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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10화 (310/774)

310화. 신화(神話)가 시작되다 (5)

서량의 느닷없는 언행에 가장 놀란 사람은 공야치였다.

“함정이라니요?”

“암, 함정이지. 함정이고말고.”

서량의 눈살을 찌푸렸다.

“강서 상인 연합이 본교와 거래를 트고 싶어 한다고? 차라리 소림사가 우리와 손을 잡겠다고 나서는 게 더 그럴듯하겠다.”

“……?!”

“자네가 좀 전에 말했잖아. 강호의 기득권층이 나를 아니꼽게 보고 있다고. 긴장 좀 하라고.”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긴장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 같군.”

“……그들이 소교주님을 꾀어내기 위해 이런 서신을 보냈다는 것입니까?”

“십 할 확신한다.”

공야치가 눈썹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함정…… 함정이라니?”

그는 서량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서량은 위대한 무인이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할 것이며, 차후 천하를 움직이는 거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공야치는 서량의 무공보다, 그의 직관력과 추진력을 더 높이 샀다.

무(武)로도 명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사건 사고를 해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서량은 때론 직관적으로, 때론 논리적으로 일을 해결하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난세의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이 서신이 함정이라고 말한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일단은…….”

혼란스러운 듯, 공야치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서신의 필적과 송신처를 전부 확인해 본 결과 강서성의 상인 연합에서 보낸 게 확실했습니다. 연합회주가 직접 작성한 서신이 맞습니다.”

“그렇겠지.”

공야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강서상회가 모종의 단체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협박? 대체 어떤 협박을 받아야 한낱 상인 연합이 마도 무림의 총본산이라는 본교를 건드리려 들겠나? 자네는 하오문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일 때문에 소림사를 건드릴 수 있겠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지?”

“소림사를 건드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잘 알고 있군.”

현재 강호삼세가 무림을 삼등분하고 있으며, 소림사는 분명 의천맹 소속이다.

하지만 소림사는 단순히 의천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세력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림의 전설이요, 태양이었다.

태산북두(泰山北斗),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이다.

설령 의천맹이 와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소림은 건드릴 수 없다. 소림은 그 자체로 성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마신교는?

“그건 본교도 마찬가지야.”

“…….”

“마(魔)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있어, 본교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지. 어쩌면 소림보다도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어. 이쪽은 신(神)을 숭배하니까.”

“그렇다면…….”

공야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애초에 강서상회가 천마신교를 적대하는 세력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그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하지만 몰랐다 해도 의심부터 했을 거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째서라니? 나는 지금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상태야. 적의(敵意)는 솔직하게 받아들여도 탈이 없지만, 호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란 말이지.”

“……!”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오히려 자네가 더 날카로워야 하는 것 아닌가?”

공야치가 탄식을 흘렸다.

서량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가장 당연한 사실도 의심부터 해야 하는 게 이쪽 일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뒤통수 맞는 게 정보계요, 세상일 아니던가.

‘내가 자만했구나.’

현재 서량의 명성은 천하를 뒤흔들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명성을 만든 것이 서량의 배경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량은 실력으로 보여 줬고, 자신이 뱉은 말은 확고하게 지켰다. 그러면서도 정파 후기지수들과 대담회까지 벌였으며, 팽가와의 전투에 직접 나서서 그들을 쓸어 버렸다.

그야말로 파격적이지 않은 행보가 없었단 말이다. 그리고 그런 행보가 가능하도록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준 사람이 바로 공야치였다.

서량의 성공은 곧 자신의 성공이다. 어느새 공야치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아직 진짜 성공은 맛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공야치가 허리를 굽혔다.

“근래 달성한 위업에 제가 너무 취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앞으로는 결코 소교주님을 실망케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너무 자괴감을 느끼진 않았으면 하네.”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깨닫지 못했다면, 훗날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어. 자네의 마음도 이해하고. 다만 앞으로 실수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노력하겠다가 아니라, 아예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못을 박아 둔다. 충격이 큰 만큼, 다짐도 강해진 것이다.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그렇습니다. 소교주님 말마따나 의심은 할 수 있어도, 확신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교주님께선 십 할의 확률을 언급하셨지요.”

공야치의 얼굴에 솔직한 궁금함이 어렸다.

“이것이 함정임을 확신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고구 역시 궁금하다는 듯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상인 연합을 만들도록 도와준 사람이 나니까 알지.’

담사영의 뒤에서 온갖 지저분한 일을 처리할 때, 강서의 상인들을 연합해 총회를 결성하도록 뒤에서 손을 쓴 사람이 서량이었다.

물론 이전의 숱한 일처럼 서량이 원해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담사영의 명을 받아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암살했고, 상단 호위도 했으며, 상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뒷골목 염왕채들까지 싹 정리했다.

담사영 밑에서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했지만, 강서상회의 일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강서상회 쪽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강서성의 상단 통합을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의천맹주야.”

“헉!”

공야치의 눈이 흔들렸다.

고구도 어지간히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런 정보는…… 없었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하오문이 제아무리 정보제일이라도 작정하고 파헤치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다. 아니, 파헤치려 해도 어려웠겠지.”

