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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28화 (328/774)

328화. 요신(妖神)의 부름 (3)

“어? 또 쉬어요?”

“응.”

여상린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저희 비요왕 잡으러 가는 거 맞죠?”

“맞아.”

“소교주님 비요왕 싫어하시죠?”

“호감 가는 인간을 죽이자고 이 먼 길을 갈까.”

“그럼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니에요?”

숭산을 떠나 하남 정주에서 잠시 쉬었던 일행은 개봉을 지나 산동 인근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사이 벌써 몇 번이나 쉬었다. 해가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노숙 준비를 했고, 다시 아침 해가 떠올랐는데도 뭉그적대며 밥을 지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 되기까지 못해도 대여섯 번은 마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덕분에 일행은 일행대로, 한혈마들도 한혈마들대로 상태가 좋았다. 특히나 쉴 때마다 마을로 내려가 최상의 먹이를 가져와 먹였기에, 말들의 모질이 신교에 있을 때만큼이나 훌륭했다.

“뭐 어떠냐? 급할 것도 없는데.”

“아니 뭐, 그렇기는 한데요.”

여상린이 앵화를 힐끔거렸다. 앵화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번에는 마동필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어떠한 언행도 보여 주지 않았다.

“보통 그……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우당탕탕 달려가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혹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으세요?”

“없는데?”

“너무 여유로운…….”

“급하게 가고 싶으면 말해. 난 그래도 상관없어.”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럼 밥이나 먹어, 인마. 앵화가 이만큼이나 해 놨잖아. 너 아니면 다 못 먹어.”

여상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누굴 돼지로 아시나. 저 요새 소식하는 거 모르세요?”

그야말로 언행 불일치의 표본이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그녀는 장정 열이 먹을 양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한 시진이 지나자마자 슬슬 출출해진다고 중얼거리던 게 그녀였다.

서량이 투덜거렸다.

“내가 나중에 너 진맥이나 한번 해 봐야겠어. 대체 먹는 족족 어디로 가는 거냐, 음식들이? 똥도 자주 안 누는 것 같더만.”

여상린과 앵화가 충격받은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마동필의 얼굴도 조금 굳어졌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 눌 때 엄청 누는 건가?”

“소교주님!!”

“억? 야! 귀 아프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어휴, 정말!”

여상린이 질렸다는 듯 홱 돌아앉았다. 물론 제 밥그릇은 챙긴 후였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뭐야,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커허험!”

마동필이 과격하게 헛기침을 해 댔다.

서량은 입맛을 다셨다. 이제는 마동필이 헛기침을 하는 것만 들어도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잘 먹고 잘 싸면 좋은 거지 뭘…….”

“으아아아!!”

여상린이 귀를 막고 악악 소리를 질러 댔다. 당연히 밥그릇은 그녀의 다리 밑에 잘 놓아둔 뒤였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친 일행은 제각기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동필아.”

“예.”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상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가세요?”

“동필이가 한 판 붙자네. 많이 컸지?”

마동필이 당황해서 말했다.

“소, 소교주님. 저는 그저…….”

“알아, 인마. 어쨌든 내공은 금해야 돼. 알지?”

“물론입니다.”

여상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일어났다.

“저도 볼래요. 앵화야, 너도 볼 거지?”

“네? 아, 저는…….”

앵화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다.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나서서 말하긴 민망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보려면 봐. 관중이 있어야 동필이도 힘이 날 테니까.”

그렇게 일행이 수풀 옆 공터로 이동할 때.

사박.

서량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일행이 의아함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소교주님?”

서량이 대답 없이 검지를 들어 보였다. 모두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기는 한데…….’

서량의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생기가 불안정해. 중상을 입었다. 요동치는 진기에 뾰족한 예기가 묻어 나오는데…… 검은 아니고, 창(槍)이로군.’

문제는 그 창에 담긴 기운이었다.

‘심각한 내외상을 입었음에도 이 정도 기도가 묻어 나온다? 대단한걸?’

이곳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초절정고수인 마동필은 물론이요, 이상할 정도로 감이 발달한 여상린도 잡아채지 못할 만큼 먼 거리였다.

마동필과의 전투를 준비하려고 육신의 감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았다면 서량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

‘동북쪽에서 달려오고 있다. 도주? 뭔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저리 다쳤으니 추적을 당하고 있는 것은 맞겠지.’

서량은 고심했다.

‘이대로라면 그냥 지나치기는 할 텐데…….’

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지나치기에는 왠지 찝찝했다. 게다가 다치긴 했어도 이리 풍성한 기를 뿜어낼 정도의 고수는 강호에 흔치 않다. 마동필에 비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고수라고 봐야 했다.

잠시 고민한 서량은 판단을 내렸다.

“너희, 잠깐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봐.”

후우우웅! 터억!

어느새 마차 안에 놓여 있던 천마도를 끌어당긴 서량이 발을 굴렀다.

핏!

평소처럼 폭발적인 신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느리지만도 않은 속도였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서량.

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일행이 입맛을 다셨다.

“쳇, 또 무슨 일이지?”

“일단 돌아갑시다.”

“뭔가 심상치 않았죠?”

“그렇소.”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모르긴 몰라도 바빠질 것 같은 기분이외다.”

* * *

“헉헉!”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호흡이 망가지니 내력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히 신법의 속도도 떨어졌고, 지구력 역시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이런 식이라면 잡힌다.’

언양회(彦揚懷)는 마음이 급했다.

일가(一家)를 이룬 후, 십대고수나 구파 장문인이 아니고선 자신을 이길 자가 없다고 자부해 온 그였다. 군사 훈련도 실전처럼 받았기에, 지휘관으로서의 역량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 강한 자신감, 자부심은 괴악한 무리의 파상 공세 앞에서 무너져 내려 버렸다.

