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19화 (319/774)

319화. 천지개벽(天地開闢) (1)

“교주님! 큰일 났습니다! 현재 소교주가……!”

“이미 소림으로 들어갔네.”

호요성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소림으로 향했다는 것.

그가 어떠한 속내를 갖고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마인이, 그것도 신교의 차기 주인이 될 자가 소림으로 향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네.”

“소교주의 군림마황기를 읽으신 겁니까?”

“그렇지 않네.”

“예?”

창가를 바라보는 이천상의 눈이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었다.

“굳이 군림마황기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네. 선천의 경계에 선 량이의 마기가 끊임없이 경계를 보내고 있어.”

호요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기가 경계를 보낸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뜻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발언이었다.

“그럼 지금 소교주는…….”

“땡중과 만났군.”

“예?”

퍼석!

이천상의 커다란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산산이 조각났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 조절이 안 된다. 그만큼 이천상에게도 놀라운 일이라는 뜻이리라.

“적송, 그 늙은이와 만났네.”

“적송……? 적송이라 하심은?”

“이전 세대, 천년 소림이 최초로 무불태상원로(武佛太上元老)라는 직책을 만들어 수여한 자.”

“……?!”

“나한권신, 주먹질 잘하는 땡중 말이네.”

“헉!”

호요성이 적송이란 법명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이 시대에는 이미 잊힌 이름이라 당장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권신 적송.

전 세대, 중원 무림을 아우르던 무적의 고수가 그였다. 그에 버금가는 고수라 알려진 현천진인과 함께 쌍신으로 불리곤 했다.

두 괴수가 지키고 있던 전 세대의 정파는 하늘 끝까지 닿은 철옹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도(魔道)에도, 사파에도 그 둘을 상대할 고수는 없었다.

마도에서 또 다른 절대고수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량이의 마기를 통해서 보이고 있네. 그 늙은이, 그간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이군. 삼십 년 전과는 또 달라.”

멍하니 이천상을 보던 호요성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병력을 파견하기엔 너무 늦었군요.”

“그럴 필요도 없을 걸세.”

“왜 그렇습니까?”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무르기 짝이 없는 자야. 특히나 내 제자라는 걸 안다면, 어지간해선 해코지하려 들지 않겠지.”

“……권신을 만나 보셨습니까?”

“옛날에.”

호요성은 침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 신교의 차기 주인이 대적인 소림으로 갔다는 충격보다 두 절대자의 만남이 어땠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큰 그였다.

“어땠습니까?”

“충격적이었지.”

충격.

호요성 역시 충격이었다. 이천상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자질이 어떠했든, 당시의 난 꽤 오만했었네. 신교를 반석 위에 세우겠다는 꿈은 하루하루 거세게 불타올랐지만, 내 실력이 천하제일임을 의심하진 않았지.”

“…….”

“그 강철 같은 자신감을 송두리째 뒤흔든 늙은이가 바로 땡중이었네.”

“……!”

“그땐 나도 어렸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동시에 호승심에 불타올랐어. 중원 최강이라는 그 늙은이와 붙어서 내가 한 수 위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더랬지.”

이천상의 얼굴에 묘한 감흥이 떠올랐다.

젊은 날의 자신을 회상하는 마신. 과거 미숙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은 부동의 자신감을 가진 그에게도 제법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싸우셨습니까?”

“늙은이가 겁이 난다며 물러나더군.”

“그랬군요.”

“멍청한 늙은이지. 분명 실력으로는 내가 한 끗 차이로 밀리고 있었거늘.”

호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외인가?”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 그때의 나는 사십 언저리였고, 땡중은 환갑을 넘긴 나이였어. 궁극의 경지를 엿본 자들에게 세월은 쇠퇴가 아닌 경험과 완숙함을 가져다주게 마련일세. 제아무리 나라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버거울 수밖에.”

이천상이 피식 웃었다.

“물론, 실제로 생사결이 벌어졌으면 내가 이겼겠지만.”

“저는 교주님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실전의 변수 때문은 아닐세.”

새 잔에 술을 따른 그가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궁극의 무공을 손에 넣었음에도 마음만은 물러 터진 양반일세. 정작 생사결을 벌인다 해도, 제대로 살수를 쓸 인간이 아니야.”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미리 알았다 해도 병력을 파견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말씀은, 그런 뜻이었군요.”

“강경할 때도, 지나치게 유순할 때도 있었네. 그래도 소림은 소림이야.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들은 땡중이 살아 있는 한 결코 타락하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문제는…….”

“그렇다네.”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땡중이 량이를 어떻게 보느냐, 그리고 량이가 땡중을 설득할 수 있느냐. 관건은 바로 그것이겠지.”

* * *

서량은 심호흡을 했다.

어쩌면, 이라고 생각했다. 소림의 고수를 만나면, 그중 누군가가 구유마공 속에 녹아들어 있는 암영기의 흔적을 읽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럴 확률은 극히 낮았다.

암영기는 거의 완전하게 분해되어 구유마공의 구결로 흩어진 상태였다. 무신(武神)의 안목으로도 마공의 기반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란 힘들 것이다.

하필이면 적송대사와 만난 것이 불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운? 그렇지 않아.’

적송의 눈에서 이채가 번득였다.

‘웃는다?’

놀랍게도, 서량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 자유를 부르짖을 때보다 훨씬 상쾌하고 평온해 보이는 미소였다.

서량이 진실로 기분이 좋기 때문이었다.