“소교주님께선 어찌 그것을?”

“뭐어…… 이 자리에 올라오면 이것저것 들어오는 정보가 많거든.”

고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소교주가 되면 신교의 세력을 움직일 권한이 생긴다. 그 정도 권력이 쥐어졌다면, 강서상회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확률도 높다.

“의천맹주가 왜 강서상회를 후원했을까요?”

“뻔하지. 강서성은 마도 무림의 영역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역이야. 게다가 사파의 총단인 철혈성과도 멀지 않지.”

“경비탑을 쌓은 것이로군요?!”

“정확해. 게다가 강서상회는 무림 문파가 아니라 상인 연합이잖아? 의심받을 일도 별로 없고, 돈은 왕창 벌고. 말 그대로 일석이조지.”

공야치는 혀를 내둘렀다.

‘무시무시하구나.’

강서성에 보이지 않는 첨탑을 세워 사파 무림과 마도 무림을 감시하겠다?

그야말로 쉽게 떠올리기 힘든 발상이다. 심지어 그 발상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의천맹주의 음험함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물론 강서상회 자체가 의천맹주 개인의 것은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이해관계의 일치라고 해야겠군.”

“상인 연합의 회주가 마도 무림을 증오합니까?”

“증오하지. 그것도 엄청나게. 마도 무림을 멸망시킬 수만 있다면 가진 재산은 물론이요,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끊어 버릴 준비가 된 사람이야.”

서량의 눈이 빛났다.

“회주뿐만이 아니야. 상회를 이루고 있는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마도 무림을 증오하고 있어.”

“그런 조직이라면 결코 천마신교와 손을 잡으려 들지 않겠군요.”

“뒤통수를 날릴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지.”

공야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로군요. 지금 당장 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고 나서 어떻게 하게?”

“소교주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도, 그들이 자체적으로 나선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필경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며, 십중팔구 그 누군가는…….”

“의천맹주겠지.”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도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거야. 놈들이 본교를 왜 증오하는지는 나도 몰라. 만약 그 이유가 중원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흉악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 시점에 드러내서는 안 되겠지요. 소교주님께서 애써 쌓아 두신 명성이 그대로 무너질 테니까요.”

“맞아.”

공야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굳이 지금 반격할 필요는 없지만, 이쪽이 공격당했을 때 두 배로 되돌려 줄 방벽을 세워 둘 순 있을 겁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보름 안에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보중하시길.”

“이보게, 소문주.”

“예, 소교주님.”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과로는 좋지 않아. 우리 조금 느려도, 천천히 확실하게 가자고.”

공야치가 씨익 웃었다.

“동의합니다만 지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공야치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일에 치여 살고 있구만. 쉴 때는 확실히 쉬어 줘야 머리도 잘 돌아갈 텐데.”

“소교주님.”

“엉?”

고구가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렇게 봐? 아주 불경한데?”

“그를 많이 아끼십니까?”

“누구? 공야?”

“그렇습니다.”

“아낀다기보다는 동업자를 향한 걱정에 가깝지. 우린 아직 할 일이 많아. 벌써부터 몸 상하면 나중에 큰일 난다고.”

“그렇군요.”

“그런데 왜?”

“아닙니다. 그를 많이 챙겨 주시는 듯해서요.”

“챙겨 주긴 개뿔, 철전 하나 던져 준 적 없어.”

투덜대듯 말하지만 고구는 알 수 있었다. 서량이 공야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하긴, 옛날부터 그랬지.’

서량은 항상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하는 자들에게 정(情)을 많이 주는 이였다.

실패는 어루만져 주고 실수는 짚어 주되, 미래를 얘기하며 다독여 준다. 그간 서량이 보여 준 살벌한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서량의 성격이요, 매력이리라.

적에게는 자비가 없지만 내 사람은 확실히 챙겨 주는 것.

“그나저나 댁은 어쩐 일로 왔어?”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군요.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나중에 찾아오긴 개뿔. 나 힘들 때 골라서 찾아오려고?”

서량이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앵화 운공 중이니까 저기로 가자. 얼마나 기가 막힌 깨달음인지 확인해 보자고.”

고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감사합니다.”

* * *

보름 뒤.

가장 먼저 혈향을 맡은 것은 금호와 호왕이었다.

크르르릉.

두 영수가 이빨을 드러냈다.

파아아악!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은 여상린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수련에 열중하고 있던 여상린은 재빨리 수풀로 달려 나갔다. 이곳 별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잠시 후, 여상린이 외쳤다.

“소교주님!!”

파아앙!

서량과 마동필, 고구가 달려왔다.

“무슨 일…….”

순간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상린 앞에는 작은 체구의 복면인이 쓰러져 있었다.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복면인은 기절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복면인의 손에는 구겨진 서신이 들려 있었다.

서량은 직접 서신을 빼내 펼쳤다.

‘……!’

우우웅.

조금씩 일렁이는 마기.

위이이이잉!!

서량이 마기를 발산하자 금호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명멸했다. 서량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는 증거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들 챙겨.”

“무슨 일입니까?”

서량의 볼이 미미하게 떨렸다.

“공야치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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