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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18화 (318/774)

318화. 장악의 미학 (8)

숭산 입구까지 따라온 군중 대부분이 사라졌다.

나한당주 정각의 부탁 때문이었다. 지금 숭산은 충분히 어지러우니, 더 이상의 소란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말에 사람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덕분에 그곳에는 정각과 서량을 제외한 그의 일행만 남게 되었다.

정각이 마동필에게 말했다.

“서 소교의 신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사백님께서는 본사 최고 어른이심에도 일체의 편견이 없는 분이십니다.”

적송대사의 제안을 서량은 순순히 수락했다.

당연히 일행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서량이 천하에 상대할 자가 몇 없는 고수인 건 분명하지만, 이곳은 정파 무림의 성지라는 소림사가 아니던가.

정각은 그런 일행의 마음을 잘 알아주었고, 그들을 불안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태사백님이 나선 이상, 이들 역시 소림의 손님이었다. 정각의 정성은 손님에 대한 당연한 예의였다.

물론 이들이 혹시라도 난동을 부릴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정각은 산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구가 말했다.

“정무쌍신(正武雙神)의 노선배들은 마도와 사파에서도 존경하는 분이오. 그분들의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인품을 알기 때문이오.”

“아미타불.”

“그중 권신 노선배는 희대의 악적에게 단 한 번도 살수를 써 본 적 없는 생불(生佛)이라 들었소. 그래서 나는 소교주님이 걱정되진 않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구가 힐끔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마동필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서량과 적송대사가 걸어간 오솔길을 심유한 눈으로 주시할 뿐이었다.

“적송대사는 믿을 수 있어도, 소림을 믿으란 말은 마시오. 수백 년간 대립을 거듭하던 마정(魔正)의 관계가, 불세출의 무신(武神) 한 명 때문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 소교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량이 중원을 돌며 천마신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은 걸 말하는 것이다.

즉, 적송대사 역시 대단한 사람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뜻을 돌려서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마 호위.”

“…….”

“마 호위!”

마동필이 힐끔 고구를 돌아보았다.

입을 열려던 고구는 잠시 침음했다. 자신을 보는 마동필의 눈빛이 무척이나 깊었던 것이다.

“괜찮은가?”

“예.”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나?”

마동필은 담담한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발언을 내뱉었다.

“어떻게 하면 소림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지, 빈틈을 노릴 곳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마동필을 보았다.

정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무슨 흉악한…….”

“나는 소교주님의 호위외다. 혹시라도 소교주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소교주님께 칼을 겨눈 그대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결할 것이오.”

“…….”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화들 하시오.”

있는 대로 신경 쓰이게 만들고 신경 쓰지 말란다.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마동필이 다시 몸을 돌리자, 마차 뒤에 앉아 있던 금호와 호왕이 그의 곁에 다가와 엎드렸다.

고구가 그답지 않게 한숨을 푹 쉬었다.

‘다들 괴물이 되어 가는군.’

* * *

“어떠냐? 경치가 무척 좋지 않으냐?”

숭산의 동쪽 입구에서 멀지 않은 봉우리.

높지도 않고, 딱히 특색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산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들도 쉽게 찾기 힘든 길 같았다.

“원래 본사에서 떨어져 나올 생각은 안 했더랬지. 산사에 퍼지는 불경 소리, 아해들의 기합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넌 모를 것이다.”

널찍한 평상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적송대사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그래도 굳이 떨어져 나와 사는 것은, 내가 녀석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뜬금없이 시작된 대화였다.

평상 옆에 팔짱을 끼고 선 서량은 무표정한 얼굴로 적송대사의 말을 들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편협해지기 마련이라, 보고 들은 것이 쌓이고 경험도 쌓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겠다 싶은 순간 세상에 통달했다고 착각하지.”

“…….”

“나는 불도(佛道)보다 무도(武道)에 심취한 땡중이니라. 온전히 불법(佛法)에 귀의했다면 그간 저질렀던 많은 실수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게야.”

“…….”

“그래서 떨어져 나온 게다. 이런 반쪽짜리 승려를 전설이랍시고 떠받드는 아해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어. 강호가 소림을 어떻게 보든 소림은 소림일 뿐이지. 달마대조(達磨大祖)께서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을 만드신 것은 주먹질 잘하라고 만드신 게 아니니라.”

“그래서.”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노선배께서 본사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소림 역시 강호에서 떨어져 나온 거란 말이오? 악영향을 줄까 봐?”

적송대사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곡차는 즐기느냐?”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맛 좋은 곡차를 대접해 줄 테니.”

거처로 들어간 적송대사는 반 각도 되지 않아 큼직한 병과 사발 두 개를 얹은 쟁반을 들고 나왔다.

“발효가 잘되었어. 손님한테 대접하기 딱이로군.”

술잔을 보던 서량이 적송대사를 힐끔거렸다.

“어찌 그런 요망한 눈으로 힐끔거리는고?”

“승려가 술을 마셔도 되는 거요?”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땡중이라고. 땡중이면 땡중답게 살아야지.”

너무 당당한 거 아닌가?

불음주(不飮酒)의 계(計)를 당당히 어기겠다고 말하는 적송대사의 얼굴은 제법 행복해 보였다. 언뜻 술에 대한 탐욕마저 엿보일 정도였다.

여러모로 기괴한 사람이었다.