암영기는 구파의 무공 중 비기(秘技)들만을 모아 조각내어 새로이 창안한 절세의 신공이었다. 그 부품으론 소림의 무공이 가장 많이 쓰였다.

불기(佛氣)를 죽이고 보다 실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암영기지만, 실상 불가의 무공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다. 이천상 역시 구유마공의 기반이 불가의 무공이라는 걸 꿰뚫어 보지 않았던가.

암영기는 그러한 무공이었다.

과거 서량이 살왕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힘이자, 신교의 소교주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근간이었다.

그러한 무공을 전설적인 고수인 권신이 알고 있단다. 어떻게 그 무공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량은 놀라움보다 뿌듯함을 느꼈다.

“암영기를 알고 있소?”

“……그렇다.”

“어떠했소? 암영기란 무공은.”

적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번만큼은 그도 서량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놀라운 신공이었지. 다소간의 빈틈은 보였지만 소림의 무공이라고 부족함이 없을까. 비록 살업으로 쌓은 힘이지만, 암영기를 창안한 살왕이란 아이의 재능은 실로 하늘이 내린 것이리라. 그토록 놀라운 재능이라면 살업을 씻고 진지하게 무도(武道)에 정진할 수 있도록 몇 마디 조언이라도 주고 싶었지.”

“……그러셨군.”

“이제 답해 보거라. 네 마공에서 어찌 암영기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말해 줘 봤자 믿지도 못할 것이오.”

“나는 그저 솔직한 대답을 원할 뿐이다.”

“그 무공의 원주인은 죽었소.”

“안다.”

“그리고 그 무공은 결국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그것을 기반으로 또 하나의 무공을 창조했을 뿐이오.”

“그것은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니라.”

“더 해 줄 말도 없소. 그저 우연히 얻은 무공을 기반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오른 지금의 내가 있을 뿐이오.”

어느새 서량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소. 살왕이 만든 암영기를 어찌 노선배가 알고 있는 것이오? 구파의 절학을 기반으로 만든 무공이지만, 그것은 이미 구파의 손을 떠난 무공이기도 하오. 노선배가 아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나는 대답을 바랐지, 또 다른 질문을 바란 것이 아니야.”

“내 질문에는 대답 못 해 주시겠다는 거요?”

“알아서 좋을 것도 없다.”

“그럼 이걸로 마무리합시다. 노선배께서는 지나치게 민감한 질문을 주었고, 내 질문 역시 노선배께 민감한 질문인 것 같소.”

가만히 서량을 바라보던 적송이 돌연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천상 그놈이 제 놈하고 똑 닮은 제자를 키워 냈구나. 네 녀석의 셈법은 어찌 그리 사악하냐?”

“사악하다니?”

“제 입맛대로 만든 셈법이니 사악하다 할 밖에.”

서량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저 노선배가 원하는 걸 알고 있을 뿐이오.”

“내가 원하는 것?”

“노선배는 내가 어떻게 암영기를 알고 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잖소? 노선배는, 내가 암영기를 알고 있다면 구파의 다른 여러 무공도 본교에 알려졌을 수 있음이 걱정되는 거 아니오?”

“날카로운 놈이로다.”

“장담컨대 그런 일은 없소. 암영기의 구결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소. 교주님도 모르지.”

“내가 너, 어린 마룡을 어찌 믿을꼬?”

서량은 대답 없이 웃고만 있었다.

굳이 구구절절한 언변은 필요가 없다는 뜻. 그 자신만만한 미소에서 서량의 진심을 읽어 낸 적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마.”

너무나도 쉽게 믿는다?

그렇지 않다.

적송은 서량의 강철 같은 마공을 모조리 헤집고 꿰뚫어 볼 능력이 있는 자였다. 서량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도, 서량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마공과 상극인 불가의 무공을 지고한 경지에 이르도록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말씀해 주시오. 소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적송이 다시 사발을 비웠다.

종전까지는 불콰해 보였던 적송의 얼굴이 다시 본래의 빛으로 돌아왔다. 부러 내공을 억눌러 취기를 살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그러지 않는 것이다.

“강호에 알려진 본사의 대표 절학이 무엇인 줄 알고 있느냐?”

“역근경, 세수경.”

서량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

“정확히는 칠십이절예라는 기학들이 역근세수경에서 파생된 무공인 것이지.”

적송이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허탈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불제자에게 무공이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소림은 그렇지 않다. 네 말마따나 강호에서 보는 소림은 불자들이 보는 것과 궤를 달리하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선사(先師)들이 다듬어 온 무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

“칠십이절예의 진본(眞本) 중 이십팔 종(種)이 담 맹주 손에 들어가 있다.”

“……!”

“본사 장경각에 비치된 것 중 스물여덟 개가 가본(假本)이란 말이다.”

서량의 눈이 부릅 뜨였다.

“소림의 절예가 맹주 손에 있다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스물여덟 개나?!”

“그렇다.”

“어, 어떻게?”

천하의 서량도 이번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송이 씁쓸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마. 칠십이절예 중 스물여덟 개의 진본이 넘어갔다고 하여 천하의 안위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느니라. 선조들의 얼굴을 뵐 낯이 없지만,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데 그깟 진본 가본이 중요하랴?”

“그럼?”

“혈고(血蠱)라고 들어 본 적 있느냐?”

“……!!”

“들어 본 적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씁쓸함으로 물들었던 적송의 얼굴에 은근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참으로 복잡한 얼굴이었다.

“소림의 수뇌 중 절반 이상이 혈고라는 몹쓸 마물에 중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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