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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26화 (326/774)

326화. 요신(妖神)의 부름 (1)

촤르륵.

욕조 안으로 끼얹어지는 물은 보통의 물과 달랐다.

양에게서 막 짜낸 젖처럼 탁한 유백색을 띠고 있었고, 햇빛이 쏟아지는 바다의 물비늘처럼 은은하게 반짝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젖빛 액체 위로 드러난 여인의 어깨는 물보다 투명하고, 잡티 하나 없었다.

“음, 좋구나.”

차분하고도 품격 있는 목소리에 나른함이 느껴졌다.

촤르륵. 촤르륵.

욕조에 담긴 물 표면을 살살 쓸어 보는 손가락은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섬섬옥수(纖纖玉手)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손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여인의 손톱 때문이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 끝, 잘 다듬어진 손톱이 이상하리만치 날카로워 보였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이다. 마치 맹수의 발톱을 연상케 하는 묘한 모양새였다.

“주인님. 염유액(炎乳液)을 다 부었습니다.”

“어머, 벌써?”

“네, 주인님.”

“아쉽구나. 앞으로 쓸 것은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루치 마흔일곱 관씩, 총 백 마흔하고도 한 관이 더 남아 있습니다.”

“사흘 치구나.”

“그렇습니다.”

여인을 주인님이라 부른 소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 왔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요란한 심동(心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인은 매혹적인 미소로 그녀를 달랬다.

“괜찮다. 이미 극(極)에 이른 나의 무(武)가 벌써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어. 내일이 되면 한계를 넘을 것이요, 모레가 되면 안정적으로 안착하겠구나. 이번에도 너희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대공(大功)을 경하드리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 소녀.

숨길 수 없는 공포와 진심 어린 감격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모습이 여인의 기분을 한층 좋아지게 했다.

“제법 길었지만, 결국 예까지 오기야 왔구나. 다 너희들 덕분이니라.”

“송구하옵니다. 저희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주인님의 명을 받든 것일 뿐, 주인님께선 언제고 하늘에 이를 분이셨습니다.”

“호호, 너의 혀가 참으로 달콤하구나.”

희뿌연 김이 올라오는 욕탕.

후끈한 열기와 나른한 목소리가 알 수 없는 염기(艶氣)를 만들어 냈다. 끈적끈적한 분위기에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틀 후, 나의 무(武)가 안정적으로 안착게 되면 더 이상 음흉한 늙은이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야. 하루빨리 그 늙은이를 찾아가 가슴을 갈라 보고 싶구나. 펄떡이는 심장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환하게 미소 짓던 여인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유액은 충분하구나. 설유액(雪乳液)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겠지?”

“아, 설유액 말씀이신지요?”

“그래.”

소녀가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설유액은 열흘 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음?”

여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열흘 치라니? 내 몸에 스며든 염유액을 중화시키기 위해선 최소 보름치가 필요할 터인데?”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현재 아랫것들이 열흘 치를 더 만들…… 컥!”

소녀가 말을 하다 말고 목을 움켜쥐며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기라도 한 듯,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열흘 치라…… 열흘 치?”

우우웅.

소녀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에 뜬 소녀는 어느새 여인의 머리 위까지 떠올라 있었다.

여인이 웃으며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남아도는 염유액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설유액을 걱정할 때였구나.”

“켁! 크륵!”

“내 전에 말했을 것이다.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는 것이 바로 나의 세상이라고.”

“끄르르륵!”

“그리고 또 말했을 것이야. 남들에겐 실수일지라도 내게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면 봐줄 것이되, 그 반대라면 사지를 찢어 개 먹이로 던져 줄 것이라고 말이다.”

소녀의 얼굴은 이제 붉다 못해 퍼렇게 질려 있었다.

강한 압력을 받는 것인지 혓바닥이 슬슬 입술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었고, 충혈된 눈 역시 미세하게 돌출되고 있는 듯했다.

