이지 질리는 크기였다.

“어휴! 하여튼 문제야, 문제. 너 도검불침의 마수(魔獸)였다며? 금호랑 같이 지내면서 더 성장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상처가 많냐?!”

크르르릉!

“이게 성깔만 있어서.”

여상린이 붕대의 끝을 매듭짓고는 손바닥으로 호왕의 다리를 후려쳤다.

탁!

“돌려!”

아픈 듯 주춤거리던 호왕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여상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왼쪽 뒷다리는 잔상처가 많더니만 여기는 제법 깊네? 제대로 맞았구만? 팽가도(彭家刀)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상처가 벌써 절반 이상 나았다. 굳이 붕대를 감을 필요 없이, 이틀쯤 놔두면 전부 아물 것이다.

하지만 여상린은 막무가내였다.

꾹! 꾹!

“너 회복력 좋은 거 알아. 아는데, 너라고 백 년을 살겠냐, 천 년을 살겠냐? 미리미리 몸 관리 안 해 주면 나중에 큰일 난다. 알았어?”

툭.

굵직한 꼬리가 여상린의 허리춤을 때렸다.

장난으로 건드린 것에 불과하지만 호왕의 꼬리는 그 자체로 근육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여상린이 인상을 썼다.

“아파, 이 자식아!”

꽈드드득!

크헝!

부러 붕대를 세게 조이자 호왕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호왕과 여상린이 아옹다옹하며 붕대를 감고 있는 사이.

“저기…….”

“응? 아, 오셨어요?”

공야치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요? 얘 붕대 감아 주고 있잖아요.”

“아…….”

천하의 공야치도 이 황당한 광경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정말 독특한 소저라니까.’

단순 전투력으로는 금호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는 게 호왕이었다. 그만큼 회복력도 빠른 영물에게 붕대를 감아 줄 생각을 하다니, 여러모로 굉장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

“아, 여기 소문주님 별장이죠?”

“제 별장은 아니고, 본문이 소유한 곳입니다.”

“좋은 곳 많이 보유하고 있네요. 돈 엄청 많으신가 봐.”

머쓱함에 헛기침을 한 공야치가 물었다.

“소교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여상린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떨어진 계곡을 가리켰다.

“저기서 앵화 무공 봐주고 계세요.”

“많이 안 다치셨지요?”

“좀 다치시긴 했는데, 뭐 아시잖아요? 상식이 안 통하는 괴물이라.”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여상린과 호왕을 일별한 공야치가 계곡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쩌어어어어엉!! 콰앙!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절벽 한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돌덩이들이 공야치를 향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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