‘빌어먹을! 이런 전투는 도저히……!’

애초에 전투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말이 동맹이지, 상대는 일방적으로 명령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 아니었던가.

한데 일백이나 되는 수하들을 다 잃고 왔다.

그들은 지금껏 아버지가 직접 키워 낸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그런 전사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수하를 잃고 도주하는 수장의 비애. 이 또한 경험이라면 경험이지만,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떨쳐 내려 해도 도무지 떨칠 수가 없는 분노였다.

‘내 이 수모를 반드시 갚아 주마! 반드시!’

격한 감정을 떨치지 못하니 호흡이 더더욱 격해졌다. 격해진 호흡은 내공과 체력을 더 빠르게 깎아 먹었다.

“허억! 허억!”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실전과 같은 훈련을 지속해 왔어도, 실제로 창검을 나눠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피 튀기는 생사의 장이다.

‘움직여라! 더 빨리 움직여!’

그때였다.

“초짜인가?”

“헉!”

뜬금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언양회는 서둘러 걸음을 멈추었다.

‘벌써?!’

이렇게까지 빨리 따라잡았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적들은 무척 대단했지만, 그의 무공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뒤를 잡힐 수는 없다는 뜻이다.

퍼뜩 놀란 언양회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좌우로 갈라진 길.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절벽이 있어 사로(死路)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좌측 길이 생로(生路)다.

그 생로의 길목 가운데, 바위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언월도(偃月刀)?!’

기골이 장대한 청년의 옆으로, 칼 한 자루가 땅에 꽂혀 있었다. 굳이 부르자면 언월도라 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언월도보다 칼날은 길고 도병은 짧았다. 어찌 되었든 묵직한 대도(大刀) 계열이었다.

청년, 서량의 얼굴에 은근한 흥미가 떠올랐다.

“신기하네그려. 육신에 담은 무공은 한 지역의 패주급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행동은 어째 강호 초출처럼 어설픈가?”

느닷없는 등장만큼이나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언양회는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쾅!

강하게 진각을 밟은 언양회가 서량에게 창을 겨누었다.

“누구냐!”

우렁차게 호통을 친다.

서량이 혀를 찼다.

“댁이 여기 있다고 아예 광고를 하지 그래? 쫓기는 거 아니었나?”

언양회는 순간 아차 싶었다.

강한 무공을 갖고도 또 한 번 실책을 저질렀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느닷없이 길을 막은 상대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당연히 소음은 일절 금물이며, 기도 역시 잔잔하게 가라앉혀야 옳았다.

‘빌어먹을!’

서른도 안 먹은 애송이 앞에서 부끄러운 꼴을 보였다. 언양회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네놈, 그년이 보낸 자객인가?!”

“그년? 그년이 누군데?”

“비요왕 말이다!”

번쩍!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뜬금없는 곳에서 상상도 못 한 이름을 들었다. 그저 감이 이끄는 대로 왔을 뿐인데, 이 이름 모를 창수(槍手)의 입에서 비요왕이란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다.

화아아악.

언양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기파. 뿜어져 나오는 기(氣)만으로 무수히 많은 정보를 읽을 수 있었다.

‘전력? 아니다. 하지만 강해! 상상 초월의 고수……! 설마?’

언양회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 뜨였다.

“바, 반로환동?!”

우우웅. 우우우웅.

땅에 꽂힌 천마도가 희미하게 떨려 왔다. 서량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량은 침착했다.

비요왕이란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마기가 치솟았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터져 버릴 정도의 분노를 흩뿌리진 않았다.

‘아직이다.’

이 분노를 이름 모를 숲에서 터트려선 안 된다. 그건 너무 아쉽고 아까운 일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이 불꽃은 오로지 비요왕만이 식혀 줄 수 있는바. 그는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았다.

“네놈, 비요왕에게 쫓기고 있었느냐?”

“뭐, 뭐라고?!”

한참이나 후배처럼 보이는 이에게 네놈 소리를 들었다. 언양회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해라. 비요왕에게 쫓기고 있느냐?”

어느새 바위에서 내려와 대도를 말아 쥔 서량에게서 무서운 박력이 풍겼다.

은은한 마기는 그대로이되, 존재감은 이전과 달라졌다. 언양회는 순간 자신이 망망대해에 떨어진 조각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언양회는 이 흉포한 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교!?”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놈 비요왕에게…….”

그때였다.

서량의 붉은 안광이 언양회의 후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사이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호오.”

비요왕은 아니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풍겨 나오는 기질은 극도로 유사하지만, 다가오는 놈들 중 비요왕은 없었다.

그러나 비요왕과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다. 얼마 전, 그가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방령처럼.

방령보다도 훨씬 고차원적인 사기(邪氣)를 뿜어내는 이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기괴한 움직임으로, 그러나 무척이나 신속하게.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서량이 느끼지 못했을 만큼 은밀하게.

“참으로…….”

파악!

천마도가 뽑혀 나왔다. 자흑색 매끄러운 도신에 흉흉한 적색 마기가 피어올랐다.

서량이 하얗게 웃었다.

“참으로 모를 일이야. 세상사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벌써부터 그 망할 년의 꼬리를 밟게 될 줄은 몰랐지 뭔가.”

“……!!”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지. 아니 그런가, 애송이 창수?”

화아아악!

마침내, 육안으로 보일 만큼 짙은 회색빛 구름이 매서운 속도로 두 사람을 덮쳐 왔다.

서량은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으하하하!!”

피이이잉!

천마도를 두 손으로 단단히 감싸 쥔 서량이 회색빛 구름을 향해 무자비한 일참(一斬)을 가했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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