나른한 얼굴로 소녀를 올려다보던 여인의 얼굴이 순간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쓸모없는 년!”

퍼어어어엉!!

요란한 폭음과 함께 소녀의 몸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산산이 조각난 소녀의 육신이 욕실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부서진 살점과 뼛조각, 내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은 여인이 몸을 담그고 있던 욕조도 마찬가지였다.

신비롭게 빛나던 젖빛 액체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여인의 몸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인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황홀함을 느끼는 듯 몽롱한 눈으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아!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습기를 타고 도는 비릿한 혈향이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리 풍성하고 짙은 피 냄새를 맡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우우웅!

여인의 동공이 어두운 회색으로 물들었다.

피 냄새를 맡자 사공(邪功)이 달아오른다. 들썩이는 욕망이 혈류를 빠르게 했다. 짧은 순간, 그녀는 과거 어느 때도 느껴 보지 못한 쾌감에 전율했다.

욕조를 잡은 그녀의 손이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잡아 죽이고 싶었다. 지독한 살인 욕구에 심장 박동이 두 배로 빨라졌다.

하지만.

‘안 되지.’

여기서 욕망에 몸을 실으면 이 년 적공(積功)이 무산된다. 과거 마도의 대종주인 천마(天魔)보다 더한 악명을 쌓았던 사신(邪神)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스무날만 참으면, 그녀는 천마에 비견되는 무적의 사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심호흡으로 들끓는 욕망을 다스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들어오너라.”

잠시 후, 다섯 명의 소녀들이 욕실로 들어왔다.

피범벅이 된 욕실을 본 소녀들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하지만 감히 티를 내지는 못했다.

“부서진 살점들을 싹 모아다가 개 먹이로 주거라.”

“네, 네! 주인님!”

소녀들이 욕실을 정리했다.

여인은 미소로 자신을 다독였다.

“스무날이라…… 이십 년을 참았거늘, 고작 스무날도 못 참아선 아니 되겠지.”

* * *

“워어.”

끼이익!

살왕기차가 멈추었다.

덜컹.

서량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여덟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 부복했다.

서량이 말했다.

“고생들 했다. 이만 귀교하도록.”

“소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목숨을 다해 따르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러한 말도 수뇌부 정도가 되어야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법이다. 형법당 최고 정예인 그들이었지만, 감히 소교주님의 명에 불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인들을 보낸 서량이 외쳤다.

“좀 쉬다가 가자!”

잠시 후, 마동필을 제외한 일행이 작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마동필은 한혈마들에게 소림에서 받아 온 건초를 먹이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음? 뭐가?”

여상린은 마동필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마 호위님, 어쩐지 예전보다 더 차분해지신 것 같지 않아요?”

“쟤는 원래 심심한 놈이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뭐랄까…… 소교주님과는 조금 달라요. 예전보다 마기를 훨씬 부드럽게 갈무리했다고나 할까? 여튼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이번에도 여상린은 마동필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확실히 예리하긴 예리한 감각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에서 얻은 게 컸지.”

“얻은 게 크다고요?”

“대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거든.”

여상린은 물론, 앵화도 깜짝 놀랐다.

서량이 대사님이라고 부르는 이는 오직 한 명이었다. 무적의 권신, 소림의 살아 있는 전설인 적송대사를 말함이었다.

“어떤 식으로 신교에 흘러들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동필이가 익힌 금강야차마공은 불가의 무공을 기반으로 두고 있어. 내가 익힌 구유마공과는 또 다르지. 금강야차마공은 사실, 마기만 걷어 내면 거의 불가의 무공이라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거든.”

“헐!”

“대사님께서도 흥미로우셨는지, 동필이를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시더군. 딱히 무공을 성장시켜 주려 했던 건 아니지만, 대사님의 얘기가 녀석에게 굉장한 도움이 된 모양이야.”