“자, 한잔 걸쳐 보거라.”

서량은 단번에 사발을 비웠다.

적송대사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마실 줄 모르는 놈이로고.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해야…….”

“맛이 좋소.”

“허험! 그럴 수밖에. 삼십 년 동안 곡차 제조에 열성을 쏟았느니라.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무려 삼십 년 동안이나 술을 퍼마셨다는 얘기였다. 소문으로 듣던 권신과는 구만리는 족히 떨어진 인상이었다.

적송대사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괴상한 작품도 많이 만들었어. 네놈은 운이 좋은 게다. 이천상 그놈은 벌레도 얼씬거리지 않는 고약한 곡차를 마셔야 했으니까.”

서량의 눈이 빛났다.

“아까도 들었는데, 교주님을 아시오?”

“알다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적송대사가 사발을 반만 비웠다.

서량조차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높은 무공을 쌓았으면서도 술 한 모금에 얼굴이 붉어진다. 취기를 억누르는 내공을 풀어 버린 건지, 체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지, 이놈은 분명 괴물이 될 거라고. 어쩌면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는 초대천마(初代天魔)에 비견될 마신(魔神)이 될지도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서량은 적송대사의 눈빛에서, 당시에 그가 느꼈던 놀라움을 알 수 있었다.

농담조로 말하지만 처음 이천상을 봤을 때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인간 같지 않은 능력을 보건대, 젊었을 적에도 무지막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지. 지금 싹을 뽑아 버려야 하나? 만인에게 지탄받는 악종에게도 살수를 가한 적이 없는 내가, 이놈에게만큼은 살수를 가해야 하는가?”

“생사결을 나눈 거요?”

“아니.”

“왜 그랬소?”

적송대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살수를 펼쳐도 이길 자신이 없었거든. 놈은 정말 엄청났었지. 무적이라 추앙받던 내가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

“어쩌면 지금은, 나보다 훨씬 드높은 곳에서 천하를 굽어보고 있을는지도 모르겠구나.”

웃음이 헤프며 술을 좋아하고, 빈말로도 예의 있는 언변을 구사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서량은 적송대사에게서 깊고 깊은 선(善)을 느꼈다.

불도보다 무도에 심취한 땡중이라 자평하지만 불법의 가르침을 놓지는 않았다. 천성인지 끊임없는 자기 수양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만인의 찬사를 받을 만한 위인이었다.

그래서 서량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림은 대승(大乘)을 추구하지 않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지만 대개 그런 분위기지.”

“한데 어찌 의천맹이 변질되었음에도 가만히 있는 거요?”

적송대사는 말없이 사발을 들이켰다.

시원하게 사발을 비운 그가 서량에게 잔을 내밀었다. 서량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다시 한번 사발을 비운 적송대사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아까 네가 하는 말을 들었다. 소림의 문제가 천하가 걸린 문제만큼 심각한 것이냐고.”

“그랬소.”

“그 말이 너무나도 가혹한 발언이라 생각지는 않느냐?”

서량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오.”

“그렇지. 소림은 소림만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본사의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에게 소림은 작은 천하다.”

“알고 있소.”

“그런데도 너는 본사가 세상일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물론이오.”

“아이들이 다칠 것이 분명한데도?”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을 억지로 곡해하여 논점을 흐리려 들지 마시오. 소림은 소림만의 책임이 있고, 지금의 소림은 그 책임을 지지 않고 있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오.”

“어린 마룡아.”

“말씀하시오.”

“하면 묻겠다. 네게는 무슨 책임이 있어 천하를 안정케 하려 드는 게냐?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하의 안녕을 바라는 네 마음에, 정녕 한 치의 삿된 의도도 없단 말이냐?”

“…….”

“소림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네 진정한 목적을 말해 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깊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

가만히 적송대사를 바라보던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의천맹주를 죽이는 것이오.”

적송대사의 눈빛이 깊어졌다.

“나아가 그놈과 함께 썩어 버린 중진들도 모두 죽기를 바라오.”

“이유가 무엇이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소. 개인적인 원한 외에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정사마가 균형을 이루어야 중원이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지기 때문이오.”

“마(魔)를 가슴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가 어찌 평화를 바라는고?”

“자유.”

“…….”

“내가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평화를 바라오.”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던 걸까. 한없이 깊기만 했던 적송대사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대답이 되었소?”

가만히 서량을 주시하던 적송대사가, 이내 히죽 웃었다.

“한 잔 받거라.”

서량의 사발을 가득 채운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만, 네 강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사실이니까.”

“안다. 그래서 놀랍다. 내 아무리 강호에 나서지 않는 몸이라 한들 소림에 적을 두고 있는 무승이 분명하거늘, 용케 네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적송대사가 자신의 잔을 비우고 말을 이었다.

“내 의문을 하나만 더 풀어 준다면, 당금 소림이 왜 강호에 나서지 못하는지 알려 주마. 더하여 네 말마따나, 다시 한번 소림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방장을 설득하겠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질문하시오.”

“어찌하여 네놈의 마공에서 소림 무공의 향이 진동을 하는 것이냐?”

“……?”

“네놈의 그 흉악한 마공에, 어찌하여 암영기(暗影氣)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지?”

“……!!”

우우우웅.

적송대사의 동공이 은은한 금빛 광채로 뒤덮였다.

“네놈,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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