숭산 특유의 기(氣)와 분위기 덕에 서량이 한층 차분해질 수 있었다면, 마동필은 아예 무공의 깊이가 달라졌다. 마공의 성취가 올라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과는 또 다른 무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상린의 얼굴에 부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진짜 쑥쑥 성장하네요, 마 호위도.”

“그렇지.”

“쳇, 저는 지금 답보 상태인데.”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답보 상태라고?”

“네.”

“소림에 있는 동안 수련에 열중한 건 알았지만…… 너한테 답보라니, 참 안 어울리네.”

“왜요! 저도 나름 예민하다고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상린이 볼을 부풀리곤 말을 이었다.

“뭘 물어보려고 해도 제대로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줄창 비무해 달라 조를 수도 없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요.”

“물어볼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그래?”

“동맹을 맺었다곤 해도 외인(外人)은 외인인데 본궁의 내공 구결을 알려 줄 수는 없잖아요.”

“어, 그건 그렇지.”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네 고민이 심법(心法)에 있는 모양이지?”

“맞아요.”

여상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길, 어서 오라버니를 만나야겠어요. 반쪽짜리 무공이라 뭘 유추하기도 어렵단 말이에요.”

“네 오라비랑 만나서 그 유리 뭐라는 대법을 시행하면 서로에게 이득이라 했던가?”

“맞아요. 유리잠력대법.”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네 말마따나 외인에게 비인부전의 무공 구결을 전해 줄 순 없지. 그래도 그 외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라.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게 있으면 잠을 깨워서라도 물어볼 테니까.”

“그건 좀 너무한걸.”

투덜거리는 두 사람의 옆에서 얌전히 모닥불을 뒤적거리던 앵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소교주님.”

“응? 왜?”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도 될까요?”

“새삼스럽게 뭘. 물어봐.”

“고 당주님은 어떻게……?”

고구는 현재 무당에 가 있었다.

며칠 전 해독을 시작해도 된다는 서신을 보냈으니, 지금쯤 해독을 진행 중이거나 전부 마쳤을 것이다.

“곧 만나게 될 거다. 물론 서신을 또 보내야겠지만.”

“아, 네.”

“왜? 그 양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앵화가 우물쭈물 말했다.

“그…… 고 당주님이 간간이 제 무공을 봐주셔서요.”

“으잉?!”

서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앵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교주님! 감히 소교주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어? 아냐, 아냐! 야! 내가 무슨 네 스승이라도 되냐? 네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어! 너만 강해지면 그만이지!”

서량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놀란 건 고구 그 양반 때문이야. 허어, 그렇게 무신경한 양반이 네 무공을 봐주었다고?”

“네에…….”

“딱딱하기가 동필이보다 더한 양반인데, 허 참!”

알게 모르게 일행들끼리 교류가 있었단 소리였다.

분명 놀라웠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적 교류가 있다는 것은, 일행끼리 점점 하나가 되고 있다는 뜻과 같았으니까.

“고 당주는 조만간 합류할 거야. 걱정 마라.”

“아, 네.”

괜히 민망했던지, 앵화는 붉어진 얼굴로 연신 모닥불을 들쑤셨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거면 됐어.’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신교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신교를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작은 변화지만, 일행의 교류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서량을 기쁘게 했다.

“앞으로 고 당주한테도 종종 가르침을 받아라. 고 당주 역시 구파 장문인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는 고수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다.”

“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하려던 일을 빨리 해치워야겠군. 고 당주에게 서신을 보내려면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부터 알아야 할 테니까.”

두 여인이 의아한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웃음 가득하던 서량의 얼굴이 돌연 차갑게 굳어졌다.

“동필아.”

“예, 소교주님.”

“방령 데려와라.”

“예.”

잠시 후, 마동필이 밧줄로 꽁꽁 묶인 여인을 데리고 왔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여인.

바로 적사가에서 사로잡은 비요왕의 제자, 방령이었다.

서량이 큼직한 손을 방령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시작해 보자고.”

우우우웅.

방령의 머리를 덮은 그의 손에서 군림마황기가 